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2

       

       

       “……미래? 미래를 알고 있다라?” 

       “응.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는 얘기야.”

       “예끼! 이 사람아, 자네가 점쟁이나 무당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럼 당장 돗자리를 깔아야지!”

       

       양복자도,

       

       “뎃 군은 우소쓰끼(거짓말쟁이)야!” 

       

       하며 웃었다. 나는 그런 양복자에게 내 손을 내밀었다.

       

       “진짜야.” 

       “흐흥, 자신있는 모양이야!” 

       

       내 손을 번쩍 잡는 양복자. 이유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계집이 어찌 분별없이 사내의 손을……’ 하고 중얼거렸지만, 양복자는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싼 채, 눈을 지긋이 감고는 외쳤다.

        

       “과연 혼또인지 우소인지, 다시 한 번 말해봐!” 

       “나는 미래를 알고 있어.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의 미래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양복자는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에엣, 우소인 줄 알았더니 혼또다……!” 

       “뭣이……!”

       “원, 농담이 아니었나!”

       

       다들 놀라는 와중에, 양복자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내 손을 쪼물딱거리며 물어왔다.

       

       “데, 뎃 군도 아따시처럼 새 능력을 얻은 거야? 예지능력 같은 거야?”

       “아니야. 뭐랄까……”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미래를 어떻게 알게 된 건지도 밝혀야 하는데. 

       

       ‘다른건 다 말해도, 내가 빙의되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 

       

       그걸 밝히면 아무리 진실이더라도 친구간의 신의가 깨지는 것이다. 동년배 친구처럼 대해왔던 녀석이 사실 아저씨라니, 그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어떻게 둘러댈까 잠시 생각하던 나는, 내 머리를 톡톡 치며 대답했다.

       

       “미래인의 기억이 이 안에 있어.”

       

       일단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양복자에게 진실판단을 맡긴 채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팔십 년 뒤의, 21세기의 미래를 살아가던 한 사람의 기억이야. 그 사람의 기억이 어느날 갑자기 이 백철연의 머릿속에 들어왔어.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각성능력으로 예지한 것도 뭣도 아니고 그냥 실제로 일어난 일일 뿐이야.” 

       

       조금 돌려말하긴 했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다. 미래를 살던 내가 백철연의 육체에 빙의되었다는 사실을, 주체만 백철연으로 바꿔서 이야기한 것 뿐이니까. 

       

       “우왓! 혼또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허어……! 참말인가보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송병오도 놀라서 안경을 고쳐썼고, 양복자는 여전히 내 손을 부여잡은 채 다급히 물었다.

       

       “뎃 군! 그럼 아따시, 아따시는 미래에 어떻게 돼? 조선에서 이찌방 제일가는 부자가 되는 거 맞지? 

       “그런 건 몰라. 내가 아는 건 개개인의 미래가 아니라 대략적인 미래일 뿐이고, 그나마도 조금 다를 수 있어.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내가 대답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이유하가 물었다.

       

       “대략적인 미래라면, 큰 사건은 알 수 있다는 말이겠구려? 

       “응.”

       “이를테면 무엇이오? 언제 홍수가 나는지, 언제 가뭄이 나는지 하는 것 말이오?”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뭐부터 얘기해줘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이유하는 내 대답이 늦어지자 목이 타는지 맥주잔를 두 손으로 들고는 조금 들이마셨고, 고민을 마친 나는 대답했다.

       

       “조선은 독립해. 육 년 뒤에.”

       “푸우———웃” 

       

       마시던 맥주를 뿜는 이유하. 

       

       그 옆에는 안주를 집어먹다가 사레들려서 켁켁 거리는 송병오와, 히끅거리며 딸꾹질을 시작한 양복자. 

       

       다들 뭐라고 대꾸하지도 못하는 와중에, 아이까와만이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응……? 시라바야시 군이 무엇 말했는데 다들 놀라는 거야……?』

       

       켁켁거리던 송병오가 크게 당황하며 외쳤다.

       

       “배, 백철연이 이 사람아! 여기 조선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얘기를 함부로……”

       

       양복자도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히끅! 이, 이건 통역해주면 안 되는거지?”

       “괜찮아. 말해줘도 돼.”

       “괘, 괜찮을까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양복자는 아이까와의 귀에 소근소근 통역을 해줬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까와 역시 깜짝 놀랐다. 잠시 뒤, 그나마 진정된 이유하가 입 싹 닦고 나에게 물었다.

