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2

       “으아아악!”

       

       윌버는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터져버린 양쪽 눈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

       “꺄아악!”

       

       남학생들은 입을 다물었고, 여학생들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에테르는 코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었군.”

       

       재빠르게 맥을 짚었으나 때는 늦었다. 안구 파괴가 뇌에 영향을 준 것으로도 모자라, 순간적인 과다출혈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퍼버벅!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곳곳에서 사람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팔이, 또 누군가는 다리가.

       

       운이 안 좋은 사람은 심장이나 머리가 터지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누구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아비규환이 되어 도망쳤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로 도망가야 살 수 있는 거지? 바깥에는 리바이어던이 있는데?

       

       퍼버버벅!

       

       와중에도 사상자는 늘어가고 있다. 정령계로 향하는 제단이 시뻘건 선혈로 물들어갔다.

       

       위에서 작업하던 인력들도 당했다. 사람 몇몇이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했다. 철퍼덕, 소리가 나며 곳곳에서 핏물이 튀었다.

       

       “서, 선생님…! 우리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갈 곳을 잃은 학생들은 에테르를 중심으로 모였다. 이젠 그녀가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그 세 글자가 막중하게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도 곳곳에선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치고 있었다. 결단을 빠르게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창천….”

       

       에테르는 이를 꽉 물었다.

       

       머릿속으로 모든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파스모는 자신을 이 학살극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려는 속셈이었다.

       

       멋대로 일을 벌여놓은 죄, 한 입으로 두말한 죄, 중상모략을 한 죄.

       

       마왕군의 참모로서 뒤통수를 거나하게 후린 죄까지.

       

       전부 잊지 않고 내 너를 죽여버리리라.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선 이 빌어먹을 상황부터 어떻게든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모두 엎드려! 호롱불은 쳐다도 보지 말고!”

       

       에테르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명령을 내렸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은 지시와 통제에 의존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의를 제기하는 일 없이 에테르의 말에 따랐다.

       

       원래 이 학생들은 자신과 적이지만, 지금은 ‘선생님’으로서 잠입하고 있는 중.

       

       그러니 자기 학생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후우.”

       

       눈동자를 굴려가며 호롱들을 하나씩 살폈다.

       

       윌버가 건드린 호롱이 첫 번째 타겟이었다.

       

       “이건….”

       

       호롱은 조금 전과는 달리 두둑하게 차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안에 피 묻은 안구가 있었다. 홍채의 색을 살펴보니 정황상 윌버 피어바인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갈취한 것이었나.”

       

       에테르는 마왕성에서 파스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심장이나 뇌 따위의 장기가 담긴 호롱을 공중에 띄워두고 돌아다니던 모습. 그땐 그런 장기들이 왜 호롱에 담겨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 호롱불과 그림자를 조심하라.

       

       에테르는 이제야 파스모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명도(明度)를 다루는 놈이었군.”

       

       창천 파스모의 이명은 ‘등불’.

       

       그 말대로 불빛을 조종한다. 버멜이 호롱뿐만 아니라 그림자도 조심하라고 했으니, 넓게는 명암이 미치는 모든 것에 손을 댈 수 있으리라.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퍼억!

       

       에테르는 호롱을 후려쳤다. 불빛이 깜빡이고 지나간 자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사선(射線), 빛이 꺼질 때 나타나는 한 무리의 줄기. 

       

       다음 순간. 팔뚝에서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대충 알겠다.

       

       빛과 그림자는 곧 녀석의 무기다. 빛이 꺼지거나 호롱이  흔들릴 때 생기는 변화를 감지하여 생체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이것을 알아차린 에테르는 호롱을 잘게 밟았다.

       

       “아, 호롱을 부수면…!”

       

       그때 에테르를 지켜보던 인부 하나가 일어섰다. 그는 기다란 막대를 꼬나쥔 채로 근처 호롱에 뛰어들었다.

       

       “안 돼, 하지 마!”

       

       에테르가 황급히 소리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흐아아아압!”

       

       남자는 유유히 흘러가던 호롱불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내리쳤다. 

       

       그러나 그는 사선을 보지 못했고.

       

       화아악!

       

       그림자가 비산했다. 불빛이 꺼진 곳에서 어둠이 드리웠다.

       

       “무, 으아아아악!”

       

       사선이 방사상으로 뻗어나갔다. 남자는 그것을 전부 받아내야만 했다. 그는 전신이 조각나며 육면체 형태로 다져졌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던 학생들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이번에는 남녀 할 것 없이 비명 한가득이었다.

       

       원리를 모르면 공포가 된다. 에테르는 사선을 보았으나, 학생들은 보지 못했다. 그것이 학생들을 옥죄어 왔다.

