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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264 – 식재료 채집 던전>

     

    오크노디가 신앙의 힘으로 기말고사를 헤쳐 나가기 싫어서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면 이는 안데르센 대공자도 마찬가지였다.

     

    “안데르센은 신성력이 그렇게 질려요?”

    “주 2회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다보면 오기로라도 신성력은 배우고 싶지 않아지거든.”

    “그래도 미행은 너무했어요!”

    “미안하다.”

    “실수로 살해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다음부터는 제대로 소리를 내고 따라와 주세요!”

    ‘그게 문제냐!?’

     

    황당함도 잠시.

    안데르센 대공자는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귀족사내아이에게는 대부분 철부지 시절이 있다.

    집사나 기사, 시녀와 시종들의 엄중한 감시를 피해 몰래 정원 어딘가에 숨거나 자신만의 세계를 늘려나가고자 작은 모험에 나선다.

    안데르센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가주에게 들킨 뒤로는 귀족답지 않다며 기능훈련을 금지당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쓴 <따라잡기>와 <길들이기>가 능숙했다는 점은 왠지 뿌듯했다.

    성적이 올랐다고 옆에서 굉장합니다, 대단해, 스고이를 외치는 귀족들의 칭찬보다 미행실력이 위협적이었다는 오크노디의 칭찬 아닌 칭찬이 훨씬 좋았다.

    마치 동심으로 돌아온 기분!

     

    “봐줬다는 건 네가 하려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건가?”

    “고민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친구들이랑 같이 놀았다가 크게 다친 친구가 있거든요.”

    “걱정 마라. 나는 네 친구들보다는 몸도 튼튼하고 강할 테니까.”

    “그렇겠죠? 남캐한정으로는 나름 4티어 캐릭인데. 몇 천 명 사이에서 40위 안에 들었으면 장한 거죠.”

    “?”

     

    평소처럼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이야기를 하는 오크노디지만 수락했다는 것은 알겠다.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하는 건가?”

    “보물찾기요!”

    “보물찾기…?”

    “교수나 교관님들이 <종교의 날> 주간이벤트 도중에는 교단 사람들을 감시하려고 인력이 집중배치 되는 건 알고 계시죠?”

    “그런 낌새를 눈치 채기는 했다. 강의도 대놓고 전면취소에 자율시간이라고 정해졌으니까.”

    “1학기에는 지금이 아카데미 보안이 가장 취약해질 때거든요. 그래서 이틈에…”

    “보물을 훔치려는 건가?”

    “몬스터를 훔치러가요!”

    “…몬스터? 보물이 아니라?”

     

    엉뚱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듣고 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인력을 끌어오더라도 보물을 지키는데 감시가 소홀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 곳은 언제나 보안이 철두철미한걸요. 반면에 몬스터우리는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조심해야지, 라는 인식이 박혀있으니까 의외로 침투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이고요!”

     

    창고감시는 별도의 전담인력을 사용하겠지만 몬스터우리를 지키는 일 정도는 상시 출입하는 사육사를 제외하면 교대근무 하는 교관 정도뿐이다.

    보물이 사라지면 큰일이 일어나겠지만 몬스터가 사라지는 것쯤이야 아카데미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아카데미 측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틈에 몬스터우리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전부 죽이고 기능경험치를 잔뜩 벌겠다는 계획인가? 나쁘지 않군.”

    “히에엑. 무슨 잔인한 말을 하는 건가요! 그런 비효율적이고 끔찍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추적당한다고요, 그렇게까지 거친 짓을 하면!”

    “…그럼 몬스터우리에는 왜 들어가려는 거냐?”

     

    오크노디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교내식당 메뉴의 레퍼토리가 거의 변하지 않거든요. 점점 도감수집도 늦어지고 있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직접 채취할 작정이에요!”

     

    잘 보니 오크노디와 메이드의 등에는 커다란 짐과 그 사이로 삐져나온 도구들이 보였다.

     

    “…채집도구?”

