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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옷을 갈아입겠다며 엔리가 방 안으로 들어간 후로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엔리는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보았을 때에 옷을 보고 한숨을 쉬고 입으려다 한숨을 내쉬고 거울을 보고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하는 듯 하구나.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왔으면 그냥 각오를 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터이거늘 저래서야.

       

       아직은 방송을 키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기다려 주겠다만 이 이상 질질 끌려든다면 방 안으로 쳐들어가 강제로 옷을 입혀야겠구나.

       

       그리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중에 벨소리가 들려왔다.

       

       이 곳에 찾아올 이가 아직 남았는가.

       

       “아라 씨! 문 좀 열어주실래요? 제 편집자가 카메라를 잡아주기로 해서요!”

       

       이번 방송을 돕기 위해 찾아온 이인가.

       

       입구의 화면에 비치는 이는 지난번 편집자를 구할 때 도움을 주었던 이와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문을 열어주고 얼마 있지 않아 집에 들어온 여성은 내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굳었다.

       

       “화령님… 이신가요?”

       “네. 반갑습니다. 화령입니다.”

       “와. 와! 엄청 예쁘세요! VR에 아바타가 그대로 나온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지. 그는 본인을 그대로 따서 만들어낸 녀석이니 말이다. 입을 쉬지 않고 호들갑을 떠는 여아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샜다.

       

       “아. 이게 아니지. 전 박리하라고 합니다! 엔리님의 편집자 중 한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하 씨군요.”

       

       밝고 해맑구나. 하린이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올라. 본인에게 호의를 비추는 이를 미워할 순 없는지라 웃으면서 대응해 주었더니 리하가 기뻐했다.

       

       “아 참. 감사할 것도 있네요! 화령님 덕분에 저희 마이튜브가 풍족해질 것 같습니다! 저희 사장님의 메이드복이라니!”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이가 치욕을 앞두고 있음에도 이리 밝은 웃음을 짓다니. 악마가 따로 없구나.

       

       그러고 보면 본인의 편집자들도 본인이 수치스러워 하는 영상이 퍼지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었지.

       

       편집자라는 이들은 자신의 상사보다 마이튜브의 조회수를 신경 쓰게 되는 것인가.

       

       뭐어. 이미 본인에게 닥친 재앙은 지나갔고 본인은 저잣거리가 불타는 것을 구경하는 입장이니 엔리가 얼마나 곤란해지든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엔리 씨가 제 마이튜브에 도움을 줬으니까요. 돌려드리는 거죠.”

       “상부상조라는 거군요!”

       

       서로의 도움이 되기보다는 서로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마는 일단 그런 걸로 하자꾸나.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능숙하게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하는 그녀의 손놀림에는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러한 작업을 한 두 번 해 본 게 아닌 듯 하구나.

       

       여전히 엔리의 방 안에서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저 녀석이 바깥으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니 리하의 옆을 따라다니며 배움을 얻어 보도록 할까.

       

       “저기 리하 씨. 카메라 조작은 어떤 식으로 하시는 건가요?”

       “카메라요?”

       

       내가 물음을 던지자 리하가 말을 망설였다. 카메라를 잡은 손가락을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 많이 불안해하는 티가 나는 구나.

       

       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야 뻔하지. 내가 어떤 식으로 카메라를 망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

       

       실로 억울한 일이었다. 본인의 손에 화약이라도 묻어 있더냐? 슬쩍 손가락을 건드리기만 하면 카메라가 펑하고 터져 버리는 것도 아니거늘 그런 반응이라니.

       

       내가 보라는 듯 눈을 살짝 낮추자 리하의 당황이 더 심해졌다. 어찌할 줄을 몰라 손을 마구잡이로 휘젓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샜다.

       

       “안 될까요?”

       “안 되는 건 아닌데. 그게. 으. 일단은 말로만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이 이상 더 괴롭히면 눈물이라도 흘릴 듯하여 고개를 끄덕여주니 리하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게 카메라를 만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저것을 알려줬다.

       

       말을 하는 것에 자부심이 묻어나는 것이 많이 연구를 해 온 모양이구나. 그렇게 지식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굳건히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고 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어때요?”

