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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느긋하게 마그마에 몸을 담그고 있던 나는 눈을 떴다.

       

        ‘음?’

       

        무언가가 내 영역에 함부로 들어왔다.

        그것도 내 영역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강함을 가진 존재가 말이다.

       

        ‘쯧. 영역이 크면 이런 점이 불편하단 말이지.’

       

        먹이를 섭취해야 한다면, 영역은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클수록 좋다.

        왜냐하면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사냥이나 채집을 해야 하고, 사냥감이나 채집물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 영역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먹이를 꼭 섭취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다.

        그렇기에, 나는 큰 영역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적당한 크기의 영역을 가지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주변 지형이 마음에 들어서 조금 큰 영역을 설정했다.

       

        드드드드드드-!!

       

        나는 마그마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고로 마그마 목욕은 한 번 몸을 담그면, 적어도 1년 정도는 푹 몸을 데우는 것이 최고인데…….

       

        ‘어째 한 달 이상을 넘기질 못하는군.’

       

        이 넓은 영역을 조금이라도 줄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둥지를 나섰다.

       

        둥지 밖으로 나오자, 촉촉한 물안개가 나를 반겼다.

        그 건너편으로는 거대한 폭포와 호수가 나를 반겼고, 그 뒤로는 드넓은 숲이 보였다.

        보기만 하더라도 풍족해지는 그런 광경이다.

       

        ‘간만에 사냥이라도 해야겠군.’

       

        이런 환경에는 맛있는 사냥감이 서식하는 법.

       

        천룡안으로 사냥감들을 눈여겨 본 후,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수풀로 가려진 숲 안의 풍경이 나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음?’

       

        밝은 갈색을 띠는 털에, 검은 줄무늬가 돋보이는 포유류 짐승.

        육식성 동물의 특징을 보이며, 발랑발랑한 육구와 발톱을 숨길 수 있는 구조, 그리고 유연한 몸으로 인해 걸을 때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능력.

        야행성 시야를 가지고 있고, 혀엔 자잘한 돌기가 나 있는 짐승.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저런 짐승을…….

       

        ‘고양이라고 하던가?’

       

        아, 그건 좀 더 작았지?

       

        ‘호랑…… 이? 치타? 호랑이가 맞겠군.’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그 ‘호랑이’라는 짐승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였다.

        일단, 내가 아는 호랑이들은 네 발로 움직이는 포유류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호랑이들은 두 발로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지성체처럼 옷도 입고 있었다.

        골격 구조도 내가 알던 호랑이와는 달리, 이족보행에 적합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손’의 역할을 하는 앞발엔, 인간과 비슷하게 5개의 손가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건 또 특이한 생물이군.’

       

        마치 예전에 보았던 ‘늑대 인간’이라는 짐승의 호랑이 버전을 보는 느낌이다.

       

        잠시 호랑이들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에게 올 동안 기다려도 되겠으나,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마그마에 몸을 담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다가오던 호랑이들은,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대지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수풀을 헤치고, 호랑이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하아악!!”

       

        “으아악?!”

       

        “괴물이다!”

       

        = ……?

       

        호랑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날 찾아오던 것이 아니었나?

       

       

        *            *            *

       

       

        – ㅋㅋㅋㅋㅋ

        – 나 같아도 숲속에서 갑자기 드래곤이 튀어나오면 놀라겠닼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아닠ㅋㅋㅋㅋ

        – 라나님. 본인 크기를 생각하셔야죠!

        –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그들이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지.”

       

        내 영역을 지나치는 것이 아닌, 명백히 영역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움직임.

        그런 호랑이들의 행동에, 나는 그들이 나를 만나러 왔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 모습을 보고 그렇게 놀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한 가지 착각하고 있었단다.”

       

        내가 그 차원에 도착한 것은, 겨우 1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 영역을 차지하기 이전엔, 우천군이라는 용의 영역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 어라?

        – 그러네?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아닠ㅋㅋ 설맠ㅋㅋㅋ?

       

        “그래.”

       

        그 호랑이들은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 내가 차지했던 영역의 원래 주인이었던 우천군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

        – 호랑이들도 개 깜놀했을 듯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보통 시청자들이 웃음을 표현할 때는 ‘ㅋㅋㅋ’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제대로 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채팅이 존재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 보이는 채팅에서는 거의 ‘ㅋㅋㅋ’만이 보일 뿐이었다.

       

        “뭐, 착각과 실수가 있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

       

        – 그래서 어떻게 됬나요?

        – 퍼리 호랑이들은 왜 왔나요?

        – 용 찾는 이유가 뭐였나요?

        – ㅋㅋㅋㅋ

        –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나요?

        – 이번엔 무슨 퍼리 세상인가?

        – ㅋㅋㅋㅋㅋ

        – 퍼리퍼리야

       

        시청자들의 말에, 나는 그 이후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진정한 호족들을 호수 근처로 데려왔다.

        나와 함께 호수 근처로 온 호족들은, 나의 모습에 덜덜 떨면서도 도망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나에게서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거나, 혹은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간절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들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물을 마시며 진정한 호족들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이곳은 신령한 용께서 머무시는 성지입니다. 다, 당신께서는 누구십니까?”

       

        = 내 이름은 멸천룡 그랑 라그나. 하늘을 멸하고, 황금의 부를 부여하는 자이다.

       

        나의 말에 호랑이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필멸자들 중에서 강대한 힘을 가진 편이었던 용들은 내 앞에서도 할 말을 다 했으나, 이들은 평균적인 필멸자에 불과했다.

