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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2

   난 알새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카데미 바깥으로 향했다.

   

   수업이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자잘한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영지 하나를 악신에게 바치려 든다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말이 안 되잖아!

   

   버로우 공작 가문은 분명 거대한 곳이다. 왕국에 몇 되지 않는 공작 가문 중 하나이니만큼 그 영향력 아래에 속해 있는 땅은 넓으며 그 위에 거주하는 이들도 많지.

   

   거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집어삼킬 수 있다면이야 분명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을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든 걸 집어삼킬 수 있다는 전제하의 일이다.

   

   이 계획이 말이 안 되는 지점은 몇 가지나 존재한다.

   

   우선 버로우 영지가 넓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 광활한 범위를 감당할 수준의 마법은 어떻게 준비할 것이며,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그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그 마법은 분명 결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 근거는 수도 없이 존재한다.

   

   우선 타리키의 권능이 미비한 점. 타리키의 권세가 그리 커다랗지 않다는 점.

   

   버로우 가문이 기사의 영지이니만큼 마법관련 자원이 그리 많지 않았을 거라는 점.

   

   무엇보다 시간이 모자라다는 게 가장 크다.

   

   나크라드가 버로우 가문을 완전히 집어 삼키고서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 때부터 이걸 준비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모자라.

   

   광신에 의해 사람을 굴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제물의 마법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발동이 되기만 하더라도 기적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설령 운 좋게 진법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그걸 발동시킨 후에 제물이 바쳐질 때까지 어떻게 버틸 건데.

   

   버로우 공작 가문은 거대한 영지야.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준의 흑마법이 발동되었을 때 교회에서 못 알아차릴 리가. 아무리 타리키의 권능이 숨기는 것에 특화되어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녀석의 권능이 불완전한 지금이라면 더더욱.

   

   주변의 영지가. 나라가. 교회가. 타리키를 박살내기 위해 올 거다. 마법은 완성될 수 없다.

   

   …

   

   만에 하나.

   

   아주 만에 하나의 확률을 뚫고서 제물의 마법이 멀쩡하게 펼쳐졌다고 치자.

   

   어찌저찌 타리키를 토벌하기 위한 움직임을 버티면서 타리키에게 버로우 영지를 바쳤다고 치자고.

   

   근데 그렇다고 타리키가 자신을 토벌하러 온 이들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하. 그럴 리가.

   

   제물이라는 것은 결국 에너지고 열량이다.

   

   아무리 많은 음식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먹을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제물이 바쳐진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힘을 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의 타리키는 비유하자면 긴 세월 땅바닥에 처박혀서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과 지나다니는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생명을 이어온 인간이다.

   

   과거에 녀석이 얼마나 대식가였는지는 상관없다.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음식을 입에도 대지 못한 녀석의 앞에 진수성찬이 주어진다 한들 얼마나 먹을 수 있겠는가.

   

   확신한다. 마법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부활한 타리키의 힘은 전성기에 비해 한없이 약할 것이란 걸.

   

   그 상태의 타리키는 하늘을 검정으로 물들이기는커녕 자신을 토벌하러 온 이들의 공적에 한 줄을 추가해주고 저물겠지.

   

   어떻게 확신하냐고? 다급히 부활한 타리키를 이 눈으로 보았고. 완벽히 부활했을 때와 비교하면 헛웃음 나올 정도로 약해빠진 녀석을 이 손으로 처리했으니까.

   

   그렇기에 난 무언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자살 행위잖아. 실패할 것이 분명한 도박에 목숨을 내거는 걸 자살 말고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내가 버로우 가문에 숨겨진 비밀을 파악했고 자신을 처리하지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눈치 챘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전혀. 마음이 급해질 수는 있겠지만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이유는 없다.

   

   버로우 가문을 집어 삼키는 과정에서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힘을 회복했을 테니 거기에 만족하며 물러나는 편이 낫지. 무얼 하러 자신의 명운을 질 게 뻔한 도박에 걸겠는가.

