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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노스트럼을 전부 지워버린다.

     노스트럼에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고, 노스트럼의 땅에 드리운 고대의 축복마저 지워버리고 오직 인류가 가진 기술만으로 살아간다.

     어딘가 그럴듯해보이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는 제국의 주전파 중에서도 상당히 과격한 ‘노스트럼 인종 청소파’의 주장이었다.

     노스트럼에 관한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

     일단 지브롤터 협곡 너머에 있는 이들은 전부 노스트럼이니, 제국군 이외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면 노스트럼은 자연히 아무도 없는 빈 땅이 되지 않겠느냐는 과격한 발언.

     그게 사실상 제국의 주전론자 중 가장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제국이 노스트럼을 정복하고자 하는 근간에는 노스트럼의 축복받은 땅을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지, 노스트럼 인종에 대한 증오는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노스트럼인들을 2등시민으로 만들어 순혈 제국인과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노스트럼의 전통을 살려 ‘너희들이 전쟁이라는 대결에서 패배했으니 너희는 군말없이 우리를 따라야 한다’라는 논리로 노스트럼민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노스트럼인들을 강제로 제국의 외곽으로 이주시킨 다음, 사람이 비어있는 황금빛 노른자 땅을 제국민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전제는 모두 노스트럼의 희생과 소멸.

     노스트럼이 어떤 희생이나 불편을 겪든, 그건 승리자인 제국인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입장.

     그 모든 발언의 뒤에는 황제,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이 있었다.

     인종청소부터 시작하여 작금과 같은 경제교류를 통한 문화침략이라는 방식까지.

     모든 경우의 수는 황제의 머릿속에 있고, 그 생각은 제국신문의 사설과 논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제국민들의 여론이 되었다.

     황제는 노스트럼을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라는 존재를 위함이 아닌, 노스트럼 자체가 앞으로의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노스트럼을 지워버리고 싶어하는가?

     노스트럼의 온갖 안 좋은 모습을 보고 자라, 노스트럼의 폐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노스트럼이라는 땅이 가진 비밀과 기적에 관해서도 알고 있는 자로서 노스트럼 그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은가?

     “폐하.”

     합스베르크 황제에게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아직, 제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노스트럼을 지워버린다.

     “노스트럼이라는 집에 빈대가 있다고 하여, 집 자체를 바로 불태워버릴 수는 없죠.”

     동감한다.

     하지만 이르다.

     “빈대가 나오면 빈대를 잡고, 침대 시트를 들춰 청소를 하고, 집 구석구석에 약을 뿌려서 빈대를 박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가구도 싹다 갈아치워버릴 겁니다.”

     “그러니, 한 번 지켜보자?”

     “적어도 지금까지의 노스트럼이 보여준 모습은 황제 폐하께서 생각하신 그런 ‘없어져야 할 나라’의 모습은 아니었잖습니까?”

     “…….”

     황제는 침묵한다.

     황제가 인종청소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아직 그 정도로 나서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기에.

     “지브롤터가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무리 강을 더럽힌다고 한들, 그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사지를 비틀어 죽여버리고 말끔하게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자잘한 문제는 계속 발생할텐데.”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그 정도 사소한 문제는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죠. 태평성대라고 하는 세상에도 가뭄이나 전염병 등이 생기는 법입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그걸 잘 수습하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느냐, 그런 거겠죠.”

     “…그대는 아직 노스트럼을 믿나?”

     “노스트럼을 믿는 게 아닙니다.”

     노스트럼을 향한 희망은 이미 진작 버렸다.

     “노스트럼에 있는 지브롤터를 믿는 겁니다.”

     내가 믿는 것은 노스트럼이 아닌, 노스트럼이라는 땅의 안에 있는 지브롤터의 저력이다.

     “노스트럼을 지키는 건 지브롤터라고들 하죠. 노스트럼이 잘못되어 무너진다면, 그걸 바로잡는 것도 지브롤터의 역할일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반역이나 매국이라고 하더라도.”

     “…….”

     “노스트럼에 있는 가장 큰 암덩어리를 잘라낼 것입니다.”

     본래의 역사에서는 아마도 이 내용에 관하여, 아버지가 황제와 편지를 주고받거나 그림자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계획을 진행했을 것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제국력 100년 1월 1일이 되는 순간, 폐위시킬 겁니다.”

     

     하지만 그 계획에 관한 모든 권한은 내가 위임받았다.

     “제국력 100년이 되는 순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폐위하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진정한 노스트럼의 여왕으로 옹립할 것입니다. 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노스트럼의 핏줄이 ‘성인’이 되고난 이후니까요.”

     그리고 그렇기에, 나의 뜻대로 어느정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설령, 직후라고 하더라도.”

     “…제국에는 담배라는 것이 있지. 아. 왕국에도 당연히 있겠지만, 왕국의 것과는 조금 경향이 달라.”

     황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네모난 곽 모양을 만들었다.

     “담배를 피우다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쓰러진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마법의 도움을 받지 못해 그대로 숨을 거두었어. 제국 의료계에서는 죽은 자의 시신을 해부하여 폐, 호흡에 있어 중요한 내장의 상태를 살폈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평범한 사람의 것이 선홍색으로 말끔하다면, 담배를 연일 한 갑씩 피워댄 이의 장기는 은색 반점으로 썩어있었다네.”

     은색 반점이라.

     “혹시 담배에 백은이라도 섞어두신 겁니까?”

     “비슷하지. 필터를 통해 불에 태워 흡입하기는 하지만, 그대로 입으로 들이마시면서 미세한 가루가 입속으로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말이 담배지 사실상 백은을 연초로 태우는 방식이다.

