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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지몬은 레이나와 엘라가 싸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1주일 전, 레이나가 서커스단을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찾아오리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아니, 그는 이런 날이 오기를 고대했었다.

         

       그가 그녀를 파양하게 된다면 그는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해줘야 했다. 죄지은 것처럼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고? 그것도 가짜 딸 앞에서? 항상 오만하게 콧대를 세우고 살아온 그였다. 죽어도 그런 상황에는 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떠나기를 바랐다. 그가 그녀를 가혹하게 대한 것에는 그런 심리도 한몫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이미 수백 번은 그녀가 떠나겠다고 말하는 상황에 대해 예행연습을 했다. 그러나 앞선 수백 번의 사례와 최근 몇 번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바로 원더스타인의 존재였다.

       그냥 떠난다면 말리지 않았겠지만, 놈에게 뺏기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얼마든지 떠나도 좋다. 하지만 우리 부녀의 문제로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피하고 싶구나. 에이스인 네가 다른 서커스단으로 이적한다면, 세간에서 뭐라고 떠들겠니? 후원자의 명성에도 금이 갈 거다.”

         

       지몬은 주변 사람들이 입을 피해를 염려하는 척했다. 정작 그가 그녀를 그 ‘다른 서커스단’에 내팽개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순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레이나는 그런 지몬의 유도에 손쉽게 넘어갔다. 그녀는 황금 카니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자신이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호함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황금 카니발에 불만이 있어서 떠나는 건 아니에요.”

       “주변에서는 그렇게 떠들어댈 거다. 프랭크 10의 경우를 보렴.”

         

       레이나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것 때문에 지금 황금 카니발의 곡예사들은 언론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슬라그보르트 공작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다섯 서커스단 중 가장 많이 물어뜯겼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까지 나간다고 한다면, 어떤 악의적인 소문이 퍼질지 몰랐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지몬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뭔가 생각하는 척하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더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면 되겠지. 그럼 네가 괴물 서커스로 가도 황금 카니발이 못나서 뺏겼다는 이야기는 안 나올 거 아니겠냐. 그러니까……이번 시합에서 그들을 꺾어라.”

       “꺾는다고요? 하지만 이번 시합은 1대1 대결이 아닌데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네가 정상적으로 이적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다.”

         

       지몬은 그녀에게 ‘별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대회 참가자 간의 이적은 오직 별이 많은 서커스단에서 별이 적은 서커스단으로만 허용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괴물 서커스가 이번 시험에서 탈락하고, 황금 카니발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야기를 들은 레이나는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전 굳이 무대에 서지 않아도 돼요. 그냥 그 사람들이랑 함께 있고 싶을 뿐이에요. 대회 규칙은 무대에 서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거잖아요? 저는 거기에 그냥 일꾼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어요.”

         

       지몬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의 입에 조소가 걸렸다. 그는 은근한 어조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글쎄. 곡예사가 아닌 널 원더스타인이 원할까?”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는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가면 너머로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적중했다. 그는 그녀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그가 널 예뻐하는 건 네가 ‘황금 천칭’이기 때문이지. 곡예사가 아닌 네가 거기 간다면 지금처럼 너를 반겨줄까? 잘 생각해보렴.”

         

       그녀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렸다.

       과연 단장님은 곡예사가 아닌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여전히 ‘딸’로서 자신을 챙겨줄까?

       애초에 그들 두 사람의 부녀관계는 그가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연기에 불과했다. 그쪽에서 그만하자고 하면 자신에게는 따질 명분이 없었다.

         

       ‘그만하죠. 당신의 장난에는 더 이상 못 어울려 주겠군요.’

         

       아빠가 또 떠난다. 가짜 아빠라서.

       그런 상황을 또 마주하기 싫었다. 가짜라도 그 관계를 걔속 이어가고 싶었다.

         

       아빠에게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해.

       레이나는 지몬의 암시에 쉽게 걸려들었다. 애초에 그렇게 사고하도록 10년 동안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이해가 가는 모양이구나.”

