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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엔리냥이라.

       

       이미 수많은 벌칙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엔리는 당혹 속에서도 생각보다 침착했다. 이 정도면 그녀의 여러 예상 중에서 최악은 아니었으니까.

       

       아라 씨. 무르시군요!

       

       저는 이래뵈도 스트리머 생활을 오래 해 온 사람입니다! 예전에 매지컬 리리컬☆ 같은 대사를 수도 없이 쳐 본 인간이라고요!

       

       물론 엔리냥이를 하면 부끄러울거에요. 처음 모에모에뀽을 하면 얼굴이 벌게질 테고 나중에 영상후원이 날아들면 비명을 지르겠죠.

       

       그렇지만 괜찮아요. 제가 여태까지 쌓아온 흑역사가 어디 한 둘 인 줄 아시나요? 그 위에 한겹이 더 쌓이는 정도로 전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라 씨. 저를 괴롭히고 싶으셨다면 공포게임이나 괴악한 게임의 켠왕을 시키는 편이 나았을거에요. 수치심보다는 공포와 괴로움, 분노가 더 강했을 테니까!

       

       이미 저는 수치심에 반쯤 면역이라고요! 반쯤만 면역이라서 안 먹히는 건 아니지만! 철판을 깔아도 나중에 이불을 차는 걸 막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고요!

       

       “혹시 착각하실까봐 말씀을 드리자면 메이드 카페 게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네?”

       

       엔리냥이인데 그 게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현실에서 엔리냥이가 되어달라는 이야기죠.”

       

       이는 엔리의 예상에서 한참 멀리 벗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아라가 무언가 게임을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아라는 달랐다. 그녀는 이쪽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 해왔던 엔리도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방법을 내밀었던 것이다.

       

       “어제 게임 끝나고 게시판을 뒤져보는 데 이게 제일 마음에 들더라고요.”

       

       개같은 집단지성! 왜 내 방송에서 훈수하라고 할 때는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만 내뱉으면서 이럴 때는 참신한 방법을 내놓는 건데?!

       

       “괜찮죠?”

       

       엔리는 차마 아라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이 두꺼운 것은 사실이다. VR세상에서 스트리머로 활동하며 오만가지 일을 해 본 엔리니까.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VR의 아바타가 현실과 똑같다는 미명하에 아바타로 오만 일을 벌이던 엔리는 오히려 현실의 몸을 가지고 하는 것에 내성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먹방이라든가 토크 같은 평범한 컨텐츠라면 괜찮지만 코스프레나 벌칙 같은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특히 이번처럼 대놓고 흑역사를 만들기 위한 장면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제가 생각한 건 이래요. 엔리 씨가 엔리냥이가 되어서 저한테 음식을 만들어 주고 애교까지 보여주시는 거에요. 재밌을 것 같죠?”

       

       혼자서 하는 것도 얼굴이 붉어져서 터질 것 같은데 그걸 지인의 앞에서 하라고요?

       

       아라 씨. 당신은 악마이신가요? 대체 저를 어디로 밀어 넣으실 생각이신거죠? 이건 사회적인 죽음이잖아요!

       

       “근데 그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아라 씨도 카메라 앞에 서셔야 하잖아요.”

       “얼굴만 가리면 문제 없잖아요? 가면을 쓸게요.”

       

       엔리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아라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까지 제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싶으신 건가요?! 어제 마음속에 담은 원한이 그토록 거대했었던 건가요?!

       

       덕분에 마이튜브 각은 더럽게 잘 뽑히겠네요. 편집자가 기뻐할 게 분명해요. 전 아니지만!

       

       “그리고. 어. 저기. 코스프레 의상 같은 거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나비린 씨한테 물어봤는데 주문하고 이틀이면 된다 그러더라고요. 돈은 제가 낼게요.”

       

       나비린! 당신 어제 아라 씨 방송에 도네이션으로 출현하더니 개인적인 질문까지 받아준 거에요?! 도대체 왜!

       

       상황 굴러가는 거보면 아라 씨가 노리는 게 뭔지 훤히 보이잖아요! 일부러 그런건가요?! 뒤에서 팝콘 먹고 있는 거군요!? 저 같아도 그랬을 테니까 뭐라고는 못하겠지마아아안.

