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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합스베르크 호, 하늘을 날다.]

     무슨 문장이냐하면, 통일력 원년 제국신문 1면에 실린 헤드라인 중 하나다.

     

     기사에는 배가 하늘을 나는 장면이 그대로 실려 있었고, 합스베르크 황제를 비롯한 제국 인사들과 노스트럼 출신의 이들이 함께 배 위에 올라선 모습도 따로 찍혔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에 있습니다! 와, 젠장! 배가 하늘을 난다고요!

     당시 기자가 외쳤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녹음된 소리를 마석에 저장하여 전하는 걸 생각하면 그냥 정제해서 소식을 전하면 되지만, 그 목소리에는 눈으로 보는 기적과 생생한 현장감이 담겨있었다.

     말 그대로, 배가 하늘을 날았다.

     노스트럼의 대영웅과도 같은 대마법사가 배를 하늘에 띄운 것도 아니고, 비룡 수백 마리에 밧줄을 묶어 강제로 배를 들어올린 것도 아니었다.

     제국 연금술과 마도공학의 승리.

     

     합스베르크 황제는 하늘에 띄운 배에 대하여, 그런 표현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마법을 정복했고, 이제는 인류의 시대다.

     라고.

     고작 배 하나를 허공에 띄우는 게 무슨 인류의 시대 운운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현장에서 들었던 나로서는 그 말을 하는 합스베르크 황제가 여러모로 감개무량해보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목표를 달성한, 숙원을 해치운 사람처럼.

     그래서 생각했다.

     회귀로 인해 역사는 바뀌었고, 앞으로 내가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가 되는 경우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하려고 했다.

     인류 최초로 배를 하늘에 띄운 사람은 그레이 지브롤터가 될 것이며, 신문에 기록으로 남는 이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될 예정이었다.

     실패한 비행으로.

     혹은 어느정도 자유롭게 비행을 하기는 했지만, 불과 반 년 정도 지난 뒤에 그렇게 좋아하던 비행선에서 죽음을 맞이한 비극으로.

     그런 계획을 세웠으나, 아버지의 부탁 아닌 부탁 때문에 나는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문제될 건 없지.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

     합스베르크 황제는 내가 회귀자라고 99% 추측하고 있다.

     비행선에 대한 것도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비행선에 이르는 과정을 여러 차례 탑을 쌓듯이 그 기반을 닦아놓기는 했다.

     9년 전, 승강기 개발부터 시작하여 풍석과 마도자동선 점프까지.

     ‘역사학자들이 봐도 의심하지 않을 절차는 만들어뒀지만, 오직 한 사람만 의심할 거야.’

     모든 이들이 ‘승강기의 필요성 이후로 9년 간의 과정을 거쳐서 비행선에 도달했구나’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합스베르크 황제만 오직 회귀자의 특권을 누렸겠거니 하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비행선을 처음으로 탄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현재의 내게서 빼앗아가다니. 이건 뭔가 복수하려는 건가?

     미래에서 자신이 비행선을 가장 먼저 탔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내가 과거로 돌아와서 그 역사를 갈아엎었다고 생각할 위인이다.

     따로 언질을 주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 언질이 없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가 알고 있다는 증거.

     ‘어디까지 하려고 하는 건지 지켜보려고 하는 거겠지.’

     내가 황금의 배를 바르셀로나 평야에 지은 공장 한가운데에서 만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합스베르크 황제는 묵인했다.

     당연한 일이다.

     바토리 소장에게 계획을 알린 시점부터 이미 황제는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설령 바토리 소장이 연구에 바빠 황제에게 보고하는 걸 소홀히 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면으로 황제는 정보를 파악했을 것이다.

     ‘황제의 눈과 귀는 바토리 소장만 있는 게 아니니.’

     인부로서 귀를 위장한 엘프들을 동원한 것도 탄로났을 것이며, 공장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자재와 인건비의 흐름은 공장이 지어지기 전부터 알아차렸을 것이다.

     애초에 바르셀로나에서 일하는 행정관 300명부터가 황제의 사람이다.

