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63

       

        

        

        

       “퍼스트 블러드, 퍼스트 블러드! 유진 선수가 첫 경기가 시작된 지 4분만에 독일의 필리그란을 정면에서 꺾습니다!”

        

        

        

        맵의 우측 하단에서부터 시작된 붉은 동심원이 빠르게 커지더니, 이윽고 NBV 사막 기지 전체를 뒤덮는다. 모든 유저들에게 최소 두세 개씩 붙어있던 캠 중 유진을 조망하던 것이 가장 먼저 확대되었고, 이내 일절의 타임 랙 없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 인근에 모인 이들 전원에게 보여진다.

        

        압도적인 환호 속 아주 약간의 탄식. 파이널 챔피언십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은 맞지만, 그들 전원이 동일한 유저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컨대 저 탄식은 독일 응원자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쨌든, 무려 퍼스트 블러드였다. 파이널 챔피언십 솔로잉 경기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다. 가장 프로페셔널한 사회자조차 경기장 내에 가득히 들어찬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목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회자가 한 단어씩 힘주어 그 사실을 공식화한 순간, 무지막지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유진! 유진! 유진! 유진! 유진! 유진!”

        

       “그만 잘해! 제발 그만 잘하라고! 앞으로 누구 방송 보란 말이야!”

        

        

        

        다음 날 목이 갈라져도 신경쓰지 않는다.

        

        과도하게 함성을 지르느라 두통이 생기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

        

        거액의 비행기표를 구매하여, 저 멀리 한국에서부터 이 미국까지 날아와 아낌없이 이 광경을 즐기기로 한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기쁨을 표출하였으며, 거의 마이크로 단위의 타임 랙 이후 퍼스트 블러드란 것 자체에 환호하는 관중들이 이내 환호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스파크였고, 본격적인 폭발로 이어지는 불 붙은 도화선에 지나지 않았다.

        

        해당 결과가 네트워크를 타고 한국으로 흘러간 순간, 새벽 5시 9분을 맞이한 한국이 통째로 들썩였다.

        

        

        

       “그렇지! 와아아아아!”

        

       “오늘부터 신을 유진이라 부르겠습니다!”

        

       “와, 진짜 미친 사람이다…어떻게 미국까지 날아가서 저렇게 긴장 하나도 안 하고 게임하냐?”

        

        

        

        하지만 유진이 미친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었다 –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해조차 뜨지 않은 밤이었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에조차 비견 가능한 치킨 및 야식 소비량이 이어진다. 그러던 와중 이 소식이었다. 건물 자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사람의 목구멍에서 터져나왔다. 심지어는 치킨을 튀기던 알바생들이나 사장조차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화면을 보러 나왔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족히 억 단위에 달하는 사람들의 수에 가장 먼저 새겨진 광경은 유진의 개머리판이 상대 선수의 대가리를 반으로 깨부수는 장면이었으니까.

        

        소란이 잦아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이는 단순히 흥분이 걷혀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실시간으로 경기를 시청 중인 모든 한국 인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혹시?’가 말끔하게 걷히는 순간에 가까웠다.

        

        

        플레이어 숫자들이 점차 줄어든다. 안전을 최대한으로 고려하며 경기에 임할지언정 모든 교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고, 그에 따라 100명에서 시작한 숫자는 경기의 절반 정도가 흘렀을 때 65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모래폭풍이 다가오며 킬존이 좁아진다. 맵이 좁아질 때마다 사방팔방에서 교전을 알리는 붉은 동심원이 터져나왔고, 몇 분도 되지 않아 맵 위를 활보하는 유저 수는 60명 이하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중 그 어떤 한국 멤버들도 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탄도 방패를 획득한 미카엘이 브라질의 누아다 선수를 시종일관 압도하며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고, 또 다른 1킬을 적립하는 것으로 재차 한국에 탄성을 안겼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기대치는 높아진다.

        

        하지만,

        

        

        

       ───부우웅!

        

        

        

       -이런 빌어먹을, 완전히 엿 됐네…!

        

        

        

        누군가가 잘 나간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 오늘의 다이스는 첫 판이라는 이름의 제로섬 게임에서 마이너스를 맡게 되었다.

        

        다크 존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잊혀지지 않게 될 차량 추격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카카카캉!