       

       “엔리 씨. 못하겠어요?”

       “아뇨. 저기. 그게.”

       “그럴 꺼 같아서 다른 선택지도 준비했어요. 죽음의 술래잡기라는 게임 아시죠?”

       “네.”

       

       그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창작물 속의 살인마가 되어서 다른 유저들을 쫓아가 사냥하는 게임.

       

       유저들의 실력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살인마가 괴롭힘 당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다들 살인마보다는 생존자를 선호하는 신기한 작품이었지.

       

       워낙 공포와 관련된 걸 꺼려하는 엔리이다 보니 그 게임을 한 적은 없지만 이름 정도는 들어 보았었다.

       

       “엔리 씨 시청자를 포함해서 네 사람이 생존자 역을 하고 제가 살인마를 할 게요. 거기에서 탈출하면 끝. 어때요. 괜찮죠?”

       

       분명 그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를 제안한 사람이 아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더라도 고인물 이상의 괴악함을 보여주는 아라다. 술래잡기의 고인물 여럿이 모인다 한들 과연 아라를 상대로 무언가를 할 수나 있을까?

       

       게임의 시스템이고 뭐고 간에 다 박살을 내버리는 게 저 사람인데?

       

       그러니까 지금 아라가 한 제안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야 했다.

       

       현실에서 엔리냥이를 하다가 수치사를 당할래. 아니면 아라라는 살인마를 상대로 도망치는 무간지옥 속에서 괴롭힘을 당할래.

       

       “저는 엔리 씨가 원하는 대로 할게요.”

       

       어느 쪽으로 가도 절벽 아래로 나가떨어진다는 점은 같았지만 그 절벽의 높이는 달랐다.

       

       한 쪽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지만 다른 한 쪽은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었다.

       

       강요였다.

       

       “저기. 아라 씨. 다른 선택지는.”

       “둘 다 못하겠다고요?”

       “그건 아닌데 그게 혹시 또 무언가가 있을까봐.”

       “실망이 크네요. 저는 엔리 씨 때문에 수도 없이 수치를 겪었었는데. 그 날 만들어진 영상만 해도 수십개가 넘는데.”

       

       아라를 그 게임 속으로 밀어 넣은 후 화령냥이가 최선을 다해 귀여운 척을 하던 광경을 직관했던 엔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야 많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채팅창이 불타던게 진압되지 않았냐던가. 먼저 흑역사를 까발려서 선공을 한 건 아라 쪽이라거나. 그 날 후원이 어마어마하게 터져서 흑역사는 만들어졌을지언정 통장은 행복해졌지 않냐던가.

       

       그렇지만 엔리는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지금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그녀의 직감이 고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은근한 미소만을 짓고 있는 아라의 얼굴을 바라보던 엔리는 입을 몇 번인가 열었다 다물기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듯이 이야기했다.

       

       “엔리냥이를 하겠습니다.”

       “정말요? 억지로 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아뇨. 엔리냥이가 꼭 하고 싶어졌어요. 제발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네요. 나중에 복장 구매하시고 나서 가격을 알려 주세요. 돈 드릴게요.”

       “…넵.”

       

       그 메이드 옷을 파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무슨 사고가 터졌으면 좋겠다.

       

       공장에 불이 난다거나, 사장이 돈을 들고서 튀었다던가. 어느 거라도 좋으니까 제발 메이드 옷을 구할 수 없게 됐으면 좋겠다.

       

       엔리의 기도는 무척이나 간절했지만 원래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은 잘만 이루어지지.

       

       이번에도 그러했다. 어쩔 수 없이 메이드복과 고양이 귀, 꼬리를 구매하자 그 다음 날 당일배송으로 그녀의 집에 옷가지들이 도착한 것이다.

       

       자신의 집 거실에 늘어놓은 옷가지들을 구경하던 엔리는 수도 없이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다가올 재앙이라면 겪고 넘기는 편이 낫다고 결정을 내렸다.