         

       지몬은 거기에 몇 가지 말을 더해서 그녀의 마음에 의심, 불안감, 공포를 깊게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몇 가지 암시를 더 가했다.

         

       “엘라는 꺾는다면, 그는 널 영입하기 위해 뭐든지 할 거다.”

       “어쩌면 너에게 부단장 자리를 맡기고 싶어 할지 모르지.”

       “그녀가 제정신을 회복하면, 제대로 역할을 맡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너의 등장이 그에게 구세주처럼 느껴질지도?”

         

       그는 직접 그녀의 등을 떠밀기도 했고, 그녀의 눈앞에 미끼를 흔들다가 품에 감춰 특정 방향으로 사고를 유도하기도 했다.

         

       “황금 카니발을 이기게 한다.”

       “……황금 카니발을 이기게 한다.”

       “괴물 서커스를 꺾는다.”

       “……괴물 서커스를 꺾는다.”

       “엘라를 박살 낸다.”

       “……엘라를 박살 낸다.”

         

       레이나는 멍한 눈동자로 그의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완전히 그가 의도한 대로 움직였다.

         

       지몬은 9번 경기장의 현황판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선 두 개의 말을 바라봤다. 계획했던 대로 괴물서커스의 두 사람이 탈락하고, 엘라와 레이나가 싸우게 됐다.

         

       둘의 실력은 박빙이었다. 따져 보자면, 신체적 조건과 기술의 정확성은 레이나가 우위였고, 눈썰미와 반사신경은 엘라가 그녀보다 나았다.

         

       그러나 지몬은 레이나가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가짐이었다. 레이나의 마음 안에는 이미 각오가 선명했다. 아마 일말의 망설임 없이 엘라를 공격할 것이다. 상대가 크게 다치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의 실력이면, 그녀가 크게 다쳐도 금방 치료해줄걸? 걱정하지 말고 당당하게 승부에 임하렴.’

       ‘네, 아버지.’

         

       지몬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멋지게 원더스타인에게 복수도 하고, 건방진 엘라도 혼쭐 내주고, 레이나도 적선하듯 그쪽에 떠넘길 수 있었다.

         

       “황금 카니발! ‘땅볼 외야수’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9번째 미니 게임이 끝났다. 그는 주변 동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박장대소했다.

         

         

       ***

         

         

       레이나는 엘라를 부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것이 모두를 위한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상황은 지몬이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그가 잘못 판단한 것도 있었다. 바로 엘라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는 그녀가 친구이자 차후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레이나와 제대로 싸우기 어려울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그녀 역시 레이나를 향해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험악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쾅.

       서로를 향해 날아간 두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것은 그냥 부딪친 게 아니었다. 레이나는 무릎으로 엘라의 가슴팍을 찍으려 했고, 엘라는 팔꿈치로 레이나의 턱을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격은 제대로 적중하지 못했다. 레이나의 무릎은 엘라의 반대편 손이 막아 냈고, 엘라의 팔꿈치는 레이나의 팔뚝이 막아 냈기 때문이다.

         

       팟.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충돌했으면 바로 그 자리에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몸을 ‘벽’으로 삼아 밀쳐냈다.

         

       “믿기지 않는군.”

         

       사회자는 경기를 해설하는 것도 잊고 그들의 싸움을 넋 놓고 바라봤다. 방금 그들은 4가지 수를 동시에 준비하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첫째, 상대를 공격할 방법.

       둘째,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낼 방법.

       셋째, 상대를 밀어내서 자신이 공이 있는 방향으로 떨어질 방법.

       넷째, 상대를 밀어내서 상대가 공이 없는 방향으로 떨어지게 할 방법.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그 순간, 수영장에 널린 공의 위치를 파악하고 수 싸움을 했던 것이다.

         

       “저게 가능한 건가?”

