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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6

       방송이 시작된 순간부터 마음의 결심을 하고 텐션을 억지로 올리던 엔리는 아라의 말을 듣고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처음부터요?”

       “네. 자 카메라 바깥으로 나가세요. 빨리.”

       “그치만.”

       “빨리.”

       

       여우 문양이 그려진 가면엔 자그마한 미동도 없었다. 웃음을 참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술궂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아라는 엔리에게 단언했다.

       

       – 화령 말이 맞네.

       – 고양이는 고양이 다워야지.

       

       – 고양이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냥! 냐냐냐냥! 냐냥!]

       

       이미 판은 만들어졌다. 엔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던 간에.

       

       여기서 그녀가 하지 못한다거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시청자들은 분명 감이 없다느니 노잼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며 채팅창을 불태우리라.

       

       오랜 기간 방송을 해오며 수도 없이 방송을 불태우고 진화했던 엔리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화면 바깥으로 나가서 방송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부터 하자는 거죠? 엄격하시네요. 아라씨.

       

       좋아요! 하죠 뭐! 이미 마음의 준비는 저 안에서 옷을 갈아 입을 때부터 해 뒀어요. 이제와서 그까짓 냥냥 같은 걸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에요!

       

       저 이래 뵈도 몇 년 동안 방송해 온 프로 스트리머라고요! 그 정도 뻔뻔함은 지니고 있답니다!

       

       관절이 고장난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화면 바깥으로 물러서자 화령이 처음 방송을 켰을 때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화령입니다.”

       

       – ㅋㅋㅋㅋㅋ

       – 거기서부터야?

       – 존댓말 한다고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구나.

       – 여전히 악질이야.

       

       – 엔육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 방송 주인은 어디있죠? 제 고양이귀 메이드는 어디있냐고요!]

       

       “지금 카메라 뒤에 숨어 있어요. 절 죽여버릴 것 같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네요.”

       

       엔리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껏 해봐야 말꼬리에 냥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하. 그게 뭐가 어렵다고.

       

       

       “여러분! 반갑다냥! 엔리냥이라고 한다냥!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냥!”

       

       속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자기 세뇌를 걸었지만 엔리의 겉은 달랐다.

       

       그녀의 입꼬리는 부들거렸고 양 볼은 벌겋게 물들었으며 어디를 쳐다봐야 하는지 모르는 눈은 한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

       

       – 카와이이이

       – 엌ㅋㅋㅋ

       – 엔리의 흑역사가 하나 더 늘어났네.

       

       – 데케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엌ㅋㅋㅋㅋㅋ]

       

       데케이! 당신 왜 내 방송을 보고 있는 건가요!? 지금 당신 방송하고 있을 시간이잖아요! 빨리 일을 하러 가란 말이에요!

       

       자신과 친한 스트리머에게 실시간으로 흑역사가 중계되고 있단 사실에 엔리의 얼굴이 더욱 벌게졌다.

       

       잘 익다 못해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버릴 듯한 얼굴이 되어버린 엔리는 곁눈질로 아라의 여우 가면을 노려봤다.

       

       어때요! 아라 씨! 이 정도면 만족하세요?! 제가 몇날며칠동안 수많은 방송인들에게 놀림당할 거리는 만드셔서 행복하시냐고요!

       

       잔뜩 날이 선 시선을 받은 아라는 이전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엔리를 바라보다가 나지막히 목소리를 냈다.

       

       “그게 아니죠. 엔리 씨.”

       “네?”

       

       왜요?! 이번에 저 잘했잖아요!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참고 최선을 다해서 귀여운 척을 했는데 또 뭐가 문제인 건가요?!

       

       “엔리 씨는 메이드잖아요? 접대하는 사람은 누구죠?”

       

       자그마한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지적을 하는 아라의 모습을 본 순간 엔리는 깨달았다. 지금의 그녀가 무척이나 엄격하다는 사실을.

       

       메이드 카페 게임에서 동작 하나하나에 고증 지적을 하는 진상과도 같다는 것을!

       

       “그러니까 다시.”

