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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제국의 많은 기자들이 세기의 순간을 찍기 위해 지브롤터 협곡에 모였지만, 그곳에 있던 이들은 수습이거나 갓 신문사에 입사한 신출내기들이었다.

     편집장이라거나 베테랑 기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왕도에 있다.

     대사관의 허가를 받고 왕가의 출입허가증을 목에 걸어, 노스트럼의 예법을 명확하게 익혔다는 전제 하에 왕궁에 출입을 허가받았다.

     비행선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내가 거기에 있을 걸!’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곧 생각을 바꾸어 왕도에서 황제의 비행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협곡을 넘어선 이후로 계속 하늘을 날아오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최소한 왕도의 성까지 비행선으로 넘어서지는 않겠지만, 왕도 근처로 다가오는 하이레딘 호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멋진 그림이 되겠지.

     혹은 왕국의 성벽을 넘어가는 모습이 나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멋진 장면이 될 것이다.

     제국의 비행선이 결계가 펼쳐진 왕국의 상공을 뚫고 왕도에 착지한다는 말이니, 그만큼 왕국과 제국 사이의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개선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당장 이곳에 황제가 온 이유만 하더라도 평화의 움직임이다.

     이왕이면 왕국의 공주와 제국의 황태자가 서로 약혼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더 좋겠지만, 제국에는 아쉽게도 공식적으로 황태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노스트럼의 여왕과 결혼을 시키려고 했다면 진작 한 명을 데려다가 황태자로 만들었을 터.

     그런 일은 없다.

     그 대신 왕국 내부의 후작가, 지브롤터 가문의 후계자와 제국의 황녀가 결혼을 위한 약속을 노스트럼의 유서 깊은 곳에서 진행할 뿐.

     500년 찬란한 역사를 가진 장소.

     노스트럼 왕국의 수도.

     그 이름은, ‘톨레도’.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여왕의 주최하에, 왕도에는 왕도 전체를 무대로 하는 축제이자 연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레이 지브롤터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두 사람을 위한 노스트럼에서 두 번째로 성대하고 화려한 연회.

     그 연회는 지평선 너머의 하늘에서 제국의 배가 하늘을 날아, 왕도의 역으로 들어오는 레일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고 착지하여 왕국의 활짝 열린 성문을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 *

     

     와아아ㅡㅡㅡㅡ!!

     갑판이 아닌 3층의 소형 연회장에 설치된 창을 통해 밖을 보자, 밖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우리를 향해 작은 손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범왕이라는 평가는 취소해야겠군.”

     레일 좌우로 도열한 병사들과 왕도 시민들이 흔드는 손깃발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깃발 세 개를 함께 흔들다니. 이건 누구의 언질이었을까. 응?”

     “카르멘 왕비가 제국 황실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합스베르크 황태자의 가장 큰 정적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아, 그렇군. 그녀가 가르쳐준 건가.”

     카르멘 왕비는 제국에 대해 깊이 몰랐지만, 제국의 것들을 책과 신문을 통해 빠르게 이해하고 흡수해내갔다.

     그런 그녀의 정치공학적 수단이 지금 왕도의 환영인파로부터 빛나고 있다.

     거리에 비행선-원래는 마도자동선을 보러 나온 왕도 사람들은 모두들 노스트럼, 지브롤터, 그리고 테르시안 제국의 깃발을 든 채 흔들고 있었다.

     “하긴. 모르가니아의 흑장미가 아니라 자네가 준비한 거라면 테르시안 제국의 깃발을 준비했을 리는 없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면서 그러나, 후후후.”

     합스베르크 황제는 팔을 들며 은근슬쩍 자신의 소매에 달린 단추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평범한 은색의 단추지만, 그 안에는 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합스베르크 개인의 문장.

     그리고 그것은 조만간, 혹은 언젠가 유일무이한 대륙의 상징으로서 자리잡게 되겠지.

     미래.

