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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6

    <266 – 난장판>

     

    “에이프릴. 뭘 하고 있나? 어서 도망쳐야 한대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꼬리가 자루에 걸려서 얼굴이 새하얘진 에이프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에 한 차례 힘주어 당겨본 안데르센이었지만 에이프릴의 얼굴이 고통으로 크게 일그러졌다.

    더 당겼다간 어딘가 단단히 잘못 되겠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반응!

     

    ‘곤란하게 됐구나.’

     

    안데르센은 고뇌했다.

    3학년 구역은 발을 들이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저절로 떨린다.

    1학년 상급반 학생인 자신조차도 고학년 선배들의 실습소재인 미노타우루스를 상대로는 그렇게나 애를 먹지 않았던가.

    그런 괴물을 평범하게 강의용으로 써먹는 선배들에게 걸린다면 정말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렇게 경직된 몸으로는 수레에서 뛰어내리면 크게 다치겠지.

     

    “먼저 가라, 오크노디.”

    “안데르센은 안 가요?”

    “에이프릴을 두고 갈 수는 없어.”

     

    끝까지 같이 가기로 결심하는 의리의 사나이 안데르센 대공자.

    그의 결심에 오크노디는 굉장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냐, 그 얼굴은.”

    “헤헤. 그냥 되게 의외다 싶어서요. 어느 회차건 대공자님은 비정하고 냉혹한 면이 있으니까요. 아카디아 언니 때처럼 모르는 척 할 줄 알았어요!”

    “…그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 확실히 아카디아에게는 미안한 짓을 했지. 그녀는 내 손이 닿는 범위에서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다르다.

    안데르센 대공자는 그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에이프릴마저도 속으로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찮은 하급귀족이라면 무얼 하고 다니든 상관없겠지만 대공자쯤 되는 신분이면 떨어지는 낙엽에도 오물이 묻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터인데.’

     

    외간여자, 그것도 일개 메이드.

    심지어 수인으로 분장했기에 남들 눈에는 영락없이 고양이수인으로 보일 여자를, 그것도 무려 재단 소속에게 도움을 베푼다.

    들킨다면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 스캔들이다.

    본가에도 악영향이 미치겠지.

    안데르센 본인의 장래에도 결코 좋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도움을 베푼다?

    손이 닿는 범위 내라서?

    감당 가능한 일이라서?

     

    ‘그럴 리가 없겠지.’

     

    아카디아 공녀 때만큼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그에게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도움을 주었다면 안데르센 대공자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죄책감 때문에 그러는 거면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런 게 아니래도.”

    “그럼 그런 셈 쳐드리죠 머!”

     

    아카디아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경험이 미안해서 은혜를 베풀었다거나.

     

    ‘아니면 내게 마음이 있다거나…?’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에이프릴은 철부지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 *

     

     

    수레에서 뛰어내릴 호기는 지났다.

    마침내 도착한 3학년 전용구역.

    <몬스터의 행동패턴을 알아보자> 강의장.

     

    “이 아닌데요?”

    “그럼 여긴 어디냐?”

     

    오크노디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는 안데르센.

    공터에 수레를 세워둔 강의조교가 피리를 들고 수상한 소리를 내었다.

     

    부스럭.

     

    잠시 후, 으슥한 오솔길에서 하나 둘씩 나타나는 수상한 학생들.

    설마 정체가 들킨 건가…?

    겁도 없이 3학년 구역에 발을 들인 1학년을 다 같이 집단능욕 하려고?

    안데르센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단단히 긴장했다.

     

    “물건은?”

    “직접 확인해라.”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안데르센.

    수레로 다가온 학생 한 명이 단검으로 자루를 긋고는 젤리를 삼켰다.

     

    “상등품이군. 결대로 자른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누구 작품이지?”

    “모른다. 납품예정이었는지 미리 놓여있던 물건을 챙겨왔을 뿐이니까.”

    “오히려 잘됐어. 우리 ‘재단’의 ‘장학생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아.”

