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1

       엘라는 불에 탄 것처럼 화끈거리는 두 손가락을 보고 문뜩 옛날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자신들은 매달 첫 번째 날이면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단체로 빨래를 하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 한 명이 길거리 공연의 대가로 상인들에게 값비싼 세제를 얻어왔다. 그녀는 친구들을 위해 대야마다 가루를 왕창 풀었는데, 그 세제가 어찌나 독했던지 그날 물에 손을 담갔던 아이들의 손가락이 다들 퉁퉁 부어오르고 말았다.

         

       그녀가 가져왔던 것은 염색 공장에서 사용하는 탈색제로 밝혀졌다. 가정에서 쓸 때는 조금씩 희석해서 사용해야 물건이었다.

       다들 그 때문에 며칠을 끙끙 앓았지만, 아무도 그 친구를 비난하지 못했다. 그녀는 피부를 하얗게 만들겠다고 그 물로 세수까지 했다가 얼굴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기억이 돌아오는 신호일까?

       구석에 밀어두었던 옛날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현관을 빠져나온 엘라는 관중들의 시선을 피해 부러진 손가락 2개를 붙잡고 힘을 줬다.

       우드득.

       뼈마디가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비명은 간신히 삼켰다.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던 손가락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녀는 이것이 금이 간 뼈를 붙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무리하게 관절을 맞추느라 골절이 더 심해졌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정상적인 형태’를 만들어 둬야 결정적인 순간에 기술을 한 번 더 쓸 수 있었다. 기술을 펼치는 순간, 뼈가 확정적으로 부러지겠지만, 그 한 번이 트로피를 낚아채는 순간이면 감내할 만했다.

         

       ‘시합이 끝나면 단장에게 고쳐 달라고 해야지.’

         

       기억을 잃기 전에는 그가 자신에게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사람의 몸을 주무르던 장면들을 보고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그에게 몸을 맡기고 싶었다. 자신이 그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발도 아프다고 해야지. 종아리도, 허벅지도 다친 것 같다고 하고……. 별을 따왔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당연하지.’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맨손으로 자신의 몸을 주물럭거리는 것을 상상해봤다. 그에게 봉사(?)를 받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킥킥 웃음이 나왔다.

         

       “엘라 선수! 3번 경기장으로 들어섭니다! 그 묘기를 보이고도 거뜬합니다! 웃고 있군요!”

         

       짧은 통로를 지나 다음 경기장에 들어선 그녀는 자신을 주목하는 관중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재빨리 표정을 고쳤다.

       그래. 모든 건 이기고 난 뒤의 일이지.

         

       3번 경기장인 중앙 정원에는 익숙한 대나무 숲이 있었다. 레카체프 학생들이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며 지름길로 쓰는 그곳이었다.

         

       엘라는 클라라의 안내에 따라 학교를 견학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여기서 자신과 레이나는 정석대로 나무 사이를 뛰어서 올랐고, 카렌은 악력만으로 나루 한 그루를 붙잡고 올랐으며, 마야는 계단을 만들어서 걸어 올랐다. 그것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정원의 크기는 지름 50m 정도 되었고,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경사로가 그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관객들은 2층부터 6층까지 이어지는 경사로에 줄지어 앉아 정원 안쪽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관람했다.

         

       그곳에서는 선수들끼리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클라라로부터 받은 정보를 통해 엘라는 이곳에 4명의 선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명은 청강 때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침묵의 메렌’이라는 이름의, 자신보다 2살 많은 무음 줄타기의 달인이었고, 두 명 역시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 되는 줄광대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그녀와 같은 탐색 팀 동료이자 서커스단의 최연장자였다.

         

       가스통은 시험 전에 짰던 작전대로 경기장 구석에서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었다. 타일의 색이 변화하는 연쇄 작용은 클라라가 계산해줬기 때문에 그는 그냥 그녀가 있으라는 곳에 서 있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가스통은 이곳에 선 지 얼마 안 되어 예상치 못했던 문제와 맞닥뜨렸다. 그것은 연습할 때는 없었던 것이었다. 바로 관객들이었다.

         

       “저 쭈그렁바가지는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설마 저 노인네도 곡예사인가?”

       “아까 장애물 넘는 거 안 봤어? 겨우 가슴 높이에 닿는 울타리를 낑낑대며 타고 넘더라!”

