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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1

       

       

       

       

       

       261화. 심연 ( 3 )

       

       

       

       

       

       사회에는 암묵적인 합의 아래에 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장례식장에서 부활해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신랑 손을 붙잡고 도망가는 것, 글을 쓰는 작가의 집에 난입하여 감금하는 것 등등…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사회적 약속들.

       우린 그걸 상식이라고 부른다.

       

       “…뭐를…… 부르자고요?”

       

       성도에서 이단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하면 안 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다.

       

       성도에서 악마를 소환하자는 에스텔의 발언은, 이러한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신성모독적인 발언.

       

       상식을 뛰어넘는 말에 케니스와 프리가는 벙찐 나머지 에스텔에게 뭐라 반박하는 것도 잊었다.

       둘의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뭔가 실수했음을 깨달은 에스텔이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가 다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당당하게 제 의견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 어… 악마 소환은 절대로 안 되는데… 일단 왜 악마를 소환하자고 말씀하신 건지, 그 이유가…?”

       

       “심연에는 악마가 살잖아.”

       

       “네.”

       

       “악마를 소환하면 심연에서 악마가 나오겠지?”

       

       “그렇죠.”

       

       “나중에는 악마가 심연으로 돌아가잖아.”

       

       “어… 그렇죠?”

       

       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라고 말하는 기색이다.

       

       “그러면 악마를 붙잡아서 고문하면 심연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는 거 아니야?”

       

       “네…?”

       

       되려 당당하게 주장하는 에스탈의 기세에 케니스가 순간 주춤했다.

       

       모름지기 제일 좋은 여행 가이드는 현지인인 법.

       심연에 대한 전문가를 꼽자면 심연에서 태어난 악마 아니겠는가.

       

       문제라면 악마 소환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

       

       보아하니 에스텔은 악마를 소환한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 에스텔 양? 악마 소환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거든요. 소환을 시도하는 것도 그렇고. 만약 소환이 된다면 이게 더 문제인데ㅡ”

       

       “이야. 이거 진짜 또라이였네. 성도 한복판에서 악마를 소환하자고? 하!”

       

       “읏…”

       

       프리가가 팔짱 끼며 냉소적으로 웃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차가운 표정에 허리를 꼿꼿하게 폈던 에스텔은 저도 모르게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어쩐지 결투 축제에서 프리가에게 얻어맞은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것 같다.

       

       “하! 악마를 소환하자고? 진짜 존나 또라이 같은 생각이네.”

       

       “…! 말을 그렇게ㅡ”

       

       “당장 하자.”

       

       “뭐?”

       

       말릴 틈도 없이 프리가가 에스텔의 손을 붙잡고 땅을 박찼다.

       

       “어?! 고, 공녀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벙찐 케니스가 서둘러 둘의 뒤를 쫓았지만, 어느새 저 멀리까지 앞서가고 있었다.

       

       프리가는 생각했다.

       듣고 보니 또 맞는 말이라고.

       

       성도라고 해서 악마를 소환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악마 불러서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죽어가는 도마뱀 숨통 끊겠다고 심연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게 전부다.

       

       ‘신이 쫌생이기는 해도 다 좋은 일 하자는 건데. 설마 뭐라고 하겠냐고!’

       

       악마라도 소환하지 않으면 케니스가 심연에 대한 두꺼운 종이 뭉치를 전부 번역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몇 시간에 겨우 한 장 읽은 솜씨로 봐선… 자신이 늙어 죽을 때쯤이야 읽을 수 있을까.

       

       프리가는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투다다다다다ㅡ

       

       한 손에 에스텔을 붙잡은 프리가가 어딘가를 향해 황소처럼 달려갔다.

       

       “으, 그극! 도대체 어디로! 크웁! 가는 거야!”

       

       “악마 소환 전문가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뭐? 이 주변에 그런 놈들이 있을 리가ㅡ”

       

       반박하던 에스텔이 무심코 말을 흐렸다.

       성도 주변에 악마를 소환할 줄 아는 불경한 놈들은 씨가 말랐을 터.