       

       “그, 그것이 사실이오?” 

       “그래. ……원래대로라면.”

       “그건 무슨 뜻이오?”

       “내 머릿속에 들어온 미래의 기억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과 기본적으로 똑같지만 조금은 다른 세계야. 그 세계에서는 내가 말한대로, 육 년 뒤에 조선이 독립해.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데, 미국이 일본을 이김으로써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게 되지.” 

       “과연……!” 

       “하지만 그 세계에는 대동아공영회가 없었어.” 

       “……!”

       

       나는 분대원들에게 대동아공영회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일찍이 렌까가 자신의 아버지 시마즈 당주로부터 들었고, 그것을 엿들은 까뜨린느(안의 방숙자)가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 예전에 내가 노트에 정리해 놓았던 것과 같은 이야기다.

       

       미래에 일어날 일본과 미국과의 전쟁……

        

       본래라면 일본이 지고 미국이 이기게 되어 있지만, 대동아공영회는 각종 사악한 기술을 써서 이기게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다.

       

       생도들의 영혼 에너지를 모아 만든 령자폭탄,

       마수의 능력을 인간에게 집어넣는 마수화,

       인공 마문을 이용한 카타스트로피(대재앙), 

       경성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를 감싸는 대(大)결계,

       

       등등……

       

       “이대로라면 일본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세계정복을 하게 되어버려. 인구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은 죽고 말 거야.”

       “……!”

       “허어! 그게 사실인가!”

       “데, 뎃 군이 한 말, 전부 혼또야……”

       

       양복자가 진실을 보증해주니, 일일히 설득하거나 해명할 필요가 없어 편하기는 하구나.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난, 렌까를 통해서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갔어.”

       “그대, 갑자기 그건 무슨……!”

       “데, 뎃 군? 설마 그쪽에 붙은 거야?” 

       

       내가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갔다고 밝히자 모두 당황하는 와중에, 송병오만이 뭔가 알겠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네…… ‘사보타쥬’를 할 셈이로군!”

       

       역시 머릿속에 빨갱이 물이 든 놈 아니랄까봐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빠르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부에서 방해공작을 펼칠 거야.”

       “대담하기 그지없군! 위험하지 않겠나!”

       “위험하겠지. 하지만 이 수밖에 없어. 나같은 일개 개인이, 그런 거대한 집단에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으니까.”

       

       나는 다시 녀석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저번에도 이렇게 모여서 너희들의 뜻을 물은 적이 있었지. 그땐 너희들이 나를 도와준다고 했지만, 그땐 내가 이런 것들을 밝히지 않았었어. 누구라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테니까…….” 

       

       이어서,

       

       “하지만, 양복자가 거짓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말할 기회라고 생각한 거야. 그러니까—”

       “에잇, 그만두어! 그만두게나! 술 맛 버리네그려!”

       

       별안간 송병오가 내 말을 끊고 넌더리를 쳤다. 

       

       “……뭐?” 

       

       대답 없이 맥주를 들이키는 송병오 대신, 나에게 대답한 사람은 이유하였다.

       

       “그대는 또 우리를 헤아려볼 셈이구려. 몇 번을 물어도 나의 대답은 같소. 난 그대가 무엇을 하든 따를 터이니.” 

       

       그제서야 맥주병 하나를 다 비운 송병오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푸하! 내 말이 그 말이란 말이야! 나는 이미 옛저녁에 결심을 다졌네! 게다가 이번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더욱이 이 일을 안할 수 없겠네그려. 우리의 이 투쟁으로, 삼천만 조선민족 해방까지도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후후! 내가 민족해방을 위해 사보타쥬를 하게 되다니, 벌써부터 적잖이 설레이는군!”

       

       이 녀석들…… 이유하는 그렇다치고 송병오도 꽤나 또라이 기질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얘는 골수 공산주의자라기보단, 단지 혁명가나 민족투사 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유하가 양복자에게 힐끗 눈길을 주며 중얼거렸다.

       

       “다만 양가가 염려스럽구려.”

       “아따시가 뭐!”

       “그대는 일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부일배잖소?”  

       “이잇!”

       

       양복자는 팔짱을 끼고 앉은 채 말했다. 

