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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팔정도’는 본디 마력을 많이 요구하는 마법이다. 보통은 마력초 한 개비에 한 번 정도밖에 못 사용한다.

       

       그런데 조금 전, 에테르는 마력초 한 모금에 두 번의 팔정도를 전개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10만큼을 투입했는데, 20을 사용할 수 있다니. 마도학의 기본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이었다.

       

       심지어 몸도 가벼웠다.

       

       깃털이 된 듯한 느낌. 이런 감각은 난생 처음이다. 마치 몸 전체에 마소가 빠르게 순환하는 듯하였다.

       

       좋은 느낌으로 스태프를 휘둘렀다. 마력초를 다시 피워올릴 필요는 없었다. 한 번의 흡연으로 충분했다. 중간마다 자잘한 전격을 섞어가며 괴물을 상대했다.

       

       기묘한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마도학 도감에 새로운 대상 등록됨]

       

       [절멸급 마수 : 엑토플라즘]

       [특이사항 – 타인에 의해 사역되는 중 / 분류되지 않은 개체]

       

       한동안 잠잠하던 양장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비하면 딱딱하고 사무적인 어조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눈앞의 괴물에 대한 정보가 쫘르륵 펼쳐졌다. 약점은 무엇인지, 놈이 사용하는 기술은 무엇인지, 누구에 의해 사역되고 있는지까지 전부.

       

       해당 정보를 토대로 물 흐르듯이 체술을 전개했다.

       

       빠악!

       

       깔끔하게 후려쳤다. 일격을 맞은 괴물 ‘엑토플라즘’은 꾸물거리며 벽으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는 게 아니군.

       

       [꾸륵, 꾸륵.]

       

       놈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벽을 기어올랐다. 타르처럼 찐득한 기름과 피를 뿜어내는 장기가 한데 뒤섞이며 요란하게 춤을 추었다. 그 속도가 여태껏 보여준 움직임 중에서 가장 빨랐다.

       

       저건, 도망치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에테르의 시선이 곧장 뒤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저 새끼가….”

       

       무얼 하려는지는 뻔했다. 자신이 상대가 안 되니, 무고한 학생들을 노리려는 것이다.

       

       에테르는 엑토플라즘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녀석의 주변에 거대한 호롱들이 떠오른다. 마치 귀화(鬼火)와도 같은 생김새의 등불들이 신기루처럼 일렁였다.

       

       다음 순간, 호롱들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피해!”

       

       촤아악!

       

       사선(射線)이 내려왔다.

       

       막아야 한다. 오직 그 생각만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죽음의 빛줄기가 사방으로 내리꽂힌다. 그 모습이 마치 천둥이 갈라지는 것과도 같았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레니냐, 유피엘, 프레이. 에테르와 인연이 있는 학생들도 당황하여 도망치기 바빴다.

       

       에테르는 곧장 로테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왜 이러고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저, 저 소녀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에테르는 몸을 던졌다. 위쪽으로 사선 수십 개가 내려왔다. 아까보다 굵기도 굵고, 첨단도 예리한 그림자였다.

       

       이전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다. 저걸 로테 살리에르가 맞는다면 아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대신….

       

       “……!”

       

       자신을 발견한 로테의 눈이 다급해졌다. 그녀는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있나? 위기감이 느껴졌다.

       

       에테르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수십 갈래의 사선은, 로테가 아닌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

       

       

       현재 네 정령왕은 포탈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 포탈 안으로 발을 내디딘다면 아렌스 대륙으로 갈 수 있다. 정령왕들은 습격이 시작되자마자 정령들을 소집하고 상황을 관조했다.

       

       설마 이렇게 이른 시일 내에 습격할 줄은 몰랐는지, 예정보다 채비에 시간이 걸렸다.

       

       “젠장, 늦었군.”

       

       이미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당장 가자.”

       “잠시만요.”

       

       이프리트가 현계로 나가려던 찰나, 시큐엘이 앞으로 나서서 제지했다.

       

       “뭐가 문제인데?”

       “보세요. 뭔가 이상하잖아요.”

       

       거울 너머로는 절멸급 마수 두 체가 비춰 보였다. 하나는 해룡 리바이어던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였다.

       

       해룡은 세실 르네이와 이름 모를 어느 엘프의 활약으로 발이 묶여있었다.

       

       괴생명체도 누군가의 공세로 인해 제대로 습격을 벌이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 누군가란, 상천(上天) 에테르를 말하는 것이었다.

       

       정령왕들은 상천이 앨리스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같은 마수끼리 싸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마왕군에서 투입한 병력이 너무 적어요.”

       

       절멸급 마수 두 마리가 결코 무시할 만한 병력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공세를 취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브릴뤼움 섬이었다.

       

       정령계로 통하는 입구. 마왕에게서 가장 먼 곳이자, 정령들에겐 가장 가까운 장소.

       

       그런 곳을 공격하는 것 치고는 화력이 약하다.

       

       “아마 저건 미끼일 거예요.”

       

       흔히 말하는 유인 작전이다. 소수 병력으로 적의 주력을 끌어낸 뒤, 미리 준비한 병기로 일망타진하려는 속셈이다. 예전에 전계 정령왕도 이 방법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얼마 전에 회의했던 내용을 생각해 보세요. 놈들이 그 병기를 완성해서 투하하려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 병기가 무엇인지는 정령왕 중 누구도 모른다. 다만 자신들조차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병기인 건 확실하다.