        

        

        

       “우왁, 미쳤나봐!”

        

        

        

        NBV 사막 기지.

        

        사람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암반을 뚫어 길을 내었고, 중간중간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지를 건립하였다. 돌 전체를 박살내어 길을 뚫고 거대한 건물을 세우기엔 그럴 이유도 없었고,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좌우지간, 그리하여 기지와 기지 간 통행 수단은 차량이 되었다. 바위 사이건 탁 트여있는 길이건 전부 오갈 수 있는 와일드한 오프로드 버기가 대세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위에 오만가지 공격 및 대응 수단을 억지로 올려놓은 무장 버기 두 대가 사막을 가로지르며 모래먼지를 흩날리고 있었다.

        

        

        쫓기는 측은 다이스였다.

        

        

        

       “후우, 세상에. 경로 재설정, 웨이포인트, 웨이포인트…자동 조종으로 전환하고, 빌어먹을, 후우…!”

        

        

        

        마치 주문이라도 외는 것마냥, 그녀는 필사적으로 정신과 몸 양쪽을 컨트롤하며 무장 버기의 전면에 달린 패널을 조작했다.

        

        뒤통수로는 총탄이 날아든다. 차체 프레임을 제외하면 탄환을 막을 수 있는 방호 수단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다이스는 위태위태하게 차량을 조작하며 이를 피해내고 있었다.

        

        자동 조종 설정이 끝남과 동시에, 안 그래도 좁디 좁은 운전석에서 간신히 몸을 튼 다이스가 위태롭게 몸을 내밀어 대략 40m 간격을 유지한 채 따라오는 또 다른 무장 버기를 향해 응사를 시작했다. 바닥에 길다란 머리카락이 끌리는 와중 발포된 탄환이 세차게 적 차량을 두들겼다.

        

        하지만 적 역시도 봐줄 생각은 없다는 듯, 다이스가 몸을 내밀어 사격하마자 급하게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차체가 거칠게 날뛰며 탄환은 바퀴 대신 동체를 강타했다.

        

        

        

       “이런 망할, 하여간 쉬운 게 없어요…!”

        

        

        

        사격한 탄환 수는 열다섯. 그 점을 머릿속에 기억해두며, 그녀는 재빨리 옆좌석에 단단히 고정해두었던 나나이트 캐니스터를 화학물질 발사기에 삽입했다.

        

        녹색으로 반짝이는 실린더가 발사기에 들어간다. 다이스는 안전벨트를 풀고는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았다. 적 차량의 위에 달린 체인건이 미친듯이 탄환을 토해내는 순간 그녀가 탄 버기가 회피기동을 시작하며 정신나간 것처럼 드리프트와 급가속을 반복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잡은 다이스가 힘겹게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퍼엉!

        

        

        

       “개같은 ADS…!”

        

        

        

        상대방이 회피기동을 시행하는 사이, 순식간에 돌아간 적 체인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캐니스터를 정확하게 깨부쉈다.

        

        촤아악 하는 소리를 내며 허공에 흩뿌려진 녹색의 액체가 적 무장 버기의 옆면 프레임을 스치고 지나가자, 마치 무형의 발톱이 차량을 거칠게 후려치고 지나간 것마냥 갈기갈기 찢어진다.

        

        저게 제대로 들어갔어야만 하는데!

        

        

        

       ‘…내 차는 저런 거 없나?’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잠시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저 망할 체인건의 무력화였다.

        

        다이스의 차량에 기관총이 달려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부터 상황이 달랐다 – 기관총과 연동된 캠은 애초부터 디폴트가 차체 정면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는 차량을 앞서가는 물체를 공격할 때 온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단 점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었다 – 적은 기관총을 조종하면서도 운전이 가능했다. 왜냐면 사격 방향과 차량 이동 방향이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까놓고 앞을 볼 필요도 없이 기관총과 연동된 캠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다이스의 경우엔 정확히 상황이 반대였다. 차량에 달린 기관총으로 응사하고 싶어도 한 눈은 자동 조종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장애물을 확인해야 했으니. 그 와중 기관총 연동 캠으로 뒤따라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은 외발자전거만 타있었지만, 다이스는 그 상태에서 손으로는 저글링을, 이마 위에는 끝에 접시를 올려놓은 긴 막대기를 올려놓고 있다는 소리였다.