       

       “모오, 실은 말이지! 그동안에는…… 일본이 망하면 조선도 함께 망하는 것 아닐까나, 독립이라니 뜬구름같은 잠꼬대가 아닐까나, 하고 생각했었던 건 혼또다요! 힘도 지지리 없어서 서류작업으로 나라 뺏긴 조선이, 무슨 수로 독립을 하겠냐고……!”

       “양가! 그대는 어찌 말을 그리—”

       “그치만 미국이 일본을 이기는걸로 조선이 독립한다면, 그러면, 어디 보자……”

        

       양복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영어를 열심히 배워야겠는걸!” 

       

       그동안 친일파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양복자였지만, 이제 친미파로 갈아타겠다는 것인가. 속보이는 태세전환이긴 해도, 나와 함께 싸워주겠다는 동의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 에에?』 

       

       모두의 눈길이 아이까와를 향했다. 양복자의 통역을 들은 아이까와는 양갈래 머리를 배배 꼬며 입을 열었다.

       

       『으응, 조선이 독립한다는 것은, 뭐랄까,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역시, 일본이 세계를 정복하려고 전쟁을 하는, 그런 무서운 나라가 되는 것은, 무섭다고나 할까……』 

       

       일본이 무서운 나라가 되는 것은 무섭다라. 조선의 독립보다는 일본의 패권국가화를 걱정하는 느낌이다. 

       

       『무, 물론, 맞서 싸우는 것도 무섭지만…… 그래도, 대동아공영회를 무너트려서 결국 모두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면…… 나, 한사람 몫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시라바야시 군들이랑 함께 할게!』 

       

       용기를 내어 대답한 아이까와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아.』

       

       어디까지나 유약한 성격에다가 겁쟁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하고 조용히 살아가기를 원하는 소시민으로서, 일본이 엇나가는 것을 마음 속으로부터 경계할 테니까. 

       

       이유하. 송병오. 양복자. 아이까와.

       

       ‘너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 함께 싸워줄, 적어도 나를 응원해줄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것인가.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양복자가 외쳤다. 

       

       “모오! 진지한 얘기는 오와리! 이제 민나 편하게 먹구 마시자구!”

       “제기랄! 그러세나!”

       

       송병오는 양복자의 말에 맞장구치며 맥주병을 새로 따더니, 곧 투덜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무라사끼 녀석이 이 자리에 없는게 마음에 걸리는군! 백철연이 자네, 무라사끼 녀석과 뭔 일이라도 있었던 겐가?”

       “그건 걱정하지 마.”

       “걱정 말라니! 무어,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마는…… 흥! 녀석은 우리와 함께하지 못할 테지! 녀석은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놈이니까.”

       

       송병오가 그렇게 투덜대자 양복자가 말했다.

       

       “흐응. 그래도 겐지 군은 인정이 있는 녀석이니까, 우리를 완전 내치지는 않을 거야!”

       “글쎄! 제깟 놈 안하무인에다, 힘만 셌지……”

       “헤에— 싸우면 소오 군이 지는 주제에!”

       “녀석이 적이 된다면 죽더라도 싸우는 수밖에! 사내는 죽음도 두려워 않는 거야! 쳇! 내가 이십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저 청산리에서……!”

       

       『그런데 도미꼬 쨩. 대동아공영회만 없다면, 정말로 미국이 일본을 이기게 되는 걸까? 미국인은 모두 정신력이 나약하다던데……』

       

       아이까와의 질문에 양복자가 대답했다.

       

       『일본에 야마또 정신이 있다면, 미국은 양키 정신이 있잖아! 일본도 대단하지만 그래도 우열을 따지면 미국이 제일이지!』 

       

       그 모습을 본 이유하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대와 비교당하면 박쥐가 울겠구려.” 

       “뭐? 류까 쨩, 방금 뭔 뜻이야! 아따시가 나니가 뭐가 어째!” 

       

       그렇게 좁은 방 안의 술자리는 무르익어, 다들 술에 취해 하나둘 쓰러져 늘어져 자고……

       

       술에 취하지 않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잠에 빠져든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방 밖으로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아직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나는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함서주가 피워둔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한동안 쪽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모기향도 서서히 꺼져가고……

       

       어느새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여름의 해는 부지런하다. 해가 채 뜨기 전, 아침 공기가 푸르른 빛으로 서서히 밝아져오는 박명(薄明)의 시간. 대문이 조용히 열린 것은 그 즈음이었다.

       

       『오이, 시라바야시.』

       

       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조금 이야기를 하지.』 

       

        무라사끼 겐지. 드디어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