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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7

        

         

       웃음.

       토마스는 선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 지을 수 있는 밝은 웃음.

       흔히들 ‘햇살 같은’ 미소라고 표현하는 웃음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했다.

         

       어째서 토마스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인가?

       어째서 윌리엄을 꽁꽁 묶어놓으면서도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

         

       ‘이상하다.’

         

       윌리엄은 그제야 위화감을 깨달았다.

         

       달궈진 돌이 서서히 차가워지듯 그의 분노는 가라앉았고, 그와 함께 폭발할 듯 날뛰었던 그의 이성 역시 냉정해지며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조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이상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직도 꿈인가?’

         

       윌리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토마스를 보며 어느 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지금이 꿈이고, 그는 아직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가능성.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악령들이 있기는 하지…. 그럼 난 아직도 악령의 공격을 받고 있는 건가?’

         

       영악하고 강한 악령의 경우 사람을 꿈속에 빠뜨려 미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꿈속의 꿈.

       깨어났음에도 벗어날 수 없는 꿈의 반복.

         

       몽중몽(夢中夢).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장소.

       옷차림.

       토마스의 이상한 태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 뿐이었다.

         

       ‘내가 교회에 있는 것도 이상하지.’

         

       교회인지 성당인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풍경이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수를 믿는 놈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곳과 똑 닮아있었다.

         

       ‘나는 최고급 호텔에서 자고 있었는데 말이야.’

         

       윌리엄은 조금 전까지 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그것도 그의 품격에 걸맞은 최고급 호텔에 말이다.

       게다가 경호원들을 잔뜩 포진시켜놓았고, 자신의 충실한 소환수 역시 옆에다가 딱 붙여놓았다.

       게다가 슬슬 예언의 때가 다가오니만큼 가문에서 특별히 인재들을 보내서 경호하는데 거들기까지 했다.

         

       그런 일당백의 괴물도 쉽게 뚫지 못하는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 꿀 같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눈을 떠보니 교회에 꽁꽁 묶인 채 누워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장은 또 뭐야.’

         

       게다가 정장 역시 마찬가지.

       그는 잠이 들기 전에는 항상 편한 차림을 한다.

         

       물론 그 ‘편한 차림’의 정의가 그때그때 달라지기는 한다.

         

       여자를 끼고 잤을 때는 발가벗고 자거나 속옷만 입고 자곤 했었고, 여자를 끼지 않았다면 밖에서 돌아다녔던 옷을 대충 벗어 던지거나 바지만 입고 자기도 했으며,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가운을 입고 잠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무조건 잠자리에 편한 옷만 입었다.

       무조건.

         

       그런데 이 정장은?

         

       편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차림이었다.

         

       다림질을 얼마나 열심히 한 것인지 주름은 보이지도 않았고, 보풀 역시 없었다.

       게다가 원단 역시 엄청 좋은 것을 쓴 것 같았다.

         

       심지어 새 옷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단언컨대, 그는 잘 때 이딴 옷은 입지 않는다.

       아무리 정신이 없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말이다.

         

       길들지도 않은 새 정장을 입고 잔다고?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광이 번쩍번쩍 나는 구두까지 더하고, 목이 졸릴 듯 빡빡하게 매인 넥타이에, 넥타이핀까지?

         

       오, 맙소사.

         

       마약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차림으로는 잠자리에 들지 않으리라.

       아마 무의식중에 정장을 벗어 던지거나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마스도 이상하지.’

         

       그리고 가장 이상한 것은 토마스의 태도였다.

         

       그는 토마스와 꽤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건 토마스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그가 알고 있는 토마스는 어린아이한테도 쩔쩔매고, 노숙자와 가난한 신자들에게 베푸느라 제 재산 하나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호구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호구 같기만 했다면 윌리엄과 어울릴 수는 없었으리라.

         

       토마스는 호구 같기는 하되 다른 신부들과는 조금 달랐다.

       다른 신부들보다는 묘하게 세속적이며 관용이 넘쳤다.

         

       신부 중에는 마조히즘이라도 있는 것인지 참회를 한답시고 제 등에 쇠 채찍을 때리는 것이 일상인 인간도 있었고, 만나러 갔을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만 보이는 광신도에 가까운 인간도 넘쳐났다. 게다가 교리를 어기면 눈에 불을 켜면서 분노를 표출하지를 않나, 어떤 신부는 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천벌을 내리겠다며 어디서 이상한 흑주술을 훔쳐 배워서 걸려고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인간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토마스는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신을 믿기는 하되 그것을 중히 여기지는 않았다.

       베풀기는 하되 설교를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베푸는 것처럼 보였다.

       금욕에 집착하는 다른 신부들과는 달리 욕망에 긍정적이었으며, 신자들이 귀한 술이나 음식을 주면 거절하지 않고 받기도 했다.

       

       ‘그래. 내가 갖다준 3만 파운드짜리 와인을 병째로 반쯤 마시고, 남은 와인은 코코뱅을 만들 때 사용했었지….’

         

       묘하게 소탈하면서도 대범한 인간이었다.

       돈이나 비싼 것을 주면 아무렇지도 않게 막 써재끼면서도, 이상하게 물욕은 없었던 인간.

       게다가 설교니, 지적이니 하는 짜증 나는 짓거리를 많이 하기는 해도, 강제로 윌리엄을 교정하려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

       그런 인간이었다.

