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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하루가 지났다.

         

       즉위식에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대행주 리샤드에게서 대강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연습이랄 것도 없는 가벼운 리허설을 마친 후론 날 편히 쉬게 하려는 분위기였다.

         

       쉴 생각은 없었다. 굳이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왕궁의 연무장을 찾았다.

         

       시설은 준수했지만, 아카데미의 훈련장과는 달리 마음 편히 단련하긴 어려웠다. 신하들이 내 단련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생떼를 부려서 쫓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신하는 최소한 두 명 이상 반드시 남아 있어야만 했다.

         

       왕실에 머물러도 마찬가지. 무조건 신하들이 복도에서 대기하였고, 내가 어디로든 떠날 때마다 무조건 따라붙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복잡하네.’

         

         

       그 와중에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복잡했다. 태초의 빙제, 1회차 도로시가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가능한 한 머릿속을 비워두자. 아직 해답을 알 수 없는 고민에 빠져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 하는 건 큰 손해니까.

         

       

       그날 밤.

         

       왕실 발코니에서 난간에 팔짱을 올린 채 뒤펜도르프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웠기에 나도 모르게 발이 옮겨졌다.

         

       리샤드에게서 전해듣기로, 뒤펜도르프에서 맑은 하늘은 원래 구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고서에만 기록되어 있었을 뿐. 내가 오기 전까지 눈보라가 쉬지 않고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맑은 하늘을 되찾은 덕분에, 역대 가장 많은 국민이 밖으로 나와 오로라가 춤추는 밤하늘을 즐기고 있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이 멀리서도 대규모의 축제 현장이 보일 정도이니 오죽할까.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선배?”

        “느핫….”

         

         

       예상대로 도로시가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핫은 뭐냐.

         

       고개를 뒤로 돌리자 엉거주춤하는 도로시가 보였다.

         

         

       “슬금슬금 다가오시는 거 이젠 안 먹혀요.”

        “너 옛날보다 더 재미없어졌어…. 적어도 모르는 척이라도 해주지.”

         

         

       도로시는 실망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곤 내 옆에 서서 난간에 팔짱을 올렸다.

         

       마녀 모자는 방에 놔뒀는지 도로시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왕궁이 발산하는 얼음 마력의 빛깔 덕분에, 야경과 함께 보는 도로시의 모습은 무척 황홀경이었다.

       

       잠시 넋 놓고 도로시를 감상했다. 개예뻐.

         

         

       “응? 왜?”

        “그냥 무슨 말 하러 왔나 싶어서요.”

        “딱히 할 말 없는데?”

       “그래요?”

       “응.”

       “그럼 뭐.”

         

         

       그냥 경치 구경할 겸 내게 장난치려고 했었나 보다.

         

         

       “내일 즉위식하네?”

        “네. 오전에 할 거예요.”

        “이제 완전히 원왕이구만. 아카데미에서 최약체로 불렸던 애가 순식간에 거물이 됐어~.”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진짜 원왕이 되겠네요.”

       “소감은 어떻습니까, 아이작 전하?”

       “어? 음? 없는데요…?”

       “안 기뻐?”

       “기쁜 편이죠.”

        “그게 소감이지, 바보야.”

         

         

       그렇긴 하다.

         

         

       “내일 연설 뭐라 할지 정했어? 아, 연설 같은 건 안 하나?”

       “그건 제 자유예요.”

       “할 거야?”

       “아마 안 할 것 같은데요.”

       “으, 이 재미없는 녀석….”

         

         

       도로시는 까치발을 들고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봐, 아이작. 사람이 한 국가의 우두머리가 되는 이벤트잖아. 아무나 누릴 수 없는데다 앞으로 딱 한 번 있을 귀중한 인생 경험이라구? 막 가슴 뛰는 연설도 하고, 국민들 감동도 시켜주고, 어? 그런 낭만도 없이 되겠어?”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데 감성이 움직일 것 같진 않아서.”

         

         

       나는 안경을 한 차례 들쳤다.

         

         

       “그리고 선배. 요즘 저 자꾸 재미없다 하시는데, 그렇게 말할 수록 제가 진짜로 더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원래 사람은 자주 말하는 대로 사물을 인식하게 되는 경향이….”