     합스베르크 황제가 노스트럼을 정복하자마자 통일대륙력을 선언하고, 국호를 ‘합스베르크’로 지었던 때의 국기에 새겨진 상징과도 같이.

     “여왕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당장은 왕궁에 계시겠죠. 옥좌에서 황제를 맞이하려고 할 겁니다.”

     “옥좌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그 자는 이곳에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

     “위험한 거 아닌가?”

     “…….”

     합스베르크 황제는 지브롤터 방향을 가리켰으나,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과연. 다른 건 몰라도 가족에 대한 대처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해뒀다는 건가.”

     “열차가 만들어진 덕분에 왕도에서 지브롤터까지 작정하면 1시간이면 편도로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법의 기적을 이용한다면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을 시간만에 텔레포트도 가능하겠지.”

     “항상 마법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곳 왕도에는 넓은 대마법 보호막이 펼쳐져있으니 불가능합니다.”

     “대마법 보호막이라….”

     황제가 창밖, 왕도의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상급 마법 이하의 공격은 하늘을 통해 날아오는 것도 무효화한다는 그 보호막?”

     “문헌에 따르면 황금룡 지오 노스트럼이 내려다 준 축복이라고 하더군요. ‘마나돔’이라나 뭐라나.”

     “수호룡이 만든 건지 아니면 건국신화 당시의 대마법사가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공중으로는 쳐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군.”

     “예.”

     만일 공중으로 강습하는게 가능했다면, 회귀 전의 왕도 공략전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성전으로 펼쳐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도망을 쳤다고는 해도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과 충성병자들이 남아있었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왕도 톨레도의 관문을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전통적인 공성전이 된 배경에는 하늘에서의 공중강습이 불가능했고, 실패했기 때문.

     비행선 아래로 낙하산을 펼치며 노스트럼 상공에서 침투하려고 했으나, 곧 보호막에 강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그대로 보호막을 굴러 성벽 아래로 떨어진 병사의 수는 두 자리 수를 금방 넘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자네라면 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어떻게 계획을 세우겠나?”

     “평화와 화합을 위해 오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되겠습니까?”

     “비행선의 입구가 열리기 전까지는 그 어떤 소리도 다른 곳에 흘러가지 않지. 말해보게. 어떤 식으로 공략할 건가? 500년 동안 단 한 번도 공략당한 적이 없는 왕성을.”

     협곡이 마지막 관문까지 뚫리지 않은 것처럼, 역사를 돌이켜봐도 왕도가 점령당한 적은 없었다.

     “의외로 쉬울 겁니다. 누구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죠.”

     “해봐서 알고 있나?”

     “해봐서 알고 있다기 보다는, 500년 동안 보수만 몇 번 해둔 낡은 성벽 정도면 마스터급이 성벽을 통째로 썰어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이 무슨 노스트럼같은 대답이란 말인가!”

     황제가 어처구니없다는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네가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왕도를 점령할 거라고 생각했네만.”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왕도를 공략하는 방법입니다만?”

     “성벽을 썰어버리는 게?”

     “V자 모양으로 성벽을 잘라버린다면 왕도 안에 있는 병력 절반은 전의를 상실하게 되겠죠. 성벽이 아니라 성문이라고 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거고.”

     “음….”

     “물론 저기 저 성문이나 성벽 말입니다. 어지간한 마스터급이 아닌 이상 오러를 쓰더라도 쉽게 베이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새, 우리는 왕도의 중앙을 가로질러 일반 가도의 위로 올라, 왕성으로 향하는 내성의 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성문을 강제로 부수고 열어젖힌다. 그것만큼 확실하게 왕도를 공략하는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무력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 때는 머리를, 지혜를 짜내야겠지요.”

     나는 아래를 가리켰다.

     “땅굴을 파서 내부에서 침투하는 방법을 생각해내든, 어둠을 틈타 적의 보호막이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이나 방법으로 공중에서 침투하든, 아니면 공성전이 펼쳐지기 전에 미리 내부 인원을 매수하여 몰래 성문을 열게 하든, 전통적인 공성전의 방식을 이용하든.”

