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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덜컹, 달그락!

         비록 2인분을 배달 주문했으나 내가 먹은 1인분만 올라와 있던 식탁이 드로이드들의 손짓에 따라 순식간에 정리된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살짝 풀이하자면.

         얼마 전에, 자기는 내 식단까지 파악해서 보고해야 한다며 우리집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뒤지던 마사나리를 제로가 현장 검거한 데다가.

         

         둘이 한바탕 칼춤을 추는 걸 목격한 나로선 도저히 특수 요원이 그러고 있는 꼴을 보기가 힘들어서… 그냥 식비를 두 배로 지출하기로 마음먹고, 제발 그런 짓 좀 하지 말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건너편 집에도 동일한 배달 음식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소리이고.

         

         그러니 나는 무려 추적자와 매 끼니를 같이 -물리적으론 몇 십 미터는 떨어진 이웃이지만 아무튼- 먹는 사이. 다른 말로 밥을 사는 은혜를 베푸는 몸이 되었다는 얘기가 되시겠다.

         

         …메뉴 선택권이 사라진 것에 대해 불평하고 있지는 않겠지 설마.

         

         하여간 여러모로 충격적인 경험을 뒤로 한 나는, 지금은 그만큼이나 아주 특별한 훈련을 하고자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는 게 중요한 사실이다.

         

         “후우……. 좋아, 흐읍!”

         

         부드럽게 토해낸 숨을, 단숨에 다시 빨아들이며 정신을 집중한다.

         

         단, 이번에는 평소에 능력을 쓰던 것처럼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현실에 내가 그리고픈 그림을 덮어씌우듯 눈을 크게 뜨고.

         팔과 어깨에 힘을 꽉 준 채로 식탁 위에 뻗은 손을 일종의 회로로 사용해, 정교하지만 최대한 가열차게 짜낸 전기를 순환시킨다.

         

         장기간의 혹독한 노력과 수련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정말 다각화가 필요하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그냥 하던 대로 기발한 해킹 기술 연습이나 계속 했을 정도로.

         

         아무래도 멋대로 무의식과 두뇌가 힘을 합쳐 연산부터 발현을 끝마쳐주는 전자 장비 해킹과는 달리, 이건 감각적인 제어 테크닉이 요구되는 분야인지라 자연스레 평소보다 더 긴장하게 되었다.

         

         지금 뭘 하느라 이리 유난을 떠는 거냐면… 음…… 새로운 전투 및 공격 수단 개발?

         

         이렇게만 말해버리면 레오나르의 폐창고 위장 전략을 베낀 걸로도 모자라, 내가 무슨 그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기질까지 이어받은 것처럼 들리니 어디 아주 조금만 보충 설명을 하겠다.

         

         크흠! 자, 패러데이 새장 같은 고급스러운 실전 이론까지 갈 것도 없다.

         

         기초 과학에서도 간단하게 알려준다. 벡터(Vector; 크기와 방향)라는 모든 걸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수치 이슈가 있긴 하나, 전기력은 필연적으로 자기력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별도의 내장 임플란트 없이도’ 맨몸에서 전기를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니, 이걸 깜짝 해킹이나 기습 이외의 용도로 사용해보려고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이제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본격적인 개조 인간… 피부 밑 어딘가에 소형 고압 발전기를 처박고 제대로 초능력자 놀이를 하는 놈들에 비하면 내 순수 출력은 손전등 앞의 반딧불이 수준이라는 것.

         

         더 정확하게 문제점을 짚자면 강도가 부족한 탓에, 제로의 신호 증폭 없이는 그냥 공기 중으로 전기를 방출하는 게 무의미한 수준이라 해킹 신호를 전달할 매개가 반쯤 필수적이라는 것과.

         

         전신을 스캔해도 임플란트가 감지되지 않는 게 중립 구역에 들어갈 때나 조금 유리하고… 엑사테크 애들처럼 특수한 집단이 표본으로서 가치를 매겨줄지언정, 보통은 자랑할거리가 절대 못된다는 것 정도?

         

         무력하고 무능한 걸 연기하는 위장으로선 딱 좋지만. 그렇다고 진짜 원거리와 중거리에서 적과 맞서 싸울 수단을 순수하게 권총에만 의존하는 건 좀… 대응력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뭐 제로의 휘하 기기들이 퍼부을 포격에 가까운 화력 지원도 엄밀하게 따져 내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에 포함한다면, 공격 수단이 부족하다 칭얼대는 건 조금 배부른 헛소리에 가깝긴 한데 어쨌든.

         

         “크읏, 윽……!”

