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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1

       노란 빛무리가 제단 위를 감싸고 돌았다.

       

       “뭐, 뭐지?”

       

       제단 아래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에테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입술을 짓씹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손으로 차양막을 만들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백열등처럼 밝은 광원 사이로 희미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신형(身形)이었다.

       

       “……!”

       

       에테르는 까무러치며 뒤로 물러났다. 짓씹은 아랫입술에서 쇠맛이 느껴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뒷걸음질을 친 곳이 평지가 아니었다.

       

       “선생님!”

       

       쿠당탕탕!

       

       세상이 세 바퀴 반 정도 뒤집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로테가 가장 먼저 나서서 굴러떨어지는 에테르를 잡아챘다. 로테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다, 괜찮아.”

       

       강철로 된 몸이라 그런지 딱히 아프진 않았다. 대신 더럽게 수치스러웠지만.

       

       에테르는 끄응, 하고 신음을 내며 일어섰다. 쑤시는 곳 하나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연기해야 뒤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빨리 병원으로 가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연기라고, 연기.

       

       에테르는 로테의 걱정과 부축을 한몸에 받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뒤따라온 프레이, 유피엘, 레니냐 등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빛은 온데간데없었다. 제단을 내려오면서 접신이 끊긴 모양이다.

       

       “그런데 방금 거, 노란색 빛이었죠.”

       

       몇몇 학생의 시선이 윌버에게로 향했다.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윌버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꺼냈다.

       

       “처음 보는 색상이었습니다.”

       “아스테야 선생님은 화계 전공이시잖아요.”

       “네, 그러면 붉은 빛무리가 내려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금색이라면…….”

       

       한 학생이 물었다.

       

       “계통이 다른 정령에게 신탁을 받을 수도 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죠. 보통 정령은 자기 계통에 맞추어 계약자를 추려내니까요.”

       

       예컨대 화계정령은 붉은 눈을 가진 사람에게 이끌린다. 다른 계통의 정령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총장님처럼 네 정령의 비호를 모두 받는 경우도 존재하죠. 그건 매우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중첩 성질에 따라 무색의 빛이 내려온다. 그런데 에테르가 본 빛은 분명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빛이라…. 사제 일을 하면서 노란 빛은 처음 봤습니다. 그, 혹시……?”

       

       타타탁!

       

       윌버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설비 인력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 사제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해룡이, 해룡이 나타났습니다…!”

       

       

       **

       

       

       쏴아아아아!!

       

       폭우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수면이 급격하게 차오른다. 크레파스보다 푸르고 진한 물결이 절벽을 잡아먹을 기세로 솟구쳤다.

       

       “학생, 여긴 위험해요!”

       

       세실이 소리쳤다.

       

       “학생은 하이젠버그 교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 있으세요. 여긴 제가 데리고 온 마도사들 만으로도 충분해요.”

       

       세실은 최상급 정령을 넷이나 보유한 마도사. 엘프국에서 그녀보다 강한 정령마도사는 없었다.

       

       하지만 구천지대계도 만만한 존재는 아니다.

       

       공략법을 알면 쉬운 상대지만, 모른다면 세실이 질 수도 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학생이 뭘 할 줄 안다는 거예요! 위험하니까 뒤로 빠져 있으세요!”

       

       쿠구구궁!

       

       바다를 이루는 지각이 짓쳐 올라왔다. 그 힘으로 인해 생선들이 물 위로 튀어올랐다.

       

       끼긱, 끼긱.

       

       그 생선들에 섞인 마수가 하나둘씩 뭍으로 올라왔다.

       

       “으아악!”

       “저, 저게 뭐야!”

       

       처음 땅 위로 올라온 건 뱀이었다.

       

       ‘퍼플 애더’, 자줏빛 철갑을 두른 재앙급 마수였다.

       

       퍼플 애더 수천 마리가 절벽을 타고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잘린 소세지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흉물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스스슷.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 무리에, 마도사들은 덜덜 떨었다.

       

       마도사들은 전술 교본으로 알고 있었다. 저 독사가 내뿜는 독에 중독되면 십수분 내로 사망한다. 심지어 저들은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다. 한 마리라면 모를까, 재앙급 마수 수백 수천 마리를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전의를 잃어가고 있었다.

       

       오직 한 명, 세실 르네이를 제외하고는. 

       

       “여러분도 잠시 뒤로 빠지세요. 1파는 저 혼자 상대합니다!”

       

       세실은 가볍게 스태프를 휘둘렀다.

       

       곧 그녀의 눈이 묵빛으로 물들었다.

       

       [최상급 지계 정령마도 ─ ‘제때 거두어 들이리라(Carpe Diem)’]

       

       쿵, 쿵, 쿠웅!

       

       총 세 번에 걸쳐 지면이 융기(隆起)한다.

       

       땅이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치며 예리한 송곳으로 변했다. 뾰족하게 변한 땅은 의표를 찌르듯이 마수들의 목덜미를 정확히 조준했다.

       

       끼긱, 끼긱!

       

       그 모습이 마치 곡식을 수확하는 듯했다. 대부분의 퍼플 애더는 독을 뿌릴 새도 없이 꼬챙이질에 당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놈들도 명줄이 짧긴 마찬가지였다. 세실은 직접 스태프로 바다뱀들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다녔다.

       

       “제파식 전술을 사용하는군요.”

       

       다가오는 퍼플 애더를 전부 정리한 세실이 스태프를 고쳐쥐었다.

       

       “이런 전략을 쓴다는 건 근처에 지휘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 해룡이겠죠.”