       

       아라 씨. 하나만 기억해 두세요.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걸.

       

       이런 식으로 저를 괴롭히면 당장은 통쾌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일을 잊지 않을 거에요! 다음 번에는 반드시 아라 씨를 괴롭힐 방도를 찾아낼 거라고요!

       

       지금 이 순간에는 아라 씨의 말을 따라주겠지만 다음 번에는 기대하세요. 언젠가 반드시 당신의 약점을 붙잡아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치욕을 선사해 줄테니까!

       

       “주…주인님! 죄송합니다냥. 엔리냥이가 노력할테니 용서해달라냥.”

       “좋아요. 이제 봐줄만 하네요.”

       

       *

       악질이다. 진짜 악질이야.

       

       “또 냥을 빼먹으셨네요?”

       “죄송합니다냥! 주인님!”

       “그리고 좀 더 귀엽게 하라고 그랬죠?”

       “알겠습니냐! 귀엽게!”

       

       카메라 뒤에서 방송을 찍고 있는 리하는 엔리를 괴롭히는 아라를 보다 다급히 입을 가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저를 보면서 대놓고 웃어버리면 방송이 끝난 후에 엔리가 무어라 투덜거릴 게 뻔했으니까.

       

       지금도 가끔 날카로운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데 대놓고 웃음을 터트렸다가 어떻게 되겠는가.

       

       아이고 사장님. 그러게 왜 저런 악질을 건드셔가지고. 룰렛이라는 방법만 제시해 준 후에 도망쳤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잖아요. 왜 먼저 시비를 걸어서 이런 일을 만드십니까.

       

       “메이드가 그런 나쁜 시선을 해도 되나요?”

       “죄송합니다냐아아아!”

       

       – 엌ㅋㅋㅋ

       – 진짜 화령 사람 잘 갈구네.

       – 나 저거 화령 방송에서 봤어. 자기가 가르치는 사람 굴릴 때 저래.

       – 어투만 바뀐거지 사람은 걍 그대로잖아.

       

       엔리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방송적으로는 그림이 재밌었다.

       

       자그마한 비웃음조차 없이 완벽한 메이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엄격 근엄 진지한 화령과 부끄러워서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에서도 화령이 하는 말을 따르는 엔리.

       

       유명 스트리머가 고양이귀 메이드 복장을 하고 요리를 하는 것만 하더라도 어그로를 끌기엔 충분한 요소였는데 거기에 화령까지 더해지니 볼거리와 재미 두 가지를 모두 붙잡은 방송이 된 것이다.

       

       카메라 너머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리하는 이걸 마이 튜브에 편집해서 올리면 분명 조회수가 잘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 리어카파괴자엔리님! 42개월째 구독!

       [엔리냥이. 구독 반응 해달라냐!]

       

       “와아! 리파엔리주인님 42개월 구독! 고맙다냐! 사랑한다냐! 앞으로도 많이 봐달라냐!”

       

       그간 화령이 꾸준히 노력을 한 덕분에 제대로 교정이 되어버린 엔리는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어미에 냥을 붙이게 됐다.

       

       사장님. 저러시다 방송이 끝나도 냐냐거리시는 거 아닐까.

       

       *

       

       방송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난 후 엔리가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

       

       준비해 둔 재료를 꺼내며 이야기하기를 메이드 카페에 걸맞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준다더군.

       

       “엔리 씨 요리 잘하시네요.”

       

       이전에 던 이스케이프라는 제임을 할 때부터 생각을 한 것이다만 엔리가 요리를 할 때면 이를 많이 해 본 것이 티가 난단 말이지. 손놀림에 망설임이 없어.

       

       다른 게임을 할 적이면 부들부들거리며 바보같은 일만을 반복하는 녀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야.

       

       “칭찬해줘서 고맙다냥! 자취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늘었다냐! 주인님은 요리 못하느냥?”

       “저요? 예전에 해보려고 했던 적은 있는데 번번히 망쳐버려서요. 지금은 반쯤 포기한 상태에요.”

