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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3

   투둑-

     

   흘러내린 코피를 스윽하니 닦아낸 비앙카가 정면을 응시했다.

     

   그 앞, 새하얗게 그지없는 얼음 공간 위.

   꽁꽁 얼어붙은 아레나의 경기장이 보였다.

     

   경기장 아래에 있던 학생들은 혹여나 브레스에 휘말릴까 봐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였고.

   그뿐만 아니라 조교진들마저 급하게 아레나 경기장과 거리를 둔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

   비앙카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자욱한 얼음 안개 내부.

     

   쩌적-

     

   조용히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비앙카의 손에는 어느새 두 개의 비수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얼음 안개 속으로 비수를 내지른 순간.

     

   쨍그랑!

     

   얼음이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 한 자루가 그곳을 메꾸었다.

     

   비앙카의 푸른 눈에 비친 것은 전신이 새하얗게 서리가 낀 부교수 라이틀리였다.

   그의 입에서 새하얀 냉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눈을 한껏 찌푸린 채 자기 몸에 서린 서리에 몸서리쳤다.

     

   뼛속까지 깊숙하게 파고들 만큼 강렬한 냉기.

   설마하니 응시생에게 이렇게나 크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다리는 사실상 거의 안 움직이는 수준이고.’

     

   팔과 다른 쪽도 영 맥을 못 추는 상태였다.

     

   ‘대체 무슨 출력인 건지.’

     

   이 정도면 6성급 침식종이라도 정면에서 맞는 순간 몸 성하게 버티지 못할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녀는 이제 고작 15살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했다.

     

   ‘재능의 정도를 넘었군. 이건 스스로를 벼리고 벼려 깎아낸 수준이야.’

     

   게다가 이만한 출력을 내놓고도 아직까지 비수를 내지르는 모습이라니.

     

   라이틀리는 반쯤 감겨 가는 비앙카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육체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숨을 고르고 있는 그녀지만 방금 출력으로 모든 힘을 다 쏟았다.

     

   비틀-

     

   정정하자.

   그 수준이 아니다.

     

   지닌 힘을 다 쏟은 수준이 아니라, 없는 힘까지 강제로 끌어내 사용했다.

     

   삐끗하면 너무 끌어 쓴 오러가 폭주해버릴 만큼 아슬할 정도로 말이다.

     

   ‘대체 무슨 집념인 건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시험.

     

   고작 시험에서 이 정도까지 쏟아내는 것이 라이틀리는 의아했지만.

     

   자신은 시험관.

     

   ‘시험은 아직 안 끝났다.’

     

   라이틀리는 즉시 검을 휘둘러 비앙카의 비수를 뿌리쳤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힘이 거의 없는 비앙카의 비수는 형편없이 쳐내졌다.

     

   비앙카는 더 이상 비수를 쥐고 있을 만한 힘도 없었다.

     

   라이틀리 쪽도 정상인 상태는 아니나.

   그는 허검이라는 별호가 붙을 만큼 전장을 구른 몸.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강제로 끌어낸 라이틀리가 비앙카를 향해 검을 휘두른 그때.

     

   비앙카의 옷 안쪽 섶이 열렸다.

   그럼과 함께 라이틀리의 눈에 비친 것은 얼음 여우였다.

     

   얼음 여우의 입에는 얼음 구체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쨍그랑!

     

   이윽고, 얼음 구체는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고.

   곧 그것은 사방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난사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라이틀리가 급히 검을 회수하며 허상등잔을 펼쳤다.

     

   그의 몸 주위에 나타난 허상들이 일제히 얼음 조각들을 쳐냄과 함께 자세를 가다듬으려던 찰나.

     

   파박! 팍!

     

   라이틀리의 눈에 자신이 터트린 얼음 조각이 몸에 박혀가고 있음에도 달려든 비앙카가 비췄다.

     

   그녀는 양손에 비수를 역수로 쥔 채.

   처음과 똑같이 오직 승리만을 노리는 푸른 눈동자를 번뜩이며 비수를 내려찍고 있었다.

     

   비앙카의 손은 비수와 함께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비수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양.

   그녀는 오직 팔의 힘만으로 비수를 내려찍고 있었다.

     

   육참골단.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승리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비앙카의 집념이었다.

     

   라이틀리마저 질릴 만큼 승리를 향한 강렬한 집착.

     

   허상등잔을 펼치는 속도보다 비앙카가 파고든 속도가 더 빠른 만큼.

   라이틀리도 급히 발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비앙카의 비수는 이미 라이틀리의 양쪽 빗장뼈의 바로 앞에 도달한 상황.

   라이틀리가 패배를 직감하며 오싹한 기분을 느낀 그 순간.

     

   미끌-

     

   라이틀리에게 한 가지 운이 작용했다.