         

       진행요원으로 서 있는 레카체프 학생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벌써 몇 번이나 본 장면인데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처음 두 사람이 공중에 충돌했을 때, 그들은 그녀들을 비웃었다.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 때문에 시합을 내던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이 서로의 공격을 막아 내고 몸을 밀쳐 공이 있는 방향으로 떨어져 내릴 때도 조소를 거두지 않았다.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충격이면 분명 발판으로 삼은 공이 잠길 거라 여겼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들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이 쓴 기상천외한 방법 때문이었다.

         

       떨어지는 두 사람은 그냥 공 위에 몸을 내던지지 않았다. 두 다리 혹은 두 팔을 직선으로 쭉 뻗으며 날아갔다.

         

       그들은 공에 떨어지는 순간, 뻗은 두 다리 혹은 두 팔로 공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지나면서 공에 회전 운동을 가했다. 그러자 그들의 몸은 공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지나쳐 처음보다 훨씬 느려진 속도로 근처에 있는 다른 공으로 날아가 안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공에 내리꽂히던 두 사람의 경로가 공에 닿는 순간 구부러져서 옆에 있는 공으로 날아간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사회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레카체프의 조교답게 학생들보다는 식견이 넓었다. 그는 방금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한 건지 알아차렸다.

         

       “스윙바이!”

         

       그의 외침에 관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학생들은 뭔가 깨달은 듯 입을 쩍 벌렸다.

       스윙바이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중그네 기술 중 하나였다. 그네의 회전 운동을 통해 곡예사가 공중에서 가속, 감속하거나 방향을 트는 것을 의미했다.

         

       두 사람은 낙하 에너지 중 수직으로 실리는 힘은 공에 실으면서, 동시에 수평으로 실리는 힘으로는 공을 회전시킴으로써 운동의 ‘총량’을 줄이고 ‘방향’을 바꾸었다.

         

       즉, 첫 번째 공에 회전 운동을 가해 그것을 ‘그네’로 삼아서 두 번째 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관객들은 사회자 설명하는 것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들이 부리는 마법은 즐길 수 있었다.

         

       “우와아아!”

       “미쳤네! 미쳤어!”

       “진짜 저 둘 사람 맞아?”

       “믿기지 않는군!”

         

       관객들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엘라와 레이나는 첫 충돌 이후로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날카로운 마찰음, 거친 파공음, 찢어지는 파열음이 돔 안에 가득 메아리쳤다. 둘은 공과 공 사이를 뛰어다니며 빠르게 부딪쳤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두 사람은 싸운다기보다 합동 공연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힘, 기술, 속도, 수읽기, 반사신경 등 약간씩 차이가 있었으나 종합적인 면에서 동등함을 이루면서 나온 결과였다.

         

       그렇게 5분이나 뛰어다니면서 두 사람도 지쳤는지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숨을 골랐다.

         

       둘은 서로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년배 중에 이렇게나 자신과 대등하게 기술을 겨룰 수 있는 상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그게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아니, 그런 실력자였기에 그들은 서로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뺏길까 두려워했다.

         

       ‘정말 기억이 돌아왔을 때, 단장이 나 대신 쟤를 부단장으로 삼는다면…….’

       ‘단장님이 정말로 믿는 건 쟤야. 내 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가짜 역할 놀이…….’

         

       둘은 서로를 향해 눈을 빛냈다. 질 수 없었다.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원더스타인의 옆에 어울리는지 결정하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둘이 가만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데, 두 사람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두 사람?

         

       그것은 원더스타인의 것이었다. 그는 둘이 격렬하게 공중을 뛰어다닐 때 말을 걸었다가 혹시나 발이라도 삐끗하기로 할까 봐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 너무 분위기가 험악한 것 같네요. 제 생각에는 말이죠…….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둘이 동시에 소리쳤다.

         

       “당신은 닥치고 있어!”

       “단장님은 끼어들지 마세요!”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둘 다 원더스타인이 혹시나 상대를 더 옹호하는 투로 말하면 어쩌나 겁나서 소리친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통했다.

       그들은 기이한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를 향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덤벼! 아주 박살을 내줄 테니까!”

       “누가 할 소리!”

         

       빠앙.

       다시 뱃고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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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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