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63

       먼 추억에 남아있는 것을 찾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읽었던 소설의 제목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설아는 그 글을 읽은 후로부터 무수히 많은 무협지를 섭렵했으니 처음에 읽었던 그 글의 제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허나 인터넷 속 세상은 넓고 시간과 지식이 많은 사람은 넘쳐났으니.

       

       설아가 한 무협소설 게시판에다가 햄버거 하나를 걸고서 소설을 찾아 달라 부탁을 하니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나서 설아가 바라는 것을 찾아주었다.

       

       “그래. 이거였지.”

       

       찾던 소설의 제목을 찾아내고 그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까지 끝마친 설아는 기지개를 폈다.

       

       어느새 시간은 12시 반.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내일을 위해 슬슬 잠들어야 할 것을 고민할 때였지만 설아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지금 눕는다 하여도 잠에 들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눈을 감았다 한들 고독의 풍경을 떠올리고는 채 2시간이 지나기 전에 비명과 함께 일어나겠지.

       

       그럴 바에야 지쳐 쓰러져서 꿈을 꾸지 않을 때까지 버티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설아는 침대에 몸을 뉘이는 대신 편집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녀의 사장님은 그리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그와 동시에 미친 듯이 일거리를 쏟아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매번 방송을 켤 때마다 마이튜브에 편집해서 올릴 것들이 복사가 되니 원.

       

       지금도 화령의 마이 튜브 채널에는 이건 언제 올라오나요. 저건 언제 올라오나요. 하는 글들이 차고 넘칠 지경이니 그녀의 편집자들에게 휴식은 실로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화령님은 아직 방송을 하고 계시려나.

       

       내가 화룡무인에서 나올 때에 아직 할 일이 있으셨다고 들었었는데.

       

       편집을 할 때면 옆에 화령의 방송을 켜두던 설아는 이번에도 버릇처럼 터렛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나서 설아가 보게 된 풍경은 그녀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어라. 화령님 방송이 누구한테 해킹이라도 당한 건가?

       

       왜 썸네일에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가 있는 거지?

       

       누군지는 몰라도 간이 크네. 화령님 방송을 해킹하다니.

       

       나는 시간도 많고 열정도 넘쳐난다고.

       

       그럼 누구 하나 엿 먹이는 정도는…

       

       어? 어어어어?!

       

       괘씸하다는 생각을 하며 방송에 접속한 설아는 마우스를 손에 쥔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모에모에뀽☆”

       

       지금 화면 너머에서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고 있는 사람은 분명 화령이었으니까.

       

       아니.

       

       아니 이게 무슨.

       

       화령님이 왜.

       

       설아가 생각하는 화령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화령은 하늘 위에 군림하는 무인이자 전능한 최강자였으니.

       

       다른 사람에게 애교를 부릴 바에야 그 사람의 목을 쳐 날려버릴 분께서 왜 저런 일을?

       

       대체 내가 소설을 찾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던 설아는 다급히 톡을 켰다.

       

       분명 오늘 방송 보면서 편집점을 잡기로 한 사람이 하린 씨였지.

       

       – 하린 씨. 왜 화령님이 메이드 카페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건가요?!

       – 아. 설아 씨. 이제 방송 켰어요? 화룡무인 하다가 좀 쉬고 계셨나 보네요.

       – 아니! 대답! 빨리!

       – 기다려 봐요. 저도 지금 뇌 반쯤 놓고 있어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하린의 설명은 이러했다. 고독을 할 당시에 살아남은 사람이 누가 될 지를 걸고서 포인트 내기를 했는데 그를 배당하는 과정에서 화령이 실수를 했다고.

       

       그 잘못에 대한 벌칙을 걸고서 룰렛을 걸렸는데 저게 걸렸다고.

       

       아아. 그러니까 화령님은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계시는 거구나.

       

       보통 사람이었다면 수치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도망칠지를 생각했을 텐데.

       

       화령님께선 물러서는 대신에 당당히 앞으로 나서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벌에 임하고 계시는 건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화령님을 음해하고 있었구나!

       

       모든 사실을 깨달은 설아는 자신의 짧은 생각을 한탄했다.

       

       지금 저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등에 진 짐을 메고서 산을 오르는 순교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 처음엔 화령님께서 이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하셔서 오히려 재밌어 졌어요.

       

       하린의 말이 옳았다.