     

   얼어붙었던 바닥이 그의 신발 밑창과 맞물려 라이틀리의 몸이 더 크게 휘청였다.

   비앙카는 이미 비수의 궤도를 수정할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서걱!

     

   대신 라이틀리의 가슴팍 양쪽이 비수에 찢겨 나갔다.

     

   큰 상처였지만 패배를 확실시할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

     

   “아.”

     

   비앙카의 눈에 아쉬움이 서린 순간.

   라이틀리는 자세를 고쳐냄과 함께 그대로 다리를 내질렀다.

     

   콰앙!

     

   비앙카가 하늘을 날아 힘없이 튕겨 날아갔다.

   모든 힘을 다한 그녀는 더 이상 공격에 대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날아간 비앙카가 바닥을 구르자 라이틀리는 다리에서 격통을 느꼈다.

   그가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다리에 얇은 얼음 조각 하나가 박힌 게 보였다.

     

   비앙카는 그 순간에도 기어코 얼음 조각 하나를 박아 넣고, 날아간 것이었다.

     

   ‘이게 뭔.’

     

   이게 고작해야 응시생에게 나올 수 있는 집념인 건가.

     

   라이틀리는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는 비앙카를 보며 숨을 내쉬었다.

     

   또각-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잊었다.

   비앙카에게 너무 집중하느라 이 시험장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들려온 발소리를 따라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 순간.

   거기에는 달빛의 섬광을 강렬하게 쏟아내고 있는 달레아 쥬논이 서 있었다.

     

   이만한 출력을 모으고 있었음에도 라이틀리는 달레아를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그건 그녀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라이틀리가 지금 여기서 비앙카에게 전력을 쏟지 못하면 패배할 거란 직감에 정신이 모두 쏠렸던 탓이었다.

     

   “허.”

     

   짧게 숨을 내쉰 라이틀리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자세를 잡았다.

     

   카이란에게 부교수가 학생들에게 지는 게 말이 되냐며 비아냥 거렸건만.

   설마하니 자기가 그런 꼴에 처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작년도 올해도 풍년인 셈이겠네.’

     

   인재가 참으로 넘쳐 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 채.

   라이틀리는 그렇게 달레아가 휘두르는 필살의 앞에 시험관으로서 맞설 뿐이었다.

     

     

   * * *

     

     

   희미한 정신 사이.

   여러 말소리들이 오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감긴 눈동자와 피로하고 나른한 몸.

   하지만 곧 머리를 감싸는 따스한 손길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비친 건 검푸른 머리카락이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머리색.

     

   그리고 그 머리색의 주인은 그녀.

   비앙카 하덴하르츠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크라슈 님.”

   “일어났냐.”

     

   비앙카의 부름에 크라슈가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비앙카는 곧 자기 머리를 감싼 그의 손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녀는 이 따스함이 좋다.

     

   크라슈는 자신이 월음지체라 온기가 낮다고 하지만.

   비앙카에게 있어서는 어느 것보다도 가장 따스한 온기였다.

     

   “고작 시험에 뭘 그리 고생하냐.”

     

   따스함 속에서 기분 좋음을 느끼던 도중.

   비앙카는 걱정과 핀잔이 섞인 크라슈의 말에 시선을 옮겼다.

     

   비앙카와 눈이 마주친 크라슈는 슬쩍 눈을 피했다.

   그도 그럴 게 본인도 자기가 할 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입학시험 도중 크라슈가 카이란과의 전투 후 뻗어 버린 건 이미 유명한 일화였다.

     

   “크라슈 님과 함께 있고 싶으니까요.”

     

   무엇보다 비앙카는 자신이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이와 함께 있고 싶었으니까.

     

   오직,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 비앙카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느낀 크라슈는 쓰게 웃곤 곧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 정말 많이 강해졌더라.”

     

   크라슈조차 놀랄 만큼 강해진 비앙카는 2학년에 속하더라도 거뜬히 특급반을 따낼 실력이었다.

     

   고작해야, 몇 년의 성과로는 이룩할 수 없을 만큼 비앙카는 피나는 노력 끝에 이만한 힘을 쥔 것이다.

     

   그 노력을 가장 잘 아는 크라슈이기에 크라슈는 비앙카를 기꺼이 칭찬했다.

   이제는 마냥 흰색 병아리가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시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비앙카의 눈에 결과의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는 전력을 다했다.

     

   자신의 전력을 전부 보인 만큼.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비앙카는 덤덤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의 질문을 들은 크라슈는 비앙카의 볼을 한차례 꾹 꼬집었다.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볼이지만 아직은 부드러웠다.

     

   “달레아의 일격이 작렬한 뒤, 일격에 당한 채로도 라이틀리 부교수는 달레아와 맞붙었어.”

