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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사실, 청이 둘을 놀리는 데에는 딱히 큰 이유가 없다. 작은 이유라면 타격감이 찰져서 패는 재미가 있다는 정도.

         

       공손요예에게 이 몸 초절청, 하면 ‘와아. 서문 소저 정말 대단하세요.’ 하고 말아버리니 영 매가리가 없다.

       게다가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정말로 제대로 두들겨 맞은 모양이라 고맙고 또 미안하기도 하고. 그나마 날 없는 수련검이라 두들겨 맞은 거지, 아니었으면 공/손/요/예 네 토막에 자모 자르고 획까지 잘라서 발기발기 찢어지고 말았을 터다.

         

       그리고 당난아는 애초에 경지로 때려봐야 맞아주지도 않는다.

       당가는 비공식적으로 왕부와 손잡고 화포까지 보유한, 사실상 현 중원의 천하제일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으니까.

       화포의 화력과 더불어, 독탄까지 장전해 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비대칭 전력을 갖춘 당가의 여식에게는, 일신의 실력 따윈 안중에도 없는 모양.

         

       그러다 보니, 청이 적극적으로 염장을 지를 만한 상대를 찾아다녔다.

       사실, 멀리 안 가도 용봉지회에 가면 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아니던가.

         

       아유, 절정밖에 못 되는 것들이 술 먹고 차 먹고 아주 여유가 넘치네.

       내가 절정일 때는 그냥 노오오오력하느라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칼만 하루 종일 휘두르고 막막 그러지는 물론 않았지만.

         

       “여. 창빈이 아냐?”

         

       “흡, 그, 태사고, 태사고께서 오셨습니까……”

         

       “뭐야. 왜 또 딱딱해졌어? 요 근래에 좀 안 봤다고 또 어려워졌어?”

         

       “그게 아니라, 장문인께서, 자꾸 소저를 막내 사매라고, 계속 그러셔서, 그, 소인이 감히.”

         

       그러면서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에, 청이 샐쭉 웃으면서 대답했다.

         

       “에이, 우리 친구잖아. 유하 진인께서 날 좋게 봐주신 모양인데, 어떻게 내가 화산 제자한테 태사고가 돼. 편하게 해. 편하게.”

         

       “어, 음. 그러면, 그렇게……”

         

       “그런데 정확히 해 두자고. 친구였었지. 배분은 신경 쓰지 않아. 하지만 초절정 무인과 감히 맞먹으려는 생각을 말도록. 무인은 무학으로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 그럼, 소인이 뭐라 불러드려야.”

         

       창빈이 쩔쩔매는 통에 청이 에이,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얘도 글러 먹었네.

       애초에 눈도 못 마주치는 애한테 무슨.

         

       “아이고, 창빈이한텐 농담도 못 하겠다. 좀 편하게 응? 사내답게? 응? 우리 친구한 지가 벌써 언제인데 아직도 남처럼 굴어?”

         

       “그, 편한데, 진짜로 편한……”

         

       “자. 됐고. 술 한 잔 받고.”

       

       창빈은 일행에 여인이 생겼으므로 아주아주 맛있어진 술을, 아껴먹는지 조금씩만 홀짝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이 술잔을 채워준 후에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정작 놀릴 놈은 안 보이는데, 사내놈들과 주르륵 눈만 마주치고 만다.

         

       음. 면사 쓰고 올 걸 그랬나보다.

       어차피 깐 얼굴이라고 안 썼더니 아주 얼굴 뚫어지겠네.

         

       특이사항이라면, 당가네 오형제가 보여준 열렬한 친절은 날아오지 않는다는 정도.

       왜냐하면, 중원 사내들에게 있어 저보다 고수인 여인은 많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나중에 후처 들이고 첩실 들이고 삼처사첩 차려서 놀고먹어야 하는데, 처가 고수면 후처는 개뿔 얻어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는 중원의 암묵적인 합의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항인 것이다.

         

       연애에서는 여존남비, 사내가 심장까지 빼 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남존여비, 삼처사첩 중 가장 사랑받는 여인이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아양을 떨고 유혹하며 서방님을 떠받들어야 한다는 그러한 합의였다.

         

       그러던 중 청에 눈에 훅 들어오는 미인이 한 명.

       피부는 희다 못해 창백하고, 표정은 우울한 것 같으면서도 무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눈 아래 찍힌 눈물점은 아주 요염하기 그지없어, 청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빙설화 설이리 소저다.

       청이 창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후에 슬그머니 일어나 빙설화에게 향했다.

       맞은편에 딱 자리를 잡으니, 무심한 시선이 청을 향해 똑바로 날아든다.

       청이 헤헤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저기, 안녕하세요? 그, 빙설화 설이리 소저시죠? 저는 서문청이라고 하는데요.”

         

       “예.”

         

       청의 말문이 턱 막혔다.

       보통 여기서 예, 하는 대답이 돌아오나?

       그리고 뭐가 예지? 안녕해서? 빙설화가 맞아서? 아니면 서문청인걸 알았다고?

