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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건물 옥상이라는 장소 지정을 처음 듣는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한국인 중 일부는 그 오래된 건물 특유의 바닥 전체를 덮은 녹색 도장이나,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싶은 급수 탱크부터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것과 연관이 없는 젊은 세대라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흑백의 환기 장비와 팬, 각 세대를 위한 안테나 설비와 태양광 패널 등의 온갖 현대식 문물의 향연을 도출하겠고.

         

         사실 네오 헤이븐이라고 별반 다를 것 없다.

         전파 수신이 1ms라도 불안정해지면 발작하는 너드들이 가져다 놓은 특수 안테나, 무슨 자애로운 마인드인지 환기구에다 환각성 약물 뿌리는 새끼들 때문에 설치한 초강력 대기 입자 순환 시스템.

         

         멀리서 볼 때 합금강과 네온의 관처럼 보이던 게 가까이 들여다본다고 달라질 리가 없지, 그게 이 동네의 기본 요소니까 전체적인 풍경도 그렇게 비치는 것 아니겠나? 음.

         

         하지만 그런 평균이 속칭 ‘잘 나가는 인간들’. 상류층 거주지나 일부 고급 시설에까지 통용되지는 않는다. 당연하게도.

         

         ……쓰읍, 어허! 방금 죽창 가져오라고 뒤에서 소리친 사람 누구야!

         

         내가 그 표준 편차에서 벗어난 일부 시설에 산다고 자랑하려던 게 아니라, 왜 로비로 안 나가고 옥상으로 올라왔는지를 설명하려고 잠깐 옆길로 샌 것뿐이다.

         

         하여간 차별화된 무언가를 자랑하려는 거주 시설이었다면 호화로운 펜트 하우스가 올라가 있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부분 회사에 소속된 -정신적인 의미의- 노예들이 거주하는 엔지니어 플라자의 경우엔 마모되고 메마른 거주민들의 감성을 달래 줄 정원… 또는 수영장….

         

         그리고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퇴근한 인간들을 최단 경로로 다시 잡아오기 위한… 어흠! 실례,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출근시키기 위한 항공기 이착륙장(Helipad)이 한 켠에 잘 구비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아! 미스 아나스타샤! 정말 간만에 뵙겠습니다. 이거 이거… 그때의 화복 모습도 아리따우셨지만 이런 와일드한 스타일도 꽤 잘 어울리시는군요!”

         

         “어…….”

         

         공교롭게도 헬기(Helicopter)와 호버크래프트(Hovercraft)의 앞 글자를 모두 아우르는 H가 선명하게 칠해진 대형 포트.

         

         엔진조차 꺼 놓지 않은 상태로. 거기에 착륙해서 붕붕거리는 소음을 내며 날 기다리고 있던 차량으로 다가가자, 만면에 영업용 미소를 띤 웬 남자가 양손을 맞잡은 채로 인사를 건네 왔다.

         

         문제라면 난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 정도? 거 누구세요 대체.

         일단 말꼬리를 흐려가며 시간을 벌긴 했는데, 이거 큰일이네.

         

         아니, 굳이 저런 낯간지러운 칭찬-흑역사-을 공유할만한 첫인사 겸 주제랍시고 꺼내는 걸 보면 분명 그 때 에나마 파티에서 만났던 사람이라는 건 분명한데…… 아 맞다.

         

         “분명 그 이번 촬영을 ‘강하게’ 권하면서 명함도 주셨던….”

         

         “네, 네! 맞습니다. 광고 대행사 친구 놈의 명함까지 대신 드렸던 메모리얼 타임즈 연예부의 더글라스 라우렌 MD(Master Director; 우스갯소리로 ‘뭐든지 다한다’의 약자라는 말도 듣는 중간 관리자)입니다. 그냥 편하게 더기라고 불러 주시면 되겠… 아! 혹시 동행할 드로이드가 더 있으시다면 차량 옆면에 있는 전용 적재함을 쓰시면 됩니다.”

         

         “음… 굳이? 그냥 이렇게 둘만 데리고 갈 건데, 이대로 탑승해도 괜찮을까요?”

         

         스스로를 더기라고 소개한. 이 일거리를 진짜 현실로 만들어서 내 앞으로 끌고 오려 노력한 원흉이자 직장인은 ‘아유, 얼마든지요!’ 같은 태평한 대답을 싱글벙글하며 돌려주었다.

         

         겸사겸사 호버크래프트 뒷좌석으로 나와 제로들이 앉도록 친절하게 손수 차 문을 열고 안내하는 제스처를 취해주기도 했고.

         

         그야 댁 입장에서는 파티에서 잠깐 인사치레로 주고받은 말을 실마리 삼아, 관계자 섭외를 억지 부려서라도 따낸 셈이니 기쁜 건 알겠다.

