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5

       크로우필드 백작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크로우필드 백작을 알고 있다. 단순히 얼굴을 본 수준이 아니라, 의외로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하녀로 위장해서 크로우필드 저택에 들어갔을 때. 백작이 간 창관을 습격했을 때.

        

       특히 창관의 경우는 적들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 시간을 몇 번이나 돌렸고, 정보를 또 빼내기 위해서도 시간을 몇 번이나 돌렸었다.

        

       창관에 보관되어있던 정보들을 흡수하며 백작이 죽어 마땅한 인물인지 고민해보고, 심지어 백작과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실제로는 그저 협박당했기 때문일지도.

        

       총알을 주 대화 수단으로 삼은 진실한 대화 끝에, 나는 백작이 진짜로 악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백작이 이 세상에서는 살아있었다.

        

       “제 딸이 아카데미에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겁에 질리거나, 분노하거나, 욕정에 차 있지 않은 백작의 목소리는 상당히 침착했다. 비쩍 마른 외모와는 다르게 상당히 중후하고 낮게 깔린 목소리는, 첫인상을 좋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외모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암살하던 당시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조금 마르긴 했어도 그럭저럭 멀쩡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말라서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턱수염을 길러서 그 초췌함을 감춰보려고 한 것 같지만, 그렇게 잘은 안 되었다. 애초에 눈 아래에 그늘이 길게 내려와 있어서 오히려 그 수염이 사람을 더 초췌해 보이게 만들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미아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축복이죠.”

        

       나는 백작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작 옆에는 미아가 앉아있었다. 백작 부인도 백작 옆에 앉아있었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해 보였다.

        

       아무리 둘 사이의 감정에 골이 생겼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 뼛속까지 귀족이다. 적어도 손님 앞에서, 그것도 황족이 두 명이나 있는 앞에서 자기네 약점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원작에서도, 그리고 이전 세계에서도, 황제의 눈 밖에 나서 제거당한 크로우필드 백작이다. 지금 당장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라도, 우리 셋을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겠지. 황족과 황제파 귀족이니까.

        

       자기 아버지 옆에 앉아있는 미아는 조금 조마조마한 표정이었다.

        

       “제 딸이 말주변이 없는 편인데, 어떻게 여러분 같은 귀한 분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작의 말은 말 그대로였다. 겸양인 듯 보이지만, 사실 미아는 실제로도 말주변이 별로 없었다. 아니, 말주변이 없다기보다는 굳이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매일 밤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소심하게 된다고 했던가. 그래도 우리 앞에서는 입을 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일부러 사귀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미아가 학생회에 소속될 수 있었던 것도 여러분의 도움 덕분이라 들었습니다.”

        

       “미아는 처음부터 학생회 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니까요. 저희의 도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와중에도 클레어와 앨리스는 백작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다. 백작도 그 정도는 눈치를 챘는지, 우리의 대화는 철저하게 미아를 대상으로 겉돌고만 있었다.

        

       ……음.

        

       이래서야 내가 정말로 크로우필드 백작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뒤로도 십 분 넘게 그런 영양가 없는 대화만 하면서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

        

       그 안경 쓴 남자가 나를 어디로 팔아넘기려고 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 후보 중 하나에 크로우필드 백작을 넣어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고, 그 와중에도 변태적인 취향을 적용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원작에서 클레어가 ‘정확히 어떻게’ 크로우필드 백작을 죽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창관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길 덮치던 귀족을 죽였고, 창관이 활활 타오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뿐.

        

       ……그렇다는 건, 클레어가 그날 죽인 귀족이 크로우필드 백작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팔려 간 것도 클레어와 같이 나갔다가 내쪽이 더 눈에 들었을 뿐이니까.

        

       “…….”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크로우필드 백작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방법은—

        

       “안 돼.”

        

       —그리고 나의 아이디어를 들은 앨리스는 딱 잘라 말했다.