     맨 땅에 레일도 깔지 않고 배를 만든다고 한다면.

     회귀자라는 걸 전제로 두고 생각을 한다면, 육지를 달리는 마도자동선이 아니라 하늘로 띄울 거라고 의심하는 게 합스베르크라는 인간이다.

     외려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내가 실망할 지경.

     그렇다면 그는 왜 황금의 배가 비행선이 되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놔둔 것인가?

     ‘그리고 그 용도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처리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니까 가만히 놔두는 거지.’

     황금의 관.

     역사에 장식될 가장 비싼 관.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으나, 하늘을 나는 배를 타고 다니는 과정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경각심을 준 인간-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나중에 비행교범으로 ‘세인트 지오하지 않기 위한 비행수칙’같은 걸 만들어 역사에 장식할 사람이기에 그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 계획이 틀어졌다.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비행선을 타고 싶어한다.

     말은 일단 동생들의 부탁이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그 아래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들어있어서 그런 것일 터.

     최초라는 타이틀을 세인트 지오에게 넘겨줄 수 없다거나.

     반 년 동안 내가 후작성을 방문한 게 한 손에 꼽을 정도보다 더 적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여 만들어낸 황금선을 그대로 세인트 지오에게 넘겨줄 수 없다거나.

     여름방학도 다가오고 하니, 누아르도 불러서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늘을 날며 가족끼리의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래도 하늘은 상대적으로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위치기는 하니까.’

     지난 수 년 동안 지브롤터 가문의 사람들이 온전히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조금 드물었다.

     나와 누아르가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누아르는 학생이고 나는 내 일로 바빠서 후작성에 방문하지 못했다.

     비행은 단순히 하늘을 나는 배를 타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동생들이 그린 그림 속, 비룡 여러 마리가 끌고 다니는 성의 안에는 지브롤터의 가족 모두가 함께 웃고 있었다.

     따라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예측불가능한 변덕.

     합스베르크 황제의 최초 타이틀에 대한 리스크 관리.

     

     그리고 지브롤터 가문, 우리 가족의 시간을 위하여.

     나는, 합스베르크 황제를 왕국에 초청하기로 했다.

     그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치적인 협상 과정이 필요했다.

     제국과?

     아니.

     노스트럼 왕국과.

     * * *  

     “그래서 이렇게 왕가 사람들을 부른 것이니?”

     “예, 카르멘 왕비님.”

     “왕비라고 하니 어색하구나. 여기 내 딸이 공동왕으로 있는데.”

     “하지만 왕대비라고 부르면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그냥 예전처럼 왕비라고 부르렴.”

     왕도에 비밀리에 마련된 원탁, 모르가니아의 3대가 원을 그리며 앉아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나이가 들었다고 호칭이 갑자기 딱딱하게 바뀌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음.”

     윈체스터 대공.

     그리고 오로솔 아카데미 제복차림으로 이 자리에 방문한 공동왕.

     “나리아 여왕. 이건 기회입니다. 당신의 정치적 위신을 높이는 동시에, 지브롤터를 품고 제국과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중대한 기회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까지, 모르가니아의 3대가 내 앞에 앉아있다.

     “공식적으로 초청하도록 하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의 이름으로,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

     “구체적인 의전에 대한 계획은 대공과 왕비께 맡기겠습니다. 이미 이전에도 몇 번 황제가 노스트럼에 방문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후후.”

     “그 때는 황태자의 신분이었지만…하아.”

     카르멘 왕비가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좋아. 무슨 명목으로?”

     “명분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가 오게 한다는 것이 중요하며, 뒤에서 그림자를 동원한다면 알아서 찾아올 거니까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비룡이 아닌 비행선을 타고?”

     “으음….”

     윈체스터 대공이 팔짱을 끼며 침음성을 흘렸다.

     “하늘을 나는 배라….”

     “혹시 대공께서도 타보고 싶으신 겁니까?”

     “내가 탄다기보다는 군사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지.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노스트럼 전역을 오다니는 마도자동선들이 본래는 제국의 ‘군함’이었다는 걸.”

     새삼스럽지만, 그랬다.

