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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7

       쥐 죽은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좌중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강자의 기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감도는 죽음의 향기.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 상황.

       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달려 나갔다.

         

       “으아아악!!!”

       “……”

         

       검귀(劍鬼) 소항우.

       노인은 달려오는 여성을 힐끗 쳐다봤다.

         

       이름도 모르는 헌터다.

       아마, A급 하위권으로 추측.

       양손에 감도는 전기를 보아하니,

       대충 뭐 그렇고 그런 능력이라 추측했다.

         

       노인은 의문이 들었다.

       ‘위압’을 내뿜었는데 어떻게 움직였는가?

         

       곧, 여자의 손등에 박혀 있는 칼자국에,

       스스로 자해하여 그 고통으로 벗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노인은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도 없는 버러지라는 건 변함없지만…

         

       “나쁘지는 않군.”

       “죽어!!!”

         

       여자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노인에게 있어 너무나도 익숙하기 짝이 없는 눈이었다.

       증오와 원망, 복수를 불태우는 눈.

         

       노인은 생각했다.

       조금 전 죽였던 자 중, 이 여자의 가족이나, 애인이 있을 거라고.

       대충 뭐 그런 걸 불태우며, 원동력 삼는 자의 힘이겠지.

       흔해 빠진 감성팔이로 인한 악다구니였다.

         

       거기까지 도달하자.

       …짜게 식었다.

         

       ‘하찮군…’

         

       원래라면 상대할 가치도 없으나,

       어찌 되었든 위압에서 벗어난 건 칭찬해 줄 만했다.

         

       노인은 보지도 않고 칼을 잡았다.

       전기를 담은 양팔이 닿기 일보 직전,

         

       가볍게 검을 들었다.

       아직 칼집에서 나오지 않은 ‘1’이라 적힌 장도.

         

       노인은 검지로 코등이를 밀었다.

       칭-! 하는 소음과 함께 밀려 나온 5cm도 안 되는 검날.

       그걸로 손쉽게 여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슈컥-!

         

       어느새 노인은, 여자의 등 뒤로 이동해 있었다.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을 집어넣었다.

         

       눈이 좋은 소수의 몇 명만이,

       찰나의 순간 경동맥을 끊었다는 걸 인지했다.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

       여자는 무릎을 굽혔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

         

       “……”

         

       노인에게서, 약 15m 떨어진 전장 한복판.

         

       신빛가람은 적을 향해 메이스를 휘두르는 것도 멈추고 노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건 눈앞의 이름 모를 마스크를 뒤집어쓴 빌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같은 아군이자 든든한 동지이며,

       먼저 사회로 나가, 신성을 퍼트리는 <시스터 후드>의 선배님들.

       산전수전 다 겪어, 그 이름값을 드높은 유망한 헌터들.

         

       심지어, 일단은 표면상 노인과 같은 편인……

       <빌런, 마인>들 조차 숨도 못 쉬고,

       검귀를 쳐다봤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무조건 길이 남을 대전투.

       그 승부를 결정지을 한복판이자 중심.

         

       신빛가람은 생각했다.

       아마, 역사에는 이리 적힐 거라고.

         

       ‘단 한 명…’

         

       오로지 단 한 명의 등장으로 전장에 침묵이 감돌았다…라고 말이다.

         

       또르륵.

         

       신빛가람의 고운 턱선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신빛가람은 확신했다.

         

       ‘전환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

       신빛가람은 미리 미래를 읽었다.

       펼쳐지는 유혈과 허무하게 무너지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속으로 유세하에게 짧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후배님.’

         

       이번 일이 지나고, 서로 살아남아…

       수년 뒤에도…

       당신의 옆에서 좋은 선후배로서 남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저는 이곳에서 순교할 운명인가 봅니다.

         

       곧, 예상대로 검귀가 움직였다.

       천천히 칼을 고쳐잡는 검귀.

       그가 다른 검을 꺼내, 학살을 펼치는 장면이 그려졌다.

         

       하지만…

       검귀가 취한 행동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

         

       “……”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가는 검귀.

       주변에 보이는 헌터들을 대놓고 무시하며 그저 걸어 나갔다.

         

       멈추어선 곳은, 상처를 치료하며,

       김민수를 부축하는 문하연의 앞이었다.

         

       검귀가 말했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문하연이 대꾸했다.

         

       “충분해.”

       “좋아, 이동하지.”

         

       그 말에 헌터들은 물론이고, 빌런측도 당황했다.

       당연히 한바탕 할 것 같았는데, 그냥 가겠다고?

       이게 도대체?