        

        

        

       -[알림 : 10초 후 버려진 기지로 진입합니다.]

        

        

        

       “그새 주요 지형지물까지 다 왔다니.”

        

        

        

        본래라면 내려서 천천히 수색 및 정찰을 시행해야만 했지만, 뒤에 차가 쫓아오는데 뭔가를 할 수나 있을까. 설령 목표했던 건물에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방팔방에 어그로가 끌린 탓에 집중포화나 안 당하면 다행.

        

        그나마 선택 가능한 방법은 상당한 출혈을 감소하고 차량에서 뛰어내리는 것 정도지만, 저 정신나간 뒷차에 치여서 그대로 로비로 날아가버릴 확률이 더 높을 터였다.

        

        결국 어떻게든 저걸 잡아야만 한다는 소리였는데….

        

        

        

       “하아.”

        

        

        

        지금부터는 운전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자칫 정신을 놓고 있거나, 계속해서 자율주행에 맡겼다가는 주변에 널려있는 자재 더미에 들이박아 차체가 전복될 가능성이 높았다. 시멘트 포대에 철근, 비계 뭉치를 비롯한 수많은 자재들이 사방팔방에서 차량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으니.

        

        이런 것들을 다 피해가던 와중 기관총에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엔 저 망할 놈도 다시 빠지던 와중 뒤지거나 하겠지.

        

        

        

       “제발…!”

        

        

        

        운전대를 잡고, 브레이크와 액셀을 조작하며 길바닥의 상태를 온 몸으로 느낀다. 차량의 가속과 감속, 바닥과의 접지 상태, 관성, 바퀴의 방향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을 전부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차량을 조정해야 최단시간 내에 장애물 코스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를 악뭄과 동시에 불길한 끼이익 소리가 울려퍼졌다.

        

        

        

       ───카가가각!

        

        

        

        바퀴가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빠르게 급가속하며 체인 기능을 활성화. 본래라면 불가능한 급격한 방향 전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이스의 발은 단 한 번도 액셀에서 떼어지지 않은 상태.

        

        마치 예술을 방불케 하는 신들린 듯한 차량 기동이었으나, 이 시점에서 다이스에게 붙은 액운의 크기는 평범 이상을 넘어선 상태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와, 세상에.”

        

        

        

        다이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유려한 차량 기동을 통해, 그녀를 추격해오던 차량은 복잡하게 구성된 모든 자재 더미들을 유려하게 피해내고는 되려 속도를 높혀 상대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이스의 실력 부족을 탓할 수 없었다.

        

        

        

       “…대단한데. 누구지?”

        

        

        

        다이스를 뒤쫓던 유저조차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다.

        

        선수들이 아닌 시청자들만 알 수 있는 사실. 다이스를 실시간으로 추격 중인 인원은 온갖 차량의 운전법을 마스터한 지 오래인 전직 시크릿 서비스 소속이었던 선수, 랜서(Lancer)였다.

        

        사실상 차량 운전의 숙련도만으로 비교하자면 다이스는 대응조차 불가능해야만 했으나, 끝도 없이 이어진 유진의 트레이닝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부족한 것이 숙련도라는 해자라면, 이를 시간으로 메워버리면 될 뿐이었기에.

        

        하지만 이내 당황과 호기심을 지워버리고, 그는 체인건 하부에 달린 유탄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각 무장 버기에는 ADS가 부속되어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맞추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지만-

        

        

        

       ───기이잉!

        

        

        

        그는 다른 곳을 노리고 있었다.

        

        다이스가 탄 차량의 위쪽을 겨냥한 유탄이 예상 착탄 지점을 홀로그램 플레이트 위로 표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사기에서부터 투투퉁 하는 소음과 함께 유탄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어어, 어? 이런 미친!”

        

        

        

        끼기긱!

        

        허공을 가르며 ADS의 범위를 빗겨간 유탄이 저 멀리의 타워크레인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순간, 그것이 마치 옆구리를 직격당한 사람마냥 꺾이며 중력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중력과 합일한 그것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 크레인이 녹슬어 무너질 때까지 허공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던 – 크레인 끄트머리에 걸린 철근 기둥 역시도 오래간만에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뻔했다.