     향초로 피웠다면 훨씬 안전할텐데, 그걸 굳이 직접 입으로 숨을 들이키듯 피워댔으니 폐에 백은이 흡착되어 경화상태가 발생한 게 아닐까 싶다.

     “담배는 혹시 해본 적 있나?” 

     “없습니다.”

     “한 번은 피워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키스할 때 담배 냄새 나는 걸 싫어할 것 같아서.”

     “음, 그런가. 나는 별로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던 것 같던데.”

     합스베르크 황제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래. 자네는 아직 젊지. 시간은 많으니, 이번에는 내가 양보하도록 하겠네.”

     나는 안다.

     저 시간이라는 게 10년, 20년 정도로 길지 않다는 걸.

     

     회귀 전의 시간을 생각하면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는 8년.

     매국노 그레이와 지브롤터 가문이 제국에 의해 처형된 시점이 내가 27살이었으니, 합스베르크 황제는 노스트럼을 지배하고 7년 동안 내게 시간을 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7년보다도 더 짧을 수 있다.

     어쩌면 아스타시아가 졸업을 하자마자, 아니 성인이 되자마자 그 시간은 타오르는 종이처럼 빠르게 줄어들 수도 있다.

     황제의 인내심은 나와 아스타시아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줄어드니까.

     “좋아. 이번은 자네의 뜻대로 하도록 하지. 하지만 명심하게. 나는 언제든지 자네를 위해 손에 피를 뒤집어 쓴 잔혹한 학살자의 이름을 역사에 남겨둘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을.”

     “…….”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이전’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대에게 무엇을 했든,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의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은 고집이 좀 강한 인간이라서 말이야. 세상이 뒤집어 엎어질 정도의 위기가 들이닥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신념과 고집을 꺾을 인간이 아니라는 건 자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러니, 당장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잘라내는 방향으로 해보도록 하죠.”

     지금은 계속 본심을 적당히 숨기며, 시간을 끌 수밖에 없다.

     “아직, 반 년 남았으니까요.”

     전쟁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합스베르크 황제를 죽일 때까지, 좀 더 강해지기 위해서.

     “짠, 한 번 하겠나?”

     “예.”

     서로의 잔을 채운다.

     합스베르크 황제는 언제나처럼 와인잔을 한가득 채우고, 나 또한 남은 솜누스 차를 와인잔에 가득 채웠다.

     정정.

     가득 채우지는 못했다.

     이미 몇 번이고 마시고 또 마셨기에, 솜누스 차를 채워둔 유리병이 먼저 바닥을 보였다.

     “…….”

     손가락 반 마디 정도의 공간이 비어있다.

     찰랑거리는 솜누스 차의 표면 위, 짙게 미소를 짓는 합스베르크 황제가 보였다.

     

     “건배하지. 부디 자네의 말대로 노스트럼의 모든 이들을 다 지워버릴 필요 없이, 가장 무능한 병균 덩어리만 지워버리면 되기를 바라며.”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짠.

     * * *

     

     배는 하늘을 난다.

     하지만 그 속도는 바다를 천천히 누비는 배처럼 느긋하다.

     합스베르크 황제는 방에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기술자도 항해사도 없지만, 누군가가 쓸데없이 부품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면 노스트럼의 왕도까지는 고도를 유지하며 정속으로 날아갈 것이다.

     설령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내가 있다.

     그리고 배를 지키듯이 앞서 날아가는 검은 비룡들이 있다.

     “윈체스터 대공.”

     “…….”

     갑판 위쪽으로 날아온 윈체스터 대공은 다른 용기병단과 같은 제복 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그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는 괜찮나?”

     “네?”

     “그 황제를 상대로 면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설마요.”

     나는 난간 너머, 주인과 나의 대화를 위해 비행선의 속도에 맞춰 최대한 고도를 맞춰 나는 비룡을 향해 비룡용 간식을 꺼내 그 입에 던졌다.

     “항상 언제든지 목이 달아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화에 임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봐서 그렇지만, 간도 참 크군. 아니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미래를 봐서 그런가?”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윈체스터 대공에게 감사한다.

     나를 그저 어린아이로 생각했다거나 미래시를 가지고 있다거나 그렇게 판단했기에, 그 첩보가 황제에게 흘러들어가 ‘회귀’라는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수 년을 벌었으니까.

     “어쩌면, 앞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종이 한 장도 아니고?”

     “아직 반 년 정도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해봐야죠.”

     아직 나는 황제에게 닿지 못한다.

     “각하께서 보시기에, 황제는 어떻습니까?”

     “…이미, 나는 늙어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더구나.”

     윈체스터 대공은 침통한 얼굴로 답했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친다고 한들, 둘 다 쓰러지겠지. 저 자는 살고.”

     “팔 하나는 날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듣고 있을라.”

     “듣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저 듣고 웃으며 흘리겠죠.”

     “…무서운 인간이군.”

     나와 윈체스터 대공이 힘을 합쳐도 안 된다.

     1 더하기 1은 2가 맞지만, 황제를 상대하는 기준은 ‘마스터 평균 여덟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가’라는 거니까.

     

     “그렇다면, 대공 각하.”

     나는 아래를 향해 가볍게 발을 두드려 소음을 만든 뒤.

     -아버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입모양으로만 윈체스터 대공에게 물었다.

     “…흠.”

     대공은 잠시 눈을 감으며 답했다.

     “노을이 붉군. 밤이 찾아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푹 쉬도록.”

     노을이라.

     

     결국.

     검푸른 밤하늘이 붉은 석양을 집어삼키는 건 정해져있는 일이라는 걸까.

     그래도.

     아직은 하늘은 맑고, 노스트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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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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