         

       약간 이상하면서도 무해한 인간.

       윌리엄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인간.

       같이 있어도 그나마 짜증이 나지는 않는 인간.

         

       그런 인간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저렇게 행동한다고?

         

       ‘그럴 리가 없지.’

         

       윌리엄은 확신했다.

         

       눈앞의 토마스는 꿈이다.

       자기 정신력을 깎아 먹으려 하는 악령의 수작이다.

         

       이 확신은 확고했다.

         

       호구 같은 데다가 남이 조금만 괴로워해도 당황하면서 난리를 치는 신부가 이런 짓을 벌일 리가 없었으니까.

       교회에 꽁꽁 묶고 재갈까지 물려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미소를 지을 리가 없었으니까.

         

       이러한 윌리엄의 확신은 토마스가 웃으면서 꺼낸 말을 듣고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도련님. 얼굴을 보면 알 것 같군요.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흐.”

         

       윌리엄은 재갈 사이로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의심을 하는 이 타이밍에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애새끼도 이게 꿈이라는 걸 알아차릴 거다, 멍청한 악령 새끼 같으니.’

         

       윌리엄은 조소했다.

         

       자신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는 악령이 너무 멍청했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던질 거였다면 적어도 자신이 당황하고 있을 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심하자마자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내가 바로 악령이고 지금 꿈속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윌리엄은 꽁꽁 묶여있어 중지를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을 한탄하며 비웃음을 날렸다.

       손가락으로 보낼 수 없는 엿이 이 표정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윌리엄의 비웃음을 받고도 분노하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고, 당혹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곧 아시게 될 겁니다.”

         

       토마스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그리곤 다시 파이프 오르간 앞에 앉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

         

       공간 자체를 눌러버릴 듯한 거대한 소리.

       웅장함을 담은 거대한 소리가 교회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시작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웅장하면서도 거룩한 듯한 연주.

         

       교회에 갔을 때 자주 들리는 음악 소리였다.

         

       “Asperges me Domin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토마스는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며 한껏 목청을 높여 노래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오르간에 묻히지 않도록 커다랗게 말이다.

         

       토마스는 자기 몸을 울림통처럼 이용하여 한껏 부풀려서 소리를 뿜어내었고, 그 소리는 성악가가 내는 소리처럼 커다랗게 빚어져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에 올라타 퍼지기 시작했다.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sicut erat——–”

         

       웅장하고, 거룩하고, 신실하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악기로 발하는 소리는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신이 보여준 사랑에 대한 답장이었다.

       신에게 자신의 사랑을 노래하기 위한 인간의 발악이었다.

       저 드높은 천상에까지 닿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담긴 소리였다.

         

       “———–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토마스의 목소리는 낮았다.

       낮고 무거웠으며, 땅에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는 더더욱 발악처럼 보였다.

         

       가라앉을 운명임에도 하늘로 손을 뻗고.

       신에게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땅에 머무를 수 없음에도 항상 천상을 갈망하고, 천상의 존재를 사랑한다.

         

       그의 노래에는 그런 광기에 같은 집착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Asperges me Domine hy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토마스 신부의 성대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파이프 오르간을 타고 흘렀다.

         

       타고 흘렀고, 부딪치며 퍼졌고, 증폭되며 공간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끝에는 거룩한 듯한 소리와 함께 마무리되었고, 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느려졌다.

         

       그렇게 연주가 끝을 맞이한 그때.

         

       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연주가 아닌, 건반으로 공간을 짓이기려는 듯한 소리였다.

       거룩했으나 강압적이었고, 신실했으나 강요에 가까웠으며, 웅장했으나 폭력적이었다.

         

       “Ostende nobis Domine misericordiam tuam.”

         

       그리고 그 강압적인 소리 속에서 토마스는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회답하듯 윌리엄의 옆쪽에서 소리가 울렸다.

         

       [ Et salutare tuum da nobis. ]

         

       아니.

       옆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는 표현이리라.

         

       옆이 아니라, 윌리엄의 오른쪽 어깨에서 소리가 났다.

       마치 윌리엄의 어깨에 누군가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윌리엄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입이 있었다.

         

       얇고 가느다란 밧줄에서 꽃이 피어 있었고, 그 꽃에는 암술과 수술 대신 사람의 입이 달려 있었다.

       그 꽃은 가느다란 줄기가 목구멍과 성대라도 되는 것처럼 진동하였고, 중앙에 있는 입이 진짜 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핏물로 이루어진 혀를 튕기며 소리를 내었다.

         

       악몽 같은 모습이었다.

         

       “Domine exaudi orationem meam.”

         

       토마스는 그 악몽 같은 존재가 낸 소리를 기꺼이 받았다.

       마치 이것이 옳다는 듯,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기도문을 외웠고, 그 기도문을 들은 꽃은 마찬가지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었다.

         

       [ Et clamor meus ad te veniat. ]

         

       그렇게 둘은 기도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짓누르는 듯한 끔찍한 공기 속에서.

         

       “Dominus vobiscum.”

       [ Et cum spiritu tuo. ]

       “Oremus-”

         

       그리고 그렇게 주고받는 말의 끝에, 둘은 동시에 소리를 내었다.

         

       “Amen.”

       [ Am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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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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