       

       VR의 세상에서 여러 고양이 메이드를 마주했던 본인의 입장에서 서술을 하자면 귀와 꼬리는 분명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한들 가품은 가품이니 말이다. 허나 그를 제외하고서 본다면 엔리는 꽤나 매력적인 메이드였다.

       

       엔리는 원래도 상당히 아름다운 축에 속하던 아해다.

       

       빙궁의 눈을 떠올리게 만드는 새하얀 피부와 활기가 넘치는 청색의 눈동자. 허리 근처까지 늘어트린 금색의 머리카락. 평소에도 세심히 관리를 하는 듯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몸.

       

       그 위에 메이드의 복장과 함께 부끄러움이 더해졌으니 그 풋풋함을 어느 누가 인정하지 않겠는가.

       

       “걱정마요. 예뻐요.”

       “이상하진 않죠? 그쵸?”

       “물론이죠! 사장님! 자신감을 가지세요!”

       

       나와 리하가 함께 호들갑을 떨어주었더니 그제야 자신감이 생긴 듯 엔리가 어깨를 폈다. 여전히 양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감은 생긴 듯 하구나.

       

       방송을 시작하고 짓궂은 시청자들이 놀리기 시작하면 또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마는 그것은 엔리가 감당할 문제다.

       

       본인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이쪽 업계에서 일해온 그녀이니 어련히 잘하겠지.

       

       “그럼 빨리 방송 시작하죠! 이 옷을 입고 있으니까 얼굴에 화상 데미지가 들어오는 느낌이에요!”

       

       *

       

       방송의 세팅을 끝마친 리하는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엔리와 화령의 모습을 카메라 너머로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예쁜 사람 옆에 예쁜 사람이 있으니까 카메라를 움직이는 맛이 나네. 두 분의 외모가 향하는 방향이 달라서 더더욱.

       

       엔리님이 활기차고 밝은 느낌의 미인이라면 화령님은 차분하고 진중한 느낌의 미인이니까. 두 사람이 같이 앉아 있으니까 어느 하나 그림이 되지 않는 게 없어.

       

       화령님의 옷만 좀 더 괜찮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저게 뭐야. 펑퍼짐한 후드티에 헐렁한 청바지라니! 심지어 그것도 어디 유행하는 물건도 아냐! 후드티는 관리를 제대로 안 한 건지 주름이 잔뜩 져있고 청바지는 색이 빠져 있잖아!

       

       패션에 민감한 사람이 봤다면 당장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라고 할 것 같은 물건이라고.

       

       화령님의 기본 체급이 워낙에 높으시다 보니 저걸 입고서도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오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는 건가 싶었을 거야.

       

       아깝다. 너무 아까워. VR세상의 아바타가 그대로 현실에 빠져나온 듯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 저런 패션 센스라니.

       

       저렇게 얼굴을 막 쓸 거면 나주면 안 되나. 진짜 잘 쓸 수 있는데.

       

       “리하 씨! 준비 끝났죠?”

       “네. 사장님. 방송 시작 할까요?”

       “잠시만요. 아라 씨 가면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여우 가면을 얼굴에 걸치는 화령의 모습에 리하는 속으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얼굴 공개를 하지 않으셨으니 어쩔 수 없지만.

       

       “자. 시작합시다!”

       

       – 엔하!

       – 뭐야! 엔리 어디가써!

       – 저 여우가면은 누구임?

       – 메이드복 엔리를 내놔라!

       – 고양이귀! 메이드!

       – 옷 진짜 낡았넼ㅋㅋㅋ

       – 방구석 백수인 나도 저렇겐 안 입겠다.

       

       지금 방송 화면에는 가면을 쓴 화령만이 잡혀 있었다. 시청자가 어느 정도 모인 후에 엔리가 모습을 드러내야 그림이 좋으니까. 원래 하이라이트는 나중에 터트려야 하지 않나.

       

       엔리의 방송에 들어왔으나 엔리가 없단 사실에 시청자들이 의문을 드러내고 있으려니 화령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 그니까 누구신데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 어?

       – 이 목소리 들어봤는데.

       – 화령이네.

       – 화령?!

       

       “네. 화령입니다. 현실에서는 처음 뵙네요.”

