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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문 밖에 나란히 선 루크와 파이리스.

     

    의연한 루크와는 달리, 파이리스는 연신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후으으윽……! 흑! 훌쩍, 흐으윽…….”

     

    결국 리브는 청소를 끝낼 수 없었다.

    덕분에 집안 상태를 확인한 예르나에 의해 루크와 파이리스는 둘 다 엉덩이를 맞고 크게 혼난 뒤에 맨발로 밖에 내쫓겼다.

    사실 내쫓긴 것 자체는 체벌이라기 보다, 청소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나가서 뭘 잘못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의미가 더 컸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계속 울고 있었다.

     

    “그만 울게나. 네가 자꾸 우니까 계속 사람들이 오잖느냐.”

     

    어린아이가 숨죽여 울고 있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부르는 모습인지라, 복도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왜 우니? 집에 못 들어가?’라는 걱정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루크는 ‘벌 받는 중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물리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지친다.

    이것도 굉장히 부끄러운 짓이다.

     

    파이리스는 결국 훌쩍거리는 걸 멈추고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 언니. 나 때문에…….”

     

    사실 파이리스가 울고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엉덩이를 맞아서 아프기 때문이 아닌, 자신 때문에 루크가 혼난 죄책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파이리스는 자신이 엉덩이를 맞을 때 보다 루크가 맞을 때 더 크게 울었다.

     

    본래 육신이라는 것이 없는 정령은 육체적인 고통에는 그리 민감하지 않으니까.

    때문에 고작 엉덩이를 좀 맞고 큰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울 정도로 슬퍼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 그나저나, 이제 엉덩이는 괜찮은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파이리스는 현재 육신을 지니고 있는 몸이다.

    아픔을 느끼기는 한다는 것이고, 다치면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건 똑같다.

    때문에 파이리스는 치마단을 붙잡고 엉덩이에 천이 닿지 않도록 배를 쭉 내밀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아직도 뜨거워. 언니는?”

    “뭐어……. 아프긴 했지만…….”

     

    자신도 아픔을 느끼는 건 똑같다.

    뭐, 과거에 입은 상처와 부상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쯤 아무것도 아니긴 해도, 당연히 당장의 고통은 느껴진다.

    그렇지 않은가? 칼에 찔린 경험이 있다고 해서, 주사를 맞는 것이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차피 고통을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느냐는 것은 과거에 어떤 고통을 받았는가 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자신은 그저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역치가 타인보다 훨씬 높았고, 덕분에 고통을 쉽게 참을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육신의 회복력은 고작 엉덩이를 맞은 것 정도는 금방 낫게 해버릴 수도 있다.

    이 몸의 정체를 온전히 깨닫게 된 지금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모르던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부상회복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대가로 직접 천칭에 매달아버린 것엔 적용되지 않지만.

     

    “나는 이제 다 나았다. 아프지 않아.”

     

    사실은 엉덩이의 아픔보다는 수치심으로 인한 가슴의 아픔이 더 컸다.

    육신은 금방 회복시킬 수 있지만 부끄러움은 쉽게 잊을 수 없다.

     

    “하아.”

     

    루크가 두 손을 모은 채 한숨을 쉬었다.

     

    요즘 들어서는 뭘 해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꼭 어딘가에서 한번씩 어긋나는 것 같다고 할까.

     

    ‘리브가 지닌 가사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별로였군…….’

     

    무슨 특별한 마법이라도 사용하나 싶었는데, 그냥 빗자루질과 걸레질이라니.

    5000년 전에 제작되어 현대까지 서서히 개량되며 단조된 당대 최고의 기술의 집약체인 군단장급 리빙아머에게 탑재하기엔 너무나 기본적인 성능이 아닌가?

     

    정말 다른 의미로 터무니없는 성능이었다.

     

    아니, 레니에가 집어넣은 것이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다.

    애초에, 그녀는 정리정돈을 잘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결국 타인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본인도 그 지식에 어느정도 조예가 있어야만 하는데, 청소를 잘 못하는 레니에가 집어넣은 가사능력이라면…….

     

    당연히 시원치 않겠지.

     

    애초에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으면 리빙아머에게 그리 대단한 청소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테고.

     

    ‘가사기능은 일단 나중에 케이트에게 제대로 된 것을 탑재시키는 걸 고려해 보아야겠어.’