     

     “언제나 이야기를 했지만, 용도가 한순간에 바뀌면 그대로 우리는 기습을 당하는 게야. 마도자동선이나 열차 안에 숨어있던 제국군 병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후방을 급습할 수도 있지. 그리고….”

     “이제는 배가 하늘을 날아서 온다면, 하늘에서 제국군 병사들이 떨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고요.”

     “최악의 경우, 소드마스터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우리 노스트럼은 현재 제국의 마도공학 기술 덕분에 큰 번영을 누리고 있으나, 그게 한순간에 전쟁용 시설과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언제나 경계하고 있다.

     “노스트럼 상공을 그대로 날아오는 걸 왕국민들이 전부 본다면 두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야. 전설 속의 드래곤과 같은 것을 제국에서 만들어버렸다고.”

     “…….”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네만.”

     윈체스터 대공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자네는 마음을 먹었군.”

     “예. 어차피 언젠가는 겪게 될 통증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해결하는 쪽이 더 편하겠죠.”

     “좋아. 그렇게 하지. 비룡기사단의 의전을 통한 견제는 이쪽에서 생각해보겠네.”

     아마도 윈체스터 대공은 협곡을 넘어오자마자 비룡 기사단을 비행선 앞에 붙이지 않을까.

     딱히 비행선과 경쟁하려는 건 아니겠지만, 비행선을 상대로 비룡이 날아가면서 오와 열을 갖춰 나는 모습만 보여도 확실히 제국을 향한 군사적 견제로 충분할 터.

     나머지는-

     “좋습니다. 적절한 명분이 떠올랐습니다.”

     나리아가 손을 들었다.

     “역시, 그걸 당기는 수밖에 없겠군요.”

     “당긴다니, 무엇을?”

     “모른척하기는. 당신의 약혼입니다, 그레이 경.”

     “…….”

     “약혼식을 하는 것에 대한 약혼을 위한 협의를 노스트럼 왕국에서 하는 걸로 하죠. 그거면 딱 맞아떨어지니.”

     “나리아 여왕. 그게….”

     “싫습니까?”

     “…….”

     싫은 건 아니다.

     그 명분이라면,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단지.

     “황제가 그 정도로 직접 오겠다고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황제가 비행선을 타고 오게 만들, 제국의 ‘핵심전략자산’을 공개하게 만들만큼의 명분이냐 하면 그건 미지수.

     “왕국 백작위를 가진 총독과 황녀의 결혼도 아니고 약혼식에 대한 협의라는 명목으로, 황제가 직접 배를 타고 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나리아가 씩 미소를 지었다.

     “당신을 팔면 됩니다. 그레이.”

     “…….”

     “어머니. 서신을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문구 하나만 추가하면 됩니다. 그레이 경이 황제 폐하께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왕국에 방문하기를 기대할 거라고.”

     “…….”

     그런다고 올까.

     “구구절…. 제국력 99년 9월 9일 기념일을 준비하느라 바쁠텐데.”

     모르겠다.

     “일단, 해보세요.”

     * * *

     몇 시간 뒤.

     제국에서 회신이 왔다.

     왕도에 있는 제국 대사관을 통해 들어온 소식은 어찌나 급했던지, 마도신호를 통해 찍힌 서신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왕국에 들어왔다.

     “…온다는데?”

     “…….”

     황제는 받아들였다.

     “대신, 조건이 있다고 하네.”

     “조건이요? 뭐, 비룡기사단을 물리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그레이, 네가 마중나오라고 하는구나. 협곡에서.”

     “……그거.”

     

     카르멘 왕비는 서신을 가볍게 흔들며, 이해할 수 없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도에서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협곡까지 와서 태워가겠다니. 도대체, 왜?”

     “그러니까요.”

     “뭔가 모종의 연락이 있었던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닙니다. 추측하자면….”

     아마.

     “그게, 사진이 제일 잘 받을 테니까요.”

     “……?”

     “연출입니다, 연출.”

     협곡 사이를 나는 비행선을 찍기 위함이 아닐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완결까지 이제 1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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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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