        

        

        

       “우와악!”

        

        

        

        쿠구궁!

        

        다이스가 탄 차량이 급하게 우측으로 드리프트를 시전하였다 – 정확하게는 크레인이 꺾이며 길을 통째로 막아버린 탓에 왼쪽 커브 및 중앙 직진 루트가 그대로 사용 불가능한 길로 전환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크레인에 매달려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H빔이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중력의 부드러운 손길에 감싸인 그것은 머잖아 폭탄 이상의 살상력을 간직한 채 하늘에서부터 떨어져내렸고, 그로부터 몇 초나 지났을까.

        

        아스팔트 위를 모래먼지 한가득 쌓인 녹슨 철근 기둥이 강타했다.

        

        굉음이 울려퍼졌다.

        

        

        

       ───카카캉!

        

       “이, 러언…!”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랜서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공중에 매달려 있던 18개의 H빔이 근처 가건물과 도로에 쏟아졌고, 그 중 다이스가 운전하던 버기 근처에 떨어진 것은 7개. 단 하나도 적중하지 못했지만 차량에 상당한 대미지를 주는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애초부터 랜서의 노림수는 그것이 아니었다.

        

        철근 낙하의 충격으로 인해 고장나버린 다이스의 버기-패널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경고를 토해내었다.

        

        

        

       -[경고 : 전방 500m 앞 길 없음.]

        

        

        

        그제서야 다이스가 황급히 기억을 떠올려냈다. 길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근방에서 발생한 폭탄 실험 때문에 이 근방의 지반이 통째로 함몰된 것이었다 – 요컨대 500미터 앞에 있는 것은 절벽이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패널 위로 조향 및 브레이크 기능이 전부 작동 불능을 뜻하는 적색이 떠올랐다. 철근 기둥이 낙하하며 지면이 솟아오르거나 꺼졌고, 그러한 파편들이 유압 계통 및 조향 시스템을 강타한 것이 틀림없었다.

        

        빠르게 뒤를 돌아보자마자 보이는 광경. 아스팔트 위로 액체가 줄줄이 흘러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저게 유압액이든 기름이든 다이스가 로비 사출 일보 직전에 도달했단 사실은 자명했다.

        

        그나마의 살아나갈 길은 단 하나였다.

        

        뛰어내리는 것.

        

        

        그리하여 차량에서 뛰어내리기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중, 다이스의 눈에 들어온 기물.

        

        두 번째 크레인이 150m 전방에 위치한 상태였다.

        

        스무 개의 H빔을 매단 채.

        

        

        

       “…그래. 모 아니면 도지!”

        

        

        

        콰악!

        

        다이스가 이를 악물고 브레이크 없는 버기의 액셀을 눌러 밟자, 엔진 실린더가 야속할 정도로 시원하게 회전하며 차체의 속도를 높였다.

        

        어차피 조향도 불가능했고, 직진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크레인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좋을지밖에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나, 그 순간.

        

        

        

       ‘…저거라면.’

        

        

        

        자신의 차량을 망가뜨린 주범.

        

        점차 불어오는 사막의 모래바람에 살금살금 흔들리기 시작하는 수십 개의 H빔과 이를 받치는 지지판. 크레인은 녹슬었지만 견고할지언정, 고정대조차 없이 조금씩 흔들리는 그것은 다이스의 눈엔 꼬리를 흔드는 고양이처럼 보였다.

        

        계산이 시작되었으며, 결론은 간단했다 – 타워크레인 자체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철근 기둥만 떨어뜨리면 된다. 타이밍은 그리 널널하지는 않았지만, 떨어지는 것이 늦어 철근이 지면을 강타했을 때 적이 이미 그것을 지나쳐버리는 일만 피하면 된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사격해야만 했다.

        

        당장.

        

        

        

       ───철컥!

        

        

        

        화학물질 발사기의 실린더 안으로 나나이트 캐니스터가 안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이스는 불운의 끝에서 모든 것이 마치 퍼즐처럼 맞물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신은, 또는 유진은…뭐 어쨌든 둘은 비슷하니까, 대충 그들은 이런 상황을 내게 안배해둔 게 아닐까, 하는 강렬하고도 짜릿한 예감. 아드레날린이 치솟지만,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올린다.

