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3

       시간을 이렇게 돌려버린 뒤 내가 생각해낸 계획은, 내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처음 시간을 돌린 시점에서 목숨을 위협당하며 시작했으니, 당연히 여신이 어느 정도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놓을 때마다 시간이 마구 돌아가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그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타이밍’은 언제인가 하면—

        

       “이건 참 흥미롭군.”

        

       —내가 ‘죽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건 알겠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그레이스의 흑백합’같은 말 같지도 않은 별명을 가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시간이 ‘여신이 준비해둔’ 타이밍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몸을 열심히 사린 것이다. 웬만하면 혼자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어디 갈 일이 있다면 레오를 꼭 데리고 갔고, 할 수 있다면 클레어와 앨리스도 동행했다. 이전처럼 전장 한가운데 뛰어드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아직도 북쪽 국경지대는 계속 교착 상태였고.

        

       ……레나와 만나는 일도 없었다. 애초에 레나가 아카데미에 오게 된 이유는 나 때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레나를 그대로 가만히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황녀도 아닌 내가 다짜고짜 국경을 넘어가 리클란트 자치국의 총독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클레어나 앨리스가 다짜고짜 레나를 만나겠다고 하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국경 부근에서 검성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장이 술렁이고 있다는 모양이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시 지금 상황으로 돌아오자면.

        

       몸을 사리는 동시에, 지보를 최대한 빠르게 조합해서 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박살 내고 밖으로 나가 여신의 계획을 뭉개버리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내 두 딸을 마주하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군.”

        

       왜 우리 앞에 황제가 튀어나온 거냐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 그러니까 황제가 지보를 다 모으기 전에 우리가 움직여버리면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지보를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카데미도 빼먹고 노스우드에 방문한 건데.

        

       물론 이 시점에도 노스우드에는 바니걸로 위장한 키아라 베라티가 있었지만,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마주치지 않고 유적을 털어먹으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 시점에 황제가 미리 와 있는 거냐고.

        

       “어째서,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서 도착한 황제는 손에 지보 조각을 든 채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정작 그건 내가 먼저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다. 너희들은 이 장소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냐?”

        

       “…….”

        

       우리 셋은 대답이 궁해졌다.

        

       지금은 황제의 딸인 클레어도, 그리고 그 자매로 되어있는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나는 여기서는 황제와 아무런 연관도 없다. 가끔 연회 막바지에 얼굴만 비추는 황제를 본 적은 있지만,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대화하는 것을 삼갔다.

        

       “그레이스 가의 실비아 양이라고 했던가.”

        

       그렇다고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사교계에서 꽤 유명한 나였고, 그레이스 가는 충성파로 유명한 가문이었으니까.

        

       “그대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만.”

        

       “……그건 황제 폐하의 명령입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클레어와 앨리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몸을 사리기로 한 내 생각은 황제를 마주친 시점에서 이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여신이 자유의지를 조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그런 세상’이 되는 것을 바라고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게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황제고 나고 상관없이 그냥 자기 원하는 대로 조종했을 테니까.

        

       여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래를 어느 정도 예지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함정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함정에 빠진 거고.

        

       그렇다면 여신이 황제를 어떻게 움직인 걸까—

        

       ……아니, 그렇게 고민할 것도 없지.

        

       레오는 클레어와 앨리스에 대해서 뭔가 느끼고 있었다. 황녀 앞에서도 얼굴이 파랗게 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던 것을 보면 확실하다. 다만 본인이 그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뿐.

        

       미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엄청 어두침침한 표정을 하고 있던 미아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데리고 다니자 금세 밝아졌다. 말 더듬는 것도 순식간에 고쳐졌고, 나와 어느 정도 화해한 다음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된 대화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극도로 꺼리긴 했지만, 그건 이해할 수 있는 범주고.

