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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1

     제국력 99년 7월 7일.

     생일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일단 성인이 되기까지 앞으로 정확하게 반 년이 남은 시점.

     나는 지금, 역사의 순간 앞에 와 있다.

     “로버트 경. 자네, 예전에 여기에 나와 함께 왔던 때를 기억하는가?”

     “예. 승강기가 설치되지도 않았던 시절, 제국과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햇던 시절이었죠.”

     “그게 벌써 9년 전이군.”

     “시간 참 빠르네요.”

     로버트 경과 예전에 둘이 관문의 성벽 위에 올라섰던 적이 있었다.

     제국의 영토인 황무지는 여전히 붉은 기운이 스며들어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굳건한 철로가 깔려있고, 관문은 활짝 열려있다.

     그리고 관문의 내부에는 철로를 중심으로 온갖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져있다.

     지금까지 열차에 치여 죽은 이는 아무도 없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설계된 아웃렛에는 오늘 드디어 사고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철로 가까이에 다가와있다.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한들, 협곡 사이는 열차가 천천히 지나가는 편이라고 한들, 지나가는 열차에 튄 돌조각이 스쳐 다칠 수도 있는데도 사람들은 빨리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황제의 국빈 방문을 알고 있기에.

     제국 신문에서는 대대적으로 황제의 노스트럼 방문을 홍보했고, 제국의 새로운 ‘교통수단’으로서 협곡을 가로지를 것이라고 언질을 남겼다.

     그 결과.

     “도련님. 저기 고급 정장 입은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지난 번에 금광 채광권 사러 왔던 이들 아닌가요?”

     “제국에서 이름 좀 날린다 싶은 사람들은 어째 전부 다 여기 몰려있군.”

     제국에서 돈 좀 있다거나 권력 좀 가지고 있다하는 자본가, 유력자들이 전부 협곡으로 몰려왔다.

     -어이, 밀지마! 여기 내 자리라고!

     -거 참. 같이 좀 찍읍시다. 철도에 올라갈 수는 없잖아!

     -나는 신문기사 뜨자마자 여기 달려왔다고!

     -젠장, 이 자리에다가 돈 내기라도 했어? 나는 여기 앞집 사장이랑 아는 사이라고!

     사람이 몰리다보니 약간의 분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협곡의 앞뒤로 있는 역에서 하차한 이들은 저마다 제국산 신식 마도영사기-카메라를 든 채, 영상마석에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하기 위해 협곡에 몰려들었다.

     제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왕국의 유력 귀족들 또한 마찬가지.

     “도련님. 확실히, 열차 덕분에 사람들 몰려드는 게 장난 아닌데요?”

     “예전이면 마차를 타고 2박 3일은 꼬박 달려야 했을 거리를 불과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 시간만에 도착하니까 그렇지. 오중간에 무정차로 달리면 협곡에서 왕도까지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을걸?”

     열차는 빠르다.

     바퀴가 많이 달려있기도 하지만, 그 바퀴를 모두 굴리게 만드는 마석엔진과 대량의 마석은 철도만 안전하다면 이제 말이 전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레일을 달리게 되었다.

     “로버트 경. 한 가지, 미리 하나 이야기를 해주지. 제국의 황제께서 얼마나 정보 통제에 유능한지.”

     나는 눈과 귀를 가리킨 다음, 협곡 아래를 가리켰다.

     “지금, 철도에 달라붙어있는 이들이 있나?”

     “없습니다.”

     “왜 그럴까?”

     “그야 당연히 이번에 황제께서 방문하시는 방법이 ‘고속철’이라고 모두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없었던 최고 속도의 열차. 그 속도는 비룡과도 같이, 아니 그 이상의 속도라고 소문이 돌았잖습니까?”

     “100점.”

     로버트 경의 말대로, 사람들은 지금 철도를 달리는 새로운 마도열차의 등장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혹시나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치여 다칠까봐 울타리 너머에 있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 그것을 예상하고 있는 이들이 있나?”

     “…아니오. 가장 좋은 위치를 선점한 이들이 전부 철로를 달리는 열차를 찍기 좋은 곳에 있습니다. 정면에서 말이죠.”

