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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6

    “하아…….”

     

    시루드는 막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번째 인지 모른다.

     

     

    그 이유라 함은, 바로 오늘이 아카데미의 시험날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시험이 걱정되는 탓은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의 어머니, 세레나는 시험 점수엔 크게 연연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평소에 학교를 오지 않던 사람도 시험을 보기 위해서 반드시 학교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루크 이루시, 그녀가 학교에 온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저번에 있었던 그 대화 이후, 루크는 학교에 오질 않았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짚이는 부분이야 굉장히 많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학교에 오지 않은 사유가 아니다.

     

     

    ‘루크는 오늘만큼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반드시 아카데미에 올 것이다’라는 사실 뿐.

     

     

    시루드는 그 사실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오해로 인해 서로 사귀는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사실은 동성애자였고, 때문에 자신에게 연심은 요만큼도 품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시루드는 매일 밤 그 때 루크의 말을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차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내게 이상형을 고르라면, 레니에 아린세이아 같은 여성이 좋겠군.’

     

    여성.

    여성.

    여성.

     

    계속해서 그 단어가 시루드의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그만큼, 루크가 여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루크가 동성애자였다니…….’

     

    그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어째서 루크는 그 사실을 진작에 말해주지 않았던 거지?

    그랬으면 혼자서 이상한 오해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연히 그걸 쉽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지…….’

     

    속으로 외치던 시루드는 곧 스스로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그 누가 그토록 쉽게 밝힐 수 있었겠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아무리 이전 시대보다는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고 수인-인간-엘프간의 결혼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동성애는 다른 영역이다.

     

    사회적인 시선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러니 밝힐 수가 없었겠지.

    자신이 만약 루크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그렇게 한 차례 이해심이 발휘되고 나면, 또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체, 나는 왜 그런 루크에게 그런 말을 해 가지고!’

    뭐? 덕분에 여자애들이랑도 잘 이야기 할 수 있게 돼? 마법 과목에 재미를 붙여?

    절교는 싫어?

    다시 생각해보니 대사 하나하나가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서드 형이 나보다 더 커서 좋은 거잖아!’라니!

    돌이켜보니 그건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은 마치 자신이 키가 다른 애들 보다 작은 걸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말 처럼 들렸다!

    이 나이의 엘프 남성이 이 정도 키를 갖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데!

    뭐, 엘프들 중에서도 작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 그건 다른 엘프들 보다 수명이 조금 더 긴 하이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성장이 더딘 것이지,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

     

    시루드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으로 복잡해진 머릿속을 비웠다.

    그러고나니, 또 속에서 한숨이 터져나오고 만다.

     

    “하아…….”

     

    마음 같아서는 아예 오늘 학교에 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험에 결석을 하는 것은 시험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세레나라고 해도 쉽게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시험에 아무리 자신이 없어도, 도망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라나.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결국 시루드는 아카데미를 향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등교길에 루크를 보진 않아서 다행인가…….’

     

    원래 루크는 이렇게 일찍 학교에 오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었다.

     

     

    -짝!

     

    “으힉?”

    “시루드! 정말 오랜만이구나, 마침 등교길에 만나다니!”

    시루드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허리 부근의 통쾌한 충격에 잔뜩 구부리고 있던 허리가 바짝 펴졌다.

    하지만 시루드를 놀랍게 한 것은 척추를 때린 그 충격이 아니었다.

     

    “루, 루크?”

     

    ‘어째서 루크가 이 시간에?’

     

    루크의 평소보다 이른 등교시간에 당황한 시루드를 바라보며, 루크는 뭐가 그리 좋은 지 꽤나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걸을 때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거라. 평소보다 왜소해 보이지 않느냐, 하하하.”

    “읏. 뭐, 뭔 소리야. 신경 꺼.”

     

    시루드는 루크의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루크를 보면 또 그 흑역사가 떠오를 것만 같으니까.

    게다가 평소보다 더 왜소해 보인다니?

    설마, 그때 자신이 한 말 때문에 그런 건가?

    시루드는 그 짧은 순간에 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평소엔 안 그러잖아.”

    “그냥 아침 준비가 좀 빨리 끝났다.”

     

    설마 아침 준비가 빨리 끝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시루드는 속으로 투덜거리려다 생각해보면 꽤 말이 되는 이유라서 그만 두었다.

     

    “아……. 그렇구나.”

    “그렇지.”

    “…….”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해졌다.

    마치, 고백했다가 차인 여자아이랑 같이 있는 느낌이다.

