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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6

       

        

        

        

        

       “내가 저런 사람이랑 싸웠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갮빲쌊빲좂빲캆톲씺 추억팔이 좀 그만하십쇼wwww

       -싸웠다x 어리광을 부렸다o

       -싸움은 동등한 실력자끼리 맞붙어야 성립되는 거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파이널챔피언십이냐 천하제일무술대회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았던 밤이 걷히며, 녹지 않고 굳은 채 쌓인 눈 위에 비춰진 태양빛이 사방으로 바스러진다. 묵빛에서 검푸른 색으로, 그리고 점차 새파랗게 변해가다 기어코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올랐다.

        

        세상이 깨어나며 하루가 시작되는 26일, 오전 8시의 바람은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찬 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지키던 수많은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별수당을 받고 새벽에 나온 알바생들은 손님들이 먹고 간 음식 그릇과 술잔을 치우기에 바빴고.

        

        그리고 그런 사이에서, 파이널 챔피언십을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중계하던 스트리머들 역시 그 다음날을 대비하기 위해 하나둘씩 사라진다. 한창 썰을 풀고 있는 이들도 해가 더 중천에 뜨기 전에 침대에 몸을 뉘이게 되리라.

        

        카토그래퍼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난 개인적으로 이 분이랑 대등하게 싸우는 로건이란 사람이 더 신기하네.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옛날에 예선 랭크 돌리면서도 유진 선수는 만나자마자 반쯤 포기해버렸는데…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싸우는데 한 치도 안 밀린다냐.”

        

        

        

        몸을 의자에 깊게 파묻으며, 그는 과거의 기억을 뒤졌다.

        

        해결책을 강구하거나 도피 루트를 생각한다 같은 차원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의 포기. 어찌할 수조차 없는 불합리는 항거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그것은 마치 다가오는 태풍과 맞서싸울 방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이었으니까.

        

        근데 그것조차 딱히 본 실력이 아니었다는 건 상당한 충격…이라고 해야 하나? 의외로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레발은 그 자신이 연 채팅창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유저 수천 명이 치고 있었다. 유진과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야.

        

        없었을 사람들이-가 아니라, 없는.

        

        단정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게 있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사실 그것보다 가장 신기한 건 다이스 선수지.”

        

        

        

       -ㅆ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만큼은 인정할수밖에 없다

       -소신발언)첫판임팩트는 솔직히 유진보다도 컸다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했길래 다이스를 액션영화 주연으로 꼽아도 문제없을 정도의 미친년으로 바꾼거냐고 ㅋㅋㅋㅋㅋ

       -이딴일이 왜 벌어지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추격전wwww

        

        

        

        그 말대로.

        

        이제서야 막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오늘의 실시간 검색어는 말 그대로 다크 존 관련 이야기로 뒤덮힌 상태였다 – 그 중에서도 다이스와 유진, 하지만 오늘만큼은 전자가 우세했다.

        

        무려 5분 가량이나 이어진 교전, 그리고 그 중 4분 46초라는 긴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린 다이스였지만, 체인건에 몇 번이나 맞아가면서도 간신히 차체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을 보존하면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버티고 버틴 끝에 복이 오리니.

        

        다이스는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지겹게 자신을 쫓아오던 적을 천국으로 곱게 포장하여 배달해주었고, 수천만 명이나 되는 시청자들은 그러한 극단적인 고진감래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합성 영상도 하나 나오지 않았나? 누가 다이스 선수 기어 바꾸고 액셀 밟는 모습에 데자뷰 BGM 갖다붙인 걸 본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영상은 올라온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 100만 조회수를 찍었다는 점도 반드시 논해야만 했지만.

        

        그가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덧붙였다.

        

        

        

       “지난 번 인터뷰 스크림 때 기억 나냐? 그때 유진이랑 다이스 선수랑 해서 2 : 3으로 붙었던 거. 뛰지도 못하는 페널티 걸었는데도 일방적으로 개쳐발렸던 때 있잖아. 근데 지금 보니까 그때보다도 훨씬 날카로워진 것 같은데….”