        

       백작과 백작 부인을 동반한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미아의 방으로 올라와 있었다. 미아는 잠깐 자기 부모님과 대화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마 우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말하면 안 될만한 이야기를 확인받고 있겠지. 오는 김에 차와 다과를 좀 들려서 보낼지도 모르겠다.

        

       백작가 정도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메이드가 해야 하지만, 이 저택에는 이상하게 ‘메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 하인들과 집사라면 있었는데, 사실 레이디끼리 있는 방에 남자 하인이 들어오는 것은 이 세계 기준으로는 별로 예의가 아니었다.

        

       미아 혼자 지내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그런 것을 신경 쓸 일이 없겠지만, 지금은 귀한 손님이 와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우리한테 들고 올라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기 딸한테 시키는 거겠지.

        

       ……이건 아마 백작 부인 탓일 거다.

        

       자기 남편이 밤마다—혹은 낮에도—나가서 창관에서 뒹굴고 오는데 노이로제가 걸리지 않을 여자는 없다. 특히 남편에게 애정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리고 내가 하녀로 위장해서 들어갔을 때 느낀 것은, 백작이 하녀를 건드리는 일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백작가씩이나 되는 곳에서 평민으로 위장한 내가 하녀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백작이 ‘건드려도 탈이 없는’ 존재를 하녀로 뽑았다는 소리니까.

        

       결국 하녀들 하나하나까지 전부 의심하게 되었다면 하녀를 죄다 내보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부부관계는 더 개판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던 거지만.

        

       “지금의 저는 황녀는 아니지만, 남작가의 영애입니다. 아무리 백작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앨리스에게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네가 먼저 유혹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법적으로는 우린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그렇다고 결혼할 수 없는 나이는 또 아니야. 약혼한 사이에 성행위를 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백작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아내가 몇 명쯤 되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어…….

        

       “그레이스 가에서는 반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남작이야. 아예 백작령을 소유하고 있는 백작이라면, 그리고 그 딸이 직접 ‘결혼하고 싶다’라고 했다면 당연히 거절할 방법이 없어.”

        

       “하지만 저는 결혼하고 싶다고는 하지 않을 텐데요.”

        

       “세상 어떤 여자가 남자한테 ‘결혼하고 싶다’라고 대놓고 말해?”

        

       나의 말에 앨리스가 엄청나게 고리타분한 소리를 했다.

        

       아니, 나는 앨리스 정도라면 그래도 꽤 진보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성의 구애는 ‘결혼해 주시오’지만, 여자의 구애는 그렇게 드러내선 안 돼. ‘어디 결혼식이 열린다는데 같이 가주시지 않을래요?’정도만 해도 엄청나게 구체적인 구애란 말이야. 남들이 들으면 남사스럽다고 할걸?”

        

       “맞아.”

        

       옆에서 듣고 있던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연애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클레어가 동의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그런 모양이다.

        

       귀족 간의 대화가 감정과 이성이 별개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설령 화를 내지 않아도 될 사소한 일이라도 귀족들의 방식으로 보면 화를 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공식이 있고, 또 그 상황에서 본인 화가 풀렸다고 그냥 종결하는 것도 곤란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적인 성의를 보여야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구애같이 연애 관련된 부분에서도 완전히 적용되는 것은……

        

       아.

        

       생각해보니 이쪽 세상에서 내 주변에 있는 커플 중 하나가 이쪽의 상식과 어마어마하게 벗어난 방식으로 연애하고 있어서 내가 못 느낀 모양이다.

        

       ……제이크와 로티의 연애 방식은 그러면 거의 포르노나 다름없는 건가? 이쪽 세계 기준으로는?

        

       “제가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행위입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앨리스와 클레어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조금 멍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 쪽을 보았다.

        

       “그렇지?”

        

       “응.”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흠.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제가 크로우필드 백작을 잠깐 유혹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저 구애하는 것으로 내 혼삿길이 막히고 백작과 약혼한 모양새가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

        

       왜냐하면, 그거야말로 내가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니까.

        

       질서와 반대되는 혼돈, 맞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오후 2시 이전에 완성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