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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263화. 죽음을 갈망하여 ( 1 )

       

       

       

       

       

       심연.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았다.

       

       기껏 해 봐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고이는 하수구라는 것과 그에 거주하는 주민은 빌어먹을 정도로 뒤틀린 악마들이라는 것이었으니까.

       

       악마는 심연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인간은 심연에 갈 수 없다.

       

       완벽한 미지의 공간이자, 악마의 소굴.

       

       만신전이 심연에 쳐들어가기 위해 대대적으로 병력을 꾸리고 있다는 소문은 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제일 먼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상인들이 알아차렸다.

       

       “요즘 만신전에서 날붙이와 붕대며 식량을 사들이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하던데.”

       “뭔가 큰일이 일어날 냄새가 나. 대박의 조짐이 보이는구만.”

       

       흐름을 타고 한탕 벌기 위한 상인들이 뛰어들자, 상단을 후원하는 귀족들이 눈치챘고, 이내 사방으로 소문이 퍼져나갔다.

       

       만신전은 소문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막으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옳으리라.

       

       지금 만신전의 상태는 용광로와 비슷했다.

       외부에서는 잠잠하고 평온한 상태로 보였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더 빠르게 찔러라! 고작 그게 전부냐! 너희들이 흘리는 땀 한 방울이 너와 전우의 피를 대신할 것이다! 찌르고! 휘둘러라! 더 거세게!”

       

       상인들이 느낀 거대한 흐름.

       그것은 전쟁이었다.

       

       악마와 심연에 대한 전쟁.

       

       심연의 입구를 연 그날부터 만신전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허나ㅡ”

       “악마의 본거지를 발견한 지금이 적기입니다. 그 더러운 놈들이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때, 단번에 몰아쳐야 합니다!”

       

       기회였다.

       늘 방어적으로 굴어야 했던 인간의 수모를 대대적으로 갚아줄 절호의 기회.

       

       만신전은 날카롭게 갈아둔 칼을 꺼내 들었다.

       그들의 칼은 지난한 세월만큼이나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전사들은 기꺼이 전장에 나가 그의 심장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사제들은 제 한 목숨 바쳐 악을 처단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만신전은 조용하지만 뜨겁게, 그리고 단단하게.

       거대한 싸움을 준비했다.

       

       “제국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한 카이사르 황제가 수만에 이르는 기사와 물자를 보내왔다. 제국을 시작으로 대륙 곳곳에서 성도로 향하는 수많은 전사와 물자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이스칼의 고향인 변방의 왕국에서도 적게나마 병력을 보낼 정도.

       

       그리하여 이르기를, 심연 원정대.

       

       쉴 새 없이 시간이 흐르고 출정의 날이 밝았다.

       

       새벽의 태양이 낮게 떠올라 세상을 비출 때.

       

       만신전의 전사들이 길을 나섰다. 채 무르익은 새벽 공기가 전사들의 기세에 아지렁이마저 일렁였다.

       

       “…”

       “…”

       “…”

       

       북소리는 없었다. 높은 나팔 소리도, 뜨거운 함성과 박수 소리도 없었다.

       

       고요하지만 뜨겁게 쿵쾅거리는 전사들의 심장이 북을 대신했고, 단단하게 굳은 눈빛은 박수갈채보다 뜨거웠다.

       

       길게 이어지는 전사들의 선두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용사가 앞장섰다.

       한 손에는 거대한 성검을 들고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앞으로 하여 모두를 이끌었다.

       

       “후우…”

       

       케니스가 조금은 긴장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용사란 항상 앞에서 싸우고, 가장 뒤에서 물러나는 이였다.

       

       용사로 선택받았음을 후회하거나 원망한 적은 없지만, 가끔은 모든 것들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진심 어린 응원, 고맙다며 글썽이는 노모의 거친 손, 존경한다고 말하며 눈을 빛내는 소년병의 눈빛.

       가장 가볍고 사소한 것들이 가장 무거웠다.

       

       그럼에도 케니스는 용사였다.

       

       누군가의 소망을, 미래를, 희망을 대신하여 싸우고 밝게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했기에.

