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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정신을 차린 금철군은 빠른 속도로 신색을 회복했다.

         

       고독이 체내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잃고 잠들었을 뿐, 몸에 이상이 생겨 쓰러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

         

       부족한 것은 잠든 내내 미음으로 연명한 탓에 부족해진 영양뿐.

         

       금여울의 지휘 아래 온갖 좋다는 것들을 섭취한 금철군은 고작 사흘 만에 야윈 몸을 거의 회복하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았던 황금상단 대행수, 그리고 금씨세가 가주의 복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다름 아닌 백우진과의 대담이었다.

         

       큰일 하나를 끝마치고 별채에 틀어박혀 한량처럼 지내던 그를 이곳까지 안내한 총관이 가주의 집무실 문 앞에서 고했다.

         

       “가주님, 명하신 대로 백 공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들라 하게.”

         

       장지문을 타고 넘어오는 굵직한 음성.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강한 기백이 느껴진다.

         

       침상에 힘없이 쓰러져 있던 그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겠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보게 될 금철군이란 인물은 그때완 사뭇…, 아니, 전혀 다를 테니.

         

       “안으로 드시지요.”

         

       총관이 비켜서서 길을 터준다.

         

       문고리를 잡아당긴 뒤, 열린 틈으로 들어서는 백우진.

         

       금여울이 대신 사용할 때 몇 번이나 들어와 봤던 곳인데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값어치를 매기기 힘든 것들로 이루어진 집무실.

         

       그녀가 어색하게 앉아 있던 곳에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내는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다.

         

       이 넓은 집무실의 모든 공간을 장악한 채로.

         

       “자네가…, 옥면신룡인가.”

         

       중저음의 그윽한 음성이 집무실의 허공을 격타하고 날아와 그의 온몸에 쏟아진다.

         

       백우진은 포권을 취해 예를 갖추었다.

         

       “백우진입니다. 무림에서는 과분하게 그리 불리고 있지요.”

       “음, 일단 앉지.”

       “예.”

         

       맞은편에 놓인 방석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백우진.

         

       “듣자 하니 자네가 우리 가문을, 나아가 상단을 위기로부터 구해주었다 들었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 하나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겸양을 떨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이번만큼은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하려 했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경에서 여울이를 구해주었다지?”

       “예, 운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꽤 오랜 시간 여정을 함께 해왔다고 들었네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의아해졌다.

         

       자신은 금여울을 도와주었을 뿐인데, 왜 추궁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그때 당시에는 금 소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저뿐이었으니까요.”

         

       이어지는 그의 말에 금철군도 인정한다는 듯,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음, 그랬을 테지. 그때는 가문을 수습하기도 전이었고, 내부 상황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끔 조심하던 때였으니.”

         

       금철군이 앉은 자리에서 백우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여울이를 다시는 보지 못했을 게야. 더군다나 가문에, 상단까지 구해주었으니 이를 어떤 식으로 갚아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는구먼.”

         

       상인의 탈을 뒤집어쓴 좀도둑 같은 놈들이 아닌, 진짜 상인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알기 때문.

         

       그렇기에 여기서 굳이 원하는 바를 말할 필요는 없다.

         

       “무언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 걱정 놓으십시오.”

         

       바라는 것이 없다고 겸양을 떤다고 한들, 그들에게 지워둔 빚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진정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 그들에게 넌지시 부탁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지워둔 빚과 자신의 부탁이 저울에 올랐을 때, 동수를 이룬다면 말이다.

         

       “상인이란 무릇 받은 은혜를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법이라네. 당장은 아니더라도 혹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든 기탄없이 얘기하게. 내 상단의 기둥뿌리 하나도 내어줄 테니.”

         

       순간 백우진의 동공이 금전으로 바뀔 뻔했다.

         

       중원 제일의 상단이라 불리는 황금상단의 기둥뿌리 하나면 대체 얼마야…!

         

       기쁜 내색을 겉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을 때, 금철군의 말이 이어졌다.

         

       “헌데 말일세. 아무리 자네라도 내어줄 수 없는 게 딱 하나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호기심에 묻자, 금철군이 갑자기 급발진하여 탁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내 딸은 안 된다, 이노옴-!”

       “…….”

         

       백우진은 지끈거리기 시작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왜 만나는 인간마다 딸바보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 * *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이따금 마주칠 때마다 금철군이 경계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것만 빼면 대접이 융숭하여 며칠 푹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들에게는 남은 일정이 있었다.

         

       흑백전이라는, 정파와 사파의 자존심이 걸린 후기지수 대전.

         

       만약 거기에 늦는다면 얼마나 많은 욕을 들어먹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명성 관리도 적당히 해둬야지.’

         

       주정뱅이니, 성격이 이상한 놈이니 하는 소문은 돌아도 상관없다.

         

       지금 쌓은 명성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흠결조차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딱 거기까지여야만 했다.