       “응, 안 들을래. 안 들려어~.”

         

         

       정성스레 설명하고 있거늘.

         

       얄밉게도 도로시는 내게서 떨어지곤 손바닥으로 자기 귀를 툭툭 치면서 “와바바바.”라고 의미 없는 말을 늘어뜨리며 내 설명을 배척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거 아니냐.

         

         

       “으….”

       “니히히. 근데 여기 지이인짜 예쁘다!”

         

         

       끝내 내가 설명을 포기하자 도로시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난간을 짚고 팔을 쭉 펴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게요.”

         

         

       나도 뒤펜도르프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얼음의 왕국. 지상은 하얗고 밤하늘엔 오로라가 일렁이기까지 한다.

         

       전생으로 치면 수천 만원은 지급해야 올 수 있는 고급 숙박시설에 온 느낌이었다. 그런 데는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우니까.

         

         

       “무드가 있어. 여기서 여자 꼬실라 하면 웬만한 여자는 다 넘어가겠다!”

       “생각이 조금 불건전하지 않아요…?”

         

         

       하렘을 추구하는 쓰레기인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아름답다는 거지, 요 녀석아.”

         

         

       도로시는 나를 툭 치며 실실 웃었다.

         

         

       “너니까 하는 말인데. 이 누나는 말이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 완전 허름한 데서 살았었다? 이런 데서 공주님 소리 들으면서 사는 상상도 엄청 많이 해 봤다구. 그런 거야 뭐, 다들 똑같겠지만. 어쨌든 나한테도 로망이었단 거지. 이러고 있으니까 충족감이 느껴져. 니히히.”

       “공주라도 된 것 같으세요?”

       “당근이지. 일단 얼굴부터 공주스럽잖니? 이 외모에 예쁜 드레스까지 입으면 완벽하다구?”

       “자아 도취가 심하시네요.”

       “응, 건방지군. 폭력을 부르는 대답이야.”

         

         

       장난이다. 공주님 따위를 넘어 여신님 소릴 듣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고삐가 풀리면 도로시 외모를 찬양하느라 정신이 팔릴 것이었다. 적당히 이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작. 넌 졸업하면 여기서 쭉 살겠네?”

       “모든 문제가 다 잘 풀리고, 별일 없으면요.”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답변은 이런 것뿐.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했다.

         

         

       “모든 문제라….”

         

         

       도로시는 턱을 괴고 날 쳐다보았다.

         

         

       “있잖아.”

       “네.”

        “너,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지?”

         

         

       응?

         

         

       “뭘요?”

       “…….”

         

         

       도로시는 내 의중을 꿰뚫어 보려는 듯 아주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걸 묻지, 라는 의문은 들지 않았다. 도로시는 사람 감정을 읽을 줄 아니까. 내가 겨우 표정 관리를 해내도 내 마음의 빈틈을 간파할 역량이 그녀에겐 있었다.

         

       나는 1회차 도로시를 찾으러 갈 생각이다. 너무나도 위험할 게 뻔하기에 남을 챙겨줄 여력은 없을 테고, 누구도 데려갈 수 없을 것이었다. 눈앞의 도로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내 계획을 말하면 어떻게든 날 따라오려 할지도 모르고. 어떤 트러블이 생길지도 알 수 없었다.

         

         

       “여태 중요한 얘긴 다 했잖아요? 선배가 저에 대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실걸요?”

         

         

       태평하게 시치미 뗐다.

         

       한동안 도로시는 뚫어지게 날 쳐다보더니, 다시 야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네.”

       “…거짓말쟁이.”

         

         

       도로시는 나지막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일부러 못 들은 척하고 도로시와 함께 야경을 바라보았다.

         

       1회차 도로시의 설명을 떠올리면, 얼음 호수에 간다는 건 겉보기에 불길에 날아드는 불나방 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 힉스든 1회차 도로시든, 내가 얼음 호수에 이르는 게 꼭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불가능했으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도로시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위험에 몸을 던질 것이었다.

         

         

         

       ……

         

         

         

        하얀 눈으로 둘러싸였던 땅에 찬란한 햇볕이 내려앉았다.

