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6

       버멜과 세실은 해룡을 상대로 생사결을 벌였다.

       

       처음에는 해룡이 우세했다. 비바람을 조종하는 거대한 마수의 위세 앞에서 카우렐리아의 마도사들은 지레 겁을 먹은 듯했다.

       

       그러나 버멜이 세실에게 조언을 한 번 해준 뒤로, 전세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버멜의 말을 믿지 않았던 세실도 어느덧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모든 조언이 들어맞았다. 찌르라는 곳을 찌르면 해룡이 물러나고, 막으라는 곳을 막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해룡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런 개미새끼들한테, 용족인 이몸이 밀리고 있다고?’

       

       […네놈, 뭐하는 놈이냐.]

       

       리바이어던은 버멜을 콕 집어서 물었다.

       

       “평범한 엘프다.”

       [평범한 엘프? 웃기는군.]

       

       해룡은 콧김을 뿜어내며 해일을 일으켰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쓰나미였지만, 공략법만 알면 어렵지 않게 파훼할 수 있었다.

       

       “8번 패턴.”

       

       세실의 눈이 바다처럼 푸르게 변한다. 그녀가 휘두르는 스태프 첨단에서 하얀 눈꽃이 피었다. 그와 동시에, 맹렬히 몰아치던 파도가 꽁꽁 얼어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이 상태로 대치한 지 얼마나 지났더라?

       

       못해도 한 시간은 넘었을 것이다. 그만한 시간이 넘도록 리바이어던은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룡은 세계수를 휩쓸어 버리라는 명령을 창천으로부터 받았다. 저번에 습격을 중단하라는 상천의 명령이 있었지만, 결국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 창천이 상천보다 강하다. 그러니 리바이어던은 창천의 말을 우선하여 따라야만 했다.

       

       당시 창천은 이렇게 얘기했다.

       

       – 불가피한 이유로 전진할 수 없다면, 우선 시간만 끌어라.

       

       아무리 그래도 시간만 끌라니. 그러다간 자신의 위엄이 심해에 처박히고 말 것이다.

       

       말석이긴 해도 나름 구천지대계의 일원. 리바이어던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브레스를 쏠 준비를 마쳤다.

       

       “흐어어어!”

       

       동시에, 그의 비늘에 자리한 온갖 마수들이 괴성을 내지른다.

       

       “9번 패턴. 제가 가리키는 비늘을 전부 파괴해 주세요.”

       

       버멜이 리바이어던에게 삿대질을 가한다. 그것만으로도 모욕적인데, 세실이 쏘는 마탄(魔彈)은 더 짜증이 났다.

       

       [……!]

       

       아가리를 포함한 급소 다섯 군데에 화염탄이 작렬한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브레스를 쏘려던 곳에서 기름이 뿜어져 나왔다.

       

       [네놈…!]

       

       리바이어던은 해수면으로 잠수한 뒤 숨을 골랐다. 그 사이에 수면 위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4번 패턴.

       

       ‘지금이다.’

       

       체력을 비축한 뒤 날치처럼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리바이어던. 비늘에 달린 기관포를 장전하고는 사방에 흩뿌린다.

       

       그러나 이 또한 세실에게 전부 제지당하고 말았다.

       

       이상하다. 원래라면 안개 때문에 한 치 앞이 안 보일 텐데,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다.

       

       ‘저 엘프가, 내 움직임을 읽고 있다.’

       

       그리 판단한 리바이어던은 이를 갈며 타개책을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창천으로부터 무전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와 동시에 해무가 걷히고, 해룡 자신이 뿌려두었던 빗줄기가 그치기 시작한다.

       

       쿠구구궁.

       

       구름 한 점 없는 창공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룡도, 엘프들도. 싸움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건….”

       

       

       **

       

       

       나는 스파게티 괴물을 향해 스태프를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찍어 올리는 일격. 괴물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다르게 빨라졌지만, 내 적수는 되지 못했다.

       

       전계 정령왕의 대리인, 앨리스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녀는 내 몸에 마력을 계속 공급해주며 전투를 보조했다. 덕분에 마력초를 피울 시간에 공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쩌적!

       

       스태프 한 번을 후려칠 때마다 놈을 구성하는 원소가 뒤바뀌었다.

       

       팔정도 7식에 해당하는 ‘분열’의 효과 때문이다.

       

       핵분열은 비단 무거운 원소의 분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한 핵력의 매개, 그리고 적당히 큰 에너지만 있다면 어떤 원자핵이라도 그 결합을 끊어낼 수 있다. 예컨대, 가벼운 탄소 하나를 더 가벼운 리튬 두 개로 끊어내는 식이다.

       

       이 기술을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에 적용하면 핵폭발이 일어나며 모두가 휘말리겠지만, 괴물의 몸에 그런 무거운 원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끄르륵!]

       

       살점을 파고드는 맛이 점점 없어진다. 분열 작업이 다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었지만, 이놈은 이렇게 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분열하겠지. 괜히 절멸급이 아니다. 어쨌든 나는 이놈이 수소와 헬륨으로만 분열될 때까지 후려치고 또 후려쳐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후려쳤을까.

       

       […….]

       

       끝났다.

       

       호롱도, 놈을 구성하던 뼈대와 살점도.

       

       전부 분해했다. 화학이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파스모가 빚어낸 절멸급 마수와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잡았습니다.”

