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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7

       “이건 왜 맛있을까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취했나.

        

       내 입장에서 취한 느낌은 아니었다. 약간 따스한, 기분 좋은 느낌이었지.

        

       하지만 안 취했단 말은 판단력마저 흐려진 취객의 공통 멘트였고- 그간의 경험으로, 이 아이스크림이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건 취했다는 신호다.

        

       일종의 자체 개발 알코올 측정 방법이었다. 민트 초코가 유독 맛있으면, 우선 생리 주기를 떠올려보고- 생리 직전이 아님에도 과하게 맛있다면, 얌전히 잘 시간이라는 뜻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과하게 맛있진 않았다. 맛있지만, 자제력은 남아있을 정도.

        

       그러니까……조금, 조금은 더 마셔도 되지 않을까.

        

       모처럼 나왔는데.

        

       “……취향에 맞으면 좋은 거지! 원래 초콜릿이 좀 텁텁해서, 상쾌한 민트랑 잘 어울린대.”

        

       홀로 고민을 이어나가던 사이,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고개에 시야가 살짝 흔들렸다. 뇌가 따라가지 못한 느낌. 마치 현실에서 렉이라도 걸린 듯해서-

        

       ……취한 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흐릿한 시야에 가득 담긴 얼굴에는 미묘한 걱정이 서려 있었다. 예전이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표정이다.

        

       뭐가 그리도 불안한 건지.

        

       내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싫지만은 않지만-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의 짐도 짐이고,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

        

       다만-

        

       저리 어색한 웃음을 품은 진희가 결코 노골적인 걱정을 표하지 않듯이, 나 역시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상투적인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서로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기에.

        

       “지니님도 좋아하시나요.”

        

       그저, 언제나와 같이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응! 종종 먹어.”

        

       그리 말하며, 물끄러미 내 입가에 머무는 시선.

        

       ……사실은 먹고 싶었던 걸까. 말을 하지.

        

       입이 안 닿은 곳이 없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한 입……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니려나.

        

       여자끼리도 가벼이 한입만을 시전하곤 할까. 벌써 1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알 법도 한 일이건만, 협소한 인간관계 탓에 경험과 지식은 여전히 한없이 부족했다.

        

       모르겠을 때는 안전한 게 낫겠지. 

       

       반쯤 내밀어지던 손을 애써 회수했다.

        

       집도 그랬고……레반만큼은 아니어도, 진희도 깔끔한 편이었으니까. 역시 먹던 걸 내미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말씀하시지. 사드릴 걸 그랬네요. 맨날 받는 것만 많아서, 보답이 궁한데.”

         

       새삼 돌이켜 보면, 정말로 받는 것만 많은 관계다. 고민이 있을 때면 항상 찾아갔었고- 도움도, 음. 나름 됐던 것 같은데.

        

       그러나 아무리 요구를 해도 청구서는 나오지 않고, 보답을 할 만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내게 바라는 게 없는 건지. 아니면…….

        

       뭔가, 뭔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려나.

        

       “그러고보니, 그……코스프레? 그건 정말 시키게?”

        

       “글쎄요. 생각이 바뀌려 하고 있기는 해요. 스컬카나리아몬이 되어버려서 조금 무서워. 기껏 시켜놓고 맘껏 놀리지도 못하면, 주객전도잖아요. 그래도……아쉽긴 한데. 일단 시키긴 해야겠다, 싶어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될지 모르니.”

        

       대답을 하는 사이에도, 머리 한 켠에서는 여자에게 할법한 선물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다만, 솔직히……그냥 친구인 여자에게는 무언가를 선물한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여자친구한테 할 법한 선물 따위를 갑자기 건네는 것도, 조금…….

        

       이런 고민상담은 진희가 참 잘 해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네- 따위의 생각을 하는 사이.

        

       “……시훈 오빠가 코스프레 한 게 그렇게 보고 싶었구나. 몰랐네.”

        

       정신이 다른 데 팔린 티가 난 걸까.

        

       제법 노골적인 불만이 섞인 대답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문 채, 찡그린 눈매가 가늘게 좁혀지는 모습.

        

       눈을 마주하기 어려워, 조심스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로 화날 일은……아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뭔가. 뭔가, 평소랑 너무 다르지 않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입은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딴 생각해서 미안해, 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애초에 정말로 딴 생각을 해서 화가 난 건지도 알 수 없고.

