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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3차- 3차 가야 돼요!”

        

       “……어째 영 안 좋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진희야, 저 취객들 좀-”

        

       “노래방.”

        

       “노래방 좋아!”

        

       “노래방 좋아요!”

        

       “……하. 그래, 갑시다. 가.”

        

       시훈은 긴 한숨을 천천히 내쉬고, 앞서 걸어가는 세 명의 취객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취객들에게 수적으로 밀린 이상,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나마 술 더 마시자는 소리는 안 하는 게 어딘가.

        

       차라리 같이 취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하지만……술에 취하는 게 영 조심스러웠다. 딱히 주사를 부린 적은 없다지만, 누구 말마따나 용기의 물약 아닌가.

        

       쓸데없는 용기가 샘솟는 건 원치 않았다.

        

       -하아.

        

       복잡한 생각을 토해내듯,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내쉬는 사이.

        

       “키 작아지겠어요.”

        

       “……그건 또 뭔 소리야.”

       

       “땅이 꺼져서.”

        

       어느새 도착한 노래방 앞에서 기다리던 예나가 언제나와 같은 헛소리를 건네 왔다. 미묘하게 웃고 있는 것이- 나름, 농담이었던 거겠지.

        

       아까부터 한숨을 조금 많이 쉬었던가. 신경 쓰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미안하기도 했던 고로.

        

       “……미안. 술 마시면 한숨 쉬는 편이어서 그래.”

        

       “……폐활량이 좋네요. 노래 잘 부르겠어. 어서 들어가요. 둘은 벌써 들어갔어.”

        

       대강 둘러댄 핑계에 조금 마음이 놓인 걸까. 다시금 재촉한 예나는, 제법 경쾌한 걸음걸이로 노래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어쩐지 잠시 붙잡고 싶어서.

        

       “……근데, 왜 다시 존댓말이야?”

        

       떠오르는 데로 던진 말이었다. 딱히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그럼에도, 그 자리에 멈춰선 예나는 진지하게 고민이라도 하는 양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반쯤 뒤로 돌려, 아직 계단 위에 서 있는 시훈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그러게. 술 마시면 존댓말 하는 편인가봐요.”

        

       그리 답하며 작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술, 안 취해서 다행이네.’

        

       쓴 웃음을 짓는 시훈을 남겨둔 채.

        

       * * * *

        

       ‘노래방, 노래방 하길래……부르고 싶은 건 줄 알았는데!’

        

       노래방에 들어온지 약 한 시간. 마이크는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 한번도 예나의 손에는 쥐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노래들이 적힌 책만 쥐고 있다가, 이제는 술잔만 쥐고 있는 손이었다. 괜찮은 걸까. 많이 취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틈에 주류를 취급하는 노래방을 물색한 건지. 우연이라고 했지만…… 예나의 말이라면 무조건 긍정하고 보던 아리로서도, 결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술만 마시려나? 노래, 부르는 목소리 궁금한데……엄청 좋을 것 같고…….’

        

       억지로 권하면 싫어할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한참 전이다. 그렇게 또다시 순번이 돌고, 슬슬 예약이 떨어져가는 시점. 잠시 노래가 끊긴 틈을 타, 더는 참지 못한 아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예나는 노래 안 해?”

         

       “……노래, 응. 하지. 잘하지는 않는데.”

        

       그러나 여전히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예나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고작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르는 것 가지고 이렇게나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혹시, 원래 아이돌 하려 했었나……?’

        

       하기야, 저 외모로 연예인 생각을 안 했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가수를 꿈꾸다가, 모종의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노래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게 되어버린- 그런 비극적인 설정이 아리의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예나 부르게? 여기, 우선 예약으로 눌러!”

        

       그 사이, 둘의 이야기를 들은 진희가 서둘러 리모콘을 건네왔다. 예나의 노래를 듣고 싶은 건 아리 혼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훈 역시 둘을 향해 시선을 돌렸으니.

        

       -쪼륵

        

       그리하여 순간적으로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예나는, 비어가는 잔에 소주를 찰랑거리게 채웠다가, 한 입에 비우고는-

        

       “……조금,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응. 부를게.”

        

       마침 노래를 끝낸 시훈으로부터 마이크를 조심스레 건네받았다.

        

       예약된 노래가 모두 소진된 상황. 조용해진 방 안에서, 세 쌍의 눈이 마이크를 쥔 예나에게 향했다.

        

       옆방에서 희미하게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발라드. 예나의 취향도 저런 노래가 아닐까. 갑자기 랩을 하거나, 춤을 곁들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영 상상되지 않았다.

        

       ‘춤……엄청 예쁠 것 같긴 한데. 운동도 잘하고.’

        

       그렇게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리모콘을 예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밀어주던 순간.

        

       “쉴- 곳을, 찾-아서-”

        

       반주 없는 노래가 시작됐다.

        

       빈말로도 잘 부른다고는 할 수 없는 노래다. 에코가 들어갔다지만, 무반주이기에 더더욱.

        

       그럼에도, 듣고 있자면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져서.

        

       세 사람은 홀린 듯이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

       .

       .

        

       -짝짝짝!

