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5

        

         “오….”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기초적인 준비 동작도 이행하지 않았거늘,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와 버렸다.

         

         주변은 개판이다. 단어의 토씨 하나 바꿀 필요없이 말 그대로 개판이다.

         하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지켜보기엔 썩 멋진 개판이라고 묘사하면 너무 알아듣기 난해하려나?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시끄러운 현실로부터 격리해 두었던 청각 기능을 되살려보도록 하자. 그러니까… 아주 잠깐만.

         

         

         “에밀리! 에밀리이이이!! 그 빌어 처먹을 대본 담긴 칩 대체 어디 있어!? 아니아니, 씨발 최종 수정본 컨펌 완료#1.3 말고! 찐찐 최종 수정본 변경 금지#1.11… 하여간 씹 대충 그런 이름 붙어있던 거! 5분 뒤에 라이브인데 내가 정말 여기까지 나와야 해??”

         

         “개봉 코드 카파 오레가노 492! 귀중품 무인 배송 보관함의 개봉을 요청… [ 비밀번호를 연속 5회 잘못 입력하셨습니다. 30분 후에 다시 시도하실 수 있습니다. ] …야! 가서 도끼 좀 가져와라! 이거 메모한 새끼도 같이!”

         

         “아무나! 진짜 아무 연예인이나 마이너 분야의 셀럽이라도 좋아! 1시간 뒤에 있을 ‘패션 인 헤이븐’에 오프라인 패널로 참석할 수 있는 인간이랑 연결 좀…. 아니, 아예 연락처를 살게! 10만 크레딧 바로 이체해드리겠습니다! 제발, 형님들! 누님들? 야 이 매정한 씹새들아!!!”

         

         “심장 제세동기나 전기 충격 관련 임플란트 가진 새끼 없냐!? 부탁인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B-3번 대기실에 계시는 가수 분 가랑이 사이에다 고압 전류 한 번만 쏴 줘라. ……내가 좋아서 이런 부탁을 하겠냐 씨발! 자기는 노래 부르기 전에 강한 자극이 필요하댄다….”

         

         “……이건 어떨까? 주조정실에 있는 경비 드로이드에 기름을 뿌리고, 그대로 화려하게 태워버리는 거야. 잘 하면 코어가 유폭되면서 난장판이 벌어지겠지? 그럼 다 같이 손잡고 휴방 할 수 있어. 좋아, 흐힛 존나 완벽해.”

         

         

         음, 귀가 물리적으로 찢어질 것 같다.

         이것도 사실 제로가 음원을 필터해서 취합한 다음 대역대 별로 나눈 결과물이라면 믿겠나? 원래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나로선 알아먹을 방도가 없었을 소음 덩어리였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종이 쪼가리를 휘날리며 줍지도 않고 바쁘게 뛰어가는 인간.

         

         자기가 무슨 미식축구 선수라는 되는 것 마냥 상반신을 낮추고 바닥만 본 채로, 전화하면서 앞으로 돌진하는 코뿔소 새끼.

         

         뺨을 가로지르는 눈물 자국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어린애 마냥 통로 한복판에 퍼질러져서 절규하는 직장인.

         

         금방이라도 양복 안쪽에서 회칼을 꺼내 들고 휘두를 것 같은 거무죽죽한 안색으로 뭐라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시체.

         

         마무리로 그들이 남긴 각종 오물을 청소하기 위해 배치된 소형 자동화 로봇이 몇 기가 설치류처럼 다리 사이를 재빠르게 돌아다니며 작업하는 디테일까지.

         

         …어째 정상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적은 것 같은데, 아무튼지간에.

         

         이게 도떼기 시장인지 아니면 잘 나가는 방송국 복도인지 구분조차 힘든 진풍경을, 숫제 동물원 보듯이 구경하고 있는 이쪽의 기색을 눈치챈 더기 씨가 바쁜 와중에도 잠깐 고개를 돌려 직장 동료들을 변호하셨다.

         

         “이야. 오늘은 그나마 다들 제 할 일 하느라 얌전해서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누가 앞을 가로막고 무례하게 굴면 얼굴을 후려갈겨야 하나, 명치를 때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뭐라고?”

         

         아니, 전혀 변호가 아니잖아. 뭔데, 무슨 미친 소리에요 그게.

         

         대체 왜 ‘만일 게스트가 펑크나면, 어차피 방송국 내부에 있는 사람은 다 관계자니까 배틀-직권남용 혹은 물리적인 의미의 전투-을 해서라도 반강제로 섭외한다.’ 같은 무신의 논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도무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진지한 어조로 떠든 주제에, 벌레 씹은 내 표정을 보고 뒤늦게 하하하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해보려는 그의 짤막한 설명을 들었는데도 이해가 어렵다.

