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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매번 미친 놈들이 나타나는 곳이 노스트럼이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미친 짓을 벌이고는 하는데, 그게 너무나도 상식 밖의 행동이라서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있다.

     제국은 지금 적국이 아니다.

     세이레네 항구가 열린 이후로, 제국의 문화가 들어와서 제국의 것들이 널리 퍼지게 되어 이제는 친제국주의자들도 생겨나는 게 작금의 실정이다.

     제국의 황제가 왕도에 방문한 게 처음도 아니다.

     오로솔 아카데미를 만들 때 이미 방문을 한 번 했었고, 그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까.

     “그레이 지브롤터 총독. 잘했네.”

     합스베르크 황제가 잠시 왕궁의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나는 내게로 다가온 헥스 자작과 따로 둘이서 만났다.

     “전쟁이 일어날 뻔 했어. 젠장.”

     헥스 자작의 표정은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져있었다.

     “그대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심각한 외교적 결례가 일어날 뻔 했어.”

     “따지고보면 호위라고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은 황제 잘못 아닙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 그걸 따질 수 있겠어. 썩은 계란을 던진 게 노스트럼의 사람인데. 젠장. 망할 것 같으니라고….”

     

     헥스 자작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하아. 미안하군. 그대에게 이렇게 짜증을 낼 일이 아닌데.”

     “괜찮습니다. 누군지 조사는 끝났습니까?”

     “아아. 이름은 산토리안. 나이는 64세. 직업은 빵집을 경영했지만, 지금은 폐업을 했다고 하더군.”

     “폐업이요?”

     “맞은 편에 생긴 제국산 빵집 때문에 망했다고 하더라고. 그 제국산 빵집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제국식 빵을 굽는 노스트럼 국민인데 말이야.”

     “흐음. 그러니까…늙은 노인네가 그런 이유로 황제를 상대로 썩은 계란을 던졌다?”

     “그래. …자네, 왜 웃나?”

     “아뇨. 그냥.”

     정황만 놓고 보면 그럴싸해보인다.

     “그 노인네, 미리 처형하시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의 이름으로. 안 그러면 내일 당장 시체로 발견될 겁니다.”

     “…누가?”

     “누구든 근거와 명분은 있으니까요.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감히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제공할 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제국주의자들은 황제를 향해 위해를 가하려고 한 테러범에 대한 처분을, 충성병자들은 괜히 자신들에게 테러 사주 의혹이 넘어올까봐 사건이 더 커지기 전에 은폐를 원하니까요.”

     “으음….”

     “우리가 그 노인네의 미친 헛소리를 들어주면서 밤새 지켜줄 것도 아니잖습니까? 일일이 식사로 들어갈 빵과 물에 독이 들어있는지 확인할 것도 아니고.”

     “자네 입에서 죽이자는 말이 그렇게 바로 나올 줄은 몰랐군.”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죽을 짓을 했다면 가장 평화롭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죽이는 게 모두에게 좋습니다.”

     황제를 향해 위해를 가하려고 한 백성을 여왕이 눈물을 머금고 그 목을 베다.

     노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들의 동정은 금방 상식이라는 이성적 판단 하에 묻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를 향해 위해를 가하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죽였어도 무방했습니다.”

     “그건 그렇지.”

     “조사가 끝난 지금, 무조건 죽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리아 여왕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으니.”

     “…응?”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기에는 시체팔이를 하기 너무나도 딱 좋은 환경이거든요.”

     나는 양손을 들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는 ‘이것이 제국을 향한 분노다’라면서 분탕치기 딱 좋은 상황이고,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에게는 ‘이것이 노스트럼을 멸망시켜야 하는 이유다’라고 합리화시키기 딱 좋은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냥 살려둔다면 말이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 죽이라는 말인가?”

     “누군가는 움직일 겁니다. 황제의 불쾌함을 두려워하여, 제국과의 관계가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애초에 왕을 상대로 위해를 가하려고 했는데, 죽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알겠네. 전하도록 하지.”

     헥스 자작은 중간에 자의적인 판단으로 나리아에게 보고를 누락할 사람은 아니다.

     “나리아 여왕의 인덕을 강조하려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오히려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했다.”

     “직접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갈까요?”

     “내가 가서 말씀드리도록 하지.”

     “꼭, 잘 부탁드립니다.”

     헥스 자작이 떠났다.

     복도에는 왕궁에서 일하는 메이드들 누구도 이 근처로 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객실의 안쪽에서 느껴지는 노크 소리에 문을 열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다는 말이었나?”