    사실은 그냥 오해였을 뿐.

    누가 고백한 적도 없고, 차인 적도 없지만.

    “…….”

     

    대체 얼마나 침묵이 이어진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시루드는 살짝 손목시계를 확인해보았다.

    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지금 손목시계를 본다고 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 지는 모른다.

    루크를 만나기 전에 시계를 보지 않았으니까.

     

    ‘왠지 나 엄청 멍청해진 것 같아.’

     

    시루드는 자신이 바보같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제발 사라져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짓은 너무 눈에 띄니까 할 수 없었다.

     

    대신, 허리는 폈다.

    평소보다 더 왜소해 보인다고 하니까 그런 건 아니고.

    음, 그럼 뭐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

     

    아무튼, 아니었다.

     

    루크는 시루드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이는 고작 몇 초도 안되는 사이에 표정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 걸까?

     

    “그런데 왜 그렇게 당황을 하느냐? 내가 조금 일찍 등교한 것이 그리도 이상할 일이더냐?”

    “별로……. 그, 그건 아니지. 그냥 좀 놀래서…….”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걸 루크의 앞에서 말할 수는 없으니까.

    꽤 놀란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면 미안하구나. 갑자기 놀래켜서.”

    “……됐어.”

     

    시루드는 루크의 사과를 대충 받으며 허리를 문질렀다.

    아까 루크가 때린 부분이 아직도 아픈 것 같…….

     

    “……어? 아프지 않네?”

    시루드의 당황한 목소리에 루크는 재미있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어째, 허리는 시원해졌느냐?”

    “……그러고보니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뒤에서 보니까, 어깨가 축 늘어진 것이 왠지 힘이 없어 보여서 말이다. 그래서 살짝, 혈을 짚어주었지.”

     

    시루드는 처음 듣는 단어에 문득 호기심을 내비쳤다.

     

    “혈? 그게 뭐야?”

     

    원래라면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 고급 의료정보이지만, 루크는 귀여운 제자의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혈이라는 건 오래전 동대륙에서 고유하게 발전한 마법적 시술의 일종인데……. 흠. 혹시 혈자리에도 관심이 있나?”

     

    시루드는 루크의 눈동자에서 과거 별자리에 관한 장황하고 긴 설명을 떠올리고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별로 관심 없어.”

    “흐음, 그래? 그거 참 아쉽군. 알고 나면 몸이 다르게 보이는데.”

     

    루크는 손을 들고 쥐었다 펴며 웃었다.

    정말이지 즐거워 보인다.

     

    대체 뭐가 그리 즐거울까…….

     

    “핫.”

     

    시루드는 문득, 자신이 루크의 얼굴을 너무 빤히 바라본 것이 아닌가 싶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또 저 웃음에 정신을 빼앗길 뻔 했다는 생각에 시루드는 속으로 자신을 다그치며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던 루크는 대체 시루드가 왜 이러지,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아!’하는 탄성을 내며 입가를 가렸다.

     

    “미안하구나, 앞으로 웃음은 조심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런 루크의 곤란한 듯한 목소리에 시루드는 의문을 품고 물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웃음을 조심하다니?”

     

    그에 루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건 말이다. 내가 최근에 깨달은 사실인데, 이 몸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무 귀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렇다보니, 아무한테나 웃음을 흘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네. 그래서 웃음을 조심하기로 한 것인데, 또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짓게 되고 만단 말이야.”

    “……응?”

     

    왠지 루크가 갑자기 엄청 나르시스트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뒤로 나오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이게 참 문제야. 웃는 표정은 평소에도 생각없이 너무 자주 짓다보니 자꾸 이런 실수를 하게 돼. 굳이 웃지 않으려 해도 말이야. 그럼 안되지. 암.”

    “아, 그러셔…….”

     

    시루드의 차갑게 식은 눈동자가 루크를 향했다.

     

    얘가 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

    루크가 원래 이런 아이였던가?

     

    하지만, 뒤이은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경악했다.

     

    “그러니까 그런 참사도 벌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네. 네가 과거 나에게 사랑에 빠진 것도 어쩌면 나의 잘못이 아닐까 하고…….”

    “악!! 아악!!! 조용히 햇!!!”

     

    시루드는 결국, 손발을 마구 휘두르며 루크를 쫓아낼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연상대(?)를 다시 보게 되면 정말 어색하지 않을까요?
    저는 사실 그런 비슷한 것도 없지만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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