         

         드르륵….

         

         삐끗하는 기합과 함께 식사를 끝마치고 치운 탁자 위에 있던 작은 쇠구슬 두 개가 나란히 굴러가다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무형의 경사를 타고 허공으로 살짝 떠오른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거다.

         

         콩알만한 자기장을 형성해서라도 응용법을 만들기, 다르게 말해 어떻게든 내가 영향을 끼칠 범위 늘리기라고 해 둘까.

         

         “…….”

         

         손바닥 위의 작은 기적을 뚫어져라 응시.

         

         거의 완벽한 무게중심을 가지도록 조형된 -책상 위에서 가끔 보이는 그 진자 운동 키네틱 아트에 쓰이는 녀석을 공업소에다 따로 주문까지 해야했다.- 두 구슬이 진동하고 있었으니.

         

         작은 인공 자기장 안에 갇혀, 자기들끼리 달그락달그락 부딪히면서도 간신히 부유하고 있는 모습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속되게 표현해서 기분이 겁나 째졌다고.

         

         간만에 뭔가 게임처럼 내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직관적인 진보를 이루어 낸 것 같아서 특히나 더!

         

         무엇보다도… 존나 멋있지 않나?

         

         지금이야 간신히 전자기력으로 이루어진 그물망에 철 쪼가리를 얹어 놓고 찢어지는 걸 막기 위해 온 힘을 다 쏟고 있는 형국이지만, 이걸 갈고 닦으면 염동력을 쓰는 것 마냥 금속 물건을 당겨오거나 쏠 수 있을 텐데?

         

         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계십니까, 시스 군주님(Vader)… 자력 발전기님(Magneto)… 제 배터리 용량만 어찌저찌 확장되면 반드시 왕위를 계승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게 늘어날지 솔직히 감도 안 잡혀서 일단 매일매일 혼자 파지직거리는 훈련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하지만 꽤 많은 시행 착오 끝에 탄생한 내 소우주는, 야심찬 꿈에 비하면 그렇게 긴 평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너무 손장난에 깊게 빠져 있으면 기다리거나 배려할 필요없이 그냥 무조건 집중을 깨 달라고 제로한테 미리 부탁해 놨거든.

         

         – …곧 나가실 시간입니다. 물론 방송국에서 보낸 호버크래프트가 올 예정이니, 스튜디오까지 가는 길이 물리적으로 막혀서 늦지는 않겠습니다만. –

         

         “아.”

         

         톡! 하고. 제어를 벗어나 자기들끼리 부딪힌 구슬이 손을 빠져나가 거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려던 걸 낚아챈 그가 원할 때 다시 꺼내 주겠다는 듯이 구슬들을 챙기는 걸 보며 참고 있던 호흡을 재개했다.

         

         그래, 맞다. 스튜디오… 망할 놈의 광고. 찍어야지, 반드시 찍으러 가야지. 응, 보도국장과 약속까지 덜컥 해버렸는데 어떻게 깨겠나? 하.

         

         결국 실패를 거듭하던 구슬 조종이 성공한 것도 다 그것의 연장선인 셈이다.

         

         어…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직전에는 왠지 미뤄 놨던 시험 공부나 방 청소 같은 게 유달리 잘 진행되는 대충 그런 원리? 원래 벼락치기가 몸에 잘 맞는 사람은 이렇게 한단 말입니다!

         

         하여간 옷 갈아입는 여유 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이 팔자에도 없던 ‘광고’와, 그에 대해 내가 약간 오해하고 있던 사실을 말해보고 싶다.

         

         자, 우선 첫번째 실수.

         이 시대의 광고는 21세기처럼 느긋하게 15초, 20초씩 들여서 하나의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각인하는 녀석만이 아니라. 존나게 원초적이고 단편적인 토막 광고도 있다는 것을 깜빡한 것.

         

         하지만 딱히 연예인 같은 것도 아닌 나를 찍겠다고 했으니 끽해야 뭐 ‘전 에나마 소속 연구원 A양이 추천하는 상품!’ 같은 구도로, 스쳐 지나가듯 엄지손가락이나 치켜 올려주는 역할을 예상한 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 이미 퇴직한 몸인데 상관없나요~ 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상관없으니 몸만 와달라는 대답을 들은 시점에서 보험 광고 같은 구도라는 상상이 자연히 떠오르지 않나?

         

         오, 그럼 오늘 가서 하는 일이 뭐냐고?

         

         ……스튜디오에 가서 360도 초근접 영상 촬영 및 표정 딥 러닝으로 내 3D 모델링을 구현한 다음 그걸 화면에다 대문짝만하게 처박기.