        

       샤를로트도 원래 앨리스와 그랬던 것처럼 친해졌고, 처음부터 나에게 꽤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었다. 완벽한 쿨뷰티 캐릭터를 구축했던 이전과 다르게 지금의 내 표정은 그때보다 훨씬 다양했으므로—물론 대부분은 ‘차분한’ 계열이지만—오히려 샤를로트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친해진 느낌도 있었다.

        

       그렇다면, 황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실패했었다는 기억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감각만이라도 느끼고 있다면, 계획을 앞당길만한 이유는 된다. 조바심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니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황제의 양옆을 보았다. 벨라와 루카스가 있었다. 두 사람 다 나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두 사람한테도 나에 대한 꽤 큰 감정이 있었지.

        

       그러니까, 여신은 굳이 사람을 조종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으니, 내가 최대한 빠르게 다음 행동에 나설 것을 미리 짐작할 수는 있었을 거다.

        

       여신이 할 일은, 그저 내가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을 때 황제와 동선이 겹치도록 시간을 배열하는 정도였다.

        

       그것만으로 나는 황제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어마어마하게 수상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황제 몰래 지보를 모으고 있는.

        

       “…….”

        

       찰나의 순간, 나는 나의 두뇌를 극한까지 굴렸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딱 하나였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렸다.

        

       클레어와 앨리스의 발이 화들짝 놀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클레어는 아마 ‘언니!’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겠지.

        

       ……이전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쿨뷰티 미소녀가 다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조금 이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 목숨이 중요하지.

        

       “……아버지를 뵙습니다.”

        

       “…….”

        

       그리고 한동안 세상이 침묵에 감싸였다.

        

       뭐.

        

       어차피 시간을 돌리기 전에도 부녀 취급이었으면서.

        

       *

        

       클레어를 밀어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고아원에 클레어 말고 나도 있었다고 하면 될 일이다. 황제는 자기 딸의 머리카락 색 같은 것을 전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이런저런 여자와 관계했던 모양이니까.

        

       “네가 나의 딸이라.”

        

       황제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클레어와 같은 고아원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네가 나의 딸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

        

       “…….”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세계에는 유전자 검사가 없다. 약물 같은 것은 나름대로 20세기 초반의 수준이었지만, 수술같이 복잡한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내가 살던 세상의 같은 시기보다 더 떨어졌다. 애초에 치유마법이 있는 세상이었으니 그런 복잡한 수술 같은 게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시행한다고 해도 치유사가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디서 읽기로는 20세기 초에도 특정 단백질 검사로 피가 섞였는지 아닌지 검사는 할 수 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고.

        

       그러니 나는 도박수를 던지기로 했다.

        

       “……어머니께서는 제 아버지가 황제 폐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있지도 않은 어머니를 지어냈다.

        

       황제는 나에게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나의 이전 이름은 실비아 블랙.

        

       성씨에 ‘색깔’이나 ‘사물’이 들어가는 경우 보통 그 사람은 평민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성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황제의 아이들이 실제로 피가 섞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 나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워낙 철저하게 기록이 말소되어 있어서 정확하게 루카스의 어머니나 벨라의 어머니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몰락한 황족들이 ‘평민’으로 격하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숨겨두고 강제로 범한 것은 아닐 테고, 나름대로 거래 비슷한 걸 하거나 협박하거나, 회유하거나 했겠지.

        

       앨리스를 낳기 전부터 계획을 하고 있었을 거고, 앨리스의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는 그 계획이 더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는 앨리스나 클레어의 ‘동생’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황제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뿐.

        

       그렇다는 건, ‘그 황제와 몸을 섞었던 이’ 중 하나가 ‘덧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않을까?

        

       “지금은 어머니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속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희미하게 기억합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폐하께 도움이 되라고.”

        

       황제가 회유했건, 유혹했건, 원수나 다름없는 황제와 그녀들이 몸을 섞을 이유는 하나뿐이다.

        

       다시 황족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

        

       혹은 자기 자식이 제국을 이어받을지 모른다는 갈망.

        

       “그 ‘도움’에 아무런 대가도 없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황제도 나의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최대한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