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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할배한테는 장난스레 타리키에게 선물을 주겠노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약간 다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태양은 공략을 위한 수단이니까.

   

   카리아의 보고에 따르면 타리키의 세력은 이미 버로우 영지를 집어 삼킨 채다.

   

   영지의 시민. 저택의 시종. 뒷골목의 범죄자. 길거리를 지키는 병사. 어느 교회의 사제. 가문에 소속된 기사.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어둠에 잠식된 상태지.

   

   이전의 나는 이 중 일부만을 상대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잠재우는 것과 누군가를 움직이는 일의 난이도는 전혀 다른 바. 지금의 나크라드로는 한 번에 몇 명을 움직이는 게 한계일 거라 판단 내렸기에.

   

   적절한 준비를 끝마친 후 우악다짐으로 밀고 가면 버로우 가문의 탈을 쓴 던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허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마법진이 발동되고 어둠이 영지를 잠식한다면 그 모든 사람들의 나의 적이 되겠지.

   

   그 물량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일종의 군세이자 재앙이다. 어설프게 대응하려다간 저택에 닿기도 전에 세에 짓눌러 질식할 터.

   

   그러니 태양을 준비한다.

   

   타리키가 무엇을 준비했더라도 그 모든 어둠을 지워버릴 선명한 빛을 만들어 낸다.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밤을 빼앗을 선명할 빛을 말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할 것 같은데.>

   

   태양을 만들겠다는 내 계획을 들은 할배는 어딘가가 탐탁치 못한 듯 했다.

   

   당연한 일이었나.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상식에서 아득히 벗어난 종류였으니까.

   

   <비약이 너무 심한데다가 위험부담도 커. 솔직히 말해서. 내 밑에 있는 놈이 이런 걸 들고 왔으면 미쳤냐고 소리쳤을 게다.>

   

   ‘할아버지. 평소 제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왔는지 잊어버리셨나요?’

   

   아니 할배. 평소 내가 저지르고 다니는 미친 짓을 모두 다 구경했던 사람이 위험부담은 무슨 위험부담입니까.

   

   <그으건 그렇다만.>

   

   나의 기행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보아왔던 할배는 할 말이 궁한 듯 목소리를 길게 늘어트렸다.

   

   ‘어쨌든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죠?’

   <하아. 그래. 네 말대로만 된다면 말이다.>

   ‘그거면 됐어요.’

   

   할배의 확언을 받은 나는 알새틴에게 기다리라 이야기한 후에 아카데미 거리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무척이나 손쉬웠다.

   

   막대한 신성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존재였으니까.

   

   “영애.”

   

   페이비. 거짓된 성녀이자 훗날 진정한 성녀가 될 사람.

   

   수련을 하면 할수록 그녀가 신성마법을 다루는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체감하게 되는 이.

   

   소울 아카데미의 사기 캐릭 중 하나.

   

   이른 아침에 교회에 나와 신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서 웃음을 지었다.

   

   안심과 안도와 행복이 담긴 웃음을.

   

   난 거기에 마주 웃어주면서 목소리를 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허접 성녀. 부족하기 그지없는 너한테 내가 특~별히 날 도와줄 기회를 줄 건데. 어떡할래?”

   

   “뭘 하면 될까요?”

   

   인사하는 것보다 먼저 부탁을 내뱉었음에도 페이비는 한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일종의 광기가 느껴졌다. 칼에게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광기가.

   

   그것이 당혹스러워 내용을 듣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페이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렇게 답했다.

   

   “들을 필요 없죠. 영애께서 부탁하시는 건데요.”

   

   ‘…제가 이상한 걸 시키면 어쩌려고요?’

   “흐응~ 뭐든? 그럼 내가 네 발로 기면서 개처럼 짖으라 그러면 할 거야?”

   

   “필요한가요?”

   

   자그마한 웃음기조차 없애버린 페이비의 얼굴은 저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농담으로라도 필요하다 그러는 순간 진짜로 내 말을 따를 것 같아서.

   

   “농담이에요. 영애님.”

   

   짧고도 무거운 침묵은 페이비가 웃음소리를 냄에 따라 사라졌다.

   

   …어. 그치? 농담이지?

   

   “뭘 하면 되냐 물어본 건 영애께서 부탁하실 일이 하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아. 그것도 그렇네.

   

   버로우 가문의 이상을 확인해 준 것은 페이비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러 왔다면 당연 버로우 가문과 관계있는 일일 수밖에 없을 터.

   

   그러니까 지금 난 페이비한테 가지고 놀아진 건가.

   

   착하디 착한 성녀님께서 나한테 장난을 치다니. 나를 많이 친하게 생각하시긴 하는 모양이야.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기뻤지만 그 기쁨과는 별개로 놀림 당한 게 짜증나는 것도 사실이니까.

   

   보복은 해야지.

   

   “영애님?! 아파요?! 아프답니다?!”

   

   양 뺨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적절한 처벌을 가한 나는 뺨이 벌게진 페이비를 데리고 교회 바깥으로 나왔다. 비밀 이야기를 나누기에 교회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니까.

   

   *

   

   버로우 가문의 이상을 알아챘던 날.