     “전통?”

     “원래 공성전이라는 게 식량 보급을 차단하고 굶어죽을 때까지 맨 땅에 드러누워서 버티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련된 방법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공복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법이죠.”

     “명답이군.”

     합스베르크 황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어서 다 말하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자네는 그것 말고도 다른 방법을 수십 가지는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이론으로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국에서 지브롤터 협곡의 관문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제국의 수많은 아카데미에서 학사들이 레포트를 쓰고 대학원생들이 논문 주제로 쓰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하. 그 대학원생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래서 대신 노스트럼 왕국의 성문을 두드리는 걸로 논문 주제를 바꾼 겁니까?”

     “하하. 그렇다고 진짜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잖나.”

     밖에서 안 들린다고 이런 이야기를 마구 해도 되는걸까.

     저기 바깥에서 제국의 황제를 향해 열렬히 깃발을 흔드는 왕국 백성들이 이 대화를 들으면 어떤 말을 할지 참 기대가 되는 바.

     “슬슬 내리시죠. 지금부터는 걸어가셔야 하니.” 

     “술을 마셔서 그런가, 조금 비틀거릴 것 같은데. 부축해주겠나?”

     “지팡이는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매정하기는.”

     황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곧 비행선의 마도엔진이 움직이는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동력이 멈추니 자연히 속도도 줄고, 무게 덕분에 바퀴 또한 느려지며 바닥과의 마찰로 서서히 움직임이 멈추기 시작했다.

     “안내를 부탁하네.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

     “따라오십시오. 합스베르크 폐하.”

     문이 열린다.

     비행선의 선수를 덮고 있는 덮개가 좌우로 저절로 열리며, 넓은 판자가 앞으로 쭉 뻗어나가며 경사를 만들었다.

     저벅, 저벅.

     내가 앞장서서 옆으로 걷자, 합스베르크 황제는 내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나왔다.

     “후후.”

     황제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굳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올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사실상 나의 왼팔과 황제의 오른팔이 크게 움직이면 서로 맞닿을 거리까지 다가와 걷는 바람에 조금 곤혹스러웠다.

     “황제 폐하. 일단은-”

     퍼ㅡ억.

     순간, 거리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좌우로 도열한 의장대의 악기 연주가 멈추고, 깃발을 흔들던 백성들마저도 깃발을 멈췄다.

     “흠.”

     예상은 했지만, 설마 벌써 이런 미친 짓을 시작할 줄이야.

     “이, 이…!”

     의장대로서 악기를 들고 있던 흑장미 기사가 다급하게 어떤 노인을 향해 몸을 날려 덮쳤다.

     노인의 손에는 껍질만 봐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보이는 썩은 달걀이 들려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이미 이 앞까지 날아왔다.

     단지 그걸 내가 바로 지팡이를 휘둘러 쳐냈을 뿐.

     “그레이.”

     황제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누구도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이래도, 노스트럼을 그대로 놔둘 것인가?”

     “폐하.”

     나는 구금되며 무언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노인을 향해 가볍게 손으로 엄지를 긋는 시늉을 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단수가 아닙니다.”

     “…….흐하하하!!”

     황제는 걸음을 멈추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좋아. 어디 한 번….”

     히죽.

     “노스트럼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도 같은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왕도에 100명이 있다면, 최소한 30명 정도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도 같은 인간일텐데.”

     “제 답은 언제나 같습니다. 단.”

     나는 정적이 내려앉은 대로의 앞을 가리키며 속도를 높였다.

     “그게 만일 100명 중 99명이라면, 그 99명은 제 손으로 숙청할 것입니다.”

     “기대하지.”

     음악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정적 가운데.

     “자네가 죽이기를 마음 먹는다면, 나보다도 더 잘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래서 참는 겁니다.”

     황제가 왕성에 당도했다.

     “한 번 죽이기 시작하면, 1명도 남기지 않고 전부 다 죽여버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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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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