   

   실제로 게임 속의 타리키는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 자신이 떠나면 인간과 인간이 싸우며 자신이 있을 때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이다.

   

   “이상이 스승님으로부터 전해들은 보고입니다. 미와 예술의 사도가 보았고, 스승님께서 여러 사제들을 거쳐 검증해 본 정보이니만큼 오류는 없을 겁니다.”

   

   헌데 이 세상의 타리키는 내가 알던 녀석과 많이 달랐다.

   

   녀석은 진짜로 버로우 영지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부정하고 싶어. 부정하고 싶은데!

   

   내 앞에 늘어서 있는 모든 정보가 너무 정확하게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어서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어!

   

   젠장! 카리아! 너 진짜 일 더럽게 잘하네!

   

   아니 어떻게 악신의 사제들 사이에 섞여 들어갈 수가 있는 거야?!

   

   지금 이게 힘 대부분을 잃은 상태라니! 대체 전성기 때는 얼마나 쩔었던 거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새틴의 물음에 따라 공상에서 빠져나온다.

   

   녀석은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려 노력하고 있고 분명 그 연기는 능숙하다. 약점 파악을 찾기 전의 나였다면 아무것도 눈치 못 챘겠지.

   

   허나 지금은 아니다. 지그의 나에게는 보인다. 들키고 싶지 않은 초조함이. 스승을 향한 걱정이.

   

   그 감정을 마주한 순간 머릿속에 떠다니던 여러 생각들이 저물고 침착이 자리한다.

   

   “흐응.”

   

   길게 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모든 정보가 이 마법이 진짜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이상 타리키가 미친 짓을 저지르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아무리 지적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니까 반대로 생각해보자.

   

   ‘미친 짓을 저질러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얼 노리는 걸까. 힘의 회복? 아냐. 그게 목적이었으면 더 좋은 수가 많잖아.

   

   버로우 가문에 대한 증오? 걔한테는 그런 거 없어.

   

   나크라드의 독단? 이것도 아냐. 그 허세 멀대 능력은 그렇다 치고 충성심하나는 진짜니까.

   

   뭐지? 진짜 뭐지?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무렵 할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던전과 관계된 것이 아니면 왜 이토록 머리가 굳는 것인지.>

   ‘…엑? 할아버지. 제가 무슨 말 했던가요?’

   

   나 할배한테 아무 말 안 했는데? 속으로 생각만 했는데?!

   

   <중간에 몇 가지 생각이 새어 나왔다.>

   ‘그럼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왜 음흉하게 듣고만 있어요?!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주셔야죠! 어른답게!

   

   <스스로 생각을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바라보고 있었던 게다.>

   ‘진짜요?’

   <그럼 이외의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아니. 그치만 얼마 전에 해골이 말했던 것도 있고 하니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느냐! 내 취향은 너 같은 꼬맹이가 아니라!… 하여튼! 왜 정답 앞에 도달해놓고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야!>

   

   정답 앞에 도착했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물으마. 무언갈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때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때?’

   <…비슷하다. 더 정확하게는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걸려있을 때지.>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 타리키라면. 어둠의 악신이라면. 패배 끝에 봉인되어 오랜 시간 증오를 쌓아온 놈이라면.

   

   ‘주신을 향한 복수.’

   

   녀석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루고 싶은 건 하나 뿐이야.

   

   <좋다. 그럼 복수를 위해선 무얼 해야 하지?>

   ‘세상을 멸망시킨다거나.’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야 이 세상이 주신에게 가장 소중한 거니…까.’

   

   소중한 것. 아끼는 것. 관심을 가지는 것.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

   

   과거 허접 주신이 이 세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을 때는 그 대상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아냐.

   

   내가.

   

   아르마디의 사도가 있으니까.

   

   <그래. 너다. 여아야.>

   ‘…아니. 그렇지만. 이거 저랑 아무 관계 없지 않나요?’

