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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잘한 거 맞죠?”

       “네. 정말로요.”

         

       엘라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윌리엄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렇게 기절해 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문제라면…. 음~ 혹시 저 귀신들이 풀려나서 죽일까 봐 그런가요?”

       “네.”

         

       아나스타시아는 이 언니가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했겠냐며 웃었다.

       그리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이 꼭 쥐고 있는 곰 인형의 배에 있는 지퍼를 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두 사람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왠지 모르게 폭신해 보이는 공간이 말이다!

         

       아나스타시아는 망토를 흐느적거리며 촉수 같은 것을 뽑아내었다. 그리곤 촉수를 조종해 윌리엄의 몸을 고치처럼 묶었고, 그대로 곰 인형의 배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리곤 촉수를 이용해 안대 같은 것을 만들어 윌리엄의 시야까지 가려주고 난 뒤 지퍼를 닫았다.

         

       찌이익.

         

       그렇게 윌리엄은 곰 인형의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완벽히 제압된 채로 말이다.

         

       “자, 이러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보디가드 테디베어가 꿈에서 깰 때까지 무사히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요. 악령이 풀려난다고 해도 아까처럼 때려눕힐 테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뱃속의 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도망칠 거예요~”

       “그, 그렇군요.”

         

       아나스타시아는 보디가드 테디베어의 안락함을 믿으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지만 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윌리엄이 꽁꽁 묶인 채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게…왠지 모르게 공포영화에서 산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양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배경 역시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곳이 아니던가.

       망망대해 한복판에 솟아난 폐병원.

       심지어 진짜 악령들이 꼬챙이에 꽂힌 채 바둥거리고 있기까지 하다.

         

       진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크흠, 그럼 이제 무사히 구한 거네요.”

       “그렇죠?”

       “그럼 돌, 돌아갈까요?”

         

       엘라는 윌리엄이 곰 인형의 뱃속으로 사라지자 왠지 모를 을씨년스러움을 느꼈다.

         

       사람이 있어야 하는 공간에 아무도 없을 때 느끼는 특유의 공백과 허전함.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만이 있는 공간이 주는 위화감.

       거기다가, 자신의 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에 와 있다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

         

       엘라는 긴장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그 부정적인 감정들이 서서히 몸에 들이차는 것을 느꼈다.

       이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무의식에서부터 오는 듯한 감정들이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의 그 상태를 눈치챈 것인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쑥 집어넣어 다시 팔짱을 꼈다.

         

       “네, 저 사람이 이제 위험할 일도 없는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가도록 해요. 언니랑 같이 산책이나 할까요?”

       “네, 네?”

       “사람도 없는데 거기서 쇼핑이나 하죠! 신기한 옷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네? 잠깐만요.”

       “이 언니가 입고 있는 거랑 똑같은 옷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그녀는 엘라를 일부러 정신없게 만들며 그녀를 이끌었다.

         

       엘라는 게이밍 오목눈이를 끌어안고 있었기에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짹.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게이밍 오목눈이는 보디가드 테디베어 쪽이 살짝 신경이 쓰였는지 그쪽을 힐끗 바라보았으나, 걱정하지 말라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곰 인형을 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그리곤 격려와 무사 귀환을 바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짹.

         

       그렇게 두 사람과 한 마리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테디베어 하나.

       테디베어 뱃속에 들어있는 사람 한 명.

       그리고 악령이 넷.

         

       총 여섯뿐이었다.

         

       이 중 뱃속에 들어있는 사람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보관물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다섯이라고 표현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으리라.

         

       그렇게 폐병원은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꼬챙이에 꽂히고 얻어터진 악령들은 말을 할 힘조차 아낀 채 꼬챙이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며, 곰 인형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그들이 빠져나왔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뱃속에 들어있는 윌리엄은 꿈속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잃고 혼절한 상태였고.

         

       그렇게 긴장감 가득한 침묵이 맴돌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스아아악.

         

       바람이 종이를 스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얇고, 가느다랗고, 날이 서 있고, 작으며,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폐병원의 복도를 따라 흐르며 이곳저곳을 맴돌기 시작했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의 군단과 함께 움직였다.

         

       스아악.

         

       작은 소리.

       너무나 작기에 그 움직임의 근원도, 그 실체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귀를 기울이고 있자면 위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을 집중하면 옆의 벽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바닥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층 너머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기둥을 타고 넘어오는 소리의 잔재 같은 느낌마저도 든다.

         

       마치 공간 전체를 점유하고 누비기라도 하는 듯,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 기묘한 소리는 한곳으로 모였다.

         

       축축하고 끈적이며 무거운 액체가 경사를 따라 모이듯, 이 기묘한 소리 역시 한 장소로 움직였다.

         

       모이는 곳은 바로 곰 인형과 악령들이 있는 장소였다.

         

       스아악.

       샤—악.

         

       소리는 진동이었다.

       소리는 경고음이었다.

       소리는 발자국이었다.

       소리는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는 소리였다.

         

       모여든 소리는 벽면에 스며든 곰팡이와 함께 이리저리 움직였고, 살아 움직이는 검은 물감과 함께 온 벽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더러운 늪처럼 변해버린 벽에서 무언가가 건너오기 시작했다.

         

       스아아악.

         

       그것은 팔이었다.

       너무 새까맣기에 사람의 피부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형체만큼은 사람의 팔이 분명했다.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었으며, 손바닥이 있었으며, 기다란 팔도, 관절도 있었다.