         

       명성은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

         

       자신이 무언가를 말하면 그들 전부가 믿을 만한 수준까지는 올려두어야 한다.

         

       ‘실제로 이번에 필요하기도 하고.’

         

       조금 더 큰 명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백흑전에서는 조금 더 날뛰어볼 요령이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만큼 무림에서 명성 얻기 좋은 일은 없으니.

         

       “가야 하는 거지…?”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금여울은 매일 같이 찾아와 그에게 같은 말을 던졌다.

         

       그리고 백우진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녀에게 똑같은 말로 대답했다.

         

       “가야지.”

       “그치….”

         

       그녀도 안다.

         

       정파와 사파, 무림을 양분하는 두 거대 세력에게 이번 백흑전이 가지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그저 아쉬워서 그렇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함께해온 그를 떠나보내는 게 몹시도 아쉬워서.

         

       눈 딱 감고 따라갈 생각도 해보았지만, 불가능했다.

         

       ‘아직은…, 불가능해.’

         

       위기로부터 벗어나긴 했지만, 해야 할 일은 아직도 산더미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금철군의 상태도 살펴야 했고, 행방불명된 오라버니 금명호의 행방 또한 찾아야만 한다.

         

       옛날 같았으면 내키는 대로 행동했겠지만, 백우진과 함께하며 많은 것들을 깨우친 지금의 그녀는 가문에 산재한 문제들을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번에 다른 것을 묻고자 한다.

         

       “저기….”

       “말해.”

       “나중에…,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돼…?”

         

       지금은 아니고 훗날을 기약한다.

         

       가문이 비로소 안정을 되찾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다시 그의 곁에 함께할 수 있기를.

         

       “으음….”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백우진.

         

       이내 생각을 마친 듯,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는 거야 상관없지.”

       “정말?!”

       “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

       “으, 응.”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꼭 끌어안은 그녀의 곁으로 백우진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온다.

         

       얼굴과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더욱 빨리 뛴다.

         

       동시에 그윽한 술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들어 조금씩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오는 건 막지 않아. 그런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 말이 그녀에게는 무척 감미롭게 들렸다.

         

       자신에게 출가외인이 되라는 말처럼 들렸기에.

         

       ‘그, 그러면 나를 색시로 맞아주겠단 거잖아!’

         

       그녀의 얼굴에 더없이 커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가, 갈게! 꼭 갈게! 그, 그러니까 나 잊으면 안 돼. 알았지…?”

         

       간절한 그녀의 부탁에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널 잊는 게 가능할 리가.”

         

       마경에서의 첫 만남부터 그로 인해 시작된 복잡한 사건까지.

         

       어디 머리를 세게 부딪혀서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그걸 전부 잊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헤, 헤헤, 에헤헤…!”

         

       다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조금 다른 의미로 들렸나 보다.

         

       마침내 그들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금철군과 황군,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백우진은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동안의 융숭한 대접, 감사했습니다.”

       “하하! 대접이라니, 자네가 우리 상단을 위해 힘써준 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안 그런가, 황 아우?”

       “그렇지요, 형님.”

         

       껄껄껄껄!

         

       동시에 껄껄대며 웃는 두 사람.

         

       황군이 무릎을 꿇으며 죄를 청했을 때, 금철군은 그를 용서했다.

         

       가주 대행이었던 금여울이 이미 용서했는데 자신이 그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두 사람 사이에 난 균열은 하룻밤 동안 이어진 술자리에서 모두 봉합되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돈독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 자네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겠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금여울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그렇게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백우진의 색시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금방 따라갈 테니까…, 그때까지 건강해야 해?”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처럼 애틋한 말을 연신 쏟아내는 금여울.

         

       뒤에서 제갈연지와 당선영으로부터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내 걱정은 말고, 아버지 잘 도와드려.”

       “응, 알았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에, 백우진은 그녀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준비 잘해서 오도록 해.”

         

       그 말 한마디에 세상 전부를 가진 사람처럼 환하게 웃는 금여울.

         

       이를 본 금철군이 ‘내 딸은 안 된다, 이노옴!’ 하고 노려보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알았어!”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멀어졌다.

         

       금여울은 천천히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야 등을 돌렸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허전함에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참아내며 걸음을 옮겼다.

         

       당도한 곳은 금철군의 앞.

         

       그녀는 눈물 대신 의기를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리고…, 숙부님께도요.”

       “말해보거라.”

       “저…, 상인이 되고 싶어요. 이 세상 모든 걸 사고팔 수 있는, 아버지와 숙부님 같은 대상인이요.”

         

       금철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백 공자 때문인 게냐.”

       “…네.”

       “끄윽….”

         

       수줍게 대답하는 딸내미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로운 에피소드의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 편부터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주인공이 조금 더 우뚝 솟아오르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읍니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그럼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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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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