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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6

        

         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리 대전제 하나를 명확히 깔아 두고 가겠다.

         

         모든 남자는, 메카를, 좋아한다.

         

         반복해서 복창하라고 강요하진 않겠지만 멀리서 공허하게 떠드는 반론이나 변론 따위는 일절 받지 않겠다. 꼬우면 당장 네오 헤이븐 메모리얼 타임즈 건물로 와서 직접 얼굴 보고 말하길 바란다.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거나, 병적으로 찾아서 볼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어가 딱딱 맞아떨어지며 연주하는 금속의 하모니와 그 정교한 회로 구조대로 전기가 내달리면서 만드는 기적.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전달받은 엔진이 뿜어내는 순수한 파워와 출력에 매료되지 않는다면… 뭘 더 추가해야 댁이 만족할지 난 잘 모르겠다.

         

         미소녀 파일럿이라도 한 명 끼워 팔아줘야 하냐? 엉??

         ……새끼가 뭘 좀 아네. 이번만 봐주는 거니까 다음부턴 진짜 조심히 행동해라.

         

         찰칵!

         

         하여간 처음은 완벽하게 닫혀 있던 제로 1호기의 헤드 피스 전면부가 한 겹 한 겹 차례대로 분리되어 눈 역할을 하던 스캐너 옆으로 미끄러지는 걸로 개시.

         

         만화경Kaleidoscope의 중앙 문양이 바깥쪽으로 밀려나며 내부에 기하학의 새로운 꽃을 피우듯, 세밀한 방진을 이루고 있던 모자이크 장갑이 살아있는 비늘처럼 다중 경사를 만들었고.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조절용 보조 스캐너와 추가 렌즈가 차례대로 접사.

         발사를 위해 먼저 포대를 정비하듯, 규격대로 조립된 심도 스캐너는 광범위하고 강력한 탐사 성능 발휘하고자 사전 준비를 순식간에 마쳤다.

         

         마무리로 흡사 폭발하려는 화산의 깊은 곳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다 못해 지면으로 솟구치는 것처럼 맥동한 전류가 단일 장비의 회선에 응축.

         

         지금 내가 떠드는 것만 들으면 사실상 에너지 병기나 다름없다 생각할 수 있는데. 솔직히 가동에 필요한 출력과 들어간 기술력 자체만 따진다면 이쪽이 더 높으니까 딱히 과장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거기에 가격도…… 아니, 그 얘기는 그만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자꾸 떠오르네!

         

         하여간 공학 분야는 몰라도, 전기라면 명색이 전문가(?)인 내 피부에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전하가 어수선하게 요동치더니… 이내 완성된 파장이 벽면을 겨냥하고 사출.

         

         우우웅….

         

         “오.”

         

         뿜어진 빛이 대기를 흐트러트리기라도 하는지, 뭔가가 떨리는 듯한 묘한 진동음과 함께 격자 모양의 광光그물이 등대처럼 실내를 쭈욱 훑어 나갔다.

         

         파라다이스나 에나마 본사 정문, 혹은 도시 경계선에서 출입객 차량을 걸러낼 때나 쓰던 그런 녀석을 내가.

         

         굳이 대상을 분명히 하자면 제로가 가지고 다니며 써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살짝 든든한 것 같기도 하고? 그야 즉시 쓰는 건 힘들고 과소모 문제도 여전하지만 의외의 변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은 꽤 크다.

         

         여기 방송국 건물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고. 또 우리 대기실이 거의 꼭대기 층 근처의 귀퉁이에 위치한만큼 한계 거리가 명확해서 스캐닝 한 번에 모든 구조물이 커버되는 건 당연히 어림도 없었지만.

         

         짙게 끼어 있던 안개가 불어온 바람에 밀려나듯, 주변 구조는 물론 벽 안에 숨겨져 있는 회로들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따로 주먹구구식으로 접속 단자를 찾지 않고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니!

         

         비록 실시간 업데이트는 무리여도 원래 게임에서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던 미니맵 비슷한 기능을 갖춘 건 기쁘다. 역시, 크레딧을 처바르면 뭐든 극적으로 좋아지긴 하는구나.