       그것은 먼지를 긁어모아 만든 것처럼 더러운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벽의 늪을 재료로 삼은 것처럼 꾸물꾸물 움직였다. 나오는 와중에도 먼지처럼 흩날리며 그 크기가 작아졌다가도 개미가 모여들어 색을 만드는 것처럼 비어버린 자리를 순식간에 메우기도 했다.

         

       그렇게 팔 하나가 온전히 벽에서 솟아났다.

         

       사아아악.

         

       그리고 그 팔을 시작으로 다른 부위도 하나둘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사아아악.

         

       다리가 나왔다.

       새까만 다리였다.

       불길에 바싹 타버린 시체에서 가져온 것이라도 한 듯 새까맣고 앙상한 다리였다.

         

       사아악.

         

       머리카락이 흐늘흐늘 움직이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자그마한 숨결에도 흩어져버리기라도 하듯 그것은 쉼 없이 하늘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바닷속의 해초가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이 보였다.

         

       샤아아악.

         

       잿더미를 긁어모아 빚어낸 얼굴이 튀어나왔다.

       그 얼굴은 조각상처럼 뚜렷하고 나름의 미가 있었으나, 이질적인 검은색 덕분에 기괴함이 감돌고 있었다.

         

       스아아아악.

         

       그리고 마침내.

       모든 몸이 튀어나왔다.

         

       먼지처럼 흩날리는 몸으로 사람의 형체를 만들고.

       복도의 벽면에 탯줄처럼 굵은 밧줄을 이어놓고.

         

       그렇게 사람의 형상이 빚어졌다.

         

       “아—-”

         

       빚어진 존재는 숨을 내뱉듯 소리를 내었다.

       곰팡이가 뭉쳐 돌덩이처럼 되어버린 성대를 진동시켰고, 반죽처럼 뭉치고 빚어져 폐의 형상을 이룬 것을 움직여 숨을 토해내었다. 그렇게 성대를 떨어 숨을 뱉으며 소리를 내었고, 흩날리는 먼지와 함께 움직였다.

         

       그것은 텅 비어버린 동공으로 악령들을 보았다.

         

       “실체가 없되 존재하는 것들아. 나와 같이 가자.”

         

       검은 곰팡이로 이루어진 인간은.

       박진성은 곰팡이를 흩날리며 악령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어리석은 인간을 유혹하는 귀신처럼 그들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리로 오너라. 이리로 오너라. 여기 친숙한 무덤가의 향기가 있으니, 이리로 오너라.”

         

       그 몸짓은 느릿했다.

       마치 박진성의 육체만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진성의 모습이 더 기괴하게 보이는 것이리라.

         

       “썩어 문드러지는 살점의 냄새. 살을 파먹는 검은 물감. 썩어 문드러진 내장이 구공(九孔)에서 흘러내리고, 그 오물이 말라붙은 곳에 자리 잡은 것들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느냐. 이리로 오거라. 나는 너희와 함께한 존재이며, 지금 너희를 거두러 왔느니라.”

         

       진성은 안심하라는 듯 팔을 활짝 펼치며 꼬챙이에 꽂힌 악령들을 향해 다가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 아니야….]

       [ 아니야. 우리는 그렇지 않아. ]

       [ 우리는 그 깜깜한 곳으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

       [ 저리 꺼지지 못해-! ]

         

       악령들은 발광했다.

       박진성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같이 보였기 때문에.

       자신이 떠나온 썩어버린 육체가 영혼을 찾아 앞에 나타난 것 같이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악령은 그저 소리만 지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핀에 꽂혀 표본이 되어버린 나비처럼 그들은 꼬챙이에 꽂힌 채 무력하게 존재할 뿐이며, 반항을 하고자 해도 아나스타시아에 의해 사지 대부분이 부러져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악령들은 무력했다.

       그들은 진성의 발걸음을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었다.

       그들의 앞에 도달해 팔을 뻗는 진성의 팔을 피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입을 움직여 욕설을 내뱉는 것뿐.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아, 이리로 오거라. 힘도 잃고 사지도 잃고, 몸이 줄어들고 접히고 마침내 존재마저 잊자꾸나. 망혼(亡魂)조차 되지 못한 찌꺼기가 되어 세상에 흩어지자꾸나.”

       [ 끼야아아아아악-! ]

         

       그의 손에서 피어난 곰팡이는 물감처럼 악령의 몸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손이 닿은 부분에서부터 빠르게 퍼져나가며 목 아래까지 빠짐없이 검은색으로 칠했고, 성대의 바로 아래까지 새까맣게 칠해지면 그 즉시 부서져 내렸다.

         

       바싹 마른 버섯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듯, 그렇게 악령의 몸은 그대로 가루가 되어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진 가루는 진성의 몸을 이루는 곰팡이에 흡수되었고, 몸이 부서져 머리만 남게 된 악령은 진성이 뽑아낸 새끼줄에 꿰였다.

         

       그렇게 진성은 악령들을 모조리 머리통만 남기고 새끼줄에 꿰였다.

       목구멍과 텅 비어버린 눈가를 지나가게 했으며, 쉽사리 빠지지 않도록 잘 엮은 채 그것을 질질 끌고 폐병원의 밖으로 나갔다.

         

       “머리야, 머리야. 저승 냄새를 풀풀 풍기는 혼 덩어리야. 귀신이 되어서도 부려 먹히고 있는 가련한 머슴들아. 자, 가자. 너희 주인에게로 가자….”

         

       그렇게 진성은 사라졌다.

       자신을 주술사에게 안내해줄 나침반을 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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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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