   

   페이비는 자신이 보았던 모든 것을 루시에게 설명해 주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교회에 버로우 가문을 고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허나 루시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교회의 힘을 빌릴 생각은커녕 이 문제를 알릴 생각도 없다고. 허접성녀 너도 당분간은 함구하고 있어 달라고.

   

   당시 페이비는 루시의 부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악신의 사도가 공작 가문을 집어 삼키려 하는 것이다.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커다란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을 터.

   

   본래 정해진 대로라면 그 흔적을 알아차리자마자 교회에 고발해 싹을 잘라야 한다.

   

   주신 교회의 상징으로 오랜 기간 지낸 페이비는 이러한 절차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루시의 말을 따랐다.

   

   그녀는 아르마디의 사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신의 말씀을 듣는 분. 그녀께서 무언갈 부탁하시는 데에는 다 깊은 뜻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페이비는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신의 뜻이 지상에 내려오는 날을 가만 기다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날의 아침.

   

   평소라면 훈련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어야 할 루시가 교회까지 페이비를 찾아왔다.

   

   그것만으로 페이비는 상황을 이해했다. 신의 사도께서 악신을 물리치기 위하여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루시는 버로우 영지에서 생겨나는 재앙을 물리기 위해 페이비를 바랐다.

   

   사도의, 루시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분명 영광스러워 해야 할 일이고, 평소의 페이비였다면 감격에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페이비는 그러지 못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건 음습한 쓰레기가 날 끌어들이려는 함정이야. 조심성 많은 쓰레기 답게 많은 게 준비되어 있을 테고 무척이나 위험하겠지. 그러니까 한 번 더 생각해 봐.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루시가 꺼내는 말이 너무도 이상했기에.

   

   “…어. 영애님.”

   “뭔데 허접 성녀.”

   “함정이라고요?”

   “그래. 음습한 약골 악신이 허접주신에게 직접 복수하지 못하니까 날 괴롭히려는 거겠지.”

   “그런데 그 곳에 직접 가겠다고요?”

   “저기. 너 어디 아파? 왜 자꾸 금붕어마냥 했던 말을 왜 물어 보는 거야?”

   “왜요?”

   

   왜?

   

   그 곳이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

   

   그 곳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그 곳에 가게 되면 분명 고통을 겪을 테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왜 굳이 직접 거기에 가시겠다는 건가요?

   

   다른 좋은 수단이 많잖아요.

   

   나라의 힘을 빌려도 되고 교회의 힘을 빌려도 괜찮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영애께서 위험에 발을 내딛을 이유가 없어요.

   

   아르마디가 선택한 사도인 당신께서 목숨을 내걸 이유가 어디에도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굳이.

   

   “내가 왜 그 약해 빠진데다 치졸하고 쓰레기 같은 자칭 신 나부랭이를 상대하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해?”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영애께서는!…”

   

   루시의 대답에 납득하지 못하고 소리를 내지르려던 페이비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만약.

   

   페이비가 말하는 대로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나라를. 교회를 끌어들인다면?

   

   페이비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목소리로 들었고. 글로 읽었고. 그림으로 보았고. 두 눈으로 마주했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버로우 가문은 사라진다.

   

   구성원 중 하나가 악신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에서 지워진다.

   

   버로우 공자는 어리석었을 때 자신이 저질렀던 일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페이비와는 달리 뉘우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겠지.

   

   그렇지만 다른 세력을 전혀 끌어들이지 않고 버로우 가문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모든 일을 조용히 묻어버린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페이비는 말을 하다가 말고 웃음을 흘렸다.

   

   성녀의 품위가 담긴 부드러운 웃음이 아닌.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눈 앞의 상대가 너무도 경탄스러워서 나오는 웃음이 말이다.

   

   그러니까 영애께선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자 하는 거군요?

   

   누구도 그 업적을 알아주지 않을 터인데.

   

   심지어 버로우 공자 본인에게 감사인사를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확실치 않은데.

   

   자그마한 망설임도 없이 자기 목숨을 내던질 생각이신거군요?

   

   아아. 그래요. 그렇군요.

   

   이런 분이기에 아르마디께서 당신을 사도로 택한 것이겠죠.

   

   그에 반해 이 멍청한 저는 목숨의 값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보다 주신의 사도가 지닌 목숨이 귀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고결함에 구원받았으면서도 말입니다.

   

   나중에 밤을 세워가며 속죄의 기도를 올려야겠네요.

   

   얼마나 웃음을 지었을까.

   

   슬슬 루시마저도 페이비를 걱정스레 바라볼 때가 되어서야 페이비가 눈을 떴다.

   

   “영애님.”

   “…허접 성녀? 돌아버린 거 아니지? 그치?”

   “할게요.”

   “응?”

   “무슨 위험이 기다리고 있건 상관 없어요. 할게요.”

   

   고결한 사도의 뜻에 자신의 비루한 힘을 더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세요.”

   

   얼마 전 교회에서 페이비가 비슷한 말을 했을 때에는 그러면 안 된다 다그치던 루시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 들었다가 한 쪽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리기만 했다.

   

   “알겠어. 허접 성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도록 할게.”

   “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아르테아 가문으로 가서 거기 있는 신성변태한테 존엄을 팔아먹을 거야.”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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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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