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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1

       굳이 시간을 돌려가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이야기의 전제 조건 자체’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여신이나 황제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꾸몄던 그 계획들을 처음부터 부숴버려야 했으니까.

        

       문제는, 그렇다고 여신이나 황제 둘 중 한쪽의 편만 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황제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면 결국 황제가 새로운 신의 자리에 오르게 될 거고, 반대로 여신의 편을 들었다가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단조로운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 거니까.

        

       게다가 여신 쪽의 세상이 더 최악인 건 내가 그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신은 나에게 있는 힘을 회수해서 다 사용할 생각이다. 바꿔말하자면 내 존재 자체가 이쪽에서 지워진다는 뜻이다.

        

       영혼이나 기억이야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 그대로인 것을 보면 사라지지 않을 것 같기는 했지만,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건 이쪽 세상에서 모두와 함께 해피엔딩을 얻는 거니까.

        

       이쪽 세상에서는 상황이 훨씬 더 급했다. 내가 느끼는 것으로만 해도 시간이 휙휙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물론 정말로 ‘내가 돌린 만큼’ 시간이 그대로 돌아갔다면 그건 그거대로 멘탈이 깨질만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돌아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내가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그러니까 ‘자고 일어났을 때’ 시간이 확 돌아가 있고 억지로 꿰맞춰진 듯한 기억이 엉성하게 머릿속에 들어있는 감각은 최악이었다.

        

       문제는, 그런 감각을 느끼는 것은 나뿐이라는 것이다.

        

       능력 일부를 이어받은 클레어도, 그리고 가짜 앨리스 탓에 기억이 유지된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시간을 돌릴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나의 기억’이라고 확신하는 부분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도중에 띄엄띄엄 억지로 씌워진 듯한 시간대에는 내가 진입할 수 없다.

        

       반대로, 그 기억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클레어는 달랐다. 클레어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시간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렇게 들었다’.

        

       문제는, 그럴 때조차도 나의 기억은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언니는 어디에 있었던 거야?”

        

       참 소름 끼치게도, 그 직후에 클레어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저를 찾지 못했다는 뜻입니까?”

        

       “맞아. 시간을 돌린 다음 너를 아무리 찾아다녀 봐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어. 방에 찾아가도, 아카데미 전체를 뒤져봐도.”

        

       나의 질문에 대답한 건 앨리스였다.

        

       앨리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때, 어디 있었던 거야?”

        

       “…….”

        

       나는 열심히 머릿속을 뒤져본 뒤에야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답이 제대로 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사이의 저의 기억은 없습니다.”

        

       그렇다. 마구 뛰어넘어가면서도 억지로 만들어낸 가짜 기억이라도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클레어가 시간을 돌린 뒤에는 그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화면이 까맣게 물들었다, 노이즈가 꼈다, 뭐 그런 게 아니다. 그냥 그런 일 자체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듯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 필름 중간을 뚝 자른 뒤에 그 잘린 앞 장면과 뒷 장면을 그냥 이어버린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고아원을 나올 때도 나는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렸는데.”

        

       “……어쩌면 그때는 제가 ‘기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제가 저의 시간이 띄엄띄엄 느껴진다고 말했죠. 그 고아원에서의 기억은 그런 기억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만들어 넣은 기억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엄밀히 따지면 그 기억은 ‘겪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었다며? 이미 취소되어 사라졌어야 할 기억이고, 설령 ‘처음으로 돌아갔어도’ 너희들은 그 이전으로 갔어야 했으니까.”

        

       앨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 하나뿐이다.

        

       “여러분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제가 여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게 아니라면 ‘여신의 힘을 찬탈한’ 클레어라거나. 물론 굳이 뒤의 말은 하지 않았다.

        

       “여신의 입장에서 저는 사라져야 할 존재입니다. 차라리 지금까지의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는 쪽이 여신에게는 바람직하겠죠. 저는 여신의 힘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신의 생각에 반발하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겪은 그 시간은…….”

        

       “이 세상 자체가 여신이 억지로 만들어낸 세계라고 한다면, 시간 자체는 저를 기준으로 흘러가고 있을 겁니다. 제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가 세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자체가 ‘허상’인 것도 아닙니다. 어쨌거나 여러분도 함께 존재하고, 시간을 함께 느끼고 있으니까.”

        

       그러니, 내가 아닌 클레어가 ‘시간을 돌리면’ 없었던 부분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그 억지로 만들어진 사이 부분에서는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이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질서’가 깨졌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계는 정말로 팬그리폰이 원하던 그 세상과 비슷한 세상일지 모르지.

        

       여신이 완벽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여신이 만들어낸 존재—나—에게 그 힘이 온전히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팬그리폰이 여신의 힘을 완벽하게 찬탈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클레어가 시간을 돌리면서 세상을 ‘창조’해냈다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 부분을?”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확신은 못 한다. 이 부분은 원작의 설정집에도 존재하지 않던 부분이니까.

        

       만약 여신이 정말로 그런 존재였다면 원작에서도 절대로 좋은 존재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게임사는 그런 식으로 억지로 사람의 생각을 정의하는 것에 언제나 부정적으로 반응했으니까.

        

       아마 후속작에서 최종보스로 나왔겠지. 황제도 다시 살아나서 조력자가 되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로 3파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황제가 모아둔 힘을 법국이 이용하려는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여신이 ‘굳이’ 나를 데려다가 놓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만약 여신이 정말로 선하기만 한 존재고, 모든 인간이 이해해줄 만한 정의로운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예 시리즈 완결까지 다 플레이한 나를 데려다 놓아도 된다. 평행세계니 뭐니 하는 곳에는 그런 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까지 여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여신의 진짜 속내를 몰라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 놓고 막판에 신나서 떠들어버리는 바람에 다 망치긴 했지만.

        

       정말이지 JRPG 악당 같은 실수라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내가 능력을 쓰지 않는 쪽이 좋을까?”

        

       “필요하다면 써야죠.”

        

       예를 든다면, 내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 나를 벨 생각을 하고 있던 루카스라든지.

        

       “응? 하지만 루카스는 나한테 굳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는데?”

        

       “…….”

        

       하지만 내 말을 들은 클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몇 번 칼을 맞대본 적은 있는데, 루카스 쪽이 확실히 우위였어. 내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루카스는 뭐라고 했습니까?”

        

       “조금 더 커서 와라, 애송이, 라던데. 물론 장난스러운 말투이긴 했는데, 그래도 조금 열받더라.”

        

       그래서 클레어는 열심히 수련 중이라고 한다. 벨라랑도 꽤 친해졌다는 모양이고.

        

       그리고 루카스는 굳이 그때그때 클레어를 베려고 들지 않았고, 그래서 황궁 안에서는 굳이 시간을 돌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모양이다. 성적이야 원래 알고 있던 내용에 복습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

        

       뭐지.

        

       좀 억울한데.

        

       *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검성에게 말했다.

        

       이전 세계에서도 사실 나는 이미 검성에게 나의 능력에 대해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러고 시간을 다시 되돌리기는 했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검성한테 받아야 할 도움이 그것보다도 훨씬 큰 것이었으니까.

        

       “여신이 너의 기억을 덧씌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오랫동안 깨어있을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명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깨어있는 시간을 늘릴 수는 있지만, 아예 잠을 자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보다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배워서, 아예 여신과 대적하는 내내 잠에서 깨어있는 쪽이—

        

       “예끼 이놈아.”

        

       빡!

        

       “으꺅!?”

        

       하지만 내가 검성에게 뭐라고 더 말을 하기도 전에, 검성의 손날이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아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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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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