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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2

        

       관에서 막 꺼낸 것처럼 바싹 마른 시체들은 관절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뼈끼리 부딪치는 듯 따닥 소리가 들리기도 했으며, 단단하게 굳어버린 가죽이 내는 것인지 투두둑 하는 파열음이 나기도 했다.

       이리저리 기괴한 몸짓으로 움직이는 와중 턱뼈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고, 서로가 부딪치면서 칠판을 긁는 듯한 끔찍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악령들은 그렇게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거미처럼 천장에 매달려서 걸어가고, 벽에 몸을 갈아버릴 듯 딱 붙어서 걸어가고, 박쥐의 피막같이 늘어진 가죽을 질질 끌면서 앞으로 걸어가고, 금방이라도 폭삭 무너져 내릴 것같이 위태롭게 걸어갔다.

         

       끼긱.

       끼기긱.

         

       악령들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그들의 소음이 닿는 곳은 부식되었고, 그들의 발자국이 닿은 곳은 곰팡이가 피어올랐고, 그들이 살아있는 인간을 흉내 내서 내뱉는 숨결은 꿈의 풍경을 악몽의 형상으로 바꾸어놓았다.

       깨끗한 벽은 더러운 얼룩이 피어올랐고, 낡지만 깔끔했던 커튼은 흉가에서나 볼법한 넝마로 변했으며, 먼지만 쌓였을 뿐 멀쩡했던 창문은 온갖 오물이 칠해져 도저히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들이 걷는 곳은 악몽이 되었고, 퇴색된 기억 속의 비극이 되었고, 떠올리기조차 역겨운 오물투성이의 추억으로 변했다.

         

       [ 윌-리-엄—-. ]

       [ 어디에 있습니까? ]

       [ 숨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꿈은 저번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

         

       악령들은 꿈을 악몽으로 덧칠하며 사방을 돌아다녔다.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모든 문을 열고, 침대 위부터 밑까지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는 목을 길게 빼서 환풍구 안을 살펴보기까지 했다.

         

       [ 이 꿈에는 탈출구가 없습니다. ]

       [ 당신의 육체에 있던 칩(Chip)은 새까맣게 타서 배출되었지요. ]

       [ 방벽은 없고, 이제 당신은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습니다. ]

         

       그들은 텅 비어버린 눈으로 사방을 누볐다.

         

       [ 이제는 허락받지 않아도 됩니다. ]

       [ 종잇장 같은 문에 가로막힐 일도 없지요. ]

       [ 이게 다 위험을 알았음에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당신의 멍청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 달게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

         

       그들은 망념에 휩싸인 것처럼 쉼 없이 중얼거렸고, 끔찍한 몰골로 돌아다니며 서서히 범위를 좁혀나갔다.

         

       덜컹.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끼긱.

       끽.

         

       복도를 가로막던 거대한 문 하나가 열리고, 텅 비어있는 계산대가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엘라가 보았던, 그림으로 그려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따다닥.

       따닥.

       끼기긱.

       투둑.

         

       악령들은 나아갔다.

       늘어진 가죽을 질질 끌면서 계산대로 향했고, 낡아빠진 전등을 교수대의 밧줄처럼 만들었다.

       잘 관리된 휠체어를 녹이 슬고 낡아빠진 물건으로 바꾸었고, 의료용 침대에는 오물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천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던 조명은 거미 같은 다리를 이용해 고장 내고 다녔으며, 깨끗한 벽에는 곰팡이를 퍼뜨려 변색시켰다.

         

       그렇게 복도는 흉가의 모습이 되었고,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되었다.

         

       “아으, 빌어먹을. 여긴 또 어디야…?”

         

       그리고 공포영화에는 반드시 희생양이 있는 법.

         

       가련한 제물이 될 존재가 그 복도에 나타나고야 말았다.

         

       윌리엄은 한 손에 막걸리병 쥔 채 머리가 아프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가래부터 뱉었다. 그리곤 자기 손에 들려있는 막걸리병을 보고 이딴 게 왜 내 손에 들려있냐며 복도에 집어 던졌다.

         

       텅!

       데구르르….

         

       막걸리병은 막 깨어난 윌리엄의 손에서 날아가 복도에 세워져 있던 링거 거치대에 부딪혔다. 그리곤 텅 빈 듯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고, 복도에 소리를 울려 퍼뜨렸다.

         

       그리고 소리가 지난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침묵.

       끔찍할 정도의 긴장감을 주는, 공백이 주는 침묵이었다.

         

       끼기긱.

         

       그리고 그 침묵의 끝에, 악령들이 움직였다.

       악령들은 인기척이 난 곳을 향해 굳어버린 목을 비틀며 고개를 돌렸고, 무저갱같이 뻥 뚫린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벌레와 오물을 입에서 토해내며 꿈틀대기 시작했고, 제각기 방식대로 움직이며 천천히 윌리엄에게 다가갔다.