        

       진희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화난 이유도 모르면서 가볍게 사과하면 더 싫어할 텐데.

        

       고민에 잠긴 채 술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무거운 침묵만 하염없이 흘렀다.

        

       계단 앞. 곁눈질로 필사적으로 확인한 진희의 얼굴은 계속해서 굳어 있었다. 조금, 조금은 슬퍼보이기까지 하는데.

        

       맥락상,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지을 이유가…….

        

       아.

        

       혹시-

        

       그 사이에 나무꾼이 공략에 성공이라도 한 건 아닐까. 마음이 있다면, 내가 레반과 둘이서 코스프레 합방을 할 거라는 이야기가 달가울 리 없잖아. 

        

       다만, 직접적으로 묻기엔 많이 조심스러워서.

        

       “저, 연애 상담 잘해요.”

        

       슬며시 미끼를 던졌다.

        

       저는 아군이에요, 연적이 아니에요- 라는 마음을 담아.

        

       “그래? 그러면, 상담 좀 해줘! 안 그래도 요즘, 좋아하는……건지, 조금 헷갈리는 사람이 있거든.”

        

       굳게 얼어붙었던 진희의 입매가 풀리고, 다시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역시 정답이었나 본데.

       

       기대 이상의 결과다. 드디어 뭔가 보답을……응. 

        

       “네. 제가, 음. 남자 심리도 잘 아는 편이에요. 정말로. 믿고 맡겨주세요.”

        

       아마 여자 중에선 제일 잘 알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분명 그럴 거야.

        

       “남친 사귀어 본 적도 없다면서.”

        

       “……사연이 있어요. 아무튼……올라갈까요.”

        

       이유는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담은 기가 막히게 해줘야지.

        

       .

       .

       .

        

       그렇게 다시 앉은 자리.

        

       “자. 헷갈리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동료 스트리머야.”

        

       말없이 술을 두 잔씩 비운 후 시작된 대화는, 빠르게도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역시.

        

       역시, 그 나무꾼이 기어이 해냈구나.

        

       아무리 ‘아크’로서의 인간관계가 제법 넓은 편이라고는 해도, 진희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잦게 교류하는 남자 스트리머는 손에 꼽는다. 설마하니 유부남과 썸을 타는 중은 아닐 테니-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뭔가 좀, 거만한 표정이네?”

        

       “……억울해요.”

        

       “거의 자동 반사구나? 거짓말탐지기도 필요 없겠다.”

        

       작게 웃는 진희. 예쁜 미소다. 매력적이면서도 조금은 중성적인 얼굴임에도, 저렇게 웃을 때만큼은 티없이 맑은 소녀같아서.

        

       모르긴 해도, 레반도 이걸 보면 반하지 않을까.

        

       “고민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응, 그렇네. 그냥- 함부로 다가갔다가 밀쳐내질까봐……무섭, 응. 무서워. 아마……아니, 분명. 분명,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을 거라서.”

        

       글쎄. 모르는 일 아닌가.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될 텐데. 저 얼굴로.

        

       어색하지만, 칭찬이라도 조금 해야 하려나.

        

       * * * *

        

       “모르긴 해도, 그 사람도 지니님 좋아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음. 이렇게 예쁜데. 분명 그럴 거야.”

        

       “……진짜 모르긴 하네. 그래도- 듣긴 좋다! 한번만 더 말해줘.”

        

       “그 사람도 지니님 좋아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거 말고, 뒷부분.”

        

       “분명 그럴 거야.”

        

       “조금 앞.”

        

       “이렇게.”

        

       “……일부러 이러지?”

        

       “……표정이 무서워요. 누가 보면 화났다고 오해하겠어.”

        

       “오해 아닌데.”

        

       “……이거 맛있어요. 자.”

        

       몇 분 전까지 그렇게나 속상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당장이라도 바보처럼 헤실거릴 것만 같았다. 별것 아닌 한 마디에 가슴이 몽글거리고, 작은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귀가 움찔거려서-

        

       ‘나, 정말로……좋아하는구나.’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숙이며, 진희는 스스로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코 보답받을 수 없는 마음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아하게 된 사람이 하필 동성인데, 우연히 그 사람도 동성을 좋아하기를 기대한다니. 진희는 낙천적인 편이었으나, 그 정도로 대책없이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을 수는 없어서.