         

       청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였다.

         

       “용건.”

         

       “네?”

         

       “무슨 용건이신지?”

         

       그에 청이 씩 웃으며 톡톡 탁자를 두드렸다.

         

       “그냥요.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요. 설이리 소저를 딱 보자마자, 와, 예쁘다, 예뻐서 좀 친해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길래. 와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시네.”

         

       “예.”

         

       또 단답이었다.

       저 한글자에는 사람의 말문을 막는 어떤 신비한 힘이 도사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신묘한 말씀에 말문이 막혀버린 청을 보며, 설이리가 입술을 열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보통은 이제 볼 장 다 봤으니 가라는 뜻으로 하는 대사다.

       아주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음. 혹시 제가 뭔가 실례라도 했나요?”

         

       “아니요.”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도?”

         

       “아니요.”

         

       “그럼, 같이 이야기하기 싫은 거예요?”

         

       “예.”

         

       그리고는 설이리가 입을 꾹 다물었다.

         

       빙설화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는지, 차라리 거울하고 대화가 더 잘 통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씨, 무공 하나 돌려주기 쉽지 않네.

         

       설가놈이 태음옥녀신공을 전해주며 말하기를, 언젠가 빙궁 사람을 만나면 돌려주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설이리가 빙궁 사람이라고 들었기에 그에 대해 문의하려고 했더니만.

         

       그러다, 문득 찻주전자가 눈에 들어온다.

         

       청이 씩 웃으며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용정 특유의 향이 푸근하게 터져나왔다. 왜냐하면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청이 진기를 일으켜 쨍하니 서리가 어리도록 차를 냉각시켰다.

       청이 좋아하는 차가운 용정차였다.

         

       청의 출신이 출신이라서.

       한민족이란 모름지기 인류 대멸종의 빙하기가 오더라도 태운 콩 우린 물에다가 얼음 반절 채워 처먹는 인간들인 것이다.

         

       반면, 입에 들어가는 모든 액체는 뜨겁지 않으면 몸에 매우 해롭다는, 매우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중원인에게는 아주 천인공노할 범죄와도 같았다.

       이러한 만행에, 설이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방금.”

         

       “이거요? 용정을 차게 마시는 것도 꽤나 별미랍니다. 설이리 소저도 한번 해 보시면, 아니다, 이거 한 번 드셔 보실-”

         

       “싫어요. 절대.”

         

       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가운 거절의 말이 날아들었다.

       것도 아주 완고한 거절이다.

         

       “다들 이걸 이해를 못 하네……”

         

       “방금. 빙공을 쓰셨는데. 어떤 것을 익히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아. 빙공 아시는구나! 이건 태음옥녀신공이라 하는데요. 정말 차. 갑. 습. 니. 다. 설이리 소저 태도만큼이나요.”

         

       “그걸, 그걸 어떻게!”

         

       “어떻게가 중요할까요? 중요한 건 제가 태음옥녀신공의 비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걸 빙궁 분들에게 돌려주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거죠.”

         

       “누가, 누가 그런 부탁을 했죠?”

         

       “음. 그런데 비급을 신녀문에 두고 오는 바람에. 일단 제가 익힌 바가 있으니 새로 써 줄게요. 비급은 제가 책임지고 태워버릴 테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요.”

         

       “그딴 것보다, 누가, 누가 그걸 전했죠?”

         

       그딴 거라니.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금색 테두리를 가진, 이름만 신공인데 어째 취급이 박하지 않나?

       빙궁의 직계라서 그 빙백신공인가 뭔가 보라색 테두리 익히고 있어서 필요가 없는 뭐 그런 건가?

         

       “공익 제보자의 보호를 위해 신상은 엄중한 비밀이에요. 제가 돌려드리는 조건으로 익혀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따지지 마시-”

         

       “설가놈, 그 작자죠?”

         

       설이리가 청의 말을 동강내며 재우쳤다.

       냉기가 풀풀 흘러나오는 싸늘한 어조에, 청이 곧장 판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좋지 못한 사이의 지인인가 보다, 하고.

         

       “그자는 빙궁의 죄인입니다. 스승과 사형제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사문을 불태우고 도망친 흉악한 마두이기도 하죠.”

         

       “에이, 신상은 비밀이라니까요. 어쨌든, 내일, 아니 모레까지는 비급을 필사해 드릴 테니까 그렇게만 알아 두세요.”

         

       여기 더 있다가는 거짓말이나 죽 늘어놓게 생겼다. 게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설가놈하고도 악감정이 큰 것 같은데, 그러면 괜히 친해져봐야 분란만 생길 상이었다.

         

       끙. 설 소저랑은 친해지고 싶었는데.

       하지만 여인 꼬시자고 우정을 저버리는 행위는 대장부가 할 짓이 아니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지, 뭐.

       그런데 왜 꼭 마음에 드는 여인이란 누군 끝판왕에 또 친구의 원수고 이러나 몰라.