         

       가죽을 늘어뜨린 악령은 박쥐의 날개처럼 팔을 활짝 펴며 허공에 떠올랐다.

       거미같이 팔다리가 길쭉한 악령은 천장에 매달린 채 성큼성큼 윌리엄에게 다가갔다.

       벽을 긁고 있던 악령은 벽에 몸을 갈아가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 반갑습니다. 윌리엄.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

         

       휠체어에 앉아있던 악령은 목을 한껏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

         

       말에 색이 있다면 저 말은 붉은색이리라.

         

       [ 우리는 당신을 놓치지 않습니다. ]

         

       말에 향기가 있다면 저 말에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겠지.

         

       [ 함께 가시죠. ]

         

       악령은 불길하게 웃었다.

         

         

         

        * * *

         

         

         

         

       “어…. 음. 동생? 이거…?”

         

       아나스타시아는 영상을 보며 말을 잃었다.

         

       아무리 봐도 눈앞에 보이는 ‘악몽’이 범상치 않았다.

       악몽이라고 보기에는 심상치 않은 현실감이 있었고, 일반적인 악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체화된 불길함이 곳곳에 감돌고 있었다.

       게다가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의 악령들 역시 일반적인 상상이나 무의식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것처럼 그 존재감이 아주 뚜렷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초반에 보였던 고래 역시 꿈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불길한 느낌이 물씬 풍겼고,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것을 생각해본다면….

         

       구멍이 보여주는 ‘악몽’은 일반적인 악몽이 아니리라.

         

       게다가 엘라의 반응 역시 심상치 않았다.

         

       엘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무언가 고민이라도 하는 듯 끙끙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오목눈이라는 따뜻한 난로 대용품을 안고 있음에도 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운데다가, 얼굴에는 중대한 선택을 앞에 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고뇌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엘라는 고뇌했다.

       고민했고, 또 고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언이야.’

         

       지금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장면은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장면이었으니까.

         

       언젠가 불청객처럼 나타난 윌리엄 때문에 보았던, 그림으로 그렸던 예언의 장면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게다가 엘라의 눈앞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예언에서 윌리엄을 구할 아나스타시아도 옆에 함께 있었다.

         

       여기서 아나스타시아가 악몽에 직접 개입하기만 한다면 윌리엄의 예언은 이루어지리라.

         

       하지만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엘라는 결코 아나스타시아를 윌리엄과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위치크래프트를 평소보다 열심히 훈련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망나니 같은 놈에게 강제로 붙잡혀 이야기를 듣지 않을 정도로 힘을 기르겠다는 향상심?

       어머니 같은 아그네스 스승님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부담감?

         

       그런 것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훈련에 매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아나스타시아를 저 망나니에게 얽히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

       어느새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아나스타시아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 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노력을 무시라도 하듯 눈앞에 예언의 장면이 나타났다.

         

       ‘게다가 내 힘으로는 무리야….’

         

       악몽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가 뭘 하든 간에 미래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고.

         

       네가 한 훈련은 무의미한 행동이었고, 네가 노력으로 이루려고 했던 것은 결코 네 손에 닿지 않을 곳에 있었던 것이라고.

       너는 그저 허상을 보고 있었을 뿐이며, 네가 이룰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고.

         

       악몽은 그녀에게 무기력을 강요했고, 그녀의 마음속에 묻어있던 무능력을 질타하였으며, 그녀가 무가치하다며 매도하였다.

       그 존재 자체로 그녀의 열등함을 강조시키는 듯했으며, 그녀의 마음을 꺾어버릴 듯 어둠을 넘실거리며 그녀에게 포기를 강요했다.

         

       그렇게 엘라의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하였다.

       마치 오염된 물이 깨끗한 물을 더럽히는 것처럼.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아얏!”

         

       파지직.

         

       자그마한 스파크가 일어나며 그녀의 손등을 지져버린 것이다.

         

       엘라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스파크에 따가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는 것만으로 그 고통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엘라는 고통을 뿌리치기 위해 스파크가 일어난 손을 미친 듯이 털어대었고, 스파크가 만들어낸 고통의 잔재와 따끔거리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손바닥으로 손등을 미친 듯이 비볐다. 그렇게 한참을 반복하자 스파크가 만들어낸 고통이 가셨고, 머리에 들어오던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다시 맑은 정신이 돌아왔다.

         

       “어…. 동생? 괜찮나요?”

       “네, 괜찮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묘한 눈빛으로 엘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엘라가 갑자기 체한 사람처럼 끙끙 앓다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그러다가 갑자기 저 혼자 비명을 지르더니 밝은 얼굴로 돌아온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사람이란 충동에 가끔 몸을 맡겨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으며 엘라를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동생 마음은 언니가 안다는 뜻을 담아서.

         

       그리고 엘라는 그 표정을 보고 무언가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언….”

       “넹?”

       “예언. 그 망나니가 보여줬던 예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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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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