       “아이고! 어지간히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야! 잡일 하던 영감을 곡예사로 끼워서 출전시킨 모양이군.”

       “뭐 하냐! 게임 안 할 거면 나가라!”

         

       가스통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궁정의 수석 정원사였던 그가 광대들 재롱잔치에 서는 것도 모자라 이런 창피까지 당하다니. 마음 같아서건 시험이건 뭐건 다 때려치우고 밖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제자와의 약속이 없었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그는 관중들이 던지는 야유를 애써 무시하며 경기장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3명의 재주꾼이 대나무 숲을 공략하기 위해 공중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3층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 달 전에 엘라, 레이나와 함께 5층까지 거뜬하게 올랐던 메렌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때와 지금의 대나무 숲은 그 난이도가 천지 차이였다.

         

       일단 그때는 5층 난간이라는 명확한 목적지가 주어졌었다. 최적 경로를 도출한 뒤 그대로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확한 목적지가 없었다. 지름 50m 크기의 정원에 심어진 수백 그루의 대나무 중에 어떤 나무의 끝에 보물상자로 가는 길이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드리워진 가지들 역시 예전에 비해 몇 배는 많았다. 그때는 가지의 종류도 단단한 것과 탄력 있는 것, 2가지가 다였는데, 지금은 함정 가지들이 잔뜩 추가되었다.

       어떤 가지는 무게가 실리면 고무처럼 휘어졌다가 채찍처럼 사람 몸을 후려쳤으며, 어떤 가지는 겉보기에 매끄러워 보였지만 날카로운 가시들이 빽빽이 자라 있어 손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었고, 어떤 가지는 튼튼해 보이지만 체중이 실리면 갈대처럼 뚝 하고 꺾여서 위에 앉은 사람을 떨어트렸다.

         

       낙법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이곳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색색의 타일들이 바닥에 격자 형태로 깔려 있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다가 자기 팀의 색이 아닌 색을 밟으면 탈락이었다.

       그들이 3층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다음 손을 뻗을 곳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데 낙법을 펼칠 자리가 밑에 보이지 않으면 거기에 선뜻 몸을 날리기 힘든 것이다.

         

       엘라가 가스통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강당에서 3번째 미니 게임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쯤이었다.

         

       “끌끌, 왔는가, 부단장.”

       “헷, 여기까지 용케 들어오셨네요, 영감님.”

         

       평소엔 서로를 보면 늘 빈정거리고 흠잡기 바빴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전장에 홀로 떨어졌다가 만나게 된 아군이라 그런지 무척 반가웠다.

         

       “어때요, 영감님? 분석은 잘 됐어요?”

       “크흠, 내가 누구냐. 연금술 길드의 약초학 마스터 아니냐.”

         

       가스통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냥 멍청히 서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이 대나무 숲에서 ‘함정’에 쓰인 가지들은 원래 여기 것이 아니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것, 가시가 달린 것, 갈대처럼 꺾이는 것 등등. 모두 다른 종의 것을 가져와 접붙이기로 심은 거야. 불과 1주일 사이에 바꾼 것을 보니 연금술 길드의 도움을 받았겠지. 거기다 실력 좋은 조경사가 붙어서 가지들끼리 전혀 분간이 안 가게 색과 형태를 다듬었어. 잘하긴 했지만 내 눈을 속일 순 없지.”

         

       그는 엘라가 지목하는 나무들에 어떤 종의 가지가 접붙이기 되어 있는지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가스통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에 가상의 경로를 그려 나갔다. 그녀의 시선은 3층, 4층, 5층, 6층을 지나쳐 꼭대기 층에 닿았다. 그곳에는 예전에는 없었던 대나무 잎들이 새파랗게 우거져 정원의 지붕을 형성하고 있었다.

       분명 저곳에 보물상자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그럼 갔다 올게요.”

         

       필요한 정보를 모두 들은 그녀는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왼손을 쓸 수 없었기에 속도는 느렸지만, 확실하게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다른 선수들의 날렵한 움직임에만 주목하던 사회자도 그녀가 점점 치고 올라오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돌아갔다.