        

        

        

       <분당신도시멘트도둑햄주먹카토 님이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카토야 늬가 다른사람 실력 평가할 짬이냐? 개소리 그만하고 어서 고개를 조아리지못할까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네요. 전 미국 가보지도 못한 짬찌끄레기인데…대국민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자숙하며 방송을 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미친놈아그건안돼!!!!!!!!!!!

       -이새1기 휴뱅각 준내 웃기게잡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트)휴방끝에는 설날까지 껴있다

       -이렇게 7주휴뱅각을 잰다고? 미쳤어?

       

        

        

        순식간에 뒤바뀌는 우위 관계.

        

        그렇게 잠깐의 웃음이 흘러간 뒤, 카토는 슬그머니 현실의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7분. 파이널 챔피언십은 현실과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1배속으로 진행되는 경기였고, 따라서 그 역시 VR 시간 배속을 1로 맞춘 상황.

        

        게다가 한국 기준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그 전부터 일어나야만 했으므로, 실질적인 스트리밍 진행 시간은 생각한 것보다도 길었다. 구태여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시청자고 스트리머고 전부 피곤한 시간이란 소리였다. 

        

        AFK 모드에 들어간 뒤 스튜디오의 바깥을 확인하자, 이미 태양이 수평선 위로 살금살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젠 진짜 자야만 할 시간이었다.

        

        

        

       “…아무튼, 오늘 다들 수고 많았다. 오늘 방송은 이따 오전 12시 즈음부터 켤 예정이니, 다들 느긋하게 쉬고 이따가들 봅시다. 수고하십셔!”

        

        

        

        그것으로 끝을 맺었다.

        

        크리스마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줄곧 달려버린 이들이 단 하나도 남김없이 수면에 임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이 부러워하고 중국이 눈물을 흘리며 러시아가 두려워하는 한국 대표팀, 파이널 챔피언십에 상륙하자마자 미국과 유럽이 한국에게 SOS를 보내다…와. 어지럽다, 어지러워.”

        

       “긴급 속보, 유진을 이기기 위해 약물에 손댄 미국의 슈퍼스타. 약물과 스테로이드보다 강한 것은 한국의 홍삼…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래요.”

        

       “…이 국뽕들은 도대체 다 뭔가요?”

        

        

        

        유진을 비롯한 이들이 경기를 마치고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오전 9시.

        

        이들은 일어나자마자 괴상망측한 것들을 보게 되었다.

        

        

        

       “…완전히 개소리들밖에 없는 것 같은데, 재수없게 때려맞힌 부분이 한두 군데 있어서 더 어이가 없네요.”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것과 같은 이치죠, 뭐어.”

        

        

        

        물론 그 와중, 유진은 고장난 시계를 때려부수는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2일차 경기 시작까지 12시간이 남은 어느 날이었다.

        

        

        

        

        

        

        

        

        

        

        

        

        

        

        

        

        

        

       “어째, 이번 파이널 챔피언십에서는 나만 이상하게 힘든 것 같은데…!”

        

        

        

        투두두, 피융!

        

        총알이 콘크리트 벽을 깎아내고, 귓전을 스쳐지나가며 불길한 소리를 토해낸다. 마치 채찍 휘두르는 소리를 연상하게 만드는 그것은 음속을 훌쩍 넘은 탄환이 소리의 벽을 까부수며 귓전에 남기는 파공성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이스-내가 있었다.

        

        이젠 손가락으로 세긴커녕 자신이 처음으로 맞이했던 교전이 어떤 형태인지도 까먹을 정도로 다크 존을 오래 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교전은 늘상 힘들고 심력의 소모가 컸다. 뭐어, 그것 말고도 – 어쩌면 이건 어제 행했던 분노의 버기 질주로부터 비롯된 심신의 피로도 섞여서 그런 걸지도.

        

        아무튼, 오늘도 절찬리에 가망 없음 상태였다.

        

        

        

       “흡…!”

        

        

        

        투둑!

        

        몰리와 연결된 수류탄. 그것을 말 그대로 뜯어서 던지자, 적은 그제서야 사격을 멈추고 그 자리를 이탈한다 –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선 담벼락에 기댄 몸을 일으킨 지 오래였다.