       

       그녀의 말대로였다.

       

       뱀이 모조리 죽자 다음에는 거북이 튀어나왔다.

       

       회색빛이 도는 중대형 크기의 바다거북. 저 또한 크기를 보아하니 재앙급 마수였다.

       

       세실은 지체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3열 횡대로 맞춥니다! 전열은 화계, 중간열은 수계와 지계, 후열은 공계를 주력으로 하여 적습에 대비하세요!”

       

       세실은 전략전술을 짜는 것에도 탁월했다. 

       

       이미 1파를 그녀 혼자서 막아냈다. 마도사들의 사기는 진작 올라갔다. 버멜은 그 모습을 보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의 손에 연성 스크롤이 딸려 나왔다.

       

       ‘곧 온다.’

       

       이어서 3파, 4파, 5파가 지나갔다.

       

       콰르르릉!

       

       연속적인 천둥이 울렸다. 놈들이 신호를 주고받은 것이다.

       

       “총장님!”

       “알아요!”

       

       저 멀리.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가꾸로 처박힌다.

       

       쏴아아아!

       

       강우량이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두 발 딛고 서 있기 힘들 정도의 풍랑이 불기 시작한다. 빗물은 지면과 45도 각도를 이루며 죽음처럼 휘몰아쳤다.

       

       “시야 확보가 안 됩니다!”

       “옆 사람을 꽉 잡고 있으세요!”

       

       온갖 마법을 전부 사용해 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장대비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동시에 안개가 내깔렸다. 세실은 당황하였으나 곧 차분히 사태를 주시했다.

       

       촤아아악!

       

       해무(海霧)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온갖 소리가 다 들려왔다.

       

       물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소리. 공기 중의 수분이 기화(氣化)하는 소리. 마도사들이 정신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는 소리.

       

       6파에 해당하는 마수들이 뭍으로 진격해 오는 소리. 세계수의 가지가 해풍에 마구 흔들리는 소리. 유체 법칙에 따라 수면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소리.

       

       그리고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

       

       세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 더, 더. 고개가 빠져라 위쪽으로 머리를 들어올렸다.

       

       […….]

       

       그곳에는, 싯누런 일백 개의 눈동자가.

       

       “제, 젠장….”

       

       세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세실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품고 있는 정령들이 긴장하듯 공명했다.

       

       녀석은 높고 기다란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본체 자체는 무시무시한 수의 비늘과 전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끄륵, 끄럭, 끄륵….]

       

       각 비늘은 하나의 세포였다. 여러 재앙급 마수가 한데 뭉쳐져 독립적인 핵과 세포질을 형성한 모습이었다.

       

       하나를 구성하는 전체. 전체로 구성된 하나.

       

       “이, 이게 해룡….”

       

       해룡 리바이어던.

       

       국가라는 무형(無形)의 개념을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세실은 생각헀다.

       

       [네가 엘프놈들의 수장이냐?]

       

       장대비 속.

       

       리바이어던은 나타나자마자 공격하는 대신 말을 거는 길을 택하였다.

       

       본래 이런 행동은 적에게 숨통을 틀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세실에겐 여유가 남아나질 않았다. 예상보다 리바이어던의 위용이 압도적인 탓이었다.

       

       [네년이 우리를 뗀석기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더랬지.]

       

       후우우우, 하고 해룡이 콧김을 내뿜었다.

       

       [만용이 지나치구나.]

       

       콰르르릉!

       

       “으아아아악!”

       “꺄악!”

       “흐아아악!”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떨어진 곳은 세실의 바로 뒤였다. 세실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뒤를 바라보았다.

       

       […….]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데리고 온 마도사들이 다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마도사들이 있는 곳에는 거대한 피뢰침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절연 장갑을 낀 채 손을 탁탁 털어내는 엘프가 하나.

       

       “3번 패턴.”

       

       버멜 호르데였다.

       

       “나도 이거에 많이 죽었었지.”

       

       

       **

       

       

       해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빨리 학생들을 내보내야 합니다!”

       “미쳤어? 여기서 나가면 물고기밥이 되는 거야!”

       

       세계수 내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세계수 안이라고 안전하다는 법도 없어요!”

       “바깥보단 훨씬 낫겠지!”

       

       윌버 피어바인. 견학 안내인인 그는 시설의 다른 사람과 입씨름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사이 에테르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파들파들 떠는 학생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 어떡해요?”

       “걱정 마라. 다 잘 될 거니까.”

       

       의식하지 않은 새에 결원을 눈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백여 명이 넘는 학생이었지만 에테르는 이들의 얼굴을 한 번 본 것만으로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사라진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리바이어던의 습격이라니.

       

       분명 자신이 군을 물리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안 들어먹은 것이다.

       

       명백한 배반 행위.

       

       핏기가 쫙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창천의 파스모, 그놈이 다시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 에테르는 까득, 하고 이를 갈았다.

       

       깜빡, 깜빡.

       

       그 와중에도 고장난 호롱불들이 모스부호처럼 명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놈의 호롱은 아까부터 왜 이래?”

       

       쿰쿰하고 습기 진 곳에 오래 있었다. 윌버 피어바인의 스트레스 수치는 이미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한숨 섞인 소리를 내며 부유하는 호롱 하나를 홱 낚아챘다.

       

       “이걸 그냥 부숴 버려야….”

       

       다음 순간이었다.

       

       퍼버벅!

       

       윌버의 눈알이 터져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회수 300만!!!

    완결까지 달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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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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