   

   물론 난 퀘스트 때문에라도 버로우 가문으로 향해야 해.

   

   그렇지만 타리키는 퀘스트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막말로 버로우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무시한 채 가만히 있으면 지가 어떡할 건데.

   

   자기 혼자 난리 피우다가 그대로 자멸하는 거잖아.

   

   나를 노리는 거라기에는 너무 어설프지 않나?

   

   <그래서 무시할 수 있느냐?>

   ‘…네?’

   <네 무관심으로 인해 생겨날 무수히 많은 피해를 무시할 수 있느냔 말이다.>

   ‘…’

   <답하지 못하니 다른 걸 물으마. 네가 다른 세력을 끌어들임으로 인해 버로우 영지가 불타는 걸 감당할 수 있느냐?>

   ‘…아뇨.’

   

   못 한다. 나란 인간은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조차도 짊어지기 버거워하는 것이 나이거늘 이 위에 수많은 생명이 더해진다면 난 분명 무너질 거야.

   

   <그럼 처음으로 돌아오자꾸나. 이 일이 너와 무관계한가?>

   ‘…아니요.’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나인 이상. 나는 절대로 버로우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런 게다. 네가 여태까지 잔뜩 단서를 보여주었으니 녀석도 이를 알고 있겠지.>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 젠장. 이제는 완전히 외면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타리키가 일을 저질러 희생이 생겨나게 된다면 거기엔 나의 과실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니까.

   

   <상대가 그대를 노리고서 함정을 파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곳에 간다면 수많은 위험과 고난이 뒤따르겠지.>

   

   그럴 것이다. 상대가 올 것임을 알고 있는데 그 상대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 시련의 던전을 점령한 이유도 이건가?

   

   내가 어떤 식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지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날 잡아 죽이기 위한 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날 억까하려고 한다 생각한 그게 정찰이었단 말야?!

   

   <내 의견은 지난 번과 같다만.>

   

   할배는 말했다.

   

   희생을 감수하는 법을 배우라고.

   

   모든 일에 목숨을 걸려 하지 말라고.

   

   지원을 청하라고.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허나 이번에 할배가 꺼낸 말엔 이전과 다른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대가 나의 주인이니. 내 그대의 의향을 존중해야하겠지. 물으마. 어찌할 게냐.>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을 들은 순간 내 머릿 속에 떠오른 단어는 하나 뿐이었다.

   

   ‘공략해야죠.’

   

   공략.

   

   나를 위해 만들어진.

   

   나 하나를 잡아 죽이기 위한.

   

   나에게 최적화 된 던전이 눈 앞에 있는데 그걸 지나치라고?

   

   모드 제작자가 나를 위해서 던전을 만들어 줬는데 그걸 무시하란 말야?

   

   난 못 해! 절대로 못하지!

   

   <…하아.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렇다면 다음이다. 자신은 있느냐?>

   ‘그걸 말이라고 해요? 할아버지. 던전이잖아요.’

   

   하. 지가 날 파훼하려고 하면 뭐 해! 그래봐야 좆밥 악신일 뿐인데!

   

   이 게임을 수도 없이 클리어 해 본 나는 저 허접의 창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안다고!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 봐! 자신의 멍청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테니까!

   

   <계획은?>

   ‘상대가 절 위해 선물을 준비해줬다는 걸 알았으니까. 저도 상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죠.’

   

   상대가 정성스레 내가 싫어하는 걸 준비해주고 있는데 나도 상대가 싫어할 걸 준비해 줘야지.

   

   난 착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니까.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 정도면 좋아서 발악해주지 않으려나?

   

   <…그게 가능하더냐? 주신의 도움도 없이?>

   ‘가능하긴 해요.’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에겐 새로운 스킬이 있으니까.

   

   대신 내 존엄을 조금.

   

   아니 상당히 많이 팔아먹어야 하겠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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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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