       

       화령이 고개를 숙이며 조목조목한 목소리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자 채팅창이 혼돈에 빠졌다.

       

       – 화령이 왜 존댓말 함?!

       – 거만한 어투 어디가써!

       – 이런 건 내 천마님이 아냐!

       

       그럴 법 했다. 당장 리하도 처음 존댓말을 사용하는 화령을 만났을 때 당황했으니까 VR의 세상 속에서 언제나 거만하고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사람이 예의바른 존댓말이라니.

       

       – 예전에 엔리 방송 나왔을 때 한국어 쓰지 않았었나.

       – 항아리 방송 때 한국어 썼잖아.

       

       – 천마조아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한국어 많이 느셨는데 왜 아직도 존댓말을 하시나요?]

       

       “감사합니다. 버릇이 돼서 영 바꾸기가 어렵네요.”

       

       엑? 예전에 썼었다고?! 시청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직 화령이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엔리의 방송에 나와 한국어 쓰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 모양이다.

       

       진짜 시청자 분들은 오만 걸 다 기억한다니까.

       

       여우가면을 쓴 여성의 정체가 화령이란 게 드러나자 채팅창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활발해졌다.

       

       VR의 세상에서만 인사하던 사람이 현실의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 ㅇㅇ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존댓말도 이것대로 신선해서 좋은 듯?]

       

       – 다른 매력이 있긴 함.

       – 이것도 갭모에란 건가.

       – 난 그래도 위엄 넘치는 천마님이 좋아.

       

       – 리어카파괴자엔리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대체 옷은 왜 그런 가요?]

       

       “옷이 뭐 어때서요? 입기 편하면 그만이죠.”

       

       – ???

       – 일부러 저런 옷 입은 게 아니었다고?!

       – 진짜 테러범이 따로 없넼ㅋㅋ

       – 화령의 단점 하나 추가 됐네. 패션 센스가 극악이다.

       

       현실에서 방송을 하는 게 처음이라 할지라도 여태까지 쌓아온 방송 경험이 어디가는 것은 아닌지 화령은 능숙하게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 메이드귀이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방송 주인은 어디에 있죠? 제 메이드가 어디 갔냐고요!]

       

       “지금 카메라 뒤에 숨어 있어요. 겁 많은 고양이 같아서 귀엽네요.”

       “누가 겁많은 고양이인가요!”

       

       슬슬 때가 되었다 생각을 한 것일까. 리하의 뒤에서 타이밍을 재고 있던 엔리가 화면 안으로 들어가며 큰 소리를 냈다.

       

       – 와캬퍄

       – 엔하!

       – 엔리가 외모깡패긴 해.

       – 캬. 지렸다.

       – 바로 클립 딴다.

       – 헤응. 눈나아아아.

       

       “엔하! 여러분 반갑습니다! 엔리입니다!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벌칙방송입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안 하면 난리가 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메이드 복을 입었죠. 어떤가요. 저 예뻐요?”

       

       – ㅇㅇ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 최고!]

       

       – 엔육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내 돈을 가져가! 엔리!]

       

       – 공냥고양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도네하라고 미모로 협박하니까 어쩔 수가 없네.]

       

       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부끄러움을 타던 엔리지만 그녀도 프로였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무섭게 얼굴에 철판을 깐 그녀에게서는 자그마한 망설임도 느낄 수가 없었다.

       

       역시 사장님이야. 평소에는 허술한 게으름뱅이지만 방송을 할 때는 프로라니까.

       

       평소에 게임 방송을 할 때도 지금처럼 프로의식이 넘쳤으면 참 좋을 텐데.

       

       “저기 엔리씨.”

       “네. 왜요. 화령씨?”

       “고양이 메이드가 왜 고양이 말투를 안 쓰시는 건가요?”

       

       그런 지적은 예상치 못한 걸까. 엔리의 얼굴 위에 씌워져 있던 가면에 살짝 금이 갔다.

       

       “어. 그게.”

       “벌칙방송은 제대로 해야하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략 200화 전쯤 똥겜을 할 때 존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건 잘 기억한답니다. 정작 필요한 걸 잊어버려서 문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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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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