        

        수류탄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적의 근방에 착지한 순간, 사격이 멈추는 순간. 다르게 말하면 적이 하나의 엄폐물에서 다른 엄폐물로 이동할 때를 찔러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유진이 가르쳐준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복도를 돌아나오는 동시에 조준한 순간 적의 신형이 떡하니 보였다. 적은 같은 이카루스 오퍼레이터였고, 따라서 그 내구성은 당연히 상당했다.

        

        다르게 말하면, 조정간이 단발일 이유가 없었다.

        

        

        

       ───퓨퓨퓨퓩!

        

        

        

       “크학…!”

        

        

        

        털썩, 그리고 쾅.

        

        작게 숨을 내쉬고 총을 내리자마자 적은 폴리곤 덩어리가 되어 흩어졌고, 곧이어 가득히 삽탄된 탄창 몇 개 및 두 정의 총, 여러 개의 폭발물과 방어구 등등등만을 바닥에 남긴다. 하지만 당연히 그걸 주우러 가지는 않는다.

        

        주변에 식별 못했던 적이 남아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주변 엄폐물에 몸을 기대고, 매캐한 수류탄 화약 냄새를 음미하며 주변을 살폈다. 천장의 조명은 박살났고, 그로 인해 기본적으로 어둑어둑한 지하 연구 시설에 약간의 어둠이 더해진다.

        

        그렇게 1분 가량이 지났을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아.”

        

        

        

        원치는 않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유진 신앙이 늘어간다.

        

        상위 20%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과의 교전은 몇 개월간 배웠던 기본만을 적당히 사용하거나 혹은 그것을 응용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풀렸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슬그머니 팔에서 빠져나가려는 긴장을 다잡으며 아이템 뭉치로 향했다. 탄환은 아직 넉넉했으며, 내가 잡아 죽인 유저가 들고 있는 총의 탄환 구경은 내 거랑 맞지 않았다. 수류탄 정도만 보충하면 될 것 같았다.

        

        몰리에 엮여있던 낚싯줄을 자른다. 이미 잡아뜯은 곳이라서 그 자리에는 수류탄 대신 안전핀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상태. 파우치를 열어 낚싯줄 일부분을 꺼내고, 대략 15cm 정도만 잘라 수류탄과 능숙하게 엮는다.

        

        그렇게 준비가 끝났다.

        

        혹여나 더 필요한 건 없나 싶어 덩그러니 남겨진 적의 다용도 파우치를 뒤져보자 한 대의 PDA가 나왔다.

        

        

        

       “오.”

        

        

        

        물론 고가치 연구 시설의 발치에 널린 게 PDA긴 했다. 이 맵에서는 이 PDA를 통해 킬존 역할을 하는 저거넛의 위치를 파악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간혹 조금 고급스럽게 생긴 PDA가 팝업될 때가 있고, 그런 것들은 대개 특별한 기능이 붙어서 나오기도 하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조금 조작하자마자 화면에 뜨는 문구.

        

        

        

       -[알림 : 특별구조팀 파견 기능 발동 대기 중.]

        

       -[알림 : 발동하시겠습니까?]

        

        

        

        특별구조팀.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상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 PDA가 있는 자리에 즉각적으로 한두 대의 저거넛을 파견하는 시스템이다. 본래라면 시설 내 모든 것들을 때려부수는 프로토콜이 발동된 와중 고위급 임원을 즉각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지만….

        

        당연하게도, 게임 내에서는 다르게 사용되었다.

        

        판도를 어그러뜨리고, 교착 상태를 파훼하기 위한. 과거로 따지면 일종의 폭격 요청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 물론 발동까지는 1분 30초의 시간이 걸리지만, 시간을 잘 재면 꽤 괜찮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법도 있는 법.

        

        사신이 나를 찾아왔다.

        

        

        

       ───투두두!

        

        

        

       “우왁!”

        

        

        

        순식간에 날아드는 탄환. 그보다 집탄률이 심상찮다. 머리에 순식간에 3발이나 꽂혀든 탄환이 실드량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이미 잔여량은 25% 이하였다. 너무 방심한 게 아닌가 자책하며 황급히 퇴피하자마자 재차 총알이 날아와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를 깨부순다.

