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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오른쪽 팔이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절단이 날 것 같은 감각. 나는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이 벌어졌더라?

       

       그래, 자신은 로테에게 사선(射線) 수십 발이 내리꽂히는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앞뒤 안 재고 달려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그냥?

       

       맞아, 그냥 그랬다. 딱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놈의 공격이 도중에 나에게로 진로를 바꾸었다. 나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고, 그 사이 빛이 수십 번 번쩍이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러고는 의식을 잃었다.

       

       팔이 아픈 것을 보니 엑토플라즘의 공격을 맞긴 한 모양이다.

       

       “윽.”

       

       보통 아픈 수준이 아니다. 이만한 걸 로테가 맞았더라면 틀림없이 무사하지 못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릴 때였다.

       

       “……?”

       

       묵직한 감각이 들었다.

       

       내 몸 내부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었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감각.

       

       설마, 혹시.

       

       “…으윽.”

       

       내 고개가 천천히 내려갔다. 입고 있는 와이셔츠가 붉은 물감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

       

       이건, 내 피가 아니다.

       

       “야….”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거렸다. 내 품에서 쓰러져 있는 소녀를 깨우기 위함이었다.

       

       비릿한 혈향, 그리고 그보다 살짝 더 진한 플로럴 향기. 예전에 많이 맡아 본 친우의 향수 냄새였다.

       

       “일어나, 일어나 봐.”

       

       아무리 흔들어 봐도 요지부동이었다. 머리는 아래로 떨구었고, 어깨는 힘없이 늘어뜨린 것이 시체와도 같았다.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녀를 옆으로 돌렸다. 왼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삐걱대는 오른손으로 소녀의 옷과 얼굴을 더듬었다.

       

       만지는 곳마다 뜨겁고 축축했다.

       

       “너, 너 왜 이래.”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소녀의 가슴팍에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였다. 

       

       너 왜 이러냐고. 몸이 왜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그리 묻고 싶었다.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소녀를 계속 흔들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얼굴도 두들기고, 이름도 불러보았다.

       

       로테, 로테, 로테.

       

       몇 번을 불러내자 소녀의 눈꺼풀이 스르르 올라왔다. 아주 잠깐 안심했으나, 곧 다시 울상을 지어야만 했다.

       

       로테의 눈동자는 동태처럼 흐릿하고 초점이 없었다.

       

       “……르.”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다, 행이야.”

       

       가래 끓는 목소리였다. 평소에 밝고 또박또박했던 그 음정을, 지금은 들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 하나 없어서. 토막 난 신음만 연달아 내뱉었다.

       

       그러는 사이, 로테의 고개가 힘겹게 돌아갔다.

       

       “팔이, 팔이 왜 그래….”

       

       내 오른쪽 팔에선 아직도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수를 상징하는 검은색 피. 절대로 들켜선 안 됐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다.

       

       다만 로테는 내 피 색깔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꺼져가는 눈빛에선 걱정하는 기색만이 역력했다.

       

       네 팔이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고, 소녀는 묻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내가 물었다.

       

       로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알고 있었는데 왜 막은 거야.”

       

       묻고 싶었다.

       

       “왜 나 같은 괴물을 감싸고 돈 건데….”

       “너야말로… 날…….”

       “그건 그냥, 연기였어. 연기하려고 했던 거였어.”

       

       계획을 착실히 진행하려면 좋든 싫든 학생들을 돌보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정령왕에게 발각될 테니까. 그런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조금 아프더라도 널 감싸고 대신 공격을 맞으려고 했다….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한 마디에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거, 짓, 말.”

       

       또 다시 말문이 막혔다.

       

       이제 팔은 아프지 않았다. 그보다는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상황이 얼추 정리되고 있었다. 

       

       – 여신님께서 우릴 저버리지 않으셨구나!

       – 살았다. 살았어!

       

       습격을 감지한 정령왕들이 하나둘씩 제단에서 내려왔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구나. 죽겠구나. 결국, 마수라는 것을 들켜서…. 

       

       이제 이 상황의 모든 책임을 내가 뒤집어쓰겠지. 나를 토사구팽하려는 창천 파스모의 계획이 기어코 성공한 셈이다.

       

       아, 이러면 아카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같이 죽는 건가? 그건 말이 안 되는데.

       

       모르겠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계획도, 흑주를 완성하고자 했던 야망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려던 바람도.

       

       전부 부질없게 되었다. 전부 이곳에서 끝날 운명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눈앞의 소녀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나는 얄팍한 의학 지식을 동원하여 응급처치를 시도하려 했다.

       

       그런데, 도무지 가망이 안 보였다.

       

       빛줄기가 심장과 주요 장기를 지나갔다. 출혈이 극심하다. 이대로라면 몇 분도 살지 못할 것이다.

       

       “대체 왜….”

       

       나를 구해 주었느냐고. 왜 나 대신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거냐고. 왜 괴물인 줄 알면서도 몸을 던졌냐고.

       

       제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대라고.

       

       “……그냥.”

       

       로테는 힘겹게 한 마디를 쥐어짰다.

       

       “그냥…?”

       

       끄덕.

       

       “그냥이라고? 다른 이유도 없이?”

       

       결국 나를 구해 준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것도.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말인가?