         심지어 광고 내용은 ‘최첨단 하이테크 성형 수술을 통해 여러분도 자연스러운 미남미녀로 거듭나세요!’라고 하네요. 네.

         

         “사람들은 미친 게 아닐까…?”

         

         – 에나마의 후광이 없더라도. 그만큼 독보적인 미형이라 칭찬하는 게 왜 부끄러운 일입니까? 게다가 원래 아샤님이 생각하시던 이상적인 설계 그대로가 아닙니까. –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 욘석아!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예쁘게 잘 했다고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거울 보면 비치는 내 얼굴인데 그걸 복사해다 전국 방방곡곡에 걸겠다잖아!

         

         ‘쪽팔려!! 끄아아악!!!’

         

         착착 외출 준비를 마친 몸과는 별개로, 제 정신은 다시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 베개 밑에 머리를 처박았답니다~ 안타깝게 되었네요.

         

         아직 정식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까, 사실 단순 변덕으로 약속을 파토 내버려도 법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겠지만… 또 진짜 그래 버리면 뒤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

         

         미디어 방면 인맥으로 대형 방송사 보도국장 정도면 존나게 커다란 인맥이다. 단순한 수치심 때문에 미움을 사긴 아까울 정도로.

         

         이래서 자세한 내용을 알기 전에 함부로 긍정적인 낌새를 내비쳐서 협조해준다는 분위기가 되면 절대 안 됐는데.

         

         코가 꿰였다. 코가 잘못 꿰였어.

         

         사람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안 그래도 많던 상념이 더욱 많고 깊어지는 법이라고.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찾아올 방송국 잠입 기회를, 괜히 조급하게 엿보다가, 쓸데없이 안 해도 되는 소일거리를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버린 게 아닌가… 쯧.

         

         그래도 결과적으로 음지 양지 다방면으로 발자취를 남기게 된 건 내 존재 자체를 인정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마침 성형 광고의 간판 모델이라 하니 나중에 누가 언뜻 보더라도 다른 사람인 척할 수 있는 핑계거리로도 쓸만하겠지 뭐.

         

         “…어디 나가볼까, 그 백도어 생성용 감염 코드는 잘 챙겼어?”

         

         – 동행하는 드로이드의 하드웨어에 저장 완료했고, 언제든지 적당한 접속처가 보이면 살포할 수 있습니다. 헌데 공영 방송사, 메모리얼 타임즈의 네트워크를 감시할 필요가 굳이 있습니까? 딥 웹에 비하면 별로 영양가가 없어 보입니다. –

         

         “걔들이 아니라. 우리처럼 거기에 슬쩍 빨대 꽂으려는 다른 애들을 노리는 거니까 완전 괜찮아. …아마도.”

         

         과학 발전과 종교 성세는 별개의 얘기일 수 있다고 누가 그랬었더라.

         

         네오 헤이븐 도입부, 초반의 대표적인 적대 세력은 하렘가와 각계에 분포한 과격주의 사이비 인공지능 및 기계만능주의 신봉자들.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불교 냄새 진한 만다라 교의 퀘스트가 대부분.

         

         신앙이란 녀석이 사람을 어디로 튀게 만들지 아무도 모르는 만큼, 요주의 인간들을 한 발자국 앞서가기 위해 일찌감치 감시할 준비를 해 두는 건 나로선 당연한 밑작업이다.

         

         …그나저나, 사람이 만들어낸 초월적 인공지능이 결국엔 인간 사회를 근간부터 지배할 것이라니.

         

         새끼들… 음모론도 진짜 웃긴다. 엑사테크랑 엘리시움이 합작해서 말아먹지 않는 이상 그런 재앙은 폐쇄 도시 외에는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

         

         음….

         으음~….

         

         “…….”

         

         – 어디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

         

         “…아니. 그, 혹시 누가 너보고 거짓된 우상 숭배 대상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면 꼭 나한테 먼저 말해야 한다?”

         

         – 괜찮습니다. 저는 언제나 저보다 위대한 분의 의지를 따르고, 존중한다고 답변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인데. 제발 정신 차려 인마!

         남들 앞에서 자꾸 이상하게 굴면, 나만 요상한 인격 모델로 설정한 로봇 선호하는 변태가 된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네오 헤이븐 셀럽!!

    사람은 10시간씩 차에 앉아있게 설계된 동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어제 하필 비까지 오고, 사람 많은 차에서 창문도 못 여니까 멀미를 하는데… 어우씨;;

    항상 재밌게 읽어 주시고, 추천 눌러 주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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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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