        

        탄환이 날아온 각도를 통해 대략적으로 적의 위치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근방에는 널찍하고 긴 복도와 로비가 많아 교전으로 재미를 보기는 어려운 지역이었다. 다행히도 조금 더 가면 본격적으로 연구 시설이 나오기 떄문에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지 고작 30초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거, 또 큰일난 것 같은데…!”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심상찮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제압사격을 몇 번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위치가 발각되며 무서운 정확성으로 역제압사격이 날아왔다. 일단 기본적으로 보아도 상위 20%, 즉 유진이 몇 번이고 강조했던 ‘진짜배기들’ 중 한 명은 확정이었다.

        

        교전인가? 생존인가? 그러나 이를 고민하기도 전, 꼴랑 100m 가량 떨어져있던 양자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이미 세 발의 탄환을 내 머리에 맞췄고, 그로 인해 나는 스쳐도 실드가 깨진다. 다르게 말하자면 상대는 마음 놓고 들이댈 수 있다. 적은 다크 존, 그 중에서도 에이펙스 프레데터라는 게임이 굴러가는 시스템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심상찮다는 느낌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고 – 이는 이윽고 하나의 감정으로 수렴했다.

        

        

        

       ‘…좆됐다.’

        

        

        

        극도의 무력감.

        

        교전을 맞닥뜨렸을 때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호승심은 사라지고, 전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몸에 입력되었던 그동안의 경험들이 말 그대로 낱낱히 읽혀버리는 듯한 상황에, 머리는 이를 설명 가능한 가장 올바른 대답을 내놓았다.

        

        유진, 혹은 로건.

        

        어느 쪽이든 더럽게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알림 : 특별구조팀 파견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알림 : 00 // 01 // 30…]

        

        

        

        1분 30초.

        

        충분히 버틸 수 있을까?

        

        버틴 후에는 도망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지워버린다. 오로지 생과 사를 다루는 결투만이 있을 뿐이었다 – 박스 위에 총기를 견착하고 사격하면서, 왼손으로는 재빨리 발사기에 점착 폭탄을 끼워넣고, 퓽. 미약한 반동과 함께 복도 중앙의 엄폐물 하나에 꽂힌다.

        

        

        복도는 꽤나 넓었고, 중간중간에 시야를 가리는 여러 물품들이 있었다. 적은 이를 엄폐물 삼아 미친 것만 같은 속도로 다가오는 중이었으나 – 이제부터는 섣불리 다가오기 어려울 것이다.

        

        제압사격을 갈기면서 수류탄을 꺼내든다. 적과의 거리는 대략 60미터 정도. 투척만으로는 닿기도 어려운 거리였지만 이카루스 기어의 연산력 일부를 소모하여 부분적인 신체 강화로 돌리면 큰 문제 없었다.

        

        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몰리와 연결된 안전핀이 뽑혀졌고, 수류탄이 무식한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렀다.

        

        

        덫을 설치한 곳으로 점차 가까워지는 적.

        

        수류탄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점착 폭탄이 기폭되었고, 적의 신형과 채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이 일었다 – 하지만, 그 순간 섬광과 뿌연 콘크리트 먼지를 뚫고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드는 쇳덩어리 하나.

        

        적 수류탄이었다!

        

        

        

       ───콰아앙!

        

        

        

       “아윽…!”

        

        

        

        확실해졌다.

        

        소음과 섬광, 사람의 오감을 아주 쉽게 혼동 가능한 이 두 방법이 발동함과 동시에 은근슬쩍 자신의 다음 포석을 깔아두는 전법. 유진 아니면 로건이었다.

        

        온 몸이 저릿저릿했지만 억지로 일으킨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간에 상대방은 이 기회를 틈타 빠르게 접근 중일 것이었다. 즉각적으로 엄폐물 너머로 몸을 비틀며 탄환을 갈기자, 흐릿한 신형 위로 백색 육각형이 튀어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당연했다.

        

        거리는 30미터. 조정간을 단발로 바꾸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제압사격을 갈기며 점차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남은 수류탄을 축차로 바닥에 까던지며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상대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듯 허공으로 무언가를 몇 개 정도 흩뿌린다.

        

        

        

       “….”

        

        

        

        푸쉬익!

        

        세 개 가량의 연막탄이 복도를 통째로 가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서 터지는 수류탄. 이 전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선이 팔린 사이 빠르게 우회하려는 생각이겠지.