        

       ‘여자친구……여자친구 있었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농담이었겠지? 맞아. 일부러 뜬금없는 말해서 당황시키는 거, 한두번도 아니었잖아. 기대……기대는, 하면…….’

        

       차라리 그런 농담을 하지 않았더라면. 왜, 희망이 가장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테이블 저 편에 앉은 예나가 조금은 미워질 지경이더랬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그럴 권리도 없지만-

        

       사랑은 본래 불합리한 것 아닌가. 주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차라리, 차라리-’

        

       심장이 쿵쾅거리며 울릴 때마다 알코올로 가득한 피가 온몸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당장이라도 뻗어나갈 것만 같은 손을, 울컥하고 터져나올 것만 같은 감정을 꾹꾹 억누르는 게 너무나도 힘들어서- 아랫입술을 잘게 깨물며 표정을 굳힌 순간.

        

       움찔, 조금 물러났던 예나가 고기를 한 점 건네며 다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천천히 안색을 살피는 눈동자는……눈치를 보는 거겠지.

        

       -쪼륵

        

       이어서, 이미 3분의 2는 차 있는 진희의 물컵도 새삼 가득 채워주고- 달리 뻗을 곳을 찾듯이 움찔거리던 손을 다소곳이 모은 예나는, 앞에 놓인 술잔을 조용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신나게 들이붓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세상 마이페이스인 척하는 주제에. 꼭 이럴 때만 겁 많은 고양이다.

        

       ‘……진짜……미워할 수가, 없네.’

        

       아니, 사실 생각해보면……미워할 이유도 없다. 애초에 기대도, 오해도, 모두 진희 혼자 한 것임이 분명하니.

        

       그럼에도- 저리 곤란해하는 모습이, 자칫하면 탄성이 터져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귀여워 계속 보고 싶어지는 탓일까. 아니면, 그간 당해온 일이 많아 복수심이 스멀스멀 흘러나온 탓일까.

       

       그도 아니면……절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가슴을 메우려 드는 질투심 탓일까.

        

       “예나 먹어.”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말한 진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무표정을 유지하며 앞접시에 올라온 고기를 다시 예나의 접시로 돌려두자- 그 고기에 무슨 역장이라도 있는 양 움찔, 하고 밀려나듯 뒤로 움츠러드는 예나.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두 눈이 살짝 커진 채다. 거절의 한 마디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라도 한 듯이.

        

       진희는 문득, 저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광경을 상상했다. 그건, 분명, 정말로 마음 아픈 모습이겠지만……그 원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조금, 아니, 많이-

        

       “너무! 그,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상상의 흐름을 강제로 잘라내기 위해 일단 던진 외침이었다.

       

       자꾸만 엄한 곳으로 퍼져 나가려는 생각을 방치하면, 가서는 안 될 곳까지 닿아버릴 것만 같아서. 

        

       “화난 거 아니야. 진짜로. 그냥……생각이, 생각이 복잡하고, 배불러서 그래.”

        

       그럼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화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지 오래였으니.

        

       그리고, 설령 화가 났더라도……분명, 화를 내며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을 터다.

        

       아깝고, 소중한 시간 아닌가.

        

       잔인할 정도로.

        

       -꿀꺽

        

       앞에 놓인 잔을 들어올린 진희는, 천천히 술을 비워냈다. 아직도 조금은 놀란 듯이 눈동자가 흔들리는 예나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래. 방울져 내리는 행복도 행복이잖아. 조금, 조금씩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한 방울씩 흘러내리는 물을 핥으면서도 살아남을 수는 있으니까. 감히 양껏 들이켤 수 있기를 바라는 건, 과욕일 터였다. 하물며……그리 부리는 욕심이 예나에게 상처가 될 가능성도 있는 마당 아닌가.

        

       그녀의 입장에서, 그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었다.

        

       정말로.

        

       그리하여 옅은 한숨을 내쉰 진희가 우물거리며 사과를 입에 올린 순간.

        

       “……미안해.”

       “집에서 3차 할래요? 가까운데.”

        

       겹치듯이 들려온 건, 바라마지 않던 권유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셨나요?

    조금이라도 빠르게 돌아오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외전은 모두 비정기 연재 예정입니다. 완성을 하고 시작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실패한 탓입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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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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