     

    일단 리브는 여러모로 크기가 문제다.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인형 몸은 일반적인 빗자루를 다루기도 어려운 크기인데다, 그 오랜 세월 축적되어 마력핵에 들어찬 자아의 밀집도는 무슨 기능을 더 추가할 수 있을 만한 공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루크가 케이트의 가사기능 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문득 어떤 생각이 루크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런데, 아무리 칫솔로 빗자루질을 했다고 해도, 예르나의 집은 그리 크지 않아서 어느정도는 청소가 되어 있어야 했던 게 아닌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난장판이라고는 해도, 자신이 직접 치웠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더렵혀진 것을 치우는 작업은 진작에 끝냈을 거다.

    망가진 것을 고치는 데에는 당연히 좀 부족한 시간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루크와 예르나가 문을 열었을 때의 상황은, 도저히 ‘치웠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다.

    마치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루크는 그 수수께끼 같은 일을 곁에 있는 파이리스에게 물어보았다.

     

    “파이리스, 그런데. 아무리 리브의 청소성능이 그리 좋지 않다곤 하지만, 그래도 전혀 치워진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으, 응?”

     

    그러자, 파이리스는 놀란 고양이마냥 어깨를 움츠러들이며 루크의 시선을 피했다.

    정말 수상한 모습이다.

     

    ‘확실히 뭔가 있었군.’

     

    루크는 조금 단호하게 목소리를 바꾸며 파이리스에게 조금 다가가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말해다오.”

    “그, 그게…….”

     

    파이리스는 이걸 말해도 되나,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다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푹 숙이고는 중얼거렸다.

     

    “인형이가 청소하는게 너무 신기해서…….”

    “신기해서?”

    “내가 자꾸 청소할 거리를 만들어줬어.”

    “만들어…… 줬다. 그러니까, 그대가 리브가 치운만큼 도로 어지럽혔다?”

    “…….”

     

    루크의 확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파이리스.

    그 모습을 본 루크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 내가 어지르면 인형이가 치우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그런 건 나중에 리브가 다 치우고 나서 하면 되었잖느냐.”

     

    -딱!

     

    루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의해, 파이리스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

     

    그렇게 루크는 리브의 가사능력의 개량을 위한 마법적 설계를, 파이리스가 자신의 발가락과 벽의 얼룩, 천장과 바닥패턴에 대해 각자 심도깊은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드디어 현관의 문이 열렸다.

     

    “자, 이제 다들 들어와서 앉아.”

     

    예르나의 말에 루크와 파이리스는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가 발바닥에 묻은 더러운 것을 걸레로 닦고, 거실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파이리스 역시 루크를 따라 앉았지만, 맞은 엉덩이가 쓰라린지 가만히 있지는 못하고 있다.

     

    루크는 그런 파이리스에게서 눈을 떼고 예르나가 치워놓은 거실을 주욱 돌아보았다.

     

    눈에 띄게 살풍경해진 집안.

    망가진 쓰레기들을 치우고, 정돈을 어느정도 끝낸 예르나의 집은, 어쩐지 굉장히 텅 비어보였다.

    긍정적으로 보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 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예르나가 물었다.

     

    “이제 너희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

     

    파이리스는 곧장 대답했다.

     

    “어지른 거…….”

    “아냐.”

     

    파이리스의 대답이 부정당하자, 루크는 곧장 그 대답을 보강했다.

     

    “집안 살림에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가한 것……?”

    “……그것도 아냐.”

     

    예르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이 조금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루크를 바라보았다.

    그럼 일단 물질적인 피해는 아니란 건가.

     

    ‘그렇다면…….’

     

    루크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럼……. 그대를 속인 것?”

    “그래, 둘이서 언니를 속이려고 한 거. 그게 제일 큰 잘못이야. 알겠어? 우리는 이제 가족이잖아? 가족끼리는 절대로 속이면 안되는 거야.”

    “…….”

     

    예르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론, 절대 거짓말하지 마.”

    “저, 거짓말은 안 했는…….”

    “사실을 속인 것도 엄연히 거짓말이야!”

     

    할 말이 없었다.

    루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파이리스 역시 루크를 따라 고개를 떨궜다.

     

    “…….”

     

    예르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 와락 껴안고 온화하게 말했다.

     

    “그럼 둘 다 충분히 반성 했지?”

    “……응.”

    “……네.”

    “다신 안 그럴거고?”

    “응.”

    “네.”

    “좋아, 그럼 약속이다.”

     

    예르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루크와 파이리스는 그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각자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것 같다.

     

    여전히,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배고프지? 이제 밥 먹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령화하고 도망치면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튀면 언니가 더 혼날까봐 도망 못친 파이리스입니다.
    (근데 진짜 너때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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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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