       

       “얘들아, 이 안에 절멸급 마수가 하나 있어. 동요하지 말고 선생님 말대로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다른 말 하기 전까지 여기서 조용히 있으렴. 알겠지?”

       

       학생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비를 맞은 고양이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특히 프레이의 떨림이 심했다.

       

       “아, 으…. 어떡해…….”

       “괜찮아. 선생님을 믿어보자.”

       

       에테르를 제외하고 가장 차분한 사람은 로테였다. 로테는 나이에 맞지 않게 근처 아이들을 격려했다.

       

       한편, 에테르는 학생들이 눈을 내리깔고 있는 틈을 타서 호롱을 전부 파괴했다.

       

       그때마다 ‘함정’이 발동됐다. 함정들은 에테르의 머리를, 눈을, 몸통을, 그리고 팔다리를 노려왔다.

       

       대처 방법은 간단했다.

       

       팅, 팅, 팅!

       

       그냥 몸으로 맞는다.

       

       “…쓰읍.”

       

       선(線)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명암이 교차하고 지나간 부분에 도끼로 찍은 듯한 아릿함이 느껴진다.

       

       아주 심하면 탄내가 나기도 했다. 각도를 잘못 조절했더니 팔에 살짝 깊은 상처가 생겼다. 플레어를 맞았을 때처럼 쓰라리다. 조직 사이로 검은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호롱을 하나둘씩 꺼뜨렸다. 하나를 깨뜨릴 때마다 세계수 내부는 어둠에 점차 잡아먹혔다. 

       

       “이게 마지막이군.”

       

       에테르가 마지막 호롱을 파괴할 때였다.

       

       달그락.

       

       부서진 호롱들이 출구를 따라 물처럼 흘러갔다. 그것들은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다시 불을 피워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외관이 깨진 상태로 점등하던 호롱들이 그대로 장기를 토해냈다.

       

       꾸득, 꾸드득!

       

       각 장기들은 가공된 흑단나무처럼 짙은 회색으로 물들더니,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동체를 구성해갔다.

       

       이제 학생들은 놀라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저게 뭐야.”

       

       그 자리에 우뚝 굳을 뿐이었다.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처럼 생겼는데, 도저히 사람의 구성이 아닌 것이다.

       

       드러난 뇌는 하나인데, 머리는 둘이었다. 입에는 귀가 걸려있고, 팔 뒤로는 변형된 창자와 또 다른 사지가 돋아있다.

       

       안구는 돌출되어 있다. 유리막 위로 손가락 다섯 쌍이 삐쳐 나온 모양새다. 가슴팍에는 심장 대신 죽은 누군가의 머리가 꽂혀있었다.

       

       하반신도 괴이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다리는 한쪽으로 몰리고, 원래 다리가 있던 곳에는 생식기와 신경 다발로 된 세 번째 다리가 자라나 있었다.

       

       [꾸륵, 꾸륵.]

       

       그런 것이, 시간이 갈수록 크기를 불려나가는 중이었으니.

       

       “아….”

       

       학생들은 당연히 겁먹을 수밖에.

       

       

       **

       

       

       괴물의 몸집은 물경 수 미터에 달하였다. 녀석은 세게수를 빠져나가는 입구를 꽉 틀어막고 대기했다.

       

       “우으으….”

       

       프레이는 로테를 꼭 껴안았다. 로테도 프레이를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로테는 알고 있었다.

       

       저건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덤벼 보았자 개죽음만 당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타개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프레이를, 유피엘을, 레니냐를, 다른 학생을 모아서 보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두려웠다. 또한 분했다.

       

       나약한 자신이. 친구들을 이렇게밖에 안심시켜 줄 수밖에 없는 자신이. 갑자기 나타난 마수의 습격에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이. 저런 괴물을 코앞에 두고 용감하게 마법을 캐스팅하지 못하는 자신이, 정말이지 가증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덜덜 떨리는 팔다리가 그녀 자신에게 고했다. 

       

       분수를 좀 알라고. 

       

       닥치고 빨리 도망치기나 하라고. 

       

       상급 마수? 저게 어디 봐서 상급 마수라고?

       

       틀림없이 재앙급 혹은 절멸급이다. 플레어 하나 없으면 절멸급은커녕 재앙급 하나 못 잡는데. 자신은 아직 아카데미에서 배워야만 하는 단계인데. 저걸 어떻게 상대한다고?

       

       무서웠다. 공포스러웠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렇지만 일어나고 싶었다. 일어나서 싸우고 싶었다.

       

       왜?

       

       내 친구가, 앞으로 나서고 있었으니까.

       

       뚜드득.

       

       “……웬 족보 없는 새끼냐.”

       

       아스테야 선생님… 아니, 에테르는 손가락을 꺾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는 꿀렁거리는 괴물이 있다. 그에 비하면 에테르는 가녀리고 나약한 여교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로테는 똑똑히 보았다. 모두의 눈에 깃들기 시작한 절망감을.