     

   달레아는 앞선 비앙카의 대규모 공격을 감당하고자 그녀도 월광신검을 써야 했다.

   비앙카는 라이틀리를 일격에 끝내 버리고자 아군을 고려할 틈 없이 쏟은 일격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라이틀리를 쓰러트리고자 그녀도 오의를 꺼낸 마당.

     

   힘을 워낙 쏟아 버린 만큼.

   당시에 달레아와 라이틀리는 거의 비등한 수준이었다.

     

   “공방은 꽤 길어졌지만 먼저 무릎 꿇은 건 라이틀리였어.”

     

   달레아의 실력은 뛰어나긴 하나.

   현재 부교수 중 카이란을 제외하면 가장 실력 좋은 라이틀리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실력 전에서 밀어붙인 끝에 라이틀리는 달레아에게 크게 한 방 먹였으나.

   그 과정에서 힘을 너무 쏟은 탓에 그대로 의식이 날아가고 말았다.

     

   그 또한 한계였다.

     

   “승리는 비앙카와 달레아 너야.”

     

   그렇게 결과는 비앙카와 달레아의 승리.

     

   정작 승리를 한 인물 둘 다 바닥에 뻗어 있었으나.

   라헬른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부교수가 꺾인 두 번째 사건이 벌어져 버렸다.

     

   덕분에 부교수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위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골머리를 썩이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비앙카는 학생으로서 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비앙카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었다.

     

   “그럼 전 특급반인가요.”

   “못해도 3기생 무학과 차석이니까. 특급반은 무조건이겠지.”

     

   비앙카는 짧게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크라슈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자신의 양팔을 뻗었다.

     

   크라슈가 의문스레 그녀를 보자.

   비앙카는 자기 팔을 살짝 까닥거렸다.

     

   “상 주세요.”

     

   설마하니 비앙카 쪽에서 이런 투정 부리는 말이 나올 줄이야.

   크라슈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차례 웃더니 기꺼이 상을 주기로 했다.

     

   크라슈가 그대로 비앙카를 안으려 들었다.

   그러나 크라슈는 비앙카를 너무 얕보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크라슈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이내 코앞까지 다가온 크라슈의 얼굴 앞에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비앙카?”

     

   당황한 크라슈가 되묻자 비앙카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 웃음은 어딘가 앙큼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크라슈조차 예상치 못한 여우 같은 면모를 한껏 보인 그녀는 그대로 크라슈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이 점막을 타고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스륵 하니 떼어졌다.

     

   “크라슈 님, 저 많이 참았어요.”

     

   크라슈가 황당해 하는 얼굴을 짓자 비앙카는 그리 말하고 스르륵 팔을 풀었다.

     

   그러고는 비앙카가 크라슈의 손을 쥐었다가 떼었다.

   크라슈는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손을 돌려 보자 거기에는 반지가 하나 있었다.

     

   크라슈가 비앙카에게 선물한 반지와 똑 닮은 반지였다.

   크라슈는 이 의미가 무엇인지 금방 눈치챘다.

     

   반지를 들어 올린 크라슈가 왼손 약지에 비앙카가 준 반지를 끼웠다.

   그 모습을 본 비앙카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곧 왜인지 퉁명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시험 중에 락테아의 일원이라는 사람이 왔었어요.”

     

   아라시즘 락테아.

   크라슈는 비앙카에게 접근했던 그를 떠올리곤 멈칫하였다.

     

   “그리고 크라슈 님이 익시온에게 노려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그건.”

     

   비앙카에게 미처 말해주지 못했던 것들.

   그걸 언급한 비앙카는 크라슈의 옷깃을 꾸욱 당겨 쥐었다.

     

   “그런 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지 않았어요.”

   “……미안, 다음부터는 먼저 말해줄게.”

     

   크라슈의 사과에 비앙카는 잠시동안 크라슈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약속이에요. 전 크라슈 님의 아내니까요.”

     

   이제는 약혼녀가 아닌 아내라는 말을 입에 올린 비앙카였다.

   살짝 붉게 물들어 있는 비앙카의 귓불을 본 크라슈는 짧게 웃음 지었다.

     

   “잘래요.”

     

   그러고는 이내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순식간에 비앙카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한껏 만족감에 취해 있었다.

     

   한순간에 일을 벌여 놓고, 혼자 잠들다니.

   비앙카답다면 비앙카다웠다.

     

   [ 병아리가 여우같이 컸구나. ]

     

   크림슨가든의 평을 들으며 크라슈는 한차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앙카의 돌발 행동 덕분에 정신이 혼미했으나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락테아.’

     

   세계 침식자 척살 가문.

     

   이번 시험의 신입생으로 나타난 락테아 가문의 일원을 만나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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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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