         물론 누군가가 회사 생활을 걸고 일감을 가져왔다는 국장의 말이 미약한 수락의 동기 부여로 작용한 나로선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지만…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주는 거려나.

         

         드르륵… 덜컹!

         

         방송국 업무 차량에 오토 슬라이드 기능이 없을 리도 만무하건만.

         

         우리가. 차가 급발진 좀 한다고 드로이드가 넘어질 리는 없으니 정확히는 내가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일부러 용을 써가면서까지 닫아 잠근 더기 씨는, 후딱 출발해도 좋다는 의미로 운전사에게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마구 휘둘러 보이곤 다시 사뿐히 돌아앉았다.

         

         “커흠…! 여성분의 사적인 준비 시간에 감히 불평불만을 해선 안 된다는 건 잘 알지만, 아무래도 저는 보고를 올려야 하는 입장이라… 조금만 서두르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이것 참, 스튜디오에 있을 메이크업 아티스트보곤 그대로 퇴근하라 전해야겠네요. 아주 온몸에서 후광이 펼쳐지는 것 같은 게…. 실례지만 어느 회사 향수를 사용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

         

         “……아뇨!?”

         

         이건 또 새로운 방식의 정신 공격이네.

         

         딱히 화장 같은 걸 하느라 늦은 게 아니고, 현실 도피하면서 밥 먹고 혼자 구슬치기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나온 것 같은데 난.

         

         …뭐, 아무튼 그가 멋대로 착각하고 납득한다면 별상관은 없었다.

         

         누구는 실적이랑 경력 동시에 쌓아서 기쁘고, 나도 약간 수치스러운 것만 감내하면 인정 욕구도 채우면서 감시망도 넓힐 수 있으니까.

         

         상부상조? 누이 좋고 매부 좋다? 하여간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풀린 일은 아니래도 저쪽이 내 덕분에 이득을 봤다 생각한다면 언젠가 작은 부탁 한두 개 정도는 넌지시 건넬 수 있겠지.

         

         나중에 써먹을 일이 과연 있을지 없을지는 사실 좀 애매한데.

         

         미디어 연관 퀘스트는 많아도, 그 중에서 중앙 방송국 쪽에 직접적인 영향력 투사가 필요한 건…… MD급으론 안 되지 않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랑 권한이 중추직보다 많이 딸릴 것도 같고.

         

         역시 기왕 뭔가를 주고받는다면, 게임에서 여러 퀘스트를 내주는 주체인 모건 국장과 확실한 라인을 뚫어 두는 게 맞다. 으음.

         

         쯧! 차라리 미용 광고 같은 걸 넘어, 보도국장이 친히 여기까지 마중 나올 정도로 중요한 용건이었다면 얘기가 더 편했겠다.

         

         악성 코드는 그것대로 슬쩍 깔아 놓고 세간에서 유행하는 백신 하나 써볼 생각은 없냐며 영업이라도 해볼까? 아쉽다 아쉬워.

         

         “하아….”

         

         내 매몰찬 대꾸에, 그런 쪽으로 잡담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확실하게 드러났는지 잠시나마 조용해진 차량 내부.

         

         시간을 들여서 자세히 살펴본다 한들 특별한 점은 없었다.

         

         단순한 공용 업무 차량에 뭘 기대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암시장에서 쓰던 리무진처럼 수상한 잠금 기능이 달린 것도 아니요, 에나마 의전용 세단 마냥 화려한 맛이 강하지도 않았으니 되려 편하게 긴장을 풀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 주변에 탐지되는 위협 요소는 아직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거리 저격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니 제 의체들이 가려드리는 부분 이상으로 창가 쪽에 노출되는 건 가급적 삼가주시길. –

         

         “얌마.”

         

         그러니까… 왜 하필 지금. 온 세상이 나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구냐고. 괜히 무섭게시리.

         

         어쩐지 유달리 조용하더라니, 차에 탑승한 순간부터 여지껏 천지사방을 스캔하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얼마 전에 엘리시움 헤드 헌터가 불쑥 찾아왔다가 쫓겨난 것도 그렇고. 얘랑 같이 호버크래프트 한 대를 자폭용 폭탄으로 바꿔서 날려버린 경험도 있었지 참.

         

         사주 경계를 모두 제로에게 일임한 탓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서 더 예민하게 구는 거라면 어쩔 수 없다. 내 두 눈 시력이 2.0은 가뿐히 넘는다 해도 진짜 기계에 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일부러 집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코지할 만큼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걸? 그리고 다짜고짜 죽이는 것보단, 대화를 나눠서 타협점을 찾는 게 이득처럼 보이도록 항상 조신하게 행동했다고? ……나름.”

         

         정확히는 그럴 만한 인간들은 벌써 다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없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아무튼.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려 경치를 구경했다.

         기본적으로 지상 30, 40층 정도는 깔고 들어가는 게 네오 헤이븐 빌딩인만큼 지금 우리는 어림잡아 상공 200m 내외로 날고 있는 게 아닐까.

