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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여러가지로 엉망진창이었던 하루가 그럭저럭 지나갔다.

    여러가지 일로 에너지를 쓰고 나니, 공복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서로가 지쳐 있는 상태에서 요리까지 만들어 먹기엔 재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

    식사 준비도 결국은 일이다.

    그렇다고 대충 샐러드로 때워버리고 싶은 날도 아니고…….

     

    “밥은……. 그냥 배달시켜 먹자.”

     

    예르나가 지친 듯 중얼거리자,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요리해먹죠. 재료도 있는데. 돈 아깝잖아요.”

    “응? 설마, 요리하려고? 힘들지 않겠어?”

     

    예르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른 날에야 대부분 루크가 직접 요리하곤 하지만, 오늘 같이 크게 혼난 날은 분명 힘들 텐데.

    여러가지로 신경도 쓰고 있어서 정신적으로 피곤했을테고 말이다.

     

    하지만 루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니?

    예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크를 제외하면 이곳에 있는 건 자신과 파이리스를 제외하면 없다.

    하지만 루크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 요리 도우미가 자신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파이리스야 당연히 논외로 치는 것이고.

     

    그렇다면 한가지 결론.

     

    “설마 누가 와서 도와주기로 했어? 친구라도 불렀니?”

    “이미 여기에 있어요.”

     

    루크는 씨익, 웃었다.

     

    ——-

     

    -탁탁탁탁탁.

     

    빠르고 정확한 칼질이 야채를 가르고 도마를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마치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정하고 시원한 소리는 재료손질이 끝나며 멎는다.

     

    잠시 찾아온 고요.

     

    -보글보글…….

     

    고요 속에는 물이 끓는 소리가 조용히 퍼진다.

     

    -퐁당, 퐁당, 퐁당.

     

    그 소리 속에 일정하게 썰어낸 소리가 담긴다.

    냄비 안에 들어온 재료들에 잠시 끓는 소리가 멈추었다가, 다시 보글보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루크는 그 냄비 안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재료가 잘 섞이도록 국자를 저었다.

    그러자 점차 먹음직스런 향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그 향은 어딘가 그리운, 추억이 담긴 향이었다.

     

    ‘옛날에 레니에가 이런 스튜를 많이 해 주었지.’

     

    레니에는 요리를 잘 했다.

    항상 야영을 하게 되면 우리 파티의 식사를 담당했을 정도이니까.

    케일이 손질을 하면, 레니에가 요리를 했다.

    그러면 자신은 불을 지키거나, 음식의 맛이 어떤가 먹어보곤 했지.

     

    그 추억은 자신의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리운 기억이다.

     

    어쩔 수 없는 웃음이 루크의 입가에 걸린다.

     

    “향이 참 좋군, 리브.”

     

    그러자, 부엌 위에 올라가 있던 곰인형이 고개를 위 아래로 크게 끄덕인다.

    아직도 감각이 거대한 갑옷에 익숙해서 인형 몸의 세세한 가동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레니에는 청소는 잘 못 하더라도, 요리만큼은 좋았다.

    그러니, 리브에 담긴 ‘가사’기능에 요리가 포함되어 있다면, 분명히 꽤 괜찮은 솜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확실히 일치했다.

     

    리브는 소드마스터의 재능을 살려 굉장히 정확한 재료손질을 할 수 있었고, 그 기능을 추가한 레니에의 덕분에 과거 레니에가 사용했던 레시피도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루크는 정말 오랜만에 레니에의 스튜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 감동적이기도 하다.

     

    리브에게는 케일의 검술로 만들어진 리빙아머의 검, 그리고 레니에의 요리솜씨로 만들어진 레시피가 있었다.

    그리고, 불을 지키고 맛을 보는 자신이 있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다.

     

    리브를 추억에 잠긴 눈으로 바라보던 루크는 적당히 국자로 떠서 후-, 후. 불며 식혔다.

    이 몸은 뜨거운 음식은 잘 먹지 못하니까.

     

    적당히 식은 것 같아, 루크는 국자에 입을 대었다.

     

    -후룹.

     

    혹시 뜨거울지 몰라 공기와 함께 삼킨 국물의 맛은 황홀했다.

     

    과거의 추억이 담긴 맛에 현대의 조미료가 섞여 맛을 더했다.

    솔직히 맛이 없을 리가 없다.

    다만, 소금이 조금만 더 들어가면 정말 완벽할 것 같은데.

     

    “리브, 소금을 조금만 더 치는 게 좋을 것 같다.”

     

    -끄덕.

     

    리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금통을 찾아 루크에게 건넸다.

    루크는 그 소금통을 받아 두어 번 정도 흔든 뒤에 다시 맛을 보았다.

     

    “완벽해.”

     

    절로 만족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오는 맛이다.

    정말이지, 훌륭하기 짝이 없다.

    루크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다 되었다. 파이리스, 그릇을 가져오거라.”

    “응!”

     

    아까부터 냄새를 맡으며 연신 침을 삼키고 있던 파이리스가 쏜살같이 달려와 그릇을 내밀었다.

     

    ‘하, 이럴 때는 참 잽싸단말이지.‘

     

    루크는 결국 푸흡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웃음을 참는 것은 한계에 가까웠으니까.