       

       요리라. 예전에는 거기에 열과 성을 다했던 적이 있었지. 무림의 쓰레기 같은 음식에 질려서 흐릿해진 현대의 기억을 뒤지며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려 노력하던 때가 말이다.

       

       허나 당시 본인의 모든 노력은 허무하고 허망할 따름이었다. 오죽하면 이딴 음식을 먹을 바에 환단을 먹고야 말겠다 다짐을 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르고 나서부터는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고 말이야.

       

       현대에 오고 나서는 무림의 쓰레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과 품질을 지닌 녀석들이 한가득이었으니 과거처럼 굶주리고 다니진 않았다.

       

       삼시세끼 모두 음식을 챙겨 먹으며 어찌하면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

       

       그러는 와중에 요리에 하고자 생각했던 일은 없었다. 스마트폰에 손가락 몇 번을 가져다 대면 알아서 세상의 수많은 요리사들이 본인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줄 터인데 굳이 요리를 할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그럼 안된다냐! 요리는 하면 할수록 느는 것! 실패하더라도 계속 도전을 해봐야 하는 거다냐!”

       “이젠 딱히 요리를 할 생각도 없지만요.”

       “냐는 주인님이 해준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냐!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라냐!”

       

       왜 포기하지 말라 그러나 했더니 네 욕망 때문이었느냐.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래. 알겠다. 본인의 욕심으로 그대에게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 나중에 한 번은 그대의 욕심을 받아주도록 하마. 그 음식이 맛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이제 이 위에 계란을 올리면! 완성이다냐! 엔리냥이표 오므라이스다냐!”

       

       엔리는 내 앞에 접시를 내밀면서 그리 소리를 쳤다.

       

       처음에는 얼굴이 벌게져서 어쩔 줄 몰라하면 그녀였지만 방송을 하는 내내 냐냐거리고 있다 보니 적응이 된 듯 이제는 별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처음에 어찌할 줄을 몰라하던 엔리가 귀여워서 좋았는데 말이다. 지금은 평소에 보던 엔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엔리냥이가 이 위에 그림을 그려주겠다냐! 원하는 그림이 있느냥?”

       “고양이 그림으로해주세요.”

       “알겠다냐!”

       

       냉장고에서 케찹을 꺼내온 엔리는 조심조심 오므라이스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림에 집중을 하는 모습은 종이를 앞에 둔 화가처럼 장엄했으나 노란 색 도화지 위에 그려지는 그림은 5살짜리 어린 아이가 그린 듯 엉망진창이었다.

       

       “고양이?”

       

       이게? 대체 어딜 봐서 고양이더냐. 아무리 보아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인간의 형상이다만?

       

       – 고?양이?

       – 지옥에서 돌아온 고양이인가.

       – 저 정도면 악마도 쫌. 이라고 할 것 같은데.

       – 참?쉽죠?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죄송한데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다리죠?]

       

       “보라냐! 귀여운 고양이 얼굴이지 않으냥! 여기가 귀! 여기가 눈! 여기가 입이다냐!”

       “죄송한데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어요.”

       

       그게 어떻게 귀고 눈이고 입인지 모르겠구나.

       

       하아. 그래. 그림이 뭐가 중요하겠느냐. 음식이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 어차피 입 안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것 아니겠나.

       

       “그건 됐고. 주문을 걸어주세요. 메이드답게.”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게 남아있지 않으냐. 고양이귀 메이드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말이다.

       

       지금이 순간까지 메이드란게 어떤 것인지 잘 교육을 시켜 두었으니 잘 해내니라 믿는다 엔리.

       

       “주문말이냥? 알겠다냥!”

       

       조금은 빼리라 생각을 했지만 엔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도 당당하게 내 앞에 서더니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 주인님! 엔리냥이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따라하는 것이다냐!”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원래 메이드 카페에서는 메이드가 말을 할 때마다 호응을 해주는 것이다냐! 화령냥이도 그러지 않았느냥!”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공 찬스?!

    ——

    흑막조아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응원의 후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되겠습니다!

    베른슈타인님 후원과 오타지적 감사드립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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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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