         

         관문 경비대에서 경찰 비상 대기조 운용할 때도 이거보단 훨씬 침착한 분위기였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과연, 프로그램을 24시간 송출하는 미디어 기업에서 직원 복지라는 기치가 바닥에 떨어지면 이런 꼴이 나버리는 건가.

         

         …안타깝다 방송계, 슬프도다 직장인. 중간에 경력을 확 꺾어서 자영업자 겸 프리랜서로 전직하길 잘했지 나도.

         

         그래도 한가지, 딱 한가지 이 환경이 흡족한 점을 꼽을 수 있다면.

         바로 누구나가 공평하게 뒤지도록 바빠서 나나 제로에게 아무런 유감이나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닐까?

         

         막말로 당장 집에서 청소하는 드로이드 몇 대를 추가 호출해서 천장을 부수며 등장시킨 다음, 휴머노이드 가마를 만들어서 그 위에 탑승한 채로 지나간다 하더라도 다들 힐끗하고 말 정도로.

         

         “끄에에엑. 끼야아아악—!! 잔업 수당은 근무 종료 이후에 지급된다는 게 무슨 소리야! 난 방금 퇴근 도장 찍고 왔다고! …결제 취소됐으니까 잠깐만 다시 내려와 보라니?! 거기로 돌아가긴 싫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당장 비켜 덜 떨어진 새꺄! 너 때문에 28초 내로 이 화물 수레가 플래티넘 스튜디오에 도착 못할 거라면, 나도 씨발 지금 그냥 문짝 열어제끼고 같이 뛰어내릴라니까 잘 처신해!”

         

         “다들… 아주 활기차시네요.”

         “8년 전에 복도 조명을 일괄적으로 갈고 킨 이래로 끈 적이 없어서, 아무도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농담마저 있지 뭡니까!”

         

         아직도 스쳐 지나가듯 간간이 고막을 두들기는 비명을 애써 포장했다.

         

         이것 참, 타인의 고단함을 보며 안심한다는 게 절대 좋은 태도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제로가 컨트롤하는 드로이드의 부품이 비싸지고, 개체수가 나날이 늘어나다 보니.

         

         어디까지나 키가 평균에 아주 약간 못 미치는 소녀와 중무장 로봇 콤비가 활보하는 걸 너그럽게 여기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던 마당에,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상대가 어떻게 생겨 먹었다 한들 알아서 납득하고 그러려니~ 하는 공간은 썩 마음에 든다.

         

         실은 마음에 드는 걸 넘어 좋다. 존나 편하다!

         

         그래, 전신을 초록색으로 물들인 초전도 용병도 있고. 원작에선 신기술이라면 환장하다 못해 기어이 척추 근처 신경에 기계 팔을 추가한 또라이 빌런 같은 것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이런 기상천외한 문화의 유행 중심지인 방송가에서도 내가 계속 이목을 끄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지. 으으음… 다들 오늘도 힘내십쇼. 파이팅…!

         

         위이잉….

         

         하지만 내 소리 없는 응원이 무색하게도. 일행을 인도한 더기 씨는 유동 인구로 미어터지는 상층부 중앙 복도를 훌쩍 빠져나와 조금 인적이 드문, 그렇지만 왠지 더 철저하게 관리되는 티가 나는 안쪽 통로로 우리를 안내했다.

         

         어디 보자, 매끄럽게 열리는 방의 도어 플레이트에 적힌 명칭은… A-1 출연자 대기실.

         

         “여기 안에서 잠깐만 편히 기다려 주시면, 서면 결제가 끝나는 대로 제가 바로 돌아와서 홀로그래픽 촬영실로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부르실일이있으시다면방인터폰에제번호가등록되어있으니전그럼이만…!!”

         

         “어… 네, 저야 좋죠. 편하실 대로 하세요.”

         

         거기에 더해 평탄하게 얘기하던 도중, 전화가 왔는지 임플란트 언저리가 번쩍이자마자.

         속사포처럼 남은 안내 문구를 쏟아내고는 순식간에 뒤돌아 왔던 길로 사라지는 그의 등판을 향해 멋쩍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니까 꽤 넓은 방에 남은 건 우리뿐.

         

         ……어쩌면 약속 시간이 30분까지랍시고 29분에 칼같이 맞춰서 올라간 내 한계치 늦장이 MD에겐 치명타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부디 규칙을 엄수한 날 원망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 둔 다른 쪽에게 짜증을 내줬으면 좋겠다.

         

         나름 픽업 차량부터 여러가지로 신경 써 준 건 고마운데 정작 가이드로 붙은 사람의 안색이 점점 시퍼래지는 걸 보고 있으면 속에 뭐가 얹힌 것 같다고요 진짜.

         

         “…뭐, 설마 손님한테까지 불똥이 튀기야 하겠어.”

