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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6

     가히, 역사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황제가 왕궁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는 그냥 몇 년에 한 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왕궁에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게 비행선 때문에 조금 충격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모든 이들이 왕궁에서의 만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과 크림슨 지브롤터의 만남.

     제국 제일의 권력자와 왕국 최강의 검사 사이의 만남.

     의외로, 아니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아스타시아 황녀라거나 매국 행위, 혹은 지브롤터 협곡의 개방 문제로 한 번 정도는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황태자와 변경백 시절부터 단 한 번도 만나지않았다.

     나 때문일 것이다.

     내가 중간에서 역할을 했고, 내가 황제를 원래 만나야 했을 자리에 계속 나가서 만나게 되니 아마도 그럴 기회가 사라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이 공식적인 첫 만남이자, 비공식적인 첫 만남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한에서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만났으면 그건 어쩔 수 없고.’

     이전에 그렇게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만이오. 크림슨 지브롤터 후작.”

     “오랜만이라고 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내 생각이 얼추 맞는 것 같다.

     “섭섭하군. 20년 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박대를 하는 게 어디있나?”

     “멀쩡한 남의 아들을 제 아들처럼 대하려고 하는데, 어느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까.”

     아버지가 심드렁하게 말하고, 황제는 여유롭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하지만 나는 보인다.

     뒤따라온 윈체스터 대공이라거나, 좌우로 도열해있는 모르가니아의 기사들이라거나, 아버지를 따라온 지브롤터 기사들이라거나 전부 다 긴장감에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타국에 왔으면 후작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군왕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예법이 아닌가?”

     “황제를 상대로 존대를 갖추지 않는 건 노스트럼의 예법이라도 되는 모양이군.”

     “나는 남의 아들을 제 아들로 삼으려는 자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다.”

     “섭섭하군. 이제 가족이 되고 사돈이 된다면 내 딸이 후작의 딸이고 후작의 아들이 내 아들이 되는 것이거늘.”

     이게 황제와 왕국의 후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맞을까?

     적어도 대화 자체는 계속 맞물려 돌아가고 있지만, 대화를 나누는 장소와 사람,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이들에 문제가 있다.

     “…….”

     나리아도, 카르멘 왕비도 긴장한 채 굳어 있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상급 기사 이상의 사람들도 전부 다 두 소드 마스터의 기싸움에 압도되고 있다.

     “아직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닐텐데.”

     “하하.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그걸 확정하려고 이 자리에 황제가 온 건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해서 발길 돌리면 어쩌려고?”

     “제국 황제가 돌아가는 것 뿐이지.”

     “이거, 이거. 아쉬워서라도 사랑하는 내 딸을 데리고 돌아가야겠군. 그러면 앓아 죽는 사람이 누구일까?”

     “지브롤터 협곡을 뛰어넘어, 지브롤터 기사단을 태운 마도자동선이 황궁 정면에 처박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

     “협곡에 있는 관문이 지브롤터의 것이지만, 그 아래에 깔린 철로는 모두 제국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것. 제국으로 넘어오겠다고? 환영하는 바일세. 후후.”

     기싸움일까, 아니면 사소한 말다툼일까.

     그도 아니면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말로 다투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검을 겨누며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견적을 가늠하고 있는 걸까.

     ‘대륙 최강자로 알려진 이들 간의 대결.’

     새삼스럽지만, 제국에서 최강으로 알려진 사람은 당연히 합스베르크 황제다.

     만일 최강이 아니었다면, 진작 다른 이에게 무력으로 제위를 빼앗겼을 테니까.

     그가 제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강하기로 소문난 형제자매들을 모조리 제거하며 이미 무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 내에서도 ‘황제보다는 크림슨 지브롤터가 더 강할 것이다’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만일 최강이 황제였다면, 이미 황제는 지브롤터 협곡을 향해 진군했을 지도 모른다.

     ‘합스베르크 황제, 어쩌면 멀리서부터 아버지를 가늠하고 있었을지도.’

     아버지만 무력으로 어떻게 하면 사실상 이 세상에서 무력으로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 예전부터 주기적으로 아버지의 무력을 확인해왔을 것이다.

     이번에 직접 확인하러 온 것은 아버지를 따라잡았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도 있을 터.

     나로서는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1년이라고 했던가.’

     혼잣말로 중얼거린 그 1년.

     그게 아마도 아버지가 여동생들을 품에 안고 아버지로서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황제가 자식들을 씹어먹으며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 아버지를 추월하기까지 걸릴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를 수 있고.

     

     ‘역시, 많이 약해졌구나.’

     회귀 전의 아버지를 숙청하기까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정도 더 걸렸다.

     내가 20살이 되는 해 노스트럼이 멸망한 뒤로도 아버지는 계속 강해졌지만, 황제는 기어이 그 뒤를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엘프의 핏줄을 전부 제거하고, 그 뼛가루를 갈아마시는 걸로.

     “후후후. 이거, 이거. 아들이 진짜로 빼앗길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안심하시게. 오는 길에 한 번 더 물어봤는데, 오늘 한 번 더 차이는 바람에 씁쓸해져서 괜히 심통을 부려봤을 뿐이니.”

     “…….”

     잠시 아버지와 황제 사이의 무게추를 저울질하는 사이, 황제가 별 해괴한 소리를 지껄였다.

     “후작님. 그리고 폐하.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적당히 둘 사이의 긴장을 깨어낼 겸,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간섭’할 수 있는 내가 끼어들었다.

