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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5

       

       ‘낮선…… 건 아니고 아는 천장이다.’

       

       깨어나니 학교 본관의 의무실이었다. 이곳의 천장, 이곳의 침상. 몇 번 와봤기에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에엣! 시라바야시 군, 일어났어?』

       

       침상에 누운 채 목소리를 향해 돌아보니, 교복 위에 흰 가운을 걸치고 체온계를 들고있던 아이까와였다. 그 옆을 보니 침상 바로 곁에 이유하가 앉아서 약한 빙결로 내 체온을 식혀주고 있었다.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려.”

       “허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지 뭔가!”

       “뎃 군! 다이죠부?”

       

       그 외로 송병오 녀석과 양복자같은 다른 아이들도 각자 앉거나 선 채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한 마디씩 얹었다. 

       

       아아, 그런가. 녀석들에게 걱정을 끼쳤구나. 이 녀석들은 나만 믿고 있는데, 분대장인 내가 잠들어버리다니. 나는 대체 얼마나 잠들어있었던 걸까. 나는 이곳에서 나를 진료해왔을 아이까와에게 물었다.

       

       『난…… 며칠만에 깨어난거지……?』

       

       며칠, 어쩌면 몇 주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에엣, 그게…… 두 시간 정도……?』

       『……어우, 잘 잤다.』

       

       별 거 아니었잖아. 내가 침상에서 이불을 걷으며 일어나자 송병오 녀석이 말했다. 

       

       “1교시는 조회였고. 2·3교시는 기초마술학 이론수업이었지만 구로베 선생이 없는지라 자습을 했네.  쉬는시간에 잠깐 와봤는데 깨어났구먼.”

       

       자습이었으면 딱히 수업을 놓친 것도 아니었구나. 나는 구두를 신으며 말했다.

       

       “뭐, 그럼 4교시 수업은 들어가야겠지. 4교시 뭐였지?”

       “수신일세.”

       

       수신(修身). 미래로 치면 ‘도덕’이나 ‘윤리와 사상’ 비슷한 일반과목이다. 몸 움직이거나 머리써야 할 과목은 아니니까 교실에서 스근하게 쉬면서 들어야겠다.

       

       내가 일어서자 양복자가 다가와 물었다.

       

       “뎃 군! 혼또니 괜찮은거야? 움직일 수 있겠어? 내가 교실까지 들어서 옮겨줄게!”

       “아냐. 정말 괜찮아. 봐봐.” 

       

       나는 제자리에서 뛰어 공중제비를 돌고 바닥에 완벽히 착지했다. 명색이 칼잡이인데 아무리 체력이 딸리고 컨디션이 나쁘더라도 이 정도는 우습지. 

       

       “자네, 아주 잽싼걸! 그야말로 창경원 원숭이 뺨치는군!”

       

       송병오가 감탄했고, 양복자도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호라! 모 젠젠 멀쩡하잖아?”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자, 교실로 돌아가자.”

       

       나는 녀석들과 함께 의무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후우……’

       

       겉으로는 멀쩡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사실 그리 좋지는 않았다. 녀석들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내색은 안 냈지만 고작 한바퀴 도는 것 정도로 어지러움이 몰려왔던 것이다.

       

       아무리 뙤약볕에 오랫동안 서있기로서니 일사병으로 쓰러지다니. 진짜 몸 컨디션이 나쁘긴 나쁜가보다. 물론 며칠 지나면 낫긴 낫겠지만……

       

       그 며칠이 불안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이렇게 몸 상태가 안 좋은 사이에, 교내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이 무슨 수작을 벌이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걷고 있자니,

       

       『앗, 맞다……! 시라바야시 군, 여기 상장! 아까 내가 교무실 가서 받아왔어.』

       

       아이까와가 나에게 상장을 건넸다. 그러고보니 내가 상장을 받자마자 기절하는 바람에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아이까와가 받아온 건가.  

       

       『어, 고맙다.』

       『으응, 어차피 급장이 할 일이고, 친구니까……』

       

       소심한 성격임에도 하필 아이우에오 순서로 출석번호가 1번이라 학기 초에 엉겹결에 급장이 된 아이까와였지만, 여전히 급장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아이까와로부터 상장을 건네받아 손부채처럼 팔랑거리며 말했다.

       

       『근데 상장 수여라니. 이 학교가 나한테 이런거 줄 학교가 아닌데.』

       

       그 말에,

       

       『저기…… 내가 조금 들은 게 있어.』 

       

       하며 아이까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교무실 갔다가 주워들은 건데…… 어제의 일에 대해서 다른 교수들은 불미스러운 일이니 그냥 덮자고 주장했지만, 교장 선생은 반드시 상을 줘야겠다고 강변했대.』 

       『교장 선생이?』

       

       전부터 봤을 땐 그냥 힘없는 허수아비 교장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강하게 고집했다라. 이유가 뭘까. 아이까와가 말을 이었다.