         

         – 관계자에게 내주는 별실인만큼 특별한 감시 체계는 없을 거라 사료됩니다만, 확인 절차는 빠짐없이 거치겠습니다. –

         

         “아냐, 그럴수록 오히려 더 철저하게 해. 저번에 보니까 에나마 사장단 중 한 명도 별의별 섹스 테이프를 다 추출해다 약점 잡기용으로 모으고 있더라. ……아, 또 괜히 생각났잖아! 우엑!”

         

         간신히 떠올리는 걸 잊었던 금단의 기억을 떠올려서 어지러워진 건 둘째 치고.

         

         푹신해 보이는 소파, 미용실에서나 볼 법한 높이 조절 의자, 한 쪽 벽을 가득 메운 거울.

         도무지 사람을 어떻게 끼워 넣고 쓰는 건지 감도 안 오게 고문 기구처럼 생긴 미용 기구 등등.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또는 사용자가 앉는 거에 맞춰서 관절 변형이 일어나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스마트 가구들이 즐비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21세기 방송국. 혹은 어디 미디어에서나 보던 극장 분장실 그 자체인 풍경에 약간 두근두근했다.

         

         실제로는 정식으로 섭외 겸 초대를 받아서 온 거지만,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만 엿본다 생각하면 누구나 오싹한 느낌을 받지 않겠나?

         

         그렇지만 설렌 건 설렌 거고… 이렇게 대놓고 마음대로 쉬고 있으라며 절호의 기회까지 줬는데 잡지 않는 건 바보짓이리라.

         

         “읏, 차.”

         

         우선은 폴짝! 하고 발을 굴러서 폭신! 하고. 소파에 무사히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예로부터 뛰면 걷고 싶고, 또 걸으면 앉고 싶고, 막상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간이라 하였으니 내가 바로 누울 자리를 선점한 건 게으름이 아닌 본능이라 주장하겠다.

         

         유달리 잠이 많아진 몸이 된 것도 이유긴 한데.

         시험관 안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 있던 게 무의식 중에 트라우마 비슷한 걸로 남기라도 했는지, 어째 다른 물건에 피부가 맞닿아 있는? 신체를 어디 기대고 있는 게 편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개인적인 선호가 생긴 것도 있고. 음.

         

         그리고 솔직히 내 몸에 대한 정신론이고 나발이고, 커다란 전신 거울을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어색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서 정면 의자 자리는 좀 힘들다.

         

         옷 같은 게 맞나 보려고 잠깐씩 탈의실에서 쳐다보는 거랑은 기분이 다르다니까 이게.

         

         – 보조 전력 최대 가동, 주사율 연산 조율 개시. 강조 표시하는 동위원소 철, 아연, 알루미늄, 구리 등의 집적 회로 재질로 고정합니다. –

         

         “그래… 첫 시연, 잘 부탁해~”

         

         일단 출력을 끌어올리는 제로에게 멋지게 한 번 보여달라는 의미의 응원을 던져주곤 본격적인 구경꾼 모드에 돌입했다.

         

         응? 뭐가 처음이냐고?

         요건 아까 거의 매일이면 매일 같이 제로가 부품 갈이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쇼핑 중독이라 놀려도 좋은데… 유감스럽게도 물주는 나지만 이번 건에 한해선 카드를 긁는 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

         

         의미없이 예비금을 놀려 두는 것도 싫고, 애가 전력증강 하고 싶다는 걸 내 막연한 구두쇠 본능 때문에 계속 막는 것도 못할 노릇이라 아예 예금 계좌와 전자 통장을 -거의, 어디까지나 거의! 진짜 바닥내진 말고!- 다 써도 좋다고 맡겨버렸더니 이놈이 기어이 질러버렸다.

         

         평소부터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노래를 부르던 망할 심도 스캐너를 말이다.

         

         그거 연구소 같은 건물이나 군용 이동식 관제 차량에나 연결하는 커다란 물건인지라, 소형화한 건 뒤지게 비싸다고 항상 돌려보냈지만. 돈도 꽤나 벌었는데 장난감 하나 안 사주는 못난 어른이 될 쏘냐.

         

         덕분에 보안 강조하는 자리엔 저걸 장착한 저 2호기 모델은 함부로 데리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제값은 톡톡히 해주리라 믿는다. …제발, 아니면 신용 평가고 뭐고 바로 환불할 거야.

         

         지이이잉…!

         

         그렇게 묘하게 중독성 있는 충전음이 한차례 지나가고. 실내 전체는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극세 분석 광선에 모조리 뒤덮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파괴 광선(아님)!!

    휴재하느니 늦게나마 반 편이라도 마저 써왔습니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격려의 댓글을 읽다가, 지금 전체적으로 감기가 유행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아량과 양해에 기댈 수 있는 저와는 달리 정말 억지로라도 소화해야 할 일정이 남으신 분들은 부디 무사히 잘 끝마치시고 푹 쉬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