       

       “선생님이 이길 수 있을까?”

       “이기길, 이기길 바라야지…….”

       “흐윽, 흑.”

       “제발….”

       

       에테르는 고개를 돌려 제자들을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로테 자신과 눈을 맞추었다.

       

       홱. 에테르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에테르는 괴물과 대화하는 기행을 시도했다. 예상대로 괴물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꾸득거리던 놈은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몸집을 점점 불려나가며 앞으로 걸어왔다.

       

       쿵, 쿵, 쿵.

       

       살점과 호롱, 어둠과 기계. 잡탕이나 다름없는 이질적인 존재가 발을 내디딘다.

       

       “마수 중에 너 같은 놈을 내 본 적이 없는데.”

       [꾸륵.]

       “뭐하러 여기 나타났는지 밝혀라.”

       [꾸륵, 꾸륵.]

       “대답 안 한다 이거지.”

       

       에테르는 마력초를 다 태우고 있었다. 그녀 또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 순간이었다.

       

       쐐애애액!

       

       로테의 눈에 무언가가 비쳤다.

       

       아주 잠깐, 그것이 실 같은 무언가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위험해!”

       

       로테는 소리쳤다. 다행히 에테르는 재빨리 몸을 뒤틀어 빛무리를 피해냈다.

       

       터억.

       

       심지어 그중 하나를 잡아채기까지 했다. 로테의 입이 함지만 하게 벌어졌다.

       

       “되돌려주마.”

       

       [팔정도(八正道) 제6식(式) ─ 디케이(Decay)]

       

       뻐어억! 그런 소리가 났다. 괴물은 꾸득거리며 뒤로 넘어질 듯이 휘청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놈을 가격한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에테르는 곧장 스태프를 꺼냈다. 그러더니 초식을 합쳐 하나의 투로를 만들어냈다. 금안족과 수인족이 주로 사용하는 체술의 일종이었다.

       

       스태프는 기기묘묘한 궤적을 그려내며 나아갔다. 뻑, 뻑, 뻐억! 캘리퍼스의 끝날이 괴물의 전신을 찍고 빠지길 반복했다.

       

       [꾸르륵!]

       

       “한 대 더 맞아라.”

       

       캘리퍼스가 이번에는 머리에 내리찍힌다. 에테르는 위로 날아오르며 스태프에 체중을 실었다. 터엉! 괴물이 딛고 서 있는 땅이 움푹 팼다.

       

       [팔정도(八正道) 제2식(式) ─ 아발란치(Avalanche)]

       

       이번에는 전류의 무더기가 흐른다. 마수는 검은 피가래를 뿜으며 경련했다. 덜덜덜 떠는 모습이 전기고문을 받는 죄수와도 같았다.

       

       쐐액!

       

       다시 한번 사선이 쇄도했다. 아까보다 더 굵고 선명한 것이었다. 에테르는 이번에도 전부 막거나 피해냈다.

       

       숙련된 자의 움직임이었다. 젊고 경험이 없는 마도사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괴물을 몰아붙이고 있다.

       

       에테르가 공세를 이어나감에 따라 두려움에 떨던 학생들의 눈에도 총기가 돌아왔다. 그들은 하나둘씩 머리를 들고 싸움을 직관했다. 일부는 스태프를 쥐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도와 드려야 할까…?”

       “아니야. 지금 나서면 선생님만 곤란해져.”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로테는 자신이 방해만 될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꾹 참았다. 상황이 정말 급한 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리라.

       

       괴물의 꼴이 점차 말이 아니게 변해갔다. 뇌수는 질질 흘렀고, 눈알은 전부 뽑혔다. 팔 하나는 벌써 잘렸다.

       

       [꾸륵.]

       

       놈의 음색이 변했다.

       

       [꾸르륵, 꾸륵.]

       

       놈이 무언가 눈치챈 모양이다.

       

       “…엇!”

       

       천천히만 움직이던 놈이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했다. 잡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놈은 평지로 달리지 않았다. 등 뒤로 돋아난 손들로 벽면을 짚고 벽면을 따라 올라갔다. 중력을 무시하는 듯 기이한 움직임이 금세 가속을 받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에테르는 곧바로 반응했다.

       

       이제 괴물은 천장으로 올라가 거꾸로 달려갔다. 학생들의 고개가 위를 향했다.

       

       타르처럼 생긴 고형물 하나에, 그 주위를 천체의 위성처럼 맴돌며 깜빡거리는 호롱이 십여 개.

       

       호롱의 명멸은 곧 사선의 방출을 의미했고.

       

       “……!”

       

       이제 로테는 몸이 꿰뚫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