         

       “3층! 괴물서커스의 엘라 선수가 3층 높이에 도달했습니다! 놀랍군요! 방금 막 경기장에 들어온 선수가 메렌 선수가 세운 최고 높이를 경신했습니다! 네. 이 지점에서 점프! 함정일까요? 아닙니다! 함정이 아니었습니다! 밑에 빨간색 타일도 없어서 낙법도 불가능한데 저렇게 몸을 날리다니! 그녀의 저 과감성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대단한 배짱입니다!”

         

       관중들이 흥분해서 웅성거렸다. 그녀가 오른팔로만 가지를 붙들고 시계추 운동을 해서 몸을 날려 정확히 반대편 가지에 착지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는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믿기지 않는군. 프랭크 10이니 뭐니 해서 그냥 사기나 치는 계집인 줄 알았는데.”

       “아냐. 실력은 진짜야. 자네는 신입생 선발 시험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르나 보군.”

       “그 로드 판타스틱의 딸, 황금 천칭도 사실상 쟤한테 진 거라고 하더라고.”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침착하게 가지와 가지 사이를 계속 건너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안 있어 4층 높이에 도달했다.

         

       가스통은 원래 있던 타일에서 나와 엘라의 근처로 이동해서 그녀가 조심해야 할 가지들을 계속 가르쳐주었다.

         

       ‘5시 방향에 있는 위로 삐쩍 솟은 가지 보이냐? 그거 겉모습만 대나무지 사실 큰 뿌리 갈대 종류다. 끈적한 수액을 내뿜지.’

       ‘오른쪽에 있는 가지들은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 접붙인 거야. 함정이 분명해.’

         

       그녀는 그렇게 음향실을 통해 가스통의 도움을 받아 가며 5층 높이에 도달했다. 5층 난간에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관객들은 그녀의 모습이 바로 앞에 나타나자 갈채를 보냈다. 30m 높이 위에 드리워진 대나무 가지 하나에 균형을 잡고 선 소녀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엘라! 엘라! 엘라! 엘라!”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을 둘러봤다. 치열하게 경기에 임하느라고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자신을 향해 기대에 찬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엘라는 이곳까지 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굳어버렸던 인상을 폈다. 그리고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손을 좌우로 흔들어 가며 그들의 열성에 보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지어 그녀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무려 가지 위에 선 채로 말이다.

       처음에는 어어 거리며 식겁하던 관객들도 그녀가 능숙하게 몸을 틀어 보이자 입을 쩍 벌린 채로 광분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래. 이게 서커스지.’

         

       그녀는 솔직히 ‘아크로바틱 러시’의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술은 분명 서커스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공연은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지난 6, 7, 8월의 시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느슨하게 시작했던 경주가 후반으로 갈수록 곡예사들끼리 험악한 모습을 보이고, 함정에 걸려 부상자가 속출하고, 종국에는 관객들은 뒷전이고 자기네들끼리 패싸움하는 형식으로 가버려 찝찝함을 느꼈다는 평이 많았다.

         

       다들 본인의 기술로 높은 성적을 내고 남을 앞지르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정작 보러온 관객들의 즐거움은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10월 시험은 앞선 비판을 고려해서 여러 가지 추가 규칙들을 도입했다고는 하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엘리트 체육 학교의 색채가 이런 면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녀는 이에 대해서 원더스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저도 엘라 양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는 자신이 게임 방송했을 때를 떠올리며 그렇게 답했다.

         

       그는 놀라운 동체 시력과 아이 트레킹 기술 덕분에 어떤 게임이건 최상위권의 실력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작 난이도에만 치중된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방송 초창기에 격투, 리듬, 레이싱 같은 장르의 팬들에게 추앙받는 것에 혹한 적이 있었다. 방송의 재미보다 승패 한 번, 점수 1점, 기록 0.01초에 열을 올렸었다.

       생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고, 플레이하는 본인도 게임에 점점 지쳐가고 흥미를 잃게 됐다.

         

       그런 경험이 있는 그였기에 엘라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남았다.

         

       그녀는 그날 그와 공연에 대해 몇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래. 서커스에 그렇게까지나 진심인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지.

       그녀는 그렇게 되뇌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로드 판타스틱은?’이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럼 정상을 향하여 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관객들의 응원에 충분히 화답한 엘라는 이제 6층으로 오를 준비를 했다. 그녀는 가지 끝에 서서 어느 곳으로 향할지 가스통의 조언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답변이 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봤고, 이변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