     창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 합스베르크 황제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스트럼인의 잘못은 노스트럼의 왕이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습니까.”

     “지브롤터는?”

     “지브롤터가 처리합니다.”

     “그렇군. 아쉽게 되었어. 아주 그냥 다 떠먹여주는군. 나리아 여왕이 이렇게 부러울 수가 있나.”

     “하.”

     나는 문을 닫았다.

     “악취미로군요. 그렇게 평화를 망치고 싶으신 겁니까?”

     “오해를 풀자면, 나는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네.”

     “그러시겠죠. 그저 그런 자들이 행동을 저지를 수 있게, 그림자를 동원해서 상황을 만드셨을 뿐이니.”

     황제의 방문에 썩은 계란이 날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짓을 저지른 경우는 단 두 가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 심취한 ‘제국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라는 노스트럼주의자이거나.

     이번 이슈를 통해 정치적 우위를 점하려고 드는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의 자작극이거나.

     “썩은 계란을 던진 건 그 자야. 제국은 그 자에게 한 게 아무것도 없지.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자영업자는 도태되어 죽는 거지. 그게 기본적인 자본의 이치.”

     이곳은 왕성의 방이지만, 황제는 이미 자신의 마력을 통해 오러의 기막을 펼쳐 소음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 결계를 펼쳐두었다.

     “내가 자본에 환장한 엘프들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자본의 논리에 대해서는 그들과 같은 시각이거든.”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는 것들은 모두 소멸하고 없어져야 한다?”

     “정확히는 아무런 발버둥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고 영웅이 모든 걸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노스트럼스러운 자들은 말이지.”

     “그런 시각에서 말한다면, 그 노인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준비해준 썩은 달걀을 챙겨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의 다재무능한 국왕 전하께서 몰래 썩은 달걀을 직접 왕명으로 주신 것 같군요.”

     “허허. 나도 그런 노인의 장사를 망가뜨리려고 제국식 빵집을 열라고 지시내리거나 하지도 않았어.”

     황제가 피식 웃는다.

     “그래서, 자네는 그게 결론인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짓이다?”

     “치졸하고 더러운 환영인사죠. 황제가 썩은 달걀을 얻어맞는 걸 사진으로 찍어서 비웃으려고 한 우리 무능왕 전하의 실례.”

     범인은 무능왕이다.

     “하지만 한 명 더 잡아야겠네요. 제국법에 범죄행위 방조죄가 있잖습니까. 제국 황제는 혹시 그 법에 예외입니까?”

     “예외가 아니지만 여기는 제국이 아니라 왕국이지.”

     “아쉽군요.”

     “그렇다면 노스트럼 왕국을 없애고 제국령으로 만드는 건 어떤가?”

     “됐습니다. 그런다고 노스트럼을 버릴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말에 혹하는 머저리와 충성병자들만 솎아낸다면, 그래도 나름 재활용할 정도는 되거든요.”

     “재활용이라…. 이미, 쓰레기라는 건가?”

     “지켜보시죠. 우리의 나리아 여왕께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만일 그녀가 같잖은 동정으로 자비를 베푼다면-”

     발소리가 들렸고, 황제는 기막을 거두었다.

     

     똑똑똑. 

     무거운 노크 소리.

     아는 울림이다.

     

     “들어오세요, 헥스 자작.”

     “…실례하겠습니다.”

     나를 향한 말은 아니다.

     이 방에 있는 황제를 향한 말이다.

     “테르시안 제국의 황제께 회담 전,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무엇이오, 왕국의 외무대신?”

     “폐하를 향해 흉기를 투척한 괴뢰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나리아 여왕께서 명하셨습니다.”

     “호오, 어떻게 하기로 했나?”

     “사형. 교수대로 올리지도 않고, 감옥에 마련된 사형대에서 단두대를 쓰기로 했습니다.”

     “흐음….”

     헥스 자작의 말에 나는 안도했고, 황제는 그런 나를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쉽군.”

     “뭐가 아쉽습니까. 하루만 더 살려뒀으면 그걸 가지고 온갖 트집을 잡으셨을 분이.”

     “노스트럼의 평균을 좀 더 내게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는데. 확실히 차려진 밥상을 걷어차거나 편식하는 그런 존재는 아니군.”

     “됐습니다. 헥스 자작, 여왕께서는?”

     “…카르멘 왕비 전하와 함께, 황금의 홀에 있습니다.”