     “하늘을 찍기 좋은 곳은 어디지?”

     “늦게 와서 자리에 밀려서 아웃렛 지붕에 올라가있거나, 아니면 50m에 이르는 성벽 위까지 기어이 계단을 통해 올라온 이들이 있는 곳이겠죠.”

     “그들의 특징은?”

     “제국 언론사 신입 기자들이거나, 푼돈을 가지고 구경을 하러 온 이들입니다. 운이 좋군요.”

     “300점. 원래라면 좋은 객석은 그만큼 비싼 돈을 받아야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그 반대가 될 것 같군.”

     본래 무대에서 가장 가깝거나, 무대를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객석이 비싸게 팔리는 것이 시장의 이치.

     땅을 달리는 열차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50m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좋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땅을 달린다’라는 전제가 있을 때의 이야기.

     “마침, 저기 오는군.”

     “…세상에.”

     붉은 황야의 지평선 너머, 무언가가 경적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다.

     “도련님. 저 색깔은….”

     “색깔은 말하지 말게. 보자마자 바로 짜증이 치밀어오르니.”

     

     배가 철로를 달리고 있다.

     흔히들 제국 방향에서 노스트럼 왕국으로 달려오는 열차가 아닌, 마도자동선 한 대가 아래에 바퀴를 수십 개 달고 마차보다 느린 속도로 철로를 달려오고 있다.

     “도련님, 그, 색깔이….”

     “마도엔진을 몇 개나 설치했는지 모르겠어. 무게도 상당할텐데.”

     “그, 제원보다는 바깥 도색이.”

     “겉모습만 봐서는…그래, 그 배로군. 해체되기 전 해군 제 1함대 기함. 이제는 [하이레딘 호]라고 해야 하는 배. 왕국과 제국이 평화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해군대장의 이름을 붙인 기함.”

     “도련님. 현실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

     “군청색에 회색 선이 들어가있지 않습니까.”

     “굳이 지적을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확 점수를 깎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로버트 경은 그저 저 배의 도색을 말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래. 군청색이군.”

     “그리고 그 위에 회색 무늬가 칠해져있는데요. 도련님 머리카락과 색이 비슷해보입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했던 걸까?”

     “정치적 상징 아니겠습니가?”

     로버트 경이 진지한 얼굴로 분석적인 자세를 갖췄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의 상징적인 색깔과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의 상징적인 색깔로 이루어진 배. 이는 제국과 지브롤터의 화합을 도색으로 나타나는 것.”

     “…….”

     “하지만 지브롤터의 상징색은 회색이 아닌 붉은색이죠. 본래 지브롤터의 상징색은 당대 변경백-지금은 후작이지만, 가주의 색에 맞췄으니. 붉은색이 아닌 건 크림슨 후작이 아닌 그레이 지브롤터와의 화합을 뜻하는 것.”

     “…….”

     “색깔만 놓고 보면 그러하고, 타고 온 배의 제원에도 의미가 있죠. 해체된 해군 제 1함대의 기함을, 그것도 과거 세빌리야 남작 영애와의 해협-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을 보인 이의 이름을 붙인 하이레딘 호를 타고 온다? 이는 크게 보면 제국과 왕국, 두 나라의 화합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신호입니다.”

     “…….”

     “그리고 하나 더.”

     로버트 경은 손가락을 여러 개 접었다펴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다가오는 하이레딘 호를 바라봤다.

     “그러한 배가 다른 곳도 아닌 왕국의 수도로 향한다. 여기까지만 해석한다면, 평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심지어 그 방문 계기가 왕국 구 바르셀 후작령의 총독과 제국 황녀의 약혼에 대한 논의다? 아주 대륙이 뒤집어질 겁니다.”

     “그렇기도 해.”

     “하지만 진짜는 역시….”

     “그래. 마침, 딱 슬슬 시작하는군.”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에 와 있다.

     관문에 올라온 이들은 보이겠지만, 아마 협곡 내부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이들은 보지 못할 것이다.

     철컥, 철컥.

     하이레딘 호로부터 정체불명의 격철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내부에서 마석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하이레딘 호의 갑판 옆으로 무언가가 좌우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저건….”

     “날개로군.”