       

       화령은 이것에서마저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가벼운 어조와 귀에 때려 박히는 발성은 화령의 목소리가 귀에서 톡톡 튀긴다는 인상을 가져다줬고,

       

       자신의 근본이 무인임을 증명하듯 몸짓 하나하나까지 조절해가며 만들어 낸 귀여움은 화령이라는 사람을 동경하는 설아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귀엽다는 말을 내뱉게 할 지경이었다.

       

       – 지금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는 데 시청자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니까요.

       – 대박이네요.

       

       커뮤니티에 화제가 되고 있는 걸까?

       

       설아는 편집 프로그램을 잠시 내리고서 스트리머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반응을 살폈다.

       

       그 맨윗 줄에 있는 게시글의 제목은 [화령냥이 포상 모음집]이었다.

       

       “…포상이요?”

       

       그 단어를 보자마자 홀린 듯이 그 글에 들어간 설아가 보게 된 것은.

       

       ‘역겹다냐. 왜 살아 있는 것이냥?’

       

       위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 다른 사람을 매도하는 화령의 모습이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는 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모습이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그 근간에는 귀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설아는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포상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말았다.

       

       확실히 이건 벌보다는 상에 가까울 지도.

       

       설아는 그 후로 스크롤을 내리며 그 글에 있는 여러 영상을 확인했다.

       

       <꼬리로 바닥을 내리치며 화를 내는 화령.>

       

       <대놓고 미간을 찌푸리는 화령>

       

       <감사하다며 고개 숙이는 사람을 보고서 질려버린 화령>

       

       – 캬아아아아.

       – 오늘부터 내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이거다.

       – 오늘 잠 안 자길 잘헀어.

       – 꿀잠충들 이것도 못 보고 자고 있겠지?

       

       이거 다른 영상도 있으려나.

       

       게임 진행한 지 꽤 된 것 같으니까 더 많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설아는 게시물에서 빠져 나와 다른 글을 살폈다.

       

       [메이드복 고양이귀 천마님]

       

       <메이드복을 입은 화령.>

       속성 과다인데 문제 있어? 난 예쁘잖아.

       

       – 크윽. 예쁘지만 않았어도.

       – 엔리의 숭고한 희생. 이미 잊었습니다.

       – 만날 멋있던 사람이 귀여운 옷 입으니까 갭모에 오진다.

       

       [모에모에뀽!]

       

       <화령이 애교를 부리는 영상>

       눈나아아아. 나주거어어어.

       

       – 천마 애교부리기! 효과는 굉장했다.

       – 내 심장…

       – 이거시 덕통사?

       

       [저 게임 은근히 잘 만들었는데?]

       

       제목만 듣고 개 똥겜인 줄 알았는데 꽤 괜찮네.

       

       구성도 괜찮고, 난이도도 점점 더 올라가는 데다가, 여러 캐릭터 늘어나면서 보상도 제대로 주고.

       

       – ㄹㅇ. 그래서 더 보는 게 재밌는 듯.

       – 난 이미 샀음. 고양이귀 메이드가 될 거야.

       └ 님 성별이?

       └ VR세상에서 성별은 의미없다냥!

       

       [아닠ㅋㅋ 화령 왜 잘함?]

       

       메이드 카페 일 겁나 잘하는데?

       

       여태까지 실수 한 번도 안하지 않았음?

       

       진짜 농담이 아니라 저 정도면 프로인데.

       

       – 몸으로 움직이는 건 그냥 다 잘하는 구나.

       – 이 사람 뭘 못함?

       └ 자칭 백살 먹은 할머니여서 최신 문물에 약해요.

       └ 그런 설정임?

       

       [진상들 왤케 착함?]

       

       원래 쟤네 좀 더 개지랄 떠는데.

       

       제작사의 악의가 느껴지는 수준으로.

       

       왜 화령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야?

       

       – 정보) 화령은 살기를 다룰 줄 안다.

       └ 뭔 설정이얔ㅋㅋ

       └ 설정 아님. ㄹㅇ임.

       └ 진짜라고?

       └ ㅇㅇ. 마이 튜브에 화령 살기쳐보면 많이 나올 걸.

       └ 아니 이게 왜 진짜임. 저 사람 현실에서도 무인인 거야?

       

       – 호랑이나 사자도 고양이인데 그 앞에 서면 자동으로 착해지잖아. 그런 거 아닐까.

       

       [그래서 엔리는 뭔 겜 할 예정임?]

       

       리스트 올라온 거 있음?