       케니스는 작게 떨리는 손을 애써 다잡았다.

       

       “너무 긴장하지 마. 약해 보이잖아.”

       “공녀님…”

       

       케니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프리가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케니스의 어깨를 툭- 쳤다.

       

       “그, 크흠! 제, 졔가! 우읍…! 최대한 힘이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스!”

       

       한동안 안보이던 한스가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케니스의 표정이 조금 환하게 밝아졌다.

       

       “걱정 마십시오! 용사님 앞에는 항상 제가 있겠습니다.”

       

       이스칼이 커다란 방패를 탕탕 두드리며 한껏 멋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본 프리가가 이스칼의 뒤통수를 빡-! 후려갈겼다.

       

       “커읍!”

       “넌 임마, 내 옆에 있어야지! 왜 케니스 앞에 붙어 있으려고 하는데! 바람이야? 벌써 바람이냐? 뒤질래?”

       “컥, 윽! 자, 잠깐 프리가! 이건 그러니까! 내가 전열이니까! 잠깐!”

       

       무거웠던 분위기가 둘의 촌극 아닌 촌극으로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에 숨통이 트인 케니스가 뒤를 돌아봤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삐죽하게 솟아오른 날붙이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강철이 자라나는 밀밭의 풍경 같다.

       

       케니스는 금세 상념에 잠겼다.

       

       ‘얼마나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전장에 나선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언제나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그리고 케니스는ㅡ.

       

       “히힝. 처녀여, 이제 곧 도착이라오.”

       “…알겠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케니스의 눈빛이 단단하게 아물었다.

       

       “가죠. 심연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서 돌아올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

       

       

       

       츠파아아앗!

       

       “이히히힝!”

       

       유니콘의 우렁찬 기합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휘광을 두른 그의 뿔은 작디작은 구멍의 틈에 정확하게 꽂혔고, 쩍- 콰직- 하는 소리를 울리며 구멍의 주변으로 균열이 일어났다.

       

       공간 그 자체가 깨지는 모습.

       

       누구도 상상한 적 없고, 본 적도 없을 현상에 넋을 놓기도 잠시.

       지난번의 균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균열이 완성됐다.

       

       “…”

       “…”

       “끄, 끔찍하군…” 

       

       누군가 중얼거린 말대로였다.

       

       유리처럼 깨진 균열 너머로 보이는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 그 자체였다.

       

       그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아귀의 주둥이와도 같은 모습. 지난번의 주먹만 한 크기보다 더욱 거대하게 열린 균열의 틈으로 짙은 독무가 흘러나왔다.

       

       치익- 독무가 흘러나와 발끝에 닿자 사제들이 밤잠 줄여가며 만든 항마부의 끝이 검게 타들어 갔다. 짙은 독기에 데모닉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하하! 장관이로군!”

       

       호탕하게 웃으며 성큼 앞으로 나선 거대한 사내가 있었다.

       

       다른 이보다 머리 한두 개는 더 큰 덩치에 허리춤에 워해머를 차고, 등에는 큼직한 할버드를 매고 있는 노년의 사내였다.

       

       두려움 따위는 모르는 듯, 라이언하트가 쩍 벌어진 균열 앞으로 다가갔다.

       

       “용사 아가씨. 부디 심연으로 향하는 첫걸음의 영광을, 이 늙은이가 누릴 수 있겠나?”

       “기꺼이요.”

       

       라이언하트가 씩 웃었다.

       

       “자아, 이제 명령을 내려주게! 이 늙은 몸을 누일 전장으로 나를 인도해 주게!”

       

       전장에서 한평생을 보낸 늙은 사자는 제 마지막 전장이 될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심연이라니, 늙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무덤이 되리라.

       

       “…출발하겠습니다.”

       

       케니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녀의 말에 전사들이 한껏 기세를 끌어올렸다. 

       

       쩍 갈라진 심연의 균열 앞에 선 라이언하트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균열 너머로 몸을 던졌고, 그 뒤를 따라 데모닉과 케니스가 심연으로 향했다.