       

       왕위 즉위식은 음악과 함께 성대하고 장엄하게 진행되었다.

       

       광장에 모인 국민들은 왕궁의 드넓은 발코니에 선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4명의 군단장, 뒤펜도르프의 병력, 수많은 신하가 질서정연하게 행렬을 맞추었고.

         

       난간 앞에 서서 백성들을 굽어보던 한 노년의 여성을 향해,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하얀색과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호화로운 복식, 고급스러운 장식품으로 한껏 치장했다. 어깨에 씌운 휘랑의 망토가 바람에 펄럭인다.

         

       진지한 표정으로 근엄한 척, 멋있는 척하고 있지만, 속은 은근히 긴장된 상태였다.

         

       국민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날 반겼다.

         

         

       ‘용녀….’

         

         

       노년의 여성은 얼음의 용녀, 밀리.

         

       하얀 의복을 입은 그녀는 뒤펜도르프의 종교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빙제와 연관된 용무나 의식이 없으면 외부와의 만남, 소통이 일절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금욕과 성스러움의 상징인 인물로, 빙제인 나조차도 그녀와는 즉위식 전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나는 용녀 밀리 앞에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밀리는 옆의 얼음 기사가 들고 있는 아름다운 보관함을 열었다. 그 안엔 예식용 은빛 단검, 상화의 검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의식을 위해서 잠깐 빌려주고 즉위식에서 다시 돌려받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이게 알맞은 순서이기도 했다.

         

       밀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장갑 낀 두 손으로 조심스레 상화의 검을 들고서, 내게 정중히 그 검을 내밀었다.

         

       도로시와 앨리스는 떨어진 위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밀리 주위로 형형한 얼음 마력이 나풀나풀 흘러내렸다.

         

       나는 상화의 검을 받고서 얼음 마력을 흘렸고.

         

       내 얼음 마력은 밀리가 흘리는 마력과 섞여 들며 마치 꽃이 아름답게 피어오르듯 넓게 퍼져나갔다.

         

       내가 상화의 검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후 모든 신하와 병사가 일제히 내게 경례했다.

       

       밀리가 확성 마법을 걸고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초의 서리군주 베로니카 아슬리우스 님의 권위를 이어받을 2대째 서리군주 아이작 님을 모십니다.”

         

         

       밀리가 고개를 숙이고.

         

       나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두 발자국 나아가 난간 앞에 섰다.

         

       그리고 상화의 검을 뽑아 보란 듯이 위로 치켜들었다.

         

       내 뒤로는 아름다운 백옥빛 마력이 피어오르며, 거대한 백룡 한 마리가 날아올라 제 자태를 뽐냈다.

       

       뒤펜도르프의 백성들은 넋을 잃고 나와 백룡을 바라보았다.

       

       백성들은 더 이상 환호하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득한 경외심만이 깃들었을 뿐. 그들은 한쪽 무릎을 굽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내게 경의를 표한다.

       

       상화의 검을 든 팔을 내렸다.

       

       한동안 나는 많은 감정을 표류해야만 했다.

         

         

         

       ……

         

         

         

       “우리 애기, 생각이 깊어 보이네.”

         

         

       마차를 타고 뒤펜도르프 영토를 가로지르던 중.

         

       맞은편에 앉은 앨리스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응….”

         

         

       어느 순간부터 손에 쥔 마력기로 단련하는 것도 잊고 창밖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시야엔 혹한의 땅이라 불렸던 새하얀 설원만이 보였다.

         

       신하들은 어서 돌아오길 바란다며 날 떠나보냈지만, 누구든 내가 어서 뒤펜도르프에 군림하길 바라고 있었다.

         

       티를 안 냈을 뿐이지, 내가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해도 반발심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다.

         

       원왕이란 자리, 내게 통치권을 맡긴 뒤펜도르프를 생각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태초의 빙제에 관한 의문까지 몇 겹 더 쌓인 상황. 조금만 방심해서 사고가 실타래처럼 뒤엉키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아닌데, 괜히 이러네.”

         

         

       이러나저러나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었다.

         

       앨리스 덕분에 이성을 챙긴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다시 마력기를 꽉 쥐고서 마력 운용력을 단련했다.

         

       지금은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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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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