       

       『으응. 덮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런 일은 자랑스럽게 알려야한다나…….』 

       

       하긴, 이번 사건은 무작정 덮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싸운 것들 중 가장 요란하게 일을 벌인 것이다. 학교 신사 지하의 컴퓨터는 지하에 숨겨져있기라도 했지, 대강당도 반파된 것은 숨길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학교에서 싸웠던 것들은 모두  구로베 교수가 적당히 숨겨줬지만, 이번엔 너무 요란하게 일을 벌여서 경찰까지 왔으니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었던 데다가…… 

       

       게다가 싸움의 이유도, ‘마약을 하고 교수를 저격한 불량생도를 처단했다’라는 공로는 분명 학교측에서 상을 줄 만 한 것이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교장으로서는 숨기지 않고 나에게 상을 주기로 한 것이리라.

        

       ‘뭐, 나한테는 좋은 일이야.’

       

       어쨌든 교장으로부터 상을 받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로써 교내에서의 나의 입지가 조금이나마 올라갔을 테니까.

       

       분명히 이 학교의 실세는 대동아공영회 소속 교수들이고 교장은 놈들이 앉혀둔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교장이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나에겐 꽤나 고무적인 일이다. 

       

       ‘그것도, 아침 조회시간에 온갖 좋은 말로 내 업적을 줄줄이 읊으며 말이지. 명예경찰 어쩌구까지 다 얘기하면서.’

       

       내가 며칠 전부터 종종 ‘명예경찰’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이제야말로 내가 종로경찰서장의 부탁을 받고 명예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학교 학생들 모두가 확실히 알게 되었으리라.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이든 아니면 학생이든, 당분간 나를 함부로 건들진 못하겠지.’ 

       

       그렇잖아도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다가 구로베도 없고 렌까도 없어서 혹시 이 틈을 노리고 나를 공격해오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생각치도 못했던 교장이 힘이 되어줄 줄이야. 교장이 의도했든 안했든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완전히 컨디션을 되찾을 때까지, 학교에서 내 신변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게다가 다까시마 요시오 사건의 여파로 당분간 교내에 경찰들까지 상주하게 되었으니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은 운신의 폭이 좁아졌으리라. 

       

       ‘의도치 않게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에게도 한 방 먹인 셈이네.’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

       

       

       

       —콰앙!

       

       『시라바야시 놈이이이———잇!』 

       

       마력공학 수업을 담당하는 야나기다 요이찌(柳田 與一) 교수는 가느다란 염소수염을 떨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진정하시지요, 야나기다 선생.』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다른 교수들이 야나기다 교수를 진정시키려 말을 건넸지만,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야나기다 교수가 다시 소리쳤다. 

       

       『시라바야시 놈이 해치운 다까시마 요시오라는 녀석 말입니다! 그 녀석은, 어쩌면 우리의 강력한 수족이 될 수도 있는 녀석이었어요!』 

       

       그리고는 다시 분통을 터트리며 외쳤다.

       

       『그뿐만입니까? 이번 사건은, 덮기에는 너무 큰 사건인지라 경찰들까지 학교내에 파견되어서 상주하고 있어요!』 

       

       그 말에는 다른 교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로서는 곤란한 일이죠. 우리 대동아공영회는 경찰 쪽에 잔챙이 순사 몇 명을 심어놓았을 뿐, 아직 경찰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으니……』 

       『게다가 오늘 아침엔, 교장 선생이 놈에게 일부러 특별상까지 수여했어요! 막을 명분이 없어서 막진 못했지만, 시라바야시 놈이 주목받는 것은 저희에게는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아요…….』 

       

       모두 달리 할 말이 없어 조용한 와중에, 다소 진정을 되찾은 야나기다 교수가 두꺼운 뿔테안경을 고쳐쓰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야나기다 교수는 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어 좌중을 향해 들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것, 보이십니까? 구로베 교수의 연구 노트입니다.』

       『아니! 어디서 얻었습니까?』

       『며칠 전입니다. 그 다까시마 요시오라는 놈이 저를 잠깐 찾아왔었지요. 그 때 건네받은 것입니다.』 

       

       야나기다 교수는 노트를 갈무리하며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불량생도는, 우리 대동아공영회에 들어오고 싶어서 그런 짓을 벌였다더군요. 저희의 수족으로 썼으면 딱 알맞은 녀석이었을텐데, 죽어서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비대한 체격의 뚱뚱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생도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이군요. 그토록 저희에게 협조하지 않던 구로베 선생의 연구를 이렇게 쉽게 손에 넣게 되다니…… 연구 노트는 히가시노리 이화학 연구소에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곳에서라면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야나기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예. 그리고 얻은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시라바야시 놈이 배신을 꾀한다는 증언도 얻었지요. 놈이 대동아공영회에 입회한 것은, 사실 방해하려는 수작이라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량조절을 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삭/삭 바로 올라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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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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