       

       *

       

       지난 번 본인의 메이드 방송이 끝난 후로 참 신기했던 점은 생각했던 것보다 본인이 주책을 떠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본인의 마이 튜브는 현재 세 가지로 분류가 되어 있는데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게 무술이고 그 다음이 일상 그 다음이 풀이다.

       

       일상 쪽의 조회수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무술 쪽의 조회수가 워낙에 압도적이다 보니 빛이 바라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본인이 메이드가 되어 주책을 떠는 영상을 올리니 무술 채널에 버금갈 정도의 조회수가 뽑히지 뭐냐.

       

       빌어먹을. 덕분에 최근에 방송을 키면 시청자들이 내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뒤에다가 냥냥을 붙이며 요란을 떨어대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질릴 것이라 생각을 한다만서도 그 언제가 언제가 될 지는 본인도 짐작하질 못하겠구나.

       

       엔리와 함께하는 방송이 끝나고 나면 엔리도 본인의 감정을 느끼게 되겠지. 그는 좀 기대대되는 구나. 나중에 엔리의 방송에 찾아가서 나도 같이 놀아볼까.

       

       <문 열어드릴게요…>

       

       엔리의 집 앞에 도착을 해서 벨을 누르자 잔뜩 기가 죽어 있는 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기 싫은 티가 팍팍 나는 구나. 허나 그럼 어쩌겠느냐. 이미 방송으로 공지까지 끝마친 것을. 모두가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대가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지 않으냐.

       

       “일찍 오셨네요.”

       

       그렇게 만나게 된 엔리는 기이하게도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무어냐. 어찌하여 메이드복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이야.

       

       “기대가 돼서요. 그래서 메이드 복은 어디에 있죠?”

       “너무 재촉하지 말아주세요오오오…”

       

       얼굴이 벌개진 엔리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샜다. 방송에서는 한없이 광대처럼 보이는 이 녀석도 수치라는 것을 알기는 하는 모양이구나.

       

       그리 생각을 하며 웃고 있으려니 엔리가 방 안에서 메이드복을 꺼내어서 들고 왔다. 오. 생각보다 품질이 괜찮구나. 부끄러움을 견딜 수만 있다면 바깥에 입고 다녀도 괜찮겠어.

       

       “그리고 이 쪽이 고양이 귀랑 꼬리요.”

       

       귀는 머리띠처럼 차는 것이고 꼬리는 허리에 밴드를 매듯이 고정시키는 건가.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구나.

       

       “방송은 여기 거실하고 주방에서 할 거에요. 아라 씨가 거실에 앉아 계시면 제가 요리를 해서 가져가는 느낌으로 할게요.”

       “알겠어요.”

       “아라 씨는 가면 준비해 오셨어요?”

       “네. 물론이죠.”

       

       얼굴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은 없다. 정 안되면 역용술로 얼굴을 바꿔 돌아다녀도 되고 말이다. 허나 엔리가 이야기를 하길 되도록 얼굴을 감추는 편이 낫다 하였으니 그를 따를 뿐이지.

       

       “여우네요?”

       “지난번에 화룡무인에서 쓴 게 마음에 들어서요.”

       

       최대한 그와 비슷한 것을 찾아서 주문했지. 실물로 보니 더 괜찮아서 만족스럽더구나.

       

       “이걸 쓰고 있다가 밥 먹을 때만 살짝 들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복장은 그대로 가실 건가요?”

       “문제있나요?”

       

       평소에 입던 것처럼 입고 왔을 뿐이다만 문제될 것이 있는가? 후드티와 청바지 정도면 무난한 복장이라 생각하거늘.

       

       “아니. 그. 하아. 그래요. 그대로 갑시다.”

       “제 옷은 됐고 엔리 씨나 빨리 갈아입고 오시죠? 저 엔리냥이가 기대돼요.”

       

       자아. 어서 내게 그대가 수치에 질려 얼굴이 벌게진 모습을 보여다오. 그것 하나면 본인이 여태까지 겪은 굴욕을 잊을 수 있을 듯 싶으니.

       

       내가 반쯤 강제로 메이드 복을 엔리의 손에 쥐어주자 엔리는 우물쭈물거리다가 기다려달란 말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엔리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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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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