        

       한 템포 늦은 박수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반주가 없으니, 노래가 확실히 끝난 건지 가늠이 어려웠던 탓이다.

        

       묘한 분위기에 잠시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던 중-

        

       “……노래 좋다! 최신곡이야?”

        

       “……아니. 미발매곡……일 거야.”

        

       진희의 질문에, 예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함께 시선을 피했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띄우며.

        

       ‘설마 자작곡인가?’

        

       노래방에서 내내 조용히 앉아있다가, 처음으로 부르는 게 무반주 자작곡이라니. 어지간한 용기로는 상상도 하기 어렵고, 어지간한 얼굴로는 결코 시도해선 안 될 위업이었다.

        

       그럼에도, 예나는 그 높은 허들을 가벼이 넘고 있었다. 최소한 아리가 느끼기에는.

        

       조금 전 했던 상상 때문일까. 취기가 올라 발그랗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선을 살며시 내리깐 채, 자그마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퍽 아련해 보여서.

        

       아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예나의 어깨를 말없이 다독여주었다.

       

       움찔거린 예나가, 편안하게 뒤로 기댈 때까지.

        

       * * * *

        

       오랜만에 꿈을 꾸고, 또 기억하는 밤이었다. 드문 일이다.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꾹꾹 눌러오던 욕심이 결국은 고개를 들어버린 날이었던 탓일까.

        

       급작스럽게 시작된 악몽에는 맥락조차 없었다. 꿈이 으레 그러하듯-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인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침대에 웅크려 숨어 있었을 뿐이다.

        

       몸을 구기고 구겨서 아주 작게 말면, 작아지고 또 작아져 없어질 수 있는 것처럼. 한 때는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러했듯이, 그렇게 미동도 없이 숨어 있었더랬다.

        

       그리 썩어 뭉그러져가는 나를, 누군가 불러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한없이 무거운 몸을 비척비척 이끌었다.

        

       이 작은 방을 가로지르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건지. 꿈 속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향해 가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누가 부르는 건지 알 수 없었듯이.

        

       그럼에도 무언가, 무언가 보였던 탓에. 차마 기어가는 걸 멈추지는 못했더랬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에는 익숙한 거울이 있었다. 매일 침대에서 눈을 뜨면 보이던- 버릴까 말까 하루에도 수십번을 고민했던 거울이다.

        

       결국, 거울은 끝끝내 제 자리를 지켜냈으나- 딱히 그 거울이 특별해서는 아니었다.

        

       처음 이 방의 문을 연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무엇 하나 내버리지 못했으니.

        

       입지 않는 옷들이 정리된 상자들조차도 소복이 먼지가 쌓일 때까지 남아있을 지경이다. 거울을- 그것도, 나름 세월이 담긴 생활감이 남아있는 거울을 버릴 수 있을 리가.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는 거울을 보아도 흠칫거리며 놀라지 않는다는 점일까.

        

       저 너머에서 익숙한 무표정으로 나를 되돌아보는 여자를, 이예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를 한참.

        

       거울과의 눈싸움이 조금 머쓱하다는 듯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띄우는 나를 보는 순간- 그제야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아, 이거 꿈이구나, 하고.

        

       어색한 연기에서 비롯된 미소 탓일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짓지 않게 된 표정이다. 웃음이 나오면 웃고, 조용히 있고 싶을 땐 조용히 있었던 탓에.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상상 속의 예나를 연기하는 걸 그만둔지도 벌써 꽤나 긴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리 깨닫고 나서야,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늘어진 눈꼬리. 창백하게 흰 피부. 어느새 조금 장난스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

        

       이제, 꿈에서 본 거울에서도 이 모습이구나.

        

       처음이었다.

        

       진실로, 처음이었다.

        

       그 사실에 안도를 해야 하는지, 당황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었다. 꿈 속의 나는, 그 무엇도 모르겠어서. 그저 울음을 토해내고 싶음에도 목구멍이 막혀 있어 컥컥거리니, 거울 속의 여자도 함께 켈록거리고- 결국, 두 쌍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순간.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내가 말했는지, 아니면 들었는지. 그조차 알 수 없이 웅크린 사이, 그저 그 말만 허공에 남아 무겁게 맴돌았다.

        

       컥컥거리던 소리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메아리치듯이.

       

        .

       .

       .

        

       -우우웅

       -우우웅

        

       진동소리.

        

       아직 꿈인가- 싶었지만, 아니다. 이, 땀에 축축하게 젖은 이불의 감각은 헷갈릴 수가 없으니.

        

       천천히 손을 뻗었다. 톡이다. 잘 들어갔는지, 몸은 괜찮은지 물어보는.

        

       반가워야 할지, 조금 헷갈리더라. 연락은 고마웠지만……꿈은,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아서.

        

       멍한 정신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서두를 건 없겠지. 잠시, 천장이나 쳐다보며 쉬어도……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반쯤 의식의 끈을 놓은 채 있자면, 다시 머리를 메우는 건 언제나 애써 억눌러온 생각이다.

        

       ……조금, 조금 욕심을 부리는 거겠지만.

        

       온전히, 이예나로서 살아도 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r p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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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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