       

       끄덕.

       

       “아…….”

       

       로테는 후우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소녀의 눈꺼풀이 스르륵, 하고 감겼다.

       

       “아아….”

       

       사실 알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로테라면.

       

       로테 살리에르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겠구나.

       

       그러니 처음부터 피해 다녔던 것이다. 두려워했던 것이다. 너 때문에 1천 번의 지난날들이 부정당하는 게 무서웠으니까.

       

       “아, 아아아악……!”

       

       사람의 것인지, 괴물의 것인지 모를 괴성이 흘러나왔다.

       

       친구의 입술이 새파랗게 변했다. 죽는다. 죽어가고 있다. 명치는 따뜻한 피로 끈적거리는데, 사지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삼진아웃이니 뭐니, 나는 처음부터 내기에서 진 셈이다.

       

       아니, 자기 자신에게 건 내기가 무슨 내기란 말인가. 그건 그저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지금을 보라. 머릿속에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전부, 스스로 만들어 낸 공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구에서의 기억이 섞여 있다. 동시에 아렌스 대륙에서의 기억도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난날의 기억이란 왜 있는 것인가. 여기서 무얼 해야 하는가.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되어버렸는가.

       

       혼란스러운 감각을 느끼는 와중에도, 품 안의 소녀는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콰득!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차갑다. 춥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피 묻은 하얀 목도리는 따듯하다. 아직도, 아니. 영원히 그럴 것이다.

       

       친구의 손은 얼음장과도 같다. 얼굴은 서릿발과도 다름없다. 끈적거리던 피가 점차 굳어간다. 툭, 투툭. 혈색이 사라지는 소녀의 얼굴 위로 물방울이 하나, 둘.

       

       –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

       

       셋, 넷.

       

       – 다 끝나면 나와 같이 사는 거야. 약속했다?

       

       다섯, 여섯.

       

       약속을.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를 악물고 있었더니, 머릿속이 맑아졌다. 감정이 무뎌지고, 이성만이 남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로테의 체온이 너무 급격하게 떨어졌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고드름을 만지는 것처럼 싸늘했다. 

       

       시체도 이렇게까지 차갑진 않을 텐데.

       

       어째, 내 몸도 으실으실했다. 촉각을 곤두세워 보니 한기가 공간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추위의 근원지를 찾았다.

       

       땅바닥에 두 개의 핏자국이 나란히 보였다. 그 핏물을 따라 시선을 점차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푸른 눈의 여인이 있었다.

       

       “…….”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끝에는 서리가 맺혀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였지만,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물의 정령왕, 시큐엘.

       

       그녀가 권능을 사용하여 로테를 얼려버린 것이다.

       

       들어본 적 있다. 수군(水君)의 권능 중에는 시간조차도 얼려버리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래도 그것을 사용한 듯하다.

       

       시큐엘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쿠아마린처럼 푸른 눈동자에선 서늘함과 안온함이 같이 느껴졌다.

       

       두렵거나 하진 않았다.

       

       마수라는 것을 들킨 이상, 이 여자한테 죽으면 죽는 거다.

       

       다만, 후회되는 점이 한 가지 있었을 뿐.

       

       “여러분, 무사하십니까!”

       

       바깥이 정리된 모양인지, 마도사와 사제들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마도사들은 정령왕을 보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일부 사제는 엎드리며 감읍하기까지 하였다.

       

       “……!”

       

       나와 그들의 시선이 맞았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거두었던 스태프를 고쳐세웠다.

       

       정황상 어떤 착각을 하는지는 알 법했다. 아마 저들은 내가 이 사달을 만들었고, 보다 못한 정령왕들이 나타나 나를 제압했다고 믿고 있겠지.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정령의 왕들이시여…!”

       “됐어요, 거기까지.”

       

       시큐엘이 손을 들어 마도사들을 제지했다.

       

       그녀가 제지한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무지성으로 마수 퇴치를 외치던 휘하 정령들까지, 모두 입을 다물도록 명령했다.

       

       시큐엘 곁으로 다른 두 정령왕이 다가왔다. 하나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였고, 다른 하나는 땅의 정령왕인 노움이다.

       

       “정령왕의 뜻대로 처벌하여 주시옵소서.”

       

       사제복을 입고 있는 늙은 엘프 하나가 기도를 올렸다. 말이 기도지, 나를 죽여버리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같은 패턴으로는 저번 학기에 이어 두 번째. 솔직히 화를 낼 마음도 없다. 해탈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화를 내면 뒤통수를 친 창천과 호천에게만 좋은 게 아닐까.

       

       “저 괴물을 왕께서 끝장내 주십시오. 하여 쓰러져 간 엘프들의 넋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또…….”

       

       사제복을 입은 마도사들이 기도를 계속한다. 그 모습을 본 정령왕들은 한숨을 흘리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또 저희에게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내리시옵소서.”

       

       평범한 기도문이었지만 나에겐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정령왕들이 저 말을 그대로 이행한다면 나는 죽는다.

       

       “하아.”

       

       될 대로 되라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싫다고 한다면요?]

       “……?”

       [누구 마음대로 제 계약자를 죽이네 마네 하는 거예요, 참 나. 듣는 정령 짜증 나게.]

       

       머리 위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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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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