     

    사악하게 웃는 학생들.

    그 말에는 세 사람 모두가 놀랐다.

     

    “!!”

     

    설마 이런 식으로 고학년 재단 장학생들과 마주치게 되다니!

    안데르센은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오크노디와 에이프릴이야 재단관계자니 어떻게든 된다고 쳐도 자신은 부외자다.

    들키면 엄청난 꼴을 당할 것은 당연지사.

    단단히 놀란 그의 손에 강한 힘이 꾸욱 실렸다.

    조금 전까지 그가 진정시키려 애쓰던 에이프릴이 이번에는 자신을 향해 괜찮다며 진정하라고 시선을 보내며 손을 잡아주었다.

     

    ‘아카데미에 재단의 스파이가 내가 아는 사람만 있을 리가 없지.’

     

    에이프릴은 알고 있다.

    자신의 담당은 주로 1학년 하급반에 치중되었음을.

    같은 학년 내에도 다른 관리자가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학년은 말할 것도 없다.

     

    ‘대체 무슨 작전을 꾸미느라 이렇게 고학년 장학생이 여럿이 모인 거지?’

     

    자신도 모르던 재단의 사악한 계획.

    그 실체를 본다는 생각에 에이프릴마저 손에 땀이 찼다.

    서로가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두려움과 맞서 싸우는 안데르센과 에이프릴.

    두 사람은 마침내 목격했다.

    재단의 사악한 계획, 그 실체를!

     

    “드디어 무료배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어.”

    “몬스터 채집물이 사라져봤자 혼나는 건 강의조교지 우리가 아니지.”

    “큭큭. 정말 좋은 계획이었어. 스티커마법으로 강의조교로 변신해서 당당하게 정면에서부터 쳐들어가서 채집품을 털어버리다니.”

     

    무려 채집품 도둑질!

    오크노디가 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짓거리!

     

    ‘이걸 오크노디의 수준이 3학년과 동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재단은 생각하는 수준이 거기서 거기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군.’

    ‘…긴장해서 손해봤네요. 하긴 제가 담당하는 장학생들도 포인트의 중요성을 알고 있어서 짠돌이처럼 생활하는 장학생이 대다수였죠.’

     

    조금은 한심하게도 보였지만 그것이 이들을 깔보아도 좋을 이유가 되지는 않음을 안데르센은 다시금 상기하였다.

    상대는 이 험난한 아카데미에서 3학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계할 자격이 충분했다.

    에이프릴 또한 위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풀어지려는 경계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는 있지만 실은 우린 학생도 아니었다고는 더욱 생각지도 못했겠지?”

    “큭큭. 휴학생에게는 학식을 5포인트에 먹지 못하게 막아버린 너희가 나쁜 거라고.”

    “우왓, 여길 봐. 코카트리스의 알도 있어. 이번 조교는 실력이 정말 좋았나본데? 눈을 마주치면 불타 죽는 새한테서도 알을 빼앗다니!”

    “그거 반숙으로 먹으면 화염내성 오르냐?”

    “용암에 던져볼까?”

    “미친놈아 그러다 녹으면 라바골렘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못 먹어.”

     

    안데르센은 슬슬 이들의 정체가 휴학생이라는 사실에 놀라야할지, 은근슬쩍 그런 위험한 몬스터의 알까지 슬쩍한 오크노디의 실력에 놀라야할지 고민되었다.

     

    “오크노디. 조금만 더 있으면 자루가 다 꺼내져서 우리까지 들키겠는데 그냥 지금이라도 자진해서 나가면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침착하게 기다려요. 다른 기척들이 다가오고 있어요!”

     

    한참 수레의 짐을 옮겨 담던 3학년 장학생들이 어디론가 고개를 돌렸다.

     

    “이 기척은…!”

    “학생회다! 휴학생단속국이 떴다!!”

     

    학생회의 권력을 모르는 안데르센은 3학년 선배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고학년끼리 뭘 저리 경계하는 거지? 교관이나 교수라면 모를까, 고작 학생회인데.’