        

        투명한 녹색의 화학 물질이 부글대는 가운데, 왼손에 들린 발사기의 십자 조준선은 타워 크레인의 지지부가 아니라 H빔을 매달아둔 채 위태롭게 삐걱이던 철제 케이블을 겨냥하고 있었다.

        

        케이블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정통으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캐니스터 내의 내용물은 마치 미사일의 신관마냥 정확하게 맞추지 않아도 근방에서 터뜨리는 것은 가능했다.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히 발휘하리라.

        

        그리고-

        

        

        

       -퉁!

        

        

        

        자그마한 반동과 함께, 화학물질 용기가 허공을 날았다.

        

        차량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창공을 가로지른 그것이 H빔을 매달고 있던 케이블 근처에서 펑 하고 터지며 녹색 액체를 공중에 흩뿌린다.

        

        조금만 집중하면 다이스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알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랜서의 시각과 청각은 체인건의 총구 화염과 사격음에 가려졌고-

        

        

        

       ───끼기긱!

        

        

        

        서서히 녹슬어가던 케이블이 나나이트 캐니스터에 의해 반쯤 끊기며, 20개에 달하는 철근 기둥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그러나 그 정확성과 집중도는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 타워 크레인 전체를 무너뜨린 탓에 이리저리 휘청이며 사방으로 철근을 흩뿌려댄 랜서의 경우와, 핀 포인트만으로 H빔을 매달고 있던 케이블만을 노린 다이스의 상황.

        

        철근의 낙하 위치가 랜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집중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것은 비교하자면 불량 수류탄과 샷건의 차이였고, 다이스의 손길에 의해 거의 동시에 떨어져내린 스무 개의 H빔은 도로 위로 일종의 살상지대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불운하게도, 랜서는 그 살상지대에 정확하게 휘말렸다.

        

        

        

       “커헉-!”

        

        

        

        투카캉!

        

        적어도 두 개의 철근이 랜서가 탑승하고 있는 버기를 수직으로 꿰뚫었다. 그러나 그것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으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낙하한 철근은 점이 아닌 선의 단위로 아스팔트와 차량의 위에 폭격을 가했다.

        

        그리하여 고작해야 콤마 단위의 시간이 지나기도 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앞서 가던 차량은 허공을 날았고, 뒤따라오던 랜서의 버기는 다크 존 역사상 유래없을 처참한 형태로 구겨졌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콰아앙!

        

        

        

        앞서가던 한 대의 차량은 이 세상 마지막 비행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다른 한 대의 버기는 튀어오르던 스파크가 수반한 폭발과 함께 수만 개의 파편과 부서진 차량 골조가 아무렇게나 적당히 뭉쳐진 조잡한 덩어리로 변모했다. 물론 폭발의 다음에는 화염이 기다리고 있었다.

        

        H빔에 의해 꼬챙이가 되고, 짓눌린 채 – 차량이었던 무언가가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화려하게 타오른다. 오른쪽 상단 UI에 위치한 두 자리 표기 숫자 중 일의 자리가 감소한다.

        

        마이너스 2가 아닌, 마이너스 1.

        

        

        최후의 생존자는 다이스였다.

        

        

        

       “…하아.”

        

        

        

        터벅터벅.

        

        옷은 찢어지고, 방탄복은 해졌으며, 실드는 너덜너덜했고, 머리카락과 안색의 상태는 그 이상으로 나빴다.

        

        하지만 다이스는 살아남았다.

        

        시속 80km로 질주하던 버기에서 뛰어내린 채 아스팔트를 몇 바퀴나 구르고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겼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내뱉은 그녀가 불덩어리 위를 꿰뚫은 철근 더미들을 보며 덧붙였다.

        

        

        

       “거참, 묘비처럼 생겼네요.”

        

        

        

        아스팔트에 수직으로 몇 개나 틀어박힌 철근 기둥과 그 가운데서 타오르는 차량 한 대. 모래먼지 가득한 이 도심에 실로 어울리는 빌어먹을 광경이었다.

        

        짤막히 말을 남긴 다이스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직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전장은 끝나지 않았기에.

        

        

        파이널 챔피언십의 첫 경기는 아직 더 많은 플레이어들의 피를 요구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