         

       여기서 가장 크게 당황한 것은,

       <니플헤임>의 클랜 마스터 고주금.

       노파는 앞으로 나서며 지팡이를 가리켰다.

         

       “이, 이봐 검귀! 어딜 가는가! 그 실력으로 당장 이 망할 새끼들-”

         

       슈컥!

         

       툭, 데구루루.

       잘리는 소음.

       깔끔하게 베인 고주금의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었다.

         

       무려, 같은 아군을…

       그것도 명백히 범죄 클랜의 마스터를 베어버린 것이었다.

       <니플헤임>의 클랜원들이, 당혹감과 분노로 검귀를 바라보았으나…

         

       “……”

         

       물끄러미 바라보는 검귀의 표정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조금이라도 나서는 순간 죽는다는 것을.

       이 미치광이 노인에게는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거였다.

         

       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뒤 세계.

       결국, 강한 놈이 법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문하연은 투덜댔다.

         

       “…시간 끌 녀석들은 놔둬야 할 거 아니야, 망할 노친네야.”

         

       문하연의 투덜거림.

       검귀는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이번 기회에 죄다 정리 할 생각 아니었나?”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괜찮다. 나머지 숫자가 꽤 된다. 가장 위협적인 놈들은 죽이거나 제압했으니…네가 일을 치를 시간 정도는 벌어주겠지.”

       “하여튼 망할 노친네…성격 더러워서 원.”

         

       투덜거리던 찰나,

       문하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보다 얘네들 또 기습하는데?”

       “이미 베었다.”

         

       여상(如常)하게 대답하는 검귀.

       언제 뽑았는지 모를 ‘4’라 적힌 특대검을 반으로 접어 다시 집어넣었다.

         

       투둑.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비인가 싶은 액체.

       하지만 그것은 모두 피였다.

         

       투두둑-!

         

       다양한 방식으로 검귀를 노렸던 5명의 헌터들.

       몸에 수십 개의 실금이 그어지며, 잘게 잘게 토막 나 가루처럼 뿌려졌다.

         

       “……”

       

       검귀는 눈을 돌렸다.

       공포에 마른침을 삼키는 나튼튼.

       어느새 인간으로 돌아와 숨을 헐떡이는 능하악을 바라봤다.

         

       “그나마 쓸만하다는 수준이 저 정도인가?”

       “…A급 최상위권이야, 나랑 동급이라고. 전 세계를 따져도 1,000명도 채 안 돼.”

       “버러지군.”

       “…이 씨발, 괴물 같은 노친네. 당신이 비정상적으로 센 거야.”

         

       검귀는 당당히 걸었다.

       마치 막을 거라면 막아보라는 의미.

       그 뒤를 따르는 문하연과 김민수.

         

       그 누구도 세 사람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인간의 육신으로 쌓아 올린 자연재해가 사라지고 나서 1분 뒤.

         

       “…고, 공격!”

       “자세 잡아 다들!!”

       

       그제야 남아있던 헌터, 빌런들은 다시 전쟁에 돌입했다.

         

         

       * * *

         

         

       어느 정도 걸었을까.

       검귀는 고통에 욱신거리는 김민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민수, 발목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나?”

       “…할 수 있습니다.”

       “좋군. 가라. 죽는 한이 있어도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룩해라.”

         

       말을 마친 검귀는,

       김민수가 당황할 만큼 빠르게 몸을 돌렸다.

         

       “……소, 소항우님도 같이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검귀가 콧방귀를 끼었다.

         

       “이미 다 큰 너희 둘의 기저귀까지 내가 갈아줘야 하는가?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곤 문하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서로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분명 그런 약조였지?”

       “……”

       

       물음에 문하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망할 노친네.”

       “물론이다.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지 마라.”

       “어머나 스윗해라…그래서…”

         

       문하연은 뒤를 눈짓했다.

         

       “누가 왔는데?”

         

       검귀가 대답했다.

         

       “아는 얼굴이다. 대화 좀 할 생각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문하연.

       김민수와 함께 달리며 넌지시 말했다.

         

       “죽지 말라고.”

       “……”

         

       대답에 피식 웃는 검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죽는다라, 적어도 오늘은 내 목을 거둘 별은 보이지 않는군.”

         

       말을 마친 직후.

       밤하늘 위.

       족히 수십 미터는 되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귀는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틀림없이 스킬, 술사 모두 최고봉의 위치에 있는 강력한 냉기 기술.

         

       쾅-!!!

         

       검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정면으로 맞이하였다.

         

       *

         

       쩌적.