       

       그 불경한 자들이 전부 어디로 향했는가.

       

       더러는 처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겠지만 극히 일부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으니.

       

       쾅!

       

       이단 심문관의 구역.

       그 심처에 위치한 감옥.

       

       “여기서 악마 소환할 줄 아는 새끼! 손!”

       

       악마 소환의 엘리트들이 가득한 감옥에 들이닥친 프리가가 우렁차게 외쳤고ㅡ

       

       “공녀님 제발!! 정녕 제가 화병으로 죽는 걸 보고 싶으신 겁니까!! 공녀님!!!”

       

       우르르 몰려온 성기사와 대사제들에 의해 금방 무마되고 말았다.

       

       관자놀이에 불룩하게 핏줄이 올라온 안토니오가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는 형태였다.

       

       고래고래 호통을 지르는 안토니오의 앞에는 사태의 원흉인 프리가와 에스텔이 무릎 꿇은 채로 손을 들고 있었다. 프리가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입술이 삐죽삐죽 오리처럼 튀어나왔다.

       

       “아니… 그냥 심연으로 가는 길 좀… 악마 약한 녀석으로 소환해서… 알아내 보려고…”

       

       “악마 소환을 하려고 했다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안토니오의 손가락이 꾸드득- 소리를 내며 두꺼운 경전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프리가의 툭 튀어나온 입이 쏙 들어갔다.

       

       “악마를 소환하려고 했다는 것! 미수에 그쳤을지라도 이는 엄중한 처벌의 대상입니다!! 더불어! 만약 거기서 악마가 실제로 소환이 됐다면 더더욱 큰일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약한 녀석으로 소환을…”

       

       “악마가 소환됐다는 건! 소환자의 마음과 영혼이 이미 잔뜩 뒤틀렸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뭐?”

       

       “그렇기에 악마를 소환하려고 하는 것, 소환하는 것은 즉각 처형의 대상입니다! 소환자는 이미 악마를 소환할 수 있을 만큼 심성이 타락했다는 증거니까! 악마 소환이 아니더라도 당장 살인이나 강간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프리가가 안토니오를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안토니오가 심호흡하며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후… 공녀님. 악마 소환에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천천히 프리가는 고개를 저었다.

       

       “악마의 강함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약한 하급 악마의 경우에는 인간의 피와 길게 늘어진 내장, 암소와 두개골, 염소의 눈동자… 그리고 100일이 지나지 않은 아기의 심장을 필요로 합니다.”

       

       “심장…?”

       

       프리가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지금 도대체 뭐? 아기의 심장을 쓴다고? 

       

       “그렇기에 악마 소환은 극심한 중죄 중의 중죄. 소환을 시도하는 것조차 엄벌의 대상입니다.”

       

       “…”

       

       ‘악마 소환해서 대가리 부숴버리자ㅡ!’하고 외쳤던 프리가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악마 소환에 이런 의미 있는 줄 미처 몰랐다.

       

       과열됐던 분위기가 조금은 진정됐다.

       

       저 멀리서 슬금슬금 다가온 이단 심문관들이 슥 눈치를 보더니 톱칼과 작은 꼬챙이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악마 숭배자들과 멈췄던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끄가그그그, 아그으으으윽ㅡ!!

       

       끄아아아아아아악!!

       

       울려 퍼지는 정겨운 ‘대화’ 소리를 뒤로 하고 안토니오는 에스텔과 프리가를 일으켜 세웠다. 몸 여기저기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며 조곤조곤 타일렀다.

       

       “공녀님. 마음이 급하신 건 알겠습니다. 조급하시겠지요. 공녀님의 마음을 제가 모르지 않으니,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미안해.”

       

       시무룩해진 프리가가 웅얼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케니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말릴 새도 없이 뛰쳐나가는 바람에 붙잡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두껍게 쌓인 심연에 대한 자료들.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번역해야겠다. 그리하면 심연에 가는 방법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

       

       케니스가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다각! 다각! 다각!