     

    뭘 모르는 1학년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신호탄을 쏴라!”

    “저기다! 재학생 전용구역에 비허가 무단침입을 저지른 휴학생들이 저기에 있다!”

    “아니, 우리들이 휴학생인 걸 어떻게 알았지!?”

    “설마 배신자가 있는 건가!?”

     

    수레 속에서 엿듣는 안데르센조차 느낄 정도의 극심한 혼란에 빠진 재단장학생들!

     

    “배신자 색출은 나중이다. 일단 흩어지.. 크아악!”

    “아앗~~~핫핫핫하하━! 저 만델라 카스테라의 잠복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선배님들은 아카데미 밥을 헛먹었군요. 너무 약해서 때리는 이쪽이 다 눈물이 난답니다!”

    ‘바, 방금 내가 잘못 본 건가?’

     

    이색적인 웃음소리에 특징적인 드릴머리까지.

    틀림없다.

    저 사람은 대운동회 학년대항전 피구경기에서 보았던 2학년들의 학년수석 만델라 영애가 맞았다.

    순간적으로 휴학생의 퇴로가 번뜩이더니 허공에서 나타난 만델라 영애의 모습은 <근거리 순간이동>.

    간격을 중시하는 전사들에게 꿈에서나 그릴법한 치트키 기술이었다.

     

    “하, 저 녀석은 고작 2학년이잖아? 기습이라면 모를까, 정면에서 모습을 나타냈다면 두렵지도 않아!”

     

    지면의 돌멩이를 수십 개나 띄워 올려 일제히 총알처럼 날리는 장발의 휴학생 선배.

    뒤를 이어 방패를 든 선배가 가짜교복을 찢고 갑옷을 내세우며 철갑돌격을 개시했다.

    강력한 연속염동마법과 철갑돌진기술의 연계기에 제 키만큼 커다란 망치를 든 만델라의 모습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자, 이틈에 빠져나가죠!”

    “아니, 저런 흥미진진한 대결의 결과를 지켜보지 않겠다고?”

    “누가 쓰러지든 다음은 저희가 들킵니다.”

     

    에이프릴의 말에 마지못해 자루를 들어 그녀의 꼬리를 밖으로 꺼낸 안데르센.

    수레에서 기듯이 내려오자 저 뒤편에서 휴학생들의 “손나!” “말도 안 돼!” “플라톤 교수님의 조각상도 부순 돌격이 막히다니!” 같은 경악이 쏟아졌다.

    …너무 궁금하다.

    싸움구경이 하고 싶다!

    자꾸만 돌아가려는 고개에 괴로워하는 안데르센의 손을 에이프릴이 붙잡았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에 에이프릴은 한층 더 과감한 행동을 저질렀다.

     

    “!!”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물리는 잡기.

    연인들이나 할법한 손깍지에 안데르센 대공자가 넋 놓고 에이프릴을 쳐다보았다.

     

    “발을 쉬지 마세요. 만델라 후작영애의 웃음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잡히면 재단장학생에게 걸릴 때보다 험한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달리, 앞서 달리는 에이프릴은 고통에 이따금 허리를 비틀면서도 꿋꿋이 안데르센을 잡아끌었다.

    자신 때문에 몸도 성치 않은 에이프릴이 고생하는 모습에 안데르센도 뒤늦게 고개를 저으며 똑바로 정신을 차렸다.

     

    “오크노디. 에이프릴. 두 사람 모두 미안하다. 휴학생들의 접근을 조금 더 일찍 눈치 챘다면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텐데.”

    “아, 그거라면 괜찮아요. 아까 만델라 선배의 기습에 쓰러진 휴학생 선배한테서 오늘 채집한 식재료를 다 합친 것보다 비싼 물건을 슬쩍했거든요!”

     

    마법배낭에서 오크노디가 꺼낸 것은 앞서 강의조교 흉내를 내던 휴학생이 사용하던 신기한 효능을 지닌 스티커뭉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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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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