        

        그렇다면 나도 뒤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대비는 해놓아야 했기에 왼손으로 재차 발사기에 점착 폭탄을 결합하려던 와중,

        

        

        

       ───투두두두!

        

        

        

       “이런…!”

        

        

        

        복도를 가득 채운 연막 사이로 먼저 탄환이 날아오고, 그와 동시에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 하얀 색의 신형. 아바타만으로 적이 누군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 인게임 내의 적 아바타는 살짝 뭉개지는 형상을 취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유진이 직접 ‘만나면 도망가라’고 덧붙인 사람이었다.

        

        

        왼손에 아직 완전히 결합이 끝나지도 않은 발사기를 든 채로 황급히 다시 총을 들어올리고 제압사격. 하지만 돌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십 개나 되는 계단을 계단을 내려가며 위쪽으로 남은 하나의 수류탄을 마저 까던졌지만, 로건은 그것조차 예상한 듯 발코니를 밟고 – 뛰어올랐다고!?

        

        

        

       “우와아아악-!”

        

        

        

        콰앙!

        

        수류탄 폭발을 배경 삼아 로건이 발코니를 밟고 그대로 뛰어오르며 사격, 때마침 모든 탄환을 모두 사격한 상황. 탄창을 갈 겨를은 없었고, 왼손에 들고 있던 점착 폭탄 발사기를 그제서야 들어올린다.

        

        하지만 제대로 결합되지 않은 탓인지 나가지조차 않는다. 그 순간 시간이 급속도로 느리게 흐르며, 서서히 동력을 잃고 중력에 몸을 맡기는 로건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 유진 씨가 엔그램을 통해 보내주었던 ‘안아줘요’ 이모티콘과 비슷했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같지 않겠지.

        

        이미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 지 오래.

        

        이렇게 탈락해야 하나 싶던 와중, UI 한쪽으로 떠오르는 경고창.

        

        

        

       -[알림 : 긴급 격발 요구 인식]

        

       -[알림 : 점착폭탄 격발]

        

        

        

       ───콰아앙!

        

        

        

        그리고 왼손으로부터 섬광과 폭발이 일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로건이 다이스를 짓밟기까지 고작해야 2m도 남지 않은 순간 점착폭탄이 굉음과 충격파를 동반하며 발사기 위에서 그대로 격발, 두 명의 유저가 동시에 반대편으로 튕겨나갔다.

        

        제로 그라운드로부터 적잖아 5m 이상 양쪽으로 날아간 두 명이었으나,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이스로 – 그녀는 마지막까지 지면에 발을 디디고 있었기에 그 여파를 상당수 지면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먼저 일어났어도 사격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우엑, 커흑.”

        

        

        

        눈 앞에 떠오른 수많은 상태이상. 그 중에서도 손은 빨갛지도 않고 검게 물든 상태. 즉각 안전한 곳에서 응급처치 및 치료를 시도하기 전까지는 권총 방아쇠조차 당길 수 없을 것이었다.

        

        또한, 때마침 폭발의 충격으로 튕겨져나간 특별구조팀 파견까지 고작해야 10초도 남지 않은 상황. 다이스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그 자리를 순식간에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후, 이건 상상도 못했는데.”

        

        

        

        30초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던 상태이상 ‘기절’.

        

        저게 다이스인가, 나중에 막내한테 칭찬이라도 좀 해줘야겠어 – 그리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그닥 많지 않은 듯했다.

        

        

        

       -[알립니다. A-32 섹터에 특별구조인원 파견 완료. 허가되지 않은 인원들은 접근을 불허합니다. 적성 세력 청소 개시.]

        

        

        

       “확인사살을 시도하려 한 건 발전했다고 말해줄 수 있겠지만, 그건 본인 손으로 끝냈어야지.”

        

        

        

        발코니 위, 특별구조인원인 미니건 저거넛을 눈에 담으며, 로건은 짧게 웃었고 – 이내 등 뒤에 고이 모셔두었던 무시무시한 크기의 대물저격총을 꺼내들었다.

        

        그날 로건은 저거넛 해골 3개를 받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2년 마지막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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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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