       

       – 어지간하면 공포겜이나 수치류 게임이던데.

       – 엔리 공겜 맛있긴 하지.

       – 화령 도움 없이 혼자 공겜하면 기절하는 거 아님?

       – 엔리냥이 시키자는 이야기도 많던데.

       └ 엔리가 화령한테 모에모에뀽하는 것도 재밌을 듯?

       

       게시판을 뒤지던 설아는 화령의 여러 사진과 영상을 저장해둔 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걸로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네.

       

       아예 화령님이 하시는 애교를 무한반복으로 해두고 작업을 시작할까.

       

       *

       

       “화령냥은 정말 최고의 메이드였다냐! 이대로 헤어져야 한다니 아쉽다냐! 이 곳에서 좀 더 일을 할 생각은 없느냥?! 내가 최고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겠다냐!”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냐.”

       

       여러 진상들이 나타나면서 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난 게임의 끝을 볼 수 있었다.

       

       게임을 끄고서 VR세상의 기본 공간으로 돌아온 나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진정이 되는 구나.

       

       그리 마음의 휴식을 즐기고 있으려니 채팅과 후원으로 고생했다거나. 귀여웠다거나. 오늘 방송을 소장할거라거나. 한 번 더 포상을 주면 안 되냐는 주접같은 것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왔다.

       

       거 빌어먹을 것들.

       

       나중에도 오늘 일을 가지고서 걸고넘어질 것이 훤히 보이는 구나.

       

       – 엔리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님! 이거 드릴 테니까 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다 엔리에게서 후원이 날아들었다.

       

       무어냐. 돈으로 본인과 교섭을 하려는 것이야?

       

       하하. 엔리. 많이 다급했던 모양이구나.

       

       “엔리. 그대라면 알지 않느냥? 본인은 결코 돈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냥.”

       

       – 냥?

       – 냐냐냥?

       – 냥ㅋㅋㅋ

       

       “왜 그러느냐아..”

       

       그제서야 본인의 실수를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근 세시간 동안 냥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있었더니 자연스럽게 말꼬리에 따라 붙었구나.

       

       빌어먹을.

       

       입술을 살짝 깨물며 콧대를 꾹꾹 누르고 있으려니 옆에서 후원음성이 들려왔다.

       

       – 미호미호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냥이! 부끄러워하지말라냐! 귀엽다냐!]

       

       “곱게 말할 때 닥치거라. 돈을 받고도 욕을 먹고 싶지 않다면.”

       

       – 뭐야. 지금 도네하면 포상주는 거야?!

       – 충전하러감. ㄱㄷ

       

       – ㅇㅇ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냥이!화령냥이!화령냥이!]

       

       “닥치라고 했을 터다만.”

       

       하아. 엔리.

       

       그대는 마지막까지 본인에게 수치를 안겨주고 가는 구나.

       

       이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결과가 이리 된 것을 어찌하겠느냐.

       

       이 원한. 반드시 되돌려 주겠다.

       

       *

       

       그 날 아라의 방송이 끝났을 때 엔리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아라가 벌칙 방송을 하며 여러 번 복수를 다짐한 이상 그녀는 반드시 복수를 당해야만 했다.

       

       그것도 방송을 킨 채로.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를 당하지 않으면 재미없네. 노잼이네. 같은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으니까.

       

       더욱 나아가서 온갖 헛소리들이 채팅창을 점령할테고.

       

       그 꼴을 보느니 차라리 한 번 시원하게 벌칙을 당하는 편이 나았다.

       

       오랜 기간 방송을 해 온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잘 됐네요. 마이 튜브각 잘 뽑히겠다. 최대한 힘들고 괴롭고 반응 좋은 걸로 해주세요.’

       

       악마같은 편집자는 엔리의 불행을 보고서 기뻐했지만 당사자인 엔리는 그럴 수 없었다.

       

       단두대가 앞으로 걸어오는 느낌을 수도 없이 느꼈지만 이 기분에는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주접 떨지 말고 게임 추천만 해주고서 빠질 걸.

       

       그리고 다음 날.

       

       VR세상이 아닌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아라는 웃으면서 엔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엔리 씨. 알고 계시죠?”

       “…저 뭘 하면 되나요?”

       “간단해요. 엔리냥이가 되어 주시면 되는 거에요.”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죽였다면 자기도 사회적으로 죽을 각오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라의 말에 엔리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엔리냥이!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