       

       커다란 개미지옥에 빨려 들어가는 개미처럼.

       전사들은 차례차례 심연의 틈으로 몸을 던졌다.

       

       아득하고 질척한 부의 구렁텅이로 망설임 없이.

       

       

       

       *****

       

       

       

       균열을 넘어서자, 검붉은 황야가 펼쳐졌다.

       

       하늘을 바라보면 보랏빛의 독 안개가 가득하여 요사한 빛을 반사했고, 더 멀리에서 불이 떨어지거나 산성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발밑에는 실체화된 독무가 혓바닥을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었고, 황야를 누비는 악마들은 저들끼리 이빨을 드러내며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끔찍하구나.”

       

       심연이라는 공간은 모든 인간의 악몽을 조각조각 기워붙여서 만든 것 같은 공간이었다. 수시로 방향 감각이 뒤틀렸고 공간이 조여오며 숨통을 압박했다.

       

       “크으… 뭔 놈의 악취가…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군.”

       

       코를 찌르는 악취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였다. 악마의 둥지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수만의 전사가 차례대로 균열을 통과한 데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먼저 넘어온 이들이 균열 주변에 진을 치고 경계를 시작했는데, 심연은 그 잠깐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키에에엑! 키히이익!

       

       “악마다! 전방에 짐승 형태의 악마 무리다!”

       “진형을 갖춰라!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움직여!”

       “항마부를 수시로 확인해! 항마부가 다 타면 꼼짝없이 죽는다!”

       

       인간의 달콤한 살내음을 맡았음인가.

       검붉은 황야 저편에서 저들끼리 다투던 저급한 악마들이 떼를 지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촤아악! 챙, 챙! 키이이익!

       

       붉은 황야에 때아닌 살육과 강철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다행히 그 수가 많지 않았기에 쉬이 막아냈지만, 데모닉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심연에 오자마자 악마가 이렇게 몰려오다니…’

       

       좋지 못한 징조.

       

       이번에는 짐승 형태에 가까운 저급 악마 무리였기에 쉽게 막았지만 그다음은? 더 강한 악마가 몰려온다면?

       

       여긴 심연이었다.

       악마의 둥지. 이곳에서 악마를 죽인다면 완전한 죽음을 선사할 수 있을 테지만…

       

       “후, 후방에서 악마가 온다!”

       “앞에서도 뭔가 몰려오고 있어! 전투 준비!”

       

       방금은 시작에 불과했는지.

       사방에서 악마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들끼리 죽고 죽이는 것도 멈추고, 오로지 인간을 죽이고 먹겠다는 일념으로 침을 뚝뚝 흘리며 달려온다.

       

       “용사 아가씨. 서두르는 편이 좋겠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워해머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내는 라이언하트가 조언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오는 독무는 항마부의 도움이 없으면 오 분을 견디지 못할 정도였고, 심연은 아가리를 벌려 끝없이 악마를 쏟아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용왕의 숨통을 끊고 살아 돌아가기 위한 싸움.

       

       덜컥-.

       

       “이건…!”

       

       케니스의 성검이 크게 들썩였다. 심장이 맥동하는 모양새로 쿵, 쿵 흔들리며 어느 한 곳을 향해 꿈틀거렸다. 어딘가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직감했다.

       그녀의 성검에 깃든 용왕의 사념이다. 성검에 깃든 사념이 제 주인을 찾아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쪽! 이쪽입니다! 제가 길을 내겠습니다!”

       

       심연은 사정없이 인간들을 향해 몰아쳤고ㅡ

       인간들은 끝없이 나아갔다.

       

       물러서는 일 없이 꾸준하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억….! 딸을 고아원에서 방치형으로 키운 데모닉에게 팩트가 작렬…!! 뼈를 부서버리는 팩트가 날카롭군요…!! 레온은 빠지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이런 자리에 빠질 인물이 아니죠…!! 3번째 팔라딘은… 작가인 저도 흥미롭게…!! 끼요오옷…!!

    조금 늦었습니다…!! 끼요옹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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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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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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