       

       느닷없이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케니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머리맡의 성검을 잡았는데, 아주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말했는데, 또…”

       

       그 하얀 유니콘이 방에 또 숨어든 것 같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몇 번이나 두들겨 패면서 방에 숨어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또다시 케니스의 방에 들어온 모양.

       

       이번에는 아주 흠씬 두들겨서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 

       

       다각ㅡ 다각! 다각!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에 케니스가 성검을 강하게 움켜쥐었고ㅡ

       

       부웅!

       

       커다란 대검이 거세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비록 넓적한 검의 옆면이었지만 이에 맞는다면 치명상이 분명할 테지만.

       

       케니스는 유니콘을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다치잖아!’

       

       이보다 더한 것(벼락)도 견딘 신수다.

       아무리 열심히 때려도 생채기 하나 없을 것이다.

       

       카가가강!

       

       허공에서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며 불똥이 사방으로 퍼졌다.

       

       “…어?”

       

       번뜩이는 불똥 사이로 어둠 속 인영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까만 갑주와 비쩍 마른 흑마, 투구 속으로 일렁이는 푸른 안광.

       

       결코 잊을 수 없는 외형이다.

       

       “탄탈로스의 기병…?”

       

       도대체 기병이 왜? 나를 잡아가려고? 내가 지옥에 간다고?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멍때리는 케니스.

       케니스의 성검을 가로막은 밤의 기병이 자신의 검을 움직였다.

       

       “…”

       

       케니스의 성검을 막은 기병의 검은 잔뜩 금이 간 모습이었다. 아마 다시 쓰지 못하고 버려야 될 것 같다. 거의 고철이나 다름없는 모습.

       

       “…”

       

       기병의 모습이 조금 울적해 보였다.

       

       그 모습에 케니스가 안절부절못하며 기병을 달래려 노력했다. 밤 중 몰래 들어온 밤의 기병 잘못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무기를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다.

       

       “아, 으으으! 죄,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

       

       밤의 기병의 푸른 안광이 좀 더 짙은 푸른색이 됐다.

       한참이나 고철이 된 제 검을 내려보던 기병이 제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무언가를 바닥으로 던졌다.

       

       툭.

       

       “으앗! 이게 뭔ㅡ”

       

       “으, 히힉! 으히히히힉! 에헤엑!”

       

       까맣고 앙상하여 처음에는 나무토막인줄 알았는데 살아 움직인다.

       

       “이건… 악마인가?”

       

       가만 살펴보니 토막 난 뿔의 흔적도 보인다.

       요모조모 뜯어보니… 어쩐지 이목구비가 보이는 것도 같다.

       

       피부가 잔뜩 엉겨 붙고 쭈그러들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악마가… 맞나? 미약하게 악마의 악취가 나는 것도 같다. 느껴지는 것이 너무 희미해서 이 정도면 하급 악마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써라.”

       

       “네?”

       

       다짜고짜 쓰라는 말을 남긴 기병은 이내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밤의 어둠을 두른 것마냥 사라지는 기세가 마치 신기루와도 같았다.

       

       그 자리에 남은 건 까맣고 앙상하게 마른 악마로 추정되는 것 하나와 벙찐 케니스뿐.

       

       바닥에서 덜덜 떨던 까만 악마가 엉금엉금 기어 와서 케니스의 발밑에 넙죽 엎드렸다.

       

       “부, 부부부디 나를 죽여다오!”

       

       “뭐?”

       

       “제발 나를 죽여다오! 제발! 심연도 악마도 모조리 주겠다! 제발 죽여다오!!”

       

       악마라고 추정되는 것이 대뜸 자신을 죽여달라 외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공이 호흡을 한다면…!! 생명의 호흡이…??! 그건 정말 흥미로운 가정이군요…!!! 안타깝게도… 악마 사냥을 위한 트랩, 일명 ‘니가와’ 전법은 실패…!! 대신 밤의 기병(퀵 서비스)가 던지고 간 까맣고 앙상한 무언가…!!!! 끼뇨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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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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