    “넹. 우리는 몬스터한테서 나오는 요리재료를 채집할 거예요!”

     

    하얀 면장갑을 쓰고 착유기를 들어올리는 오크노디의 모습에 안데르센은 괜히 왔다는 후회를 떨칠 수가 없었다.

     

    “아시겠지만 오크노디님의 계획을 여기까지 들은 이상, 대공자님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습니다.”

    “동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일주일 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금당한 채로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겁니다.”

     

    메이드의 덤덤한 경고에 안데르센은 마지못해 오크노디의 <우당탕탕 몬스터 요리재료 채집 대작전(초급)>에 동참하게 되었다.

     

     

    * *

     

     

    기프트 아카데미에는 매 요일마다 참여 가능한 이런저런 일일퀘스트던전이 있다.

     

    포인트 채굴 관련으로는 일전에 들렀던 모험학부 <브론즈 교수의 지하보물고 계단>

    식재료 채집 관련으로는 생산학부 <고든 교수님의 몬스터사육장>.

    바로 이 몬스터사육장이 이번 종교의 날 특수를 맞이해서 교수와 교관들이 크게 줄어든 틈에 우리가 몰래 들이닥칠 특수시설의 이름이다.

     

    “자, 마구마구 훔쳐갑니다!”

    “선전포고 하면서 들이닥치는 거냐… 그 엄청나게 커다란 모자부터 들킬 작정 가득이잖아. 좀 더 조심스럽게 침투할 생각은 없는 거냐?”

    “에, 그런 거 초심자나 신경 쓰는 거잖아요. 고수는 대놓고 들어가도 상관없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정말로 아무도 지키지 않는 몬스터사육장에 당당하게 정면에서부터 들어가는 오크노디.

    입구의 자물쇠는 어쩌려고?

    물어보기도 전에 헤어핀을 뽑아들고는 달칵 3초컷 해버렸다.

     

    ‘빨라…’

     

    과연 의적의 수제자.

    하지만 여기는 몬스터사육장이다.

    동네 부잣집에 쳐들어가도 집에서 기르는 맹견과 마주치면 달려드는 개부터 어찌하지 않으면 곤란한데 하물며 이쪽은 몬스터다.

    제정신이 박힌 도둑이라면 절대로 침입할 리도 없고, 설령 침입해도 자칫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사육사가 없을 때 몬스터사육장에 들어가는 것부터 이미 먹이가 될 생각이냐는 의문밖에 떠오르지 않을 멍청한 짓!

     

    “깍깍깍”

    “까가가각!”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인간사육사 대신 몬스터들을 지키고 있는 살인캣들이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아, 여긴 맡겨주십시오. 고양이는 배를 건드리면 싫어합니다.”

     

    고양이수인(아님)메이드 에이프릴이 당당하게 두 사람 대신 앞으로 나섰다.

    안데르센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과연 고양이인간은 어떤 식으로 고양이를 다룰까.

     

    “자, 이거 봐.”

    “갸오?”

    “옳지.”

     

    품에서 꺼낸 레이저포인트로 고양이들의 시선을 반대편으로 쭉 돌려버린 에이프릴.

    몬스터들도 기가 죽을 정도의 냥냥펀치를 구사하는 살인캣들에게 다가가서는… 그대로 복부를 뻥 걷어차 날려버렸다.

     

    “차는 거냐!?”

    “건드리기를 싫어하는 부위가 약점인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고양이수인이 고양이를 걷어차도 되는 거냐!”

    “하아? 그럼 웨어울프는 사족보행이나 하는 미개한 늑대들을 애완견처럼 키우기라도 합니까? 열등종인데 적당히 취급하면 됩니다 그런 건.”

    “엉망진창이네, 이 녀석 성격이… 오히려 재단스럽다고 해야 하나.”

     

    정확히는 <고양이수인의 99가지 특징을 알아보자>를 읽고 책으로 배운 것을 따라한 성격이지만 에이프릴은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입을 닫았다.

