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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아크로바틱 러시를 관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생각보다 경기가 잔인하고 격렬해서 놀랐다는 평이 많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가볍게 나들이 나가는 마음으로 왔다가, 피를 흘리고 바닥을 뒹굴며 악을 쓰는 곡예사들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쾌해 보이는 서커스라도 무대 뒤에서는 처절하고 가혹한 일면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날것 그대로 직관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즐기기에 어려운 것이었다.

         

       엘라와 레이나의 대결은 상당히 격렬했다. 오늘 시합에서 가장 거친 장면들이 이곳에서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공과 공 사이를 뛰어다니며 상대방을 물에 처박으려고 애썼다. 둘은 일생의 원수라도 만난 듯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다른 때와 달리 관중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두 사람이 벌이는 건 유혈이 낭자한 난투극이나 추잡한 이전투구가 아니라 수준 높은 곡예 기술의 향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펼치는 다채로운 종류의 재주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객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한 중년 신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공연은 처음 보는군!”

         

       그가 내뱉은 말은 다른 관객들이 내뱉는 감탄사들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는 평범한 관객이 아니었다. 그는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평가원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찬사였다.

         

       “아쉽군. 오늘이 평가 작성 날만 아니었어도 편하게 관람하는 건데 말이야.”

         

       그는 성가신 파리를 쫓는 듯한 동작으로 수첩을 넘기며 그가 보는 광경을 빠르게 기술해나갔다.

         

       <크리스티앙 가이드> 소속의 평가원은 편집부의 지침에 따라 매달 일정한 수 이상의 공연을 관람하고 평가서를 작성해서 본사에 보내야 했다. 그렇게 취합된 평가를 모아 편집부가 회의를 거쳐서 ‘별’을 부여하는 게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방식이었다.

         

       <크리스티앙 가이드>는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수백 명의 평가원의 신상을 모두 비공개에 부쳤다. 그들의 신원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 편집장뿐이었다.

         

       편집부는 평가원들에게 원고료 외에는 자금도 일절 지원하지 않았다. 평가원은 자비로 공연을 봐야 했고, 공연 주최자에게 특혜나 금품을 받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공정성에 까다롭게 굴었기 때문에 크리스티앙 가이드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공연계에서 신뢰도와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평가원은 꼼꼼히 두 사람의 대결을 작성해 나갔다. 원래 이렇게까지 기술 하나하나에 대해 세세하게 뜯어보지는 않았지만,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에서 내건 주제를 생각해 그는 기술적인 면에만 집중해서 평가를 작성했다.

         

       “우와, 시작한다!”

       “아까 그거야! 그거!”

         

       객석에서 기대에 찬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엘라가 이전에 보인 고난도 동작을 막대 인간들을 그려 표현하던 평가원은 손을 멈추고 무대를 바라봤다.

         

       레이나가 서 있는 공 주변에 노란색 공이 3개 모여 있었다. 그는 레이나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눈치챘다. 그녀는 아까 선보였던 그 기술을 또 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레이나는 몸을 좌우로 흔들어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공을 움직여 파도를 일으켰다. 그녀는 그렇게 타이밍을 재다가 노란색 공 3개가 파도의 끝부분에 튕겨 위로 솟는 순간, 그녀는 공중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그녀는 공중에 뜬 상태에서 몸을 빙글 돌려 3개의 공을 연속으로 걷어찼다.

         

       팟팟팟.

       3개의 공이 쏘아져 나갔다. 레이나는 뛰어올랐던 공에 다시 그대로 사뿐히 착지했다. 공이 휘청이며 기우뚱하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압정으로 고정해 놓은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사람들은 경악스러운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균형 감각은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했다.

         

       “놀랍군! 놀라워! 바늘 위에도 설 수 있다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군.”

       “과연 로드 판타스틱의 딸다운 솜씨야.”

       “레이나! 레이나!”

         

       엘라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 3개를 지켜봤다. 언뜻 보면 공들은 나란히 날아오는 것 같았지만, 각각 그리는 궤적의 형태가 달랐다.

         

       애초에 공중에서 같은 방향으로 힘을 3번이나 가했으면, 몸이 뒤로 밀려나야 했다. 그런데 레이나는 뛰어올랐던 공에 그대로 착지했다.

         

       엘라는 그녀가 3개의 공에 각기 속도로 회전을 가해 띄운 다음 거기에 맞게 힘을 3방향으로 배분했음을 알아차렸다.

       1번째 공을 찰 때 생긴 반작용을 2번째 공을 찰 때 이용하고, 2번째 공을 찰 때 생긴 반작용을 3번째 공에 실은 것이다.

       3번째 공을 찰 때 생긴 반작용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 박차고 올랐던 공이 파도에 미끄러져 내려와 그녀가 떨어지는 지점에서 정확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못하겠지.’

         

       레이나의 저 기술은 우월한 신체 조건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큰 키와 긴 다리의 힘이 컸다. 아마 자신이 시도한다면 1번째 공을 차도 2번째 공에 다리가 닿지 않을 것이다.

         

       3개의 노란색 공이 그녀를 에워싸듯 날아왔다. 엘라의 색은 빨간색이었다. 다른 색 공에 닿으면 탈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이나가 공을 띄웠을 때부터 이미 그녀가 어떤 궤도로 공을 날려 보낼지 알고 있었다.

         

       마야처럼 수식으로 계산해낸 것이 아니었다. 그건 경험에 기반한 야생의 감각과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대상의 순간적인 동작만 포착해도 상대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일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몇 번 뛰어다니면서 이곳에 있는 공들의 탄성력과 무게에 대해서도 감을 잡고 있었기에, 공의 궤적을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그릴 수 있었다.