     “호오?”

     “…음.”

     황제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고, 아버지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최강 사이의 공간.

     그 간격 사이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마스터만이 알고 있는 일.

     “나리아 여왕 전하?”

     “……음.”

     내가 나리아를 부르자, 나리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의 노스트럼 왕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예법에 따른 공손함 그 자체.

     누군가는 왕국의 여왕이 황제를 상대로 너무 저자세로 나오는 게 아니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나리아는 일단 미성년자다.

     ‘여왕이라도 어른에게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게 노스트럼 정서지.’

     왕국과 제국 사이의 차이가 있다고 하기 이전에, 연장자를 향한 기본적인 예절 차이다.

     “거두절미하고, 논의에 들어가도록 하죠.”

     “호?”

     황제가 나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에 이채를 띈다.

     “이것 참. 역시 사람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 같군요. 후후후.”

     그저 범왕이라고 판단했던 나리아라는 존재가 그저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황제 안에서의 나리아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올라간 것 같다.

     좋은 건 아니다.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토끼인 이상 말이 전력이지 실제로 전력을 다할 리가 없다.

     하지만 토끼가 토끼의 모습을 한 육식동물이라는 걸 안 이상, 사자 또한 경계를 하며 마수를 상대할 때와 같이 행동하기 마련.

     “나리아 여왕 전하.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죠. 우리 그레이 지브롤터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의 약혼에 대하여.”

     “…예.”

     나리아가 왕좌의 계단을 내려가, 황제를 향해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말했다.

     “두 사람의 약혼식은, 당연히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져야함이 옳습니다.”

     “황도에서 하시죠. 노스트럼 왕가를 비롯한 대공가, 그리고 12대신을 국빈으로 초대하겠습니다.”

     “…….”

     “…….”

     황제의 미소가 짙어지고, 나리아의 눈이 반쯤 가라앉는다.

     “아무래도, 논의가 길어질 것 같군요.”

     나는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했다.

     “카르멘 왕비께서 잠시 컨디션이 안 좋아보이기도 하고, 회의는 저기 다른 곳에서 하지 않겠습니까?”

     나리아가 스스로 나선 이유.

     카르멘 왕비는 뭐랄까, 평소의 그 냉철함이 사라졌다.

     한 마디로, 망가졌다.

     “크림슨 후작 각하.”

     “음.”

     “카르멘 왕비를 부축하여주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아….”

     아버지가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마치 자신의 호위기사처럼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 카르멘 왕비는 평소의 냉철하고 잔인한 흑장미가 아닌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붉고 연약한 장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레이 경?”

     나리아가 나를 바라본다.

     설마 카르멘 왕비가 이탈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이름을 부른다.

     “하.”

     황제는 잠시 한탄을 하듯 나를 바라봤다.

     “아쉽게도 제가 지금 여왕 전하를 도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회담 내용에 관해서는 저는 이해당사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

     “그러니.”

     나는 황제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헥스 자작을 데리고 가시지요.”

     “……나?”

     구석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헥스 자작을 불러냈다.

     “그레이 총독. 갑자기, 그게 무슨?”

     “헥스 자작은 제 정치적 백부와도 같은 분입니다. 헥스 자작이 노스트럼을 대표하여 나리아 여왕께 조언을 하여 결과가 나온다면, 저 또한 그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일 겁니다.”

     “호오….”

     황제가 헥스 자작을 향해 재미있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로마나 자작. 만나서 반갑소.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겠지만, 그 때 이후로는….” 

     “아, 아하하. 제국의 황제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헥스 자작은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듯한 눈치를 보였으나.

     “로마나 자작. 따라오세요.”

     “…예, 여왕 전하.”

     나리아의 명령에 그대로 나리아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후후후….”

     황제는 새로운 장난감-까지는 아니고, 얼마나 실력이 있을지 지켜보겠다는듯 웃었다.

     “헥스 자작. 웃으세요. 결례입니다.”

     “…….”

     “무슨 할 말이라도?”

     “본인의 약혼식 장소를 정하는 회담에서 당사자가 빠지면 되는 건가, 싶어서 그렇습니다.”

     헥스 자작은 끝까지 나를 물고 넘어지려고 했으나,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 당사자를 만나러 가야하는지라.”

     “…….”

     “가볍게 생각하십시오. 모든 게 서로 좋게 좋게 가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모인 자리 아니겠습니까? 이게 무슨 엄청난 정치적인 공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화와 화합을 위한 만남의 장을 어디로 하느냐를 논의할 뿐 아닙니까?”

     “하, 하하….”

     헥스 자작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는 입모양으로 내게 중얼거렸다.

     -지브롤터에서 준비하기 귀찮아서 입찰 붙이는 거면서.

     역시나.

     잘 알고 있구나.

     ‘약혼식을 하기는 하겠지만, 지브롤터에서 하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준비하느라 바쁠 테니까.’

     약혼식 준비는 왕국과 제국, 둘 중 아무 곳에나 맡겨버리면 그만이다.

     결혼은, 지브롤터에서 할 거니까.

     “그러면.”

     나는 바로 홀을 떠났다.

     홀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여왕과 황제의 대담이 다소 뒤로 갈수록 점점 가볍게 변하는 분위기에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고, 나는 그들을 지나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는 조용한 방으로 향했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문을 열자, 안에는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끝났어요?”

     아스타시아.

     그녀가 검은색 드레스 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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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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