     배가 날개를 달았다.

     접어둔 돛을 펼치듯, 강철로 이루어진 넓은 판이 날개처럼 좌우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저기의 아래에 풍석이 달려있는 겁니까?”

     “그렇겠지. 위치를 생각하면 날개의 아래와 뒤에 전부 다 달려있을….”

     부우웅.

     하이레딘 호가 서서히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날개의 뒤에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게 아닌, 하이레딘 호의 아래에서 바람이 뿜어져나오는 게 훤히 보였다.

     “세상에. 철로를 망가뜨릴 생각인가?”

     “철로야 고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그보다, 그냥 떠오르는 것보다 좀 더 효과적인 것 같은데요? 저렇게 레일 위를 달리면서 떠오르는 거 보면.”

     “제자리에서 떠오르는 것보다는 더 효과적인 것 같군. 바퀴를 굴러가게 달아둬야 한다는 전제 하에.”

     “바퀴는 원래 굴러가는 거 아닙니까?”

     “우리 건 장식이야.”

     “앗.”

     우오오오ㅡㅡㅡ?!

     아래에서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이 들린다.

     사실, 로버트 경도 최대한 침착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이 들고 있는 제국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더 높게 떠오르는 하이레딘 호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철로를 달리는 게 아닌, 철로 위로 떠올라 관문을 향해 다가오는 하이레딘 호.

     “도련님. 사진은 제가 잘 전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로버트 경. 사진은 잘 부탁하지.”

     나는 정확하게 제1관문의 성벽 위에 갑판의 높이를 맞추며 정박한 하이레딘 호를 향해, 성벽의 난간 위로 올라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폐하.”

     “오랜만이군. 정말이지, 오랜만이야.”

     갑판 위.

     아무도 없는 배 위에, 철로 된 월계관을 쓴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이 황제의 예복을 입은 채 두 팔로 나를 맞이했다.

     “담담해보이는군.”

     “담담한 척 하는 겁니다.”

     “이전에 봐서 그런 건 아니고?”

     “승강기 만큼 무거운 철덩어리도 날아오르는데, 배가 날아가는 걸 가지고 놀랄 이유는 없죠.”

     “아쉽군. 멀리서부터 봐도 표정 변화 하나 없던데. 예상이라도 했다는듯이 말이야.”

     

     합스베르크 황제가 갑판을 향해 손을 뻗었고, 나는 난간에서 점프하여 갑판에 착지했다.

     본래라면 그대로 제국의 땅을 향해 떨어졌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착지하기까지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고, 그 높이가 1m도 되지 않았다.

     “로버트 세빌리야 경. 아니, 로버트 마드리드 경이었던가? 내, 제국의 황제로서 자네에게 부탁을….”

     찰칵.

     내가 합스베르크 황제와 마주서자마자 로버트가 마도영사기 셔터를 눌렀고.

     “음.”

     

     합스베르크 황제가 손을 내밀고,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찰칵, 찰칵.

     “사진 촬영은 끝났습니다.”

     나는 황제가 손에 힘을 주기 전, 바로 손을 빼냈다.

     “로버트 경이 지브롤터에 있는 제국 대사관을 통해 사진 자료를 보낼테니, 이제 굳이 더 사진 찍겠다고 붙어 있을 필요는 없겠죠.”

     “끙….”

     “웃으십시오, 폐하. 역사에 기록될 첫 비행에 그렇게 뭐 씹은 표정으로 계셔야 되겠습니까?”

     “역사적인 날에 기뻐하는 모습이 전ㅡ혀 보이지 않는군.” 

     “기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나는 배의 아래를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은요?”

     “혼자왔는데.”

     “…황제, 혼자?”

     “혼자서도 충분하지. 서명은 내 손으로 하는 거니까.”

     “…….”

     “아, 혹시 암살이나 테러 위험이라도 있을까봐?”

     합스베르크 황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이레딘 호가 좀 더 위로 떠오르며-

     “걱정하지 말게. 적어도 왕도에 도착할 때까지는 안전할 테니.”

     기어이, 관문을 넘었다.

     “적어도 왕도까지는, 자네가 나를 지켜줄 거 아닌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는 모습에, 나는 그저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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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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