       병약하고 가련한 인물상에 무슨 마라도 낀 거 아닌가……

         

       청이 미련을 흘려보내며 자리를 떴다.

         

       그런데, 설이리는 미련을 흘려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미련을 당당하게 드러내기까지 했다.

       설이리의 시선이 청을 똑바로 향한다.

       사람의 눈동자는 본래 데굴데굴 굴러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예쁜 얼굴의 정면으로만 청을 향했다.

       올빼미인지 부엉이인지 어쨌든 그런 쪽의 맹금류처럼 청을 쫓아다니는 무표정한 얼굴은, 아무리 취향이라 해도 조금 무섭다.

       아니, 취향이 와장창이라 해야 하나.

         

       그렇게 청이 몸서리를 치고 있을 때였다.

         

       “청아야, 있지,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아주 놀라운 기예를 가진 철장을 보았다고, 비수 몇 개 사러 갈 건데 같이, 뭐야. 청이 너 설화한테 뭐 했어?”

         

       “그냥 말 붙여봤다 차가워서 포기했어.”

         

       “뭐야, 너, 또. 이번엔 설화를 침대로 끌어들이겠다?”

          

       “말이 좀 이상하지 않니…….”

         

        말만 들으면 이상하지만, 어조와 함께 들으면 이상하진 않다.

       웃음기 가득하니 낄낄거리며 하는 소리라서, 어느 순간부터 가벼운 농담으로 툭툭 던져대는 소리였으니까.

       

       “그런데 쟤는 왜 저래? 엄청나게 보고 있지 않아? 할 말 있으면 말을 하던가, 으으, 근데, 조금 무섭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안 봤는데, 집요한 구석이 있었나 봐.”

         

       아주 차갑고 냉랭하게 대화 요청을 차단하길래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더니, 역시 사람의 본성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모양이었다.

         

       누가 노골적으로 아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당연히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음. 안 되겠다.”

         

       그에 청이 결국 후퇴를 선언했다.

         

       이래서야 신경쓰여서 자랑질을 할 수가 있나. 모처럼 초절정을 찍었는데 왜 자랑을 못 하니. 위대한 초절청의 업적을 널리널리 알려서 모두가 본받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청이 아쉬운 마음으로 후기지수들의 향상심 및 위기감 형성을 통한 동기 부여라는 건전한 실천 계획을 접어두었다.

         

       그냥 오늘은 돌아가서 태음옥녀신공 비급이나 열심히 써내야겠다 하고.

         

         

         

       돌아가는 길에 또 당난아가 야단이었다.

         

       “뭐야, 청아 너. 왜 그렇게 걸어?”

         

       “아니, 내가 뭘?”

         

       “왜 그렇게 음란하게. 하. 안 그래도 달덩이같은 걸 두 개나 달고선. 내가 못 살아. 이러니까 밤마다 여인을 갈아치우지. 그래, 딱 말해. 나야, 공손이야? 누구랑 자는 게 더 좋아?”

         

       “굳이 정하자면 예가 낫지. 예는 적어도 안 더듬으니까.”

         

       “나도 이제 안 더듬거든?”

         

       “안 더듬는 게 아니라 못 더듬는 거겠지. 너 솔직히 말해. 나 잘 때 얼마나, 아주 그냥 막 신나서 주물렀지?”

         

       이제는 각성신공으로 개화한 감각 덕분에 당난아의 불순한 접촉으로 잠에서 계속 깨어나고 만다.

       열 번이 넘게 깨고 나서는 아무리 청이라도 잠 좀 자자고 발칵 화를 낼 수밖에는.

         

       “아, 아니거든? 그냥 잠결에 툭 건든, 그, 아주 자연스러운 손동작, 그래, 그런 거.”

         

       그리 말하면서도 어째 눈을 마주치지를 못하는 것이. 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덕분에 청의 음란한 걸음걸이에 대해서는 뒷전이었다.

         

       사실, 청은 그냥 소리 안 내려고 요령을 부릴 뿐이다. 제 걸음걸이가 어떠한지는 당연히 알 방도가 없다.

       원시 고대 중원의 미개한 기술로는, 자기 모습이 비칠만한 매끈한 단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유리 자체가 귀물이기도 하고.

       그러니 청의 고향처럼 아무 차량이나 혹은 건물 유리벽에 다가가 머리 모양 고치다가 안에 든 사람과 눈과 눈이 마주치는, 그런 어색한 경험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청은 역대 신투들 중 최초의 여인 신투였으니, 천유학도 제자의 꼴을 보고서 아, 나도 저랬는데 하고 추억이나 더듬지,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다.

       서문수린의 잔소리야 사부님의 미인행이 워낙에 엄격하니 발뒤꿈치 들고 살금거리는 꼴을 용납할 수 없으시겠지 할 뿐이고.

         

       어쨌거나, 그렇게 투닥거리며 사이 좋게 무천각으로 들고 나니, 무천각 시비가 청을 맞이하며 소식을 전했다.

         

       안에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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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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