       

       “…그렇군. 그래도 우린 정령왕으로서 인간과 엘프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나는 먼저 내려가겠다.”

       “아, 잠깐만요!”

       

       성질머리 급한 이프리트가 포탈에 몸을 던졌다. 시큐엘은 이마를 탁,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도 손을 붕붕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에어리얼이 저러는 이유는 로드스톤 때문이었다.

       

       다른 로드스톤과는 달리, 바람의 로드스톤은 그녀가 직접 관리한다. 만에 하나 빼앗기는 일이 있다면, 전부 그녀 책임인 셈이다. 그러니 급할 수밖에 없었다.

       

       “으하하하! 둘 다 못 말리는군. 그럼, 이 몸도 가 보실까!”

       “아, 잠깐만…!”

       

       땅의 정령왕, 노움도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호쾌하게 나아갔다.

       

       이제 정령계에 정령왕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준(準) 정령왕 취급을 받던 앨리스는 가장 먼저 내려갔다.

       

       “내가 못 살아…!”

       

       시큐엘은 머리를 싸매며 황급히 포탈에 몸을 맡겼다. 얼마 후, 시야가 일변하고 세상이 뒤바뀌었다.

       

       화아아악!

       

       현세로 내려오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큐엘은 물과 얼음의 정령들을 데리고 제단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살폈다.

       

       많은 이가 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중이다. 뻥 뚫린 천장 위로는 빛과 그림자가 명멸하였다. 신성한 세계수의 중심부는 진작 아귀도가 되었다.

       

       “어리석은 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 것이냐─!!”

       

       이프리트가 호통을 치며 날아올랐다. 그의 주먹에 태양보다도 뜨거운 불꽃이 일렁였다.

       

       이프리트는 그대로 괴물의 동체에 정권을 꽂았다. 괴물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벽면에서 떨어졌다. 동시에 점멸하던 호롱들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괴물의 전신에 불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오직 불의 정령왕만이 쓸 수 있는 고유의 불꽃, 정화(晶火)였다.

       

       정화에 맞은 엑토플라즘은 전신이 뒤틀리며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놈의 몸을 구성하던 장기들이 하나둘씩 분해되기 시작한다.

       

       ‘저 마수는 저걸로 끝일 테고….’

       

       이프리트의 일격에 괴물은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과연 정령왕다운 솜씨였다. 이제 시큐엘의 관심사는 나머지 세 정령왕이었다.

       

       에어리얼은 바람의 로드스톤이 있는 방으로 향한 것 같았다. 노움은 땅의 정령들을 일깨워 사상자를 수습하는 중이었다.

       

       “정령왕께서 오셨다!”

       “여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정령들이 움직이니 모든 상황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시큐엘은 불안한 감각을 지우지 못한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마, 이걸로 끝이 아닐 것이다.

       

       [수군(水君)이시여,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알아요. 일단 눈앞의 일부터 정리하도록 합시다.”

       

       시큐엘은 몸에 한기를 가득 담았다.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결빙하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시큐엘은 노움과 협력하여 다친 이들을 돕기로 하였다.

       

       “으윽….”

       

       벽에 기댄 채 신음하고 있는 여학생 둘이 보인다. 한 명은 금안족 엘프였고, 다른 한 명은 피어바인 가문의 자제였다.

       

       “둘 다 다리를 다쳤구나.”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절단나지도 않았고, 딱 비껴 맞은 수준이었으니까. 시큐엘은 권능을 사용하여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얼음으로 출혈을 막았다.

       

       그녀의 빙결 능력은 일반적인 얼음과는 다르다. 멸균 기능이 있고, 회복력을 높인다. 상처가 괴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늦추는 효과도 있었다.

       

       “누구, 세요…?”

       

       자기 다리와 시큐엘을 번갈아 보던 금안족 소녀, 레니냐가 물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여긴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가 있으렴.”

       “어디로, 말인가요…?”

       “저기 제단 쪽으로 피신하면 괜찮을 거야.”

       

       제단은 이프리트가 지키고 있었다. 레니냐는 정신을 잃은 유피엘을 부축한 채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 이걸….”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었다. 별 모양으로 조각된 사탕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니?”

       “저흴 구해주셨으니까요. 감사의 뜻으로….”

       “괜찮아. 대가를 생각하고 도와준 게 아니니까.”

       

       시큐엘은 레니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저쪽으로 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레니냐와 유피엘처럼 경상에 그친 환자도 있었지만,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시체들 사이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보게, 여기 좀 와 보게!”

       

       노움이 소리쳤다. 시큐엘은 곧장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몇 미터 전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보였다.

       

       피는 두 줄기였다. 한 줄기는 검은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검은색 피보다 붉은색 피의 줄기가 더 크고 선명했다.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구나 싶었다. 시큐엘은 곧장 한기를 머금고 노움의 등 뒤로 섰다.

       

       거기까지 가자, 검은색이었던 한 줄기도 조금이나마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핏줄기는 한 곳에서 만나 작은 웅덩이를 이루었다.

       

       “…….”

       

       시큐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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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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