         

         정비 상태가 어떨지도 모르는 데다가 완벽한 타인이 운전하는 호버크래프트를 통해 공중으로 느긋하게 이동하는 건, 여차하면 제로가 나를 안고 뛰어내릴 수 있다 쳐도 조금 부담되긴 한다.

         

         응, 나중에 정치 및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적대 세력’들이 명확해지면 교통 사고가 무서워서 차를 못 타겠다며 호들갑 떨어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이불 밖은 위험한 건 상식이랍니다. 여러분? 그러니 몸집을 키울 거라면 저처럼 최대한 은밀하게 세력을 늘립시다. 그것마저 든든한 뒷배를 미리미리 만들어 놓고 나서야 가능한 계획이겠지만!

         

         …아니, 잠깐만. 무슨 망할 광고 하나 촬영하러 가는데 이런 무서운 얘기를 계속 해야 돼?

         

         –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공영 미디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 치고는 메모리얼 타임즈 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네트워크 상에 풀린 정보가 굉장히 적은 터라 신중하게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

         

         “그거야 뭐….”

         

         말끝을 흐린 채, 앞 좌석에서 운전사에게 빨리 좀 착륙하라는 채근을 멈추지 않는 더기 MD의 목덜미와 귓가에 번들거리는 신경 임플란트를 흘겨봤다.

         

         대부분의 예산이 기업 공용출자금으로 이루어진 임시정부부처 아래에 있는 방송국? 무늬만 공영 방송이지 실상은 독립된 미디어 기업이다. 그것도 존나게 영리 목적인.

         

         아마 메가 코프를 본받아서 머리에 비밀 유지용 제어 칩을 달고 사는 처지이리라.

         어떤 의미로는 사소한 정보가 새나가는 것 하나하나가 기술 유출이나 다름없는 시장이라 더 강도 높은 통제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나도 약간은 기대하고 있다.

         

         퀘스트나 의뢰 같은 게 엮이지 않은 상태에서 보는 날 것 그대로의 연예계, 미디어 업계는 어떤 느낌일까 솔직히 궁금하지 않나?

         태평하게 구경하겠다는 건 아니고, 대중의 민심을 좌지우지하는 나팔수의 적나라한 실태를 본다는 관점으로다가. 아니면 나만 그런가.

         

         물론 딥 웹에 도촬 영상들이나 추출 기억들이 돌아다니긴 하는데, 실체험을 조금 더 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해커 놀이에 너무 심취할 것 같아서… 약간 조심하고 있는 편이라 해두겠다. 어흠…!

         

         아니 과장없이, 딸깍 한 번 잘못하면 바로 심연의 지식이 막 튀어나온다니까 이 미친 가상 세계는?

         

         부우우우웅… 쿠궁!

         

         “자자, 그럼 곧바로 대기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보기보다 간격이 넓으니 발 밑 조심해서 하차하시고, 어여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어느새 여러 구획을 가로질러 비행한 호버크래프트가 방송국 착륙장에 안착하자마자 또 날듯이 선행해서 안내하려는 MD를 따라 움직이려던 그 때, 문득 뭔가 그러려니~ 하고 접어두고 있던 게 뇌리에 떠올랐다.

         

         그… 제로가 분명 비행 중에 탐지된 위협 요소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허면 내 전용 스토커로 배정된 마사나리는 설마 이걸 그냥 지상으로 파쿠르하며 달려서 따라오고 있는 건가 싶어서.

         

         ……열 잔뜩 받은 상태로 어디 건물 외벽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지켜보고 있는 거 아니야?

         

         무섭다. 사이버 닌자.

         에나마 애들이 세뇌랑 사상 교육을 빡세게 하는 이유가 이렇게 다 있다니까? 업무 환경이 가혹하기 그지없어요 아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교회 에피소드에서 더기 MD에 대한 묘사는 ‘명함을 받았다.’ 정도로 끝마치고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참 뒤에나 이렇게 다시 나올 얘기였으니 그냥 생략하길 잘 한 것도 같네요.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것도 열이 38도까지 오르는 꽤 독한 녀석으로요.

    얼마 전 비 오는 날에 지방 다녀왔을 때, 저를 빼고 다른 가족이나 친척들이 전부 시름시름 앓은 터라 ‘아, 난 완전 멀쩡하네 ㅋㅋ 굿.’ 이딴 생각이나 하며 간호하다가 한 박자 늦게 옮았습니다.
    한 지붕 아래에 같이 사는데 잠깐 멀쩡했다고 깝친 나란 새끼… 진짜 모지리 새끼….

    지금도 거의 옴짤달싹 못하는 수준이긴 한데, 죽어도 정상 연재가 불가능한 컨디션이라 생각되면 정식으로 휴재 공지를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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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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