     

    “자, 뜨거우니까 가져가서 천천히 먹거라.”

     

    “응!”

     

    파이리스는 대답만 잘 하고, 선 자리에서 헐레벌떡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루크는 한마디 하려다,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짓는 파이리스의 표정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만 좋다면야, 음식을 어떻게 먹든지 그게 상관이 있겠는가.

    잘 먹어주기만 한다면야 좋다.

    애초에 파이리스가 싫어하는 음식이라는 게 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 맛있느냐?”

    “응!! 이고, 움청 마시따!”

    “맛있다니 다행이로구나. 하지만, 음식을 입에 넣고 큰 소리로 말하진 말거라.”

    “움!!”

     

    간단하지만, 파이리스에겐 항상 무시되곤 하던 식사예절을 또 상기시키며 루크는 다른 그릇을 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예르나는 감탄과 경악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요즘 골렘청소기는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네……!’

     

    ——

     

    식사를 하던 중, 예르나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걸 네가 만든 거라는 말이지?”

    “맞아요. 어때요? 꽤 괜찮죠?”

    “그렇구나……. 그렇네.”

     

    그러자 루크는 ‘리브, 봐라. 예르나도 그대가 꽤 괜찮다고 하고 있잖느냐!’하고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예르나가 그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오랫동안 함께했던 숲지기 동료를 보는 것 같은 유대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자신이 애정을 쏟아부으며 만들었기 때문일까?

    “…….”

    처음엔 루크가 생일 선물로 인형 모양의 골렘 청소기라도 받은 건가 싶었다.

    그게, 일단 생김새가 루크가 생일 선물로 받았던 그 인형과 똑같이 생기기도 했고.

    선물로 받은 물건의 본래 용도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니까.

     

    물어볼 타이밍을 놓친 예르나는 그래서 뭐,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신경을 껐다.

    그런데 치우면서 보니까, 예르나는 그 인형이 생각보다 꼼꼼하게 빗자루질(칫솔질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을 하는 것을 보고 ‘요즘엔 골렘 청소기 성능도 괜찮네, 비싼거라 그런가?’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면서 물어본 결과, 루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르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받았을 때는 인형이었고, 오늘 제가 골렘으로 만든 건데요?’

     

    ……정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골렘도 만들 줄 알았어?”

    “그렇죠? 재료만 있으면요. 전 마법사니까.”

     

    루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대사, 진짜로 ‘마법사’같았어, 방금은…….”

     

    그렇지, 보통은 마법사들이 그런 걸 만들지.

    특정 학교에서는 골렘술을 교육하기 위한 키트도 몇 년 전에는 꽤 유행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게 이름이 뭐더라……. ‘마법상자’였던가?

     

    아무튼, 그런 도구도 없이 그냥 집에서 만들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골렘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집에 있었나.

     

    “그런데 그 재료는 또 어디서 났니?”

     

    루크는 순간 멈칫 했다.

    오랜만에 추억의 맛을 음미하면서 정신이 너무 풀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질문이 돌아올 것을 예측했어야 했는데!

     

    이래서 식사중엔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예르나에게 아린세이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예르나는 여신의 창조물이니까…….’

     

    아린세이아가 실존하며, 리브가 그 증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

    여신의 창조물은 여신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는 순간 신앙심을 품게 되기에.

    그리고 신앙심은 여신이 부활하게 되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다.

    이 세계엔 단 한명의 신도조차 있어선 안된다.

    신앙심은 마치 전염병과도 같으니까.

     

    루크는 밥상 위에 앉아있는 리브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음, 옛날부터 제가 원래 갖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 정말 옛날부터 말이다.

     

    “그래? 훔친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루크는 단호히 대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은 루크 이루시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훔친’ 거라고 볼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서클인 자신의 의지가 곧 과거 루크 이루시의 의지이니 훔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물건을 자신의 오른손이 가져간다고 해서 도둑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음, 그럼 됐어.”

     

    그러자, 예르나는 딱히 별다른 추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가지 예상되는 질문을 떠올리고 있던 루크는 조금 맥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더 안 물어보시네요?”

    “우리, 방금 전에 서로 속이지 않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니?”

    “그렇기는 한데…….”

     

    고작 그런 무의미한 행동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타인을 믿는단 말인가?

    그게 무슨 마나의 맹세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예르나는 루크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네가 말하고 싶은 거면 상관없지만, 딱히 말하는 게 기분이 좋은 것 같지 않아 보여서. 무슨 사정이 있는 거지?”

    “……네.”

    “그럼 괜찮아, 안 말해줘도.”

    “언니…….”

     

    루크는 꽤 감동받았다.

    고작 별것도 아닌 행동으로, 자신을 이토록 신뢰해 준다니.

     

    어쩌면 그것이 ‘가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존재인 것일까.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식사를 시작한 루크를 바라보며, 예르나는 웃었다.

    문득 루크의 얼굴에 비친 표정에, 아련함과 슬픔이 뒤엉킨 감정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예르나는 스튜를 마저 입 안에 떠넣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다라…….’

     

    ‘옛날’.

     

    어쩌면, 그 마력핵은 ‘옛날의 친구’가 건네 준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이거, 진짜 맛있네.”

    “그렇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리집 골렘청소기는~~ 요리도 한다!
    엄마! 우리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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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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