         

         – 감시 시스템이 없음을 확인. 추출한 3D 모식도는 계속 공유해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불필요한 데이터라 생각된다면 언제든지 차단해주시길. –

         

         “이건 쳐다만 보고 있어도 재밌으니까 걱정 마~”

         

         사이버웨어가 두 화상을 중첩시킴에 따라, 맨눈으로 보는 시야에 제로가 탐지한 온갖 금속 물질들이 겹쳐서 나타나니 꼭 투시 능력이 생긴 것 같아서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그나저나 멀리 뻗어 나가는 줄기가 적어서 해킹을 시도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건 조금 문제지만 말이지.

         

         어째 중앙 제어식으로 되어 있는 게 하나도 없냐? 옛날 옛적에 지어진 건물을 자꾸 확장 공사해서 넓힌 방송국이라 그럴지도. 이렇게 다 뚝뚝 끊겨 있어서야 원.

         

         – …실내 인터폰에 적어도 4, 5층 밑까지 내려가는 유선 통신망이 있는 것 외에는 전부 구시대적 설비입니다만. 일단 전송 속도가 느리더라도 감염 작업을 수행하겠습니다. –

         

         “응~ 그래 그래…♪”

         

         빠각!

         

         [ 자극 반응형 능동 침투 바이러스, P(기생충; Parasite)모델 업로드 진행. 환경 적응 공정 또한 진행합니다. ]

         

         절대 무성의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믿고 맡긴다는 의미로 긴장을 푼 대답을 돌려주자마자, 인터폰을 개봉해 악성 코드를 전파하기 시작한 걸 보며 이 ‘합리적 소비’가 가져다준 충족감을 만끽했다.

         

         이렇게 미리미리 바이러스를 집에서 만든 다음 제로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세팅해 두면, 내가 전투 도중에 칼로리가 모자라답시고 헥헥거릴 확률은 물론 현장에서 이리저리 구를 필요도 줄어드는 것 아니겠나?

         

         와중에 심도 스캐너의 밝기가 너무 세서 아플까 봐 미리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더니, 알아서 내 근처는 피해가는 센스 좀 보라.

         

         뉘 집 자식인지는 몰라도 참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답니다. 예.

         제로 얘가 엉뚱한 부분에서는 주관이 강해도 이런 건 참 알아서 잘 조심한단 말이야.

         

         응? 회선 파악이랑 바이러스 투여까지 이렇게 다 맡겨버리면 내 역할은 무슨 얼굴 마담이냐고?

         

         어…….

         그게, 그러니까….

         

         ……하! 관리 감독 및 객관적 관찰자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할 가치가 없네.

         

         당연히 더 중요한 순간이나, 여차해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 내 능력은 아껴 두는 게 정답이지. 설마 내가 ‘삶의 질이 자꾸 올라가니까 너무 편해서 글러먹게 될지도….’ 같은 얼빠진 생각이나 하면서 누워있었겠냐고요. 안 그래?

         

         “커흐흠…!”

         

         장난과 변명은 이만해 둘까.

         왠지 급격하게 뻘쭘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당황한 티는 나지 않도록 늘어트리고 있던 팔다리를 당겨서 정자세로 소파에 바로 앉았다.

         

         사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곰곰이 따져보면 정말로. 어차피 모델 일은 MD가 돌아와야 하고, 방송국 네트워크를 감염시킨다는 야심 찬 부가 목표도 메인 시스템에 접근할 건덕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럼 결국 남은 건 인맥도 넓힐 겸 안면이라도 트고 명함 받으러 복도를 돈다는 부끄러운 선택지밖에 없는데, 지금 와서 담당자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제멋대로 싸돌아 다니기도 좀… 매너가 아니지 그건.

         

         …얌전히 다시 소파에 누워 있을까 그냥?

         가짜 계정을 만들어서 방송국 인트라넷이나 훔쳐보면 딱 좋은 심심풀이가 될 게 분명하다 여기던 찰나에.