       

       나는 시큐엘에게 그리 고했다. 물의 정령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사제와 마도사들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들은 여전히 미덥지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몇몇은 입술을 슬쩍 깨물었고, 또 몇몇은 비 맞은 고양이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저 표정들은 틸레트에서도 봤기에 안다. 나에게 공포를, 또 적개심을 느끼는 자의 눈빛이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이 광경을 보고 실망하여 도망쳤을 것이다.

       

       이젠 아니었다.

       

       나는 인간의 선악을 판단하는 입장에서 내려와, 그들 중 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여 이곳에 섞여들기로 다짐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나를 나 자신으로 보아준 이들에게 답례하기 위함이었다.

       

       “이래도 절 믿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각오 정도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나는 내 목에 스태프를 겨누었다.

       

       “아, 안 돼…!”

       “하지 마세요!”

       “언니, 미쳤어?”

       

       프레이가 달려와서 다리를 붙잡고, 아카샤는 내 스태프를 빼앗으려 했다. 유피엘과 레니냐는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사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왜 저러느냐. 단체로 세뇌를 당한 거냐. 아니, 그래도 정령왕이 지켜보고 있는데 세뇌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등등.

       

       결론적으로 여론은 나에게 호의적으로 변했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좋아요, 나쁘지 않습니다.”

       

       시큐엘은 흡족해하며 손뼉을 쳤다.

       

       “당신이 한 각오의 무게를 알겠습니다. 이번 일이 잘 매듭지어진다면 정령의 샘으로 당신을 데려가겠어요. 고된 경험이 되겠지만, 지금과 같이 반성하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거라.

       

       당장 내 소원은 로테의 소생밖에 없다.

       

       즉, ‘정령의 샘’이라는 곳에 가기만 한다면 로테를 살려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매듭지었다.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보고드립니다!”

       

       마도사들이 심어두었던 척후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오며 소식을 전했다.

       

       “세계수가, 세계수가……!”

       “무슨 일인가요?”

       “세계수가, 불타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아주 잠깐, 몇몇 사제가 나를 째려보긴 하였으나 똑같이 노려봐주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이건 나나 아카샤 짓이 아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얘기해 봐요!”

       “그, 그게!”

       

       전령은 말을 꺼내다 말고 입에서 음식물을 뿜어냈다.

       

       놀란 엘프들이 뒤로 물러났다. 반대로 나와 아카샤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앞으로 다가갔다.

       

       전형적인 구토 증상, 그리고 시뻘겋게 탄 얼굴과 팔뚝.

       

       틀림없다.

       

       이건….

       

       

       **

       

       

       카우렐리아의 수도, 메르헤름.

       

       그 하늘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비행선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폭약을 적재할 수 있는 마왕군 최대 규모의 공중전함이었다.

       

       단순한 공중전함도 아니고, 무려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똑똑한 항공기.

       

       그것이 바로, 구천지대계 6석을 담당하고 있는 ‘캐슬 브라보’였다.

       

       – 지금이다.

       

       캐슬 브라보는 스텔스 상태로 카우렐리아 항공까지 운행하다가, 창천의 명령을 받고는 은신을 풀고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더 유지할 수 있었던 스텔스를 푼 이유는 하나.

       

       미끼가 되기 위함이다.

       

       – 세계수는 멀리서 보면 커다란 녹색 버섯처럼 생겼지.

       

       창천은 6석에게 그런 농담을 건네고는 명령을 하달했다.

       

       – 해룡과 나의 직속이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 이제 네 차례다. 로드스톤이 이곳으로 옮겨질 때까지 정령들의 이목을 끌어라.

       

       [이해. 잘 알아들었습니다.]

       

       캐슬 브라보에 탑재된 지능은 AI의 형태였다.

       

       때문에 함체의 모든 부분이 자동화가 되어있었고, 이는 명령만 주어진다면 준비된 프로토콜을 지연 없이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 반드시 정령왕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

       

       [이해. 그 점에 대해선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파스모의 말대로, 캐슬 브라보는 정령과 엘프들의 어그로를 끌 준비를 시작했다.

       

       [알림. 원자폭탄의 시범 투하를 실시합니다.]

       

       그렇다.

       

       카우렐리아에 존재하는 모든 지성체의 이목을 끌 방법.

       

       그것은 바로, 세계수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확인. 목표 대상 조준 및 폭탄의 투하를 실시합니다.]

       

       캐슬 브라보는 밋밋한 기계음을 내며 커다란 철덩어리를 떨어뜨렸고, 얼마 안 가 요란한 파공음이 지상에서 들려왔다.

       

       [확인. 카메라를 연결합니다. 이어서 얻어낸 영상 데이터를 본진으로 보내드립니다.]

       

       곧바로 답신이 들려왔다.

       

       – 정확한 피해를 보고하라.

       

       영상 데이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누가 끔찍하게 죽어갔는지, 세계수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보고. 광구 반경으로 보아하건대 폭탄의 위력은 TNT 5천 톤에서 8천 톤 사이입니다. 해당 폭발로 인해 세계수의 상층부에 발화 현상이 붙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 그래서 몇 명이나 죽었는지 보고하란 말이다!

       

       [의문.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집계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공 결계망과 방화막에 의해 실제 피해는 예상치의 12%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그러면 더 강한 것을 쏘란 말이다. 더, 더, 더!

       

       [이해. 알겠습니다. 창천의 명령에 따라 남은 폭탄을 차례대로 소진합니다.]

       

       그렇게 명령을 받은 캐슬 브라보가 15kT 폭탄을 투하하려고 할 무렵이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