        초월자인 내 앞에서는, 나의 존재감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며, 멸천룡이시여! 이곳에 계시던 우천군께서는 어디로…….”

       

        = 흠.

       

        한마디조차 제대로 꺼내기 힘들 텐데, 생각보다 용기가 있는 호랑이다.

       

        ‘아니면 그만큼 간절하거나.’

       

        이유가 어떻든, 눈앞의 호랑이가 내 앞에서 용기를 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호랑이들의 의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 내가 그 용의 영역을 빼앗았다.

       

        “?!”

       

        “헉?!”

       

        “켁?!”

       

        내 대답에 호랑이들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왜 그러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호랑이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하죠?”

       

        “다른 용님의 성지로 간다면…….”

       

        “너무 멀어요.”

       

        호랑이들 사이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내 청력은 너무 뛰어났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전부 들어야 했다.

       

        “요괴…… 일까요?”

       

        “본인이 용이라고는 하는데…….”

       

        “용일리가 없잖아? 저런 용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 …….

       

        다 듣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자기들끼리 계획을 세운 듯, 호랑이들은 맞대었던 머리를 떼고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멸천룡이시여! 부디 우리를 보우하소서!”

       

        = ??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호족이라…… 아! 기억났습니다. 그 털이 복슬복슬한 그놈들이죠?”

       

        내 이야기를 듣던 벨제투스가 아는 척을 해 왔다.

        ……다시 말하지만 ‘아는 척’이다.

       

        “생김새를 명확히 설명해 보거라.”

       

        “그…… 두 발로 걷고, 주둥이가 길고, 꼬리가 두 개였고…….”

       

        “…….”

       

        역시나.

        제대로 모르면서 대충 아는 척을 한 모양이었다.

       

        – ㅋㅋㅋㅋㅋ

        – 딱걸렸죠?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일단 호랑이는 주둥이가 길지는 않지 않나?

        – 두 발로 걷지도 않는뎈ㅋㅋㅋ

        – 아! 퍼리 세계에서는 두 발로 걷는다고요!

        – ㅋㅋㅋㅋㅋㅋ

        – 퍼리퍼리야….

       

        벨제투스를 놀리는 채팅창을 힐끔 바라보다 벨제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귀여운 녀석.

       

        “그때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안내인’을 요청했던 그때의 일 말이다.”

       

        “……아! 그때!”

       

        드디어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 뭐임?

        – 뭐야. 둘 만 알지 말고 우리도 알려 줘요!

        – 힝

        – 알고 싶다!

        – 우리도 알 권리가 있…. 나?

        – 알 권리는 없지만, 어쨌든 알고 싶어요!

        – 힝힝힝

       

        “그래. 이야기해 줄 터이니 진정하거라.”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그 차원에 도착하기 이전의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이 부분에서는 나보단, 그때의 상황을 일으켰던 벨제투스가 좀 더 생생한 경험담을 설명해 줄 수 있겠으나…….

       

        “엥? 왜 그렇게 절 보십니까?”

       

        “……아니다.”

       

        나는 벨제투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벨제투스의 처참한 회화 능력을 생각해 본다면, 차라리 내가 설명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제투스의 등을 토닥여주며,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벨제투스가 함께 머물렀던 그 차원은, 천우계(天友界)라 불리는 차원이었단다.”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성체들이 자신의 세상에 이름을 붙이길, ‘하늘과 벗한 세상’이라 하여 ‘천우계(天友界)’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세상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용족’과 ‘호족’을 비롯해, 다양한 종족들이 살아가고 있더구나.”

       

        – 오

        – 동양 판타지인가?

        – 약간 무협? 선협물 느낌이 나는 세상이네요?

        – ㅎㄷㄷ

        – 허미.

        – 인간도 있었나요?

       

        “인간도 있긴 했지.”

       

        다만 그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은, 다른 종족에 밀리는 신세였다.

        인간의 장점인 ‘뛰어난 지능’은 다른 종족들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의 다른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리 생활’과 ‘번식력’ 역시 다른 종족들에게도 존재했다.

        심지어 다른 종족은 강대한 신체 능력이나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었기에…… 오히려 인간이 밀리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던 것이다.

       

        – 헐.

        – 혹성탈출인가?

        – 유인원이 인류를 지배한다!

        – ㅎㄷㄷ

        – 허미

        – ㅎㄷㄷ

        – ㄷㄷㄷㄷㄷ

       

        “물론 인간에게도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단다.”

       

        일단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바탕으로 일구어낸, ‘창의력’이 있겠지.

       

        “적어도 가능성은 충분했다고 판단한다.”

       

        물론, 내가 그 차원을 떠나오기 전까지 인류가 다른 종족을 넘어서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 미래의 일은 그 차원의 이들만이 알겠지.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아몰랑 시전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런 세상에서 각 종족들에겐 특정한 능력이 존재했단다.”

       

        이를테면 땅을 빨리 파낼 수 있는 능력이라든가.

        미래의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라든가.

        허공에서 불을 피워낼 수 있는 능력이라든가.

       

        – 초능력인가요?

        – 딱 초능력이네요.

        – 초능력?

       

        “그래.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하지만 그들 중, 유일하게 ‘용족’은 조금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법술’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종족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용족은 그 세상의 지배 종족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렇기에 용족들은 그 ‘법술’이라는 능력으로 다른 종족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호족들이 나를…… 아니지. 내 영역의 원래 주인이었던 우천군을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것이란다.”

       

        그들은 용족의 ‘법술’로,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꿩 대신 닭.

    용 대신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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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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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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