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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2

       “나이도 어린것이 누구랑 싸우겠다고 잠을 안 자겠다고?”

        

       검성이 화가 난 포인트는 그쪽인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나를 따라온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여기까지 오는 길은 알았으니 제니퍼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윈터필드로 오자마자 곧장 각자 성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할당량을 채우고 바로 검성을 찾아왔다. 나도 클레어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고, 지금 당장은 우리 두 사람 다 서로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 클레어가 시간을 돌린다고 내가 뿅 하고 사라질 일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 자체는 많았지만, 혹시라도 다른 인원들과 시간을 조정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시간을 조금 넉넉하게 잡고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 일정이라는 것은 빨리 해결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는가?

        

       검성을 설득해달라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봤는데, 클레어와 앨리스 모두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대와 싸우겠다는 말이 나를 망가뜨리겠다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검성이 말을 이어 나가는 게 들려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검성 쪽을 보았다.

        

       검성 프레데릭은 팔짱을 낀 채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쉬는 시간을 줄여 검을 휘두르거나, 밤을 새워가며 이런저런 학문을 익힐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결과가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그건 해서는 안 될 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검성의 목소리에선 설득력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져서, 어쩌면 이 사람은 이미 그전에 그걸 겪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제가 상대해야 하는 존재는 여신입니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그렇게 말하자, 검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다면 더욱 안된다. 누군가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나의 몸 상태가 상대보다 좋아야 하니까. 당연한 게 아니냐?”

        

       아니, 그러니까 상대는 ‘여신’인데.

        

       건강 상태 같은 것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잖아.

        

       그러면 내가 얼마나 건강하건 상관없는 거 아닌가?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네 뒤에 있는 자매 중 하나가 그 여신의 힘 일부를 손에 넣었다는 것 같은데.”

        

       검성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오래된 나무 의자가 뒤틀리기라도 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너는 네 자매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당연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거지? 여신이 네게 일대일 대련이라도 청한 건가?”

        

       “…….”

        

       검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나는 한동안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 자매가 여신의 능력을 쓰면, 저라는 존재는 한동안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짓된 기억으로 가려져 있던 부분이 생겨나면서 논리적인 구멍이 생기는 것이지만, 그 논리적인 구멍 안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의 일은 네 자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 아니냐?”

        

       “…….”

        

       검성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어서, 나는 다시 말을 잃었다.

        

       “네 자매의 능력이 너보다 떨어지느냐?”

        

       “아닙니다.”

        

       클레어도 앨리스도, 당연히 나보다 훨씬 재능있는 아이들이다. 앨리스는 나처럼 시간을 마구 돌리지 않아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고, 클레어도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재능도 있고, 그 재능을 살리는 법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언제나 정진한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능력 하나만으로 먹고 살던 나에 비하면 훨씬 더 나은 애들이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

        

       “왜, 두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거냐?”

        

       “…….”

        

       나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검성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나도 그랬다.”

        

       검성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전장에서, 나보다 못한 실력을 갖춘 동료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인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혼자 잘나서 그냥 모두를 지켜버리면 그만이 아닌가, 하고.”

        

       검성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되더구나.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아. ‘나 혼자 모두를 지키겠다. 내가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만 들으면 무척 숭고한 일처럼 보인다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네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모든 것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서, 결국에는 짓눌려버리고 마니까.”

        

       모든 것을 겪어본 이의 말이라서 그럴까. 검성의 목소리에는 이번에도 강렬한 설득력이 담겨있었다.

        

       “전장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장뿐만이 아니야. 사람은 병으로도 죽고,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도 죽는다. 정말 운이 나쁘면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고도 죽을 수 있지. 너는 그 모든 것을 전부 너 혼자 끌어안고 있을 생각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나에게 능력이 없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를 휘둘러지는 칼 앞에서 구할 수 있다.

        

       설령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미리 구할 수 있다. 시간을 돌리면 되는 일이니까.

        

       게다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주변의 친구들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흠.”

        

       검성은 그런 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건 진심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 좋다.”

        

       검성이 무릎을 ‘탁’ 치며 몸을 일으켰다.

        

       “알려주시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

        

       나의 질문에 검성이 대답했다.

        

       “사람의 신체에는 언제나 한계가 존재해. 훈련도 너무 많이 하면 독이 되는 법이고, 잠을 쫓는 짓도 너무 많이 하면 결국에는 정신을 잃는 법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죽을 수도 있고.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꾸준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일어나면서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는 것이다.”

        

       “…….”

        

       너무 정석적인 말이라서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애초에 잠도 자지 않고 원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검성 자신부터가 사용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도움을 조금 줄 수는 있을 것 같구나. 여기 온 이유도 사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냐?”

        

       그렇다.

        

       나는 검성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왔다.

        

       이전에는 가면녀를 만난 뒤 한참 뒤에야 검성을 불렀지만, 상황이 그때보다 더 급해진 지금은 정말 도움의 손길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북쪽 국경 지역이 그랬다.

        

       자치국 안에는 분명히 지보가 있을 것이다. 국경을 아예 불살라버리고 제이든이 직접 파견되었던 것은 제국이 자치국을 돕기 위함이 아니다.

        

       그 안에서 뭔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가짜 앨리스의 몸에서 건진 것 말고도 황제는 다른 지보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잘못된 물건’이긴 했으나 하나로 조립해냈고.

        

       그렇다면, 황제가 노리고 있는 곳을 우리가 샅샅이 수색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국경 지역은 지나치게 넓었다.

        

       시간을 몇 번이고 돌린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 앨리스, 클레어 세 명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 대륙 안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인 검성에게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부탁드리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될 정도로 민폐가 큰 부탁을 하기 전에, 나는 우선 검성에게 한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무엇이냐?”

        

       “……어째서 저희를 도와주시려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렇다.

        

       원작에서도, 그리고 이전에 내가 겪어본 바로도 검성은 자기 즐거운 대로 살고자 하는 성향이 강했다. 당연히 이런 귀찮은 부탁은 그냥 단칼에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질문을 받은 검성은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 뒤쪽의 자매들을 한 번씩 보고는 말했다.

        

       “우선, 황녀를 둘씩이나 데리고 와서 그런 말을 했다는 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네게는 아무런 재능도 없거든. 조금 전 내 수도를 피하지 못한 것만 봐도 그렇다.”

        

       검성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는 이상하게 내 제자들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더구나. 재능 없는 이가 그런 움직임을 가지려면 수도 없는 연습을 해야겠지. 그러니 너는 정말로 내 제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검성은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그리고 말이다, 이 지루한 인생 막바지에 무려 여신과 대적할만한 기회가 생겼다. 누구라도 뛰어들어보고 싶지 않겠느냐?”

        

       …….

        

       그야말로 검성다운 말이라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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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이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내일도, 내일 모레도, 그리고 아마 다음 작품에서도 독자 여러분께서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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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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