     황금의 홀.

     또 황금이냐고 하겠지만, 노스트럼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왕좌가 있는 곳이다.

     “드디어 직접 만나게 되겠군. 그레이 지브롤터. 안내하게.”

     황제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구를 가리켰고, 나는 황제의 앞에 섰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공식적인 만남은 제국력 100년 2월 10일이었다.

     오로솔이 아니었던, 그냥 노스트럼 왕실 아카데미에 제국 유학생으로 왔던 아스타시아 황녀의 졸업식 날.

     함께 졸업하는 그레이 지브롤터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크림슨 지브롤터 혼자서 아카데미 졸업식에 찾아왔던 그 날.

     그 때, 아버지와 황제는 조우했다.

     나는 그 때 아스타시아 황녀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제대로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몰랐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결정했다.

     사전에 이미 충분한 교감이 있었겠지만, 어느 특정 경지에 오른 이들은 한 공간에서 서로 시선만 교환해도 가늠할 수 있는 법.

     회귀 전.

     황제는 극비리에 개발한 공군부대로서의 비행선 계획을 모두 철회하고, 붉은 평야를 걸어와 협곡을 직접 두 발로 걸어 넘어왔다.

     노스트럼인들에게 익숙한 대규모 보병과 경마장에서 끌고 온 것 같은 말에 급하게 태운 기사를 동원했었다.

     그것은 전부 지브롤터 가문이 제국에 협조했기 때문이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하자면-

     ‘아버지는 황제보다 강했다.’

     처형의 날까지도, 아버지는 황제를 이길 수 있었다.

     당연히 협곡을 열고 제국편이 된 순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난 뒤의 매국노 크림슨은 황제보다 훨씬 강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황제는 멘테 경을 포함한 제국의 소드 마스터 8명-팔신장을 데리고 지브롤터 백작성을 향해 마스터 9인(본인 포함) 공습을 저질렀겠지.

     그 때의 아버지는 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어떨까?

     “후, 후후.”

     황제가 웃으며 나를 따라 복도를 걷는다.

     황제답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에게서 약간의 불안감이 보였다.

     예전에 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오른쪽 손가락을 튕길듯 말듯 만지작거리고, 낮은 웃음이 입술 끝으로 숨이 흘러나오고, 눈을 평소보다 0.1초 더 빨리 깜빡이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아스타시아와 결혼을 하고 난 뒤, 나에게서 ‘그래서 자식은 언제 낳을 건가?’라고 물어볼 때의 행동들이 은근히 보인다.

     

     긴장, 초조, 불안.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대한 불안감.

     괴물이 유일하게 인간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그런 불안감의 근원이 결국 괴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나 또한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된다.

     “그레이. 뭘 그렇게 바라보는 건가?”

     “글쎄요. 아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누가 대륙 최강일지에 대해, 조금은 긴장하시는 것 같으니.”

     “…내기를 하나 할까?”

     황금의 홀 앞.

     황제가 걸음을 멈추고 굳게 닫힌 문을 가리켰다.

     “내가 더 강하다면….”

     “황태자 해드리죠.”

     어머니와의 관계가 개선되는 바람에 사이가 좋아져 밤마다 시달리고, 여동생들을 돌보느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게 된 크림슨 지브롤터가 지금의 황제보다 기어이 약해졌다?

     ‘그럼 무조건 내가 숙이고 들어가야지.’

     황제의 아래에서 틈을 찌를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너무 자신감 넘치는 답변이라, 조금은 슬픈데.”

     “그만큼 저는 제 아버지를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에, 나는 바로 옥좌를 향하는 문을 열었다.

     끼이익.

     평소에는 잘만 열리던 옥좌의 문이 거칠게 경첩소리를 일으킨다.

     

     붉은 융단의 끝에 황금으로 된 의자가 두 개.

     하나는 카르멘 왕비가,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여왕이.

     그리고 카르멘 왕비의 옆.

     계단의 한 칸 아래, 왕실 기사단의 제복과 검은장미, 그리고 황금의 인장을 휘장으로 단 붉은 머리칼의 기사가 서 있다.

     “…하.”

     황제가 적발의 기사를 보자마자 씩 웃는다.

     “이거, 앞으로 1년은 더 있어야 하는 건가?”

     1년.

     당연히 왕족을 지키기 위한 후작으로서 서 있는 것이니까 그런 거겠지만.

     아버지는 황제보다, 한 계단 높은 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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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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