     

    “잘했어 에이프릴!”

    “감사합니다 오크노디님.”

    “자 그럼 셋으로 나눠지죠?”

    “따로따로 채집하는 거냐!? 위험하잖아.”

    “으엑. 안데르센은 상급반인데 초행이니까 무서워 같은 소릴 하시려는 건가요? 하긴 대공자님은 딱히 교내에서 활약한 것도 없고 강의를 잘못 고르는 것으로 유명할 뿐인 사람이니…”

     

    흐린 눈으로 고개를 돌리는 오크노디에게서 느껴지는 실망감에 안데르센은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알았다. 혼자 하나 맡아서 해치우면 되잖아. 뭐부터 채집하면 되냐?”

    “그럼 폭탄양의 털을 깎아주실래요?”

    “폭탄양? 뭐하는 몬스터냐, 그건.”

    “아, 1학년은 모르던가.”

     

    오크노디가 별 거 아니라며 웃는 얼굴로 채집용 단검을 내밀며 말했다.

     

    “털 속에 건드리면 안 되는 컬러털이 있는데 그걸 건드릴 때부터 째깍째깍 타이머가 돌다가 제로가 되면 입에서 해당색깔 마법을 쏘는 애들이에요. 하얀색 털에도 마나가 제법 들어있으니까 양털을 짜서 요리용 기름으로 정제하면 건강에 좋아요!”

    “그런 무시무시한 녀석을 초심자한테 맡기려는 거냐!? 다른 걸로 맡겨!”

    “칫. 거 되게 까다롭네. 그럼 폭탄양은 에이프릴한테 부탁할게요!”

     

    에이프릴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채집용 단검과 양털을 담을 포대를 넘겨받았다.

    원망스럽게 자신을 째려보며 폭탄양들의 우리로 들어가는 에이프릴의 모습에 안데르센 대공자는 귀족으로서의 체면이 단단히 상했다.

     

    “다음은 요리에 좀 더 중요하게 사용되는 재료를 채집하는 건데 폭탄양도 많이 어려워하시니 쉬운 걸로 골라드릴게요.”

    “아니, 어려운 걸로 하겠다.”

    “정말요?”

    “폭탄양이 유난히 곤란했을 뿐이다. 절대로 입에서 마법을 쏘는 양이 무서운 게 아니야. 나는… 그, 양털 알레르기가 있었을 뿐이라고.”

    “아항.”

    “정말이다. 양털알레르기 때문에 겨울에도 양털로 된 옷은 절대로 입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이거 받아주세요.”

     

    오크노디는 제 키만큼 커다란 착유기와 구속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이건?”

    “헤헤. 반입검사하는 직원을 매수해서 지젤이 몰래 들여와줬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에요?”

    “아니, 배낭 말고. 착유기가 왜 이렇게 크냐고. 얼마나 짜려고 작정한 거냐?”

     

    암소한테 직접 우유를 짜도 이렇게 대용량으로 짤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의 크기다.

     

    “아, 그거라면 괜찮아요. 여긴 몬스터사육장이잖아요. 당연히 일반 소가 아니라 미노타우루스의 젖을 짜야 하니까 큰 걸로 가져왔죠.”

    “미노… 뭐? 근육질의 기본 3m가 넘어가는 이족보행 황소 몬스터?”

    “일단은 목줄 정도는 채워져 있을 거니까 박치기랑 후려치기, 발길질을 피해서 이쪽의 구속구로 몸통을 고정시킨 뒤에 메챠쿠챠 착유해주세요!”

     

    미친.

    폭탄양쪽이 훨씬 쉽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바꿔달라고 말하자.

    에이프릴을 붙잡으려던 안데르센 대공자의 눈에 어슬렁어슬렁 땅이 꺼져라 느려터지게 걷던 메이드가 갑자기 3배속은 더 빠르게 폭탄양 우리로 멀어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포인트채굴던전에 이은 식재료채집던전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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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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