         

       맑고 투명한 얼음에 갇혀 완전히 얼어붙은 검귀.

       잠시 뒤, 얼음이 흔들리며 단숨에 깨부수고 걸어 나왔다.

         

       칼조차 뽑지 않았다.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육체의 강함.

       그리고 미쳤다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드높은 정신으로 커버한 것.

         

       공격을 날린 장본인은 혀를 찼다.

         

       “여전히 무식한 방법을 쓰는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10대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백발의 여성이었다.

       흰색의 무복과 함께 대기 중의 수분마저 얼릴 정도로 강력한 냉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인.

       [음양의 이해]를 담당하는 교수, 천미라였다.

         

       검귀가 대꾸했다.

         

       “인사 대신해서 맞아주었소. 이 정도면 예의 바르다고 여긴다만.”

       “고약한 놈…”

       “오랜만이오, 천미라 누님. 70년만인가? 여전히 아름답구려.”

       “그래, 오랜만이구나. 너는 더더욱 무섭게 변했구나.”

         

       말을 마친 두 사람.

       한순간 사라졌다.

         

       쿵-!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충격파.

       살벌하기 짝이 없는 검기와 냉기의 격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강자들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격렬한 공방이 이어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말 그대로 죽일 기세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천미라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전부 대응하는 검귀의 싸움이었다.

         

       검귀는 목, 심장, 폐, 복부를 노리고 들어오는 [빙월일신공]의 파생스킬,

       [청어빙화폭]을 가볍게 자르며 물었다.

         

       “왜 이곳에 있소?”

       “교수가 아카데미에 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러니까 왜 교수를 하냐 이 말이오. 누님 짬이 얼마인데 이런 곳에서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 뒤꽁무니나 따라다닐 나이는 아니잖소.”

       “유능해라는 아이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더구나.”

       “유능해? 대단한 재능을 보유한 아이라도 되오?”

       “너는 그런 거로만 세상을 판단하느냐…그저 평범한 아이다. 그리고 이곳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지. 습격한다는 놈이 그런 것도 모르고 온 거냐?”

       “내가 알 이유가 있소?”

       “고약한 놈이로고…그 아이가 말하더구나. 언제인지 모르나 반드시 거악이 다가올 거라고, 부디 미래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써달라고.”

       “그래서 구태여 이런 누추한 곳에 온 거요?”

       “그래 이곳의 수많은 희망을 지키는 것. 그리고 지금 눈앞의 네놈을 막는 것. 그것이…‘그 녀석’의 의지를 이으는 길일 테니까.”

         

       찰칵.

       ‘그 녀석’이라는 단어.

         

       그 말에 번개처럼 반응한 검귀는,

       천미라를 향해 칼을 뽑았다.

         

       일순, 그림자 같은 잔상이 칼에 휘감겼다.

       그대로 차근차근 냉기를 퍼트리던, 영역을 모두 썰어버렸다.

       천미라는 한순간에 사라진 냉기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더 강해졌구나. 듣자하니 세간에는 A급이라고 소문이 감돌던데. 일부러 힘을 숨기기라도 한 거냐?”

         

       “정반대요. 나는 살아온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힘을 숨긴 적이 없소. 고작 그 정도 힘만 드러내도 다 죽어버려서 상세히 소식을 알릴 놈이 없었던 거지. 애초에 협회나 클랜은 빌런, 마인에 대한 평가를 짜게 내리지 않소?”

         

       “그렇지…S급의 강함을 가진 범죄자가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걸, 그것도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는걸 알려봤자 욕만 먹을 테니까.”

         

       “그리, 몸을 사리는 시점에서 아웃이오. 적의 강함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무지렁이들이 어떻게 높이 오르겠소? 애초에 지금의 나는 같잖은 협회 놈들이 정한 등급으로 규정될 존재가 아니오. 그 사람처럼…”

         

       “그 사람…”

         

       검귀는 손을 들었다.

       손에 들린 ‘1’이라 적힌 장도가 찬란하게 빛나며,

       밤하늘의 달을 자를 듯이 용오름 쳤다.

         

       “30년 전, 나의 검은 하늘을 넘어 별에 도달했소.”

         

       그리고 지금은,

       그 너머의 세상.

       천체(天體) 또한 넘보고 있소.

         

       “천미라 누님.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소.”

         

       지금의 나는,

       그리도 닿고 싶었던 별 그 너머의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고.

         

       “나의 부모이자, 스승이며, 단 한 명의 가족이었던…”

         

       지한성.

         

       “그가 있는 곳에 다 왔다는 소리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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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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