         

       포탄처럼 쏘아진 공들은 엘라가 서 있던 지점에 떨어졌다. 그 충격에 파도가 한 차례 근처를 휩쓸었다. 엘라는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쓰긴 했지만, 다른 빨간 공에 옮겨탄 덕분에 간신히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공이 날아오는 속도로 봤을 때, 그녀가 미리 궤도를 예측하고 피하지 않았다면, 공에 맞았을 게 분명했다.

         

       “대단합니다! 레이나 선수의 3연속 돌려차기를 엘라 선수가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습니다! 레이나 선수의 기술도 놀랍지만, 엘라 선수의 반사신경도 대단하네요!”

         

       회심의 일격이 빗나갔지만, 레이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엘라가 피할 거라는 걸 알았다는 듯 바로 다음 자리로 옮겨서 공들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좀처럼 3개를 모을 기회가 다시 생기지 않아 1개 혹은 2개가 한계였고, 그것들은 엘라가 너무나 쉽게 피해냈다.

         

       그렇게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지기를 몇 번. 뱃고동 소리가 돔을 울렸다. 공 위를 마구 뛰어다니던 레이나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긴장한 눈빛으로 엘라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기대하던 게 왔다며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시선 역시 대부분 엘라를 향했다. 레이나에게 3단 돌려차기가 있다면, 엘라에게는 이게 있었다.

         

       엘라는 기다렸다는 듯 근처에 있는 빨간색 하나를 걷어찼다. 그러나 그것은 레이나가 있는 곳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대충 근처라면 근처라 할 수 있는데 떨어지긴 했으나, 힘이 모자라서 레이나가 했던 것만큼 큰 파도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그러나 엘라는 씩 웃기만 했다.

         

       고동 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 있어, 수영장의 어느 지점에 파도가 한 차례 울컥거렸다. 그리고 몇 초 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둥이 그곳에서 솟았다. 공들이 튀어 오르며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궤도와 속도는 제각각이었지만, 몇 가지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공들이 있었다.

       바로 방금 빨간색 공들이었다.

         

       그들 중 어떤 것은 공중을 날았고, 어떤 것은 수영장 벽에 맞고 튕겨 나갔고, 어떤 것은 공들 사이를 이리저리 튀어 다녔다. 그들 사이에 아무런 규칙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맥락 없는 혼돈을 거치고 나자, 십여 개의 공들이 갑자기 짠 듯이 레이나를 향해 날아왔다.

         

       어떤 공은 레이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어떤 공은 레이나의 뒤에서 날아왔고, 어떤 공은 레이나가 옮겨탈 만한 공을 멀리 날려버렸고, 어떤 공은 레이나가 옮겨탈 만한 공 사이에 날아와 진로를 방해했다.

       그 공들의 색은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빨간색 공들의 움직임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작용했다는 것이다.

         

       “놀랍군요! 이번에도 엘라 선수의 예측 공격이 레이나 선수를 압박해 들어갑니다!”

         

       수영장 바닥에 있는 분수 중 어떤 것이 작동될지는 완전 무작위였다. 그러나 엘라는 뱃고동이 울리기 1분 전에 어디서 분수가 올라올지 알 수 있었다. 물의 흐름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어느 지점에서 공기가 압축되고 있는지 예상이 가는 것이다.

         

       첫 번째 분수는 그냥 흘려보냈지만, 두 번째 분수에서부터 감을 잡은 그녀는 세 번째 분수부터 그걸 이용해 판을 깔았다. 즉, 분수가 솟는 순간 레이나에게 자동으로 공격이 들어가도록 미리 공들을 배치해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보기 좋게 먹혀들었다. 당구를 전문적으로 치는 선수들이나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계산을 그녀가 해낸 것이다. 아까 그녀는 이것으로 레이나를 탈락 직전까지 몰아 붙기까지 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레이나는 자신을 향해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공들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정말 괴물 같은 계집애다. 그녀를 상대하다 보면 황금 천칭이라는 칭호가 무색해졌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육체적인 능력에 한하는 것이었다. 천재라는 수식어는 아무리 봐도 엘라에게 더 어울렸다.

         

       ‘그래도 질 수 없어.’

         

       레이나는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십수 개의 공들이 날아드는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날 길을 찾았다. 관절의 가동 한계와 기술의 정확도를 극한으로 요구하긴 했지만,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그녀는 몸을 1자로 뻗은 상태에서 물로 뛰어들어 물수제비처럼 수면을 서너 번 튕긴 뒤 반대편 공에 착지한 것이다.

         

       엘라는 그것을 보고 울컥했다. 몸을 물수제비처럼 튕기는 것은 자신도 여러 번 한 적 있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 갔을 때, 바위를 미끄럼틀 삼아 생긴 가속도로 수면 위를 미끄러져 반대편 기슭에 착지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레이나가 그걸 엎드린 채로 해냈다는 것이 화가 났다.

         

       ‘가슴 있잖아. 그거 안 걸리적거려?’

         

       엘라는 그녀와 목욕하면서 봤던 것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물수제비는 보통 평평하고 납작한 돌로 하는데…….

       그녀는 상대를 몰아붙여 놓고도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그렇게 서로의 공격을 연속해서 파훼한 두 사람은 이렇게 공수만 주고받다가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 판을 끝내기 위해서는 한 수 더 앞서 나가는 행동이 필요했다.

         

       ‘상대가 공격할 때를 이용해야 해.’

         

       엘라와 레이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는 서로를 노려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다음 뱃고동 소리가 들릴 때,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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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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