         

         – 거수자 두 명이 이쪽 대기실로 접근 중입니다. 어떻게, 현재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대기할까요? –

         

         누군가 다가오는 걸 감지한 제로가 호들갑을 떨었다.

         뭐, 분해했던 인터폰도 그새 잘 원상 복구시켜 놨구만 왜 갑자기 그런대.

         

         “더기 씨가 누구 한 명 더 데리고 오는 거 아니야? 오는 길에도 무슨 분장사인지, 스타일리스트인지 붙인다고 얘기 했었잖아.”

         

         – …아뇨. 어느 쪽도 기록한 그의 보폭, 체중과 일치하는 인기척이 아니기에 보고 드린 겁니다만. 일단은 그럼 침묵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

         

         밖에서 남들이 보고 있을 땐 제발 평범한 경호 드로이드인 척 굴어달라는 내 부탁을 잊지 않은 제로가 다시 잽싸게 외부 스피커 대신 무선 통신으로 음성 출력 라인을 돌림과 동시에.

         

         스르륵, 방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여성 이인조.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몸에 딱 달라붙는 정장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백금발… 오, 연예인이다. 심지어 아는 얼굴. 정확하게는 아나운서? 나머지 수수한 한 명은 사이가 가까워 보이는데 그녀의 직속 매니저 같은 사람인가?

         

         “아으, 제가 보기엔 모양도 완벽하고. 전혀 흐트러진 곳이 없는 머리인데… 꼭 라이브 직전에 이걸 아슬아슬하게 다듬어야 하나요…?”

         “베서니! 넌 이 고정한 부분의 탄력이 풀리는 게 안 보이니!? 애가 이렇게 눈썰미가 없어서야 정말, 나 말고 다른 사람 담당이었으면 넌 잘려도 진작 잘렸… 응?”

         

         “……안녕하세요?”

         

         영락없이 빈 대기실이라고 여긴 내부에 대놓고 사람이 있을 줄 미처 몰랐는지, 날카롭던 인상과 화장이 무너지고 눈을 휘둥그레 뜬.

         

         여러모로 내가 챙겨보던 뉴스 채널의 간판 아나운서, 에린 스컬리 양이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구 근처에 있는 제로 0호기를 한 번, 이어서 방 중앙에 버티고 선 마개조 1호기도.

         

         마무리로 소파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다 만 채로 인사한 나까지. 순서대로 시야에 담은 그녀는 머리만 살짝 뒤로 돌려 매니저 베서니에게 작게 속닥였다.

         

         “…1-A가 공실인지 미리 확인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지 않았니?!”

         “부… 분명 십분 전에 제가 체크했을 때만 해도 틀림없이 공실이었는데요!”

         

         직업이 직업이셔서 그런지, 뛰어난 성량 덕분에 귓속말이라 떠드는 내용마저 제로는커녕 그냥 나한테도 생으로 다 들렸다.

         

         뭐요. 어떻게 하자고.

         이게 대체 무슨 콩트야. 그리고 이 숨막히는 어색함은 어쩔 건데.

         

         – 확실히. 미스터 더글라스가 뛰쳐나간 게 5분 전인만큼, 한 쪽의 실수로 사용 예약이 겹쳤을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저쪽은 단순 조회만 하고 찾아온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

         

         ‘그것 참 어이가 없네!’

         

         그래도 투덜거리고 막장 행정을 욕하는 건 어디까지나 머리속으로만.

         

         통성명을 하기도 우습고 피차 머뭇거리는 상황이라면, 먼저 양보하는 게 조금 귀찮고 손해는 볼지언정 속은 편하다는 경험칙에 따라.

         

         나는 버스 자리를 양보하는 심정으로 지극히 신사답게 행동했다.

         

         아니, 뭐… 몸단장할 공간이 급하시다면 저희가 잠깐 비켜드릴까요 아가씨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어… 닳고 닳은 커리어 우먼들을 상대하는데 함부로 그렇게 멋-귀여움-을 부리면…!

    일단 오늘은